“노후 파산 막으려면 연금수령 때도 투자 지속해야”
글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2026-07-20

은퇴자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하나다. 죽기 전에 돈이 먼저 바닥나는 것. 모아둔 돈을 매년 얼마씩 꺼내 써야 평생 마르지 않을까. 30여 년 전, 이 절박한 질문에 처음으로 숫자로 된 답을 내놓은 사람이 윌리엄 벤겐(William P. Bengen)이다.
그가 1994년 제시한 답은 ‘4% 룰’이라는 이름으로 오늘날 전 세계 은퇴 설계의 표준이 됐다. 은퇴 첫해에 자산의 4%를 인출하고 이후 물가상승률만큼 늘려 가면, 과거 어떤 최악의 시기에 은퇴했더라도 30년간 돈이 바닥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견고한 원칙을 만든 사람이 경제학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MIT 항공우주공학도 출신으로 현장에서 고객을 상담하던 재무설계사(CFP) 벤겐은, 은퇴자가 얼마를 인출해야 안전한지 누구도 답하지 못하던 질문에 부닥쳤다. 그는 엔지니어답게 과거 시장 데이터를 직접 파고들어, 막연한 통념의 영역이던 이 문제를 정밀한 숫자로 바꿔놓았다.
그로부터 30년, 벤겐은 지금도 이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2025년 펴낸 신간에서 그는 다양한 자산군에 분산투자하면 자산에서 인출 가능한 비율을 4%에서 4.7%까지 끌어올릴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정작 많은 은퇴자가 지나치게 보수적이라고 지적한다. 4%라는 숫자는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최악의 사례를 가정한 하한선일 뿐, 대다수 은퇴자는 더 풍족하게 써도 된다는 것이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그에게 은퇴 이후, 자산을 꺼내 쓰는 국면에서 부닥칠 질문을 던졌다. 매년 얼마씩 꺼내 써야 노후 자금이 바닥나지 않는가, 은퇴 이후에도 주식 비중을 얼마나 유지해야 하는가, 은퇴 직후의 시장 폭락은 왜 그토록 치명적인가. ‘4% 룰의 아버지’가 직접 들려준 답은 통념보다 훨씬 대담했다.
‘4% 룰’은 한국에서도 폭넓게 인용되고 있습니다. 이 룰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1990년대 초, 저는 은퇴 계좌에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자금을 인출하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인플레이션과 투자 수익률에 관한 미국의 과거 데이터를 활용해, 30년의 기간 동안 세제 혜택 계좌의 잔액이 최종적으로 0이 되도록 매년 전년도 인플레이션만큼 인출액을 늘리는 방식의 인출 전략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지난 100년 중 ‘최악의 사례’는 1968년 10월 1일에 은퇴한 사람으로, 은퇴 초기에 여러 차례의 약세장과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은 탓에 은퇴 첫해에 안전하게 인출할 수 있는 ‘인출률(포트폴리오 자산 대비 인출 금액 비중)’이 4.15%에 불과했습니다. 여기에 여러 문화적 영향이 더해져 다듬어진 끝에 ‘4% 룰’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해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4%는 첫해에만 적용됩니다. 첫해에 포트폴리오의 4%를 출금하고, 그 다음부터는 첫해에 출금한 금액에 매년 인플레이션만큼 늘려 출금하는 것입니다.
한국에는 노후 자산을 현금이나 원리금보장상품에만 묶어 두는 투자자가 여전히 많습니다. 이들에게 왜 투자가 필요한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은퇴자에게 가장 중요한 재무적 문제는 돈이 바닥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그 목표를 달성할 확률이 높은 인출 방식을 채택해야 합니다. 은퇴 초기의 약세장이 인출률을 낮출 수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위협은 인플레이션입니다. 매년 인플레이션만큼 인출액을 늘리는 방식을 사용한다면, 높고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이 인출 계획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금이나 지나치게 안전한 자산에 과도한 자금을 두면 인출률이 크게 낮아집니다. 현금 비중을 늘리려면 그만큼 고수익 투자에 대한 배분을 줄여야 하고, 이는 포트폴리오 전체의 수익률을 낮추며 그에 따라 인출률도 함께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주식 비중이 지나치게 높으면 포트폴리오의 변동성이 커집니다. 주가가 크게 하락하는 국면에서는 이것이 상당한 손실과 인출률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저는 주식 65%, 채권 30%, 현금 5% 배분을 최적으로 추천합니다. 채권과 현금의 비율은 인출률에 큰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조정할 수 있습니다.
최근 워런 버핏은 15%의 현금 비중, 즉 3년 치 인출액에 해당하는 현금을 보유해 주식시장 하락기에는 모든 인출을 현금으로 충당해 불리한 가격에 주식을 파는 일을 막을 것을 권고했습니다.
‘60:40 포트폴리오’를 가장 이상적인 자산배분 방식이라고 생각하나요? ‘100-나이 법칙’과 같이 나이가 들수록 점진적으로 주식 비중을 줄이는 방식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저는 ‘100-나이 룰’에 어떤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실제로 제 연구는 은퇴 기간 중 주식 비중을 줄이면 인출률이 낮아진다는 것을 명백히 입증했습니다. 이는 완전히 역효과를 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60:40(주식:채권) 배분은 좀 더 합리적입니다. 제 최근 연구는 65:35 배분이 거의 최적에 가까울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 배분 안에서 분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원래의 ‘4% 룰’은 미국 대형주와 미국 중기 국채에 50:50으로 나눈 포트폴리오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서는 포트폴리오의 자산군 수를 늘리고 자산배분 비중도 변화시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 그런 변화를 주었고 그 결과는 어땠나요?
당시 연구했을 때 두 자산으로 구성된 포트폴리오에서는 50:50 배분이 거의 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자산 수가 늘고 포트폴리오의 분산이 개선될수록 더 높은 주식 비중이 가능하고 또 바람직해집니다. 주식 비중이 높아지면 인출률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제 연구의 발전 과정이 바로 이 결론을 입증합니다. 포트폴리오의 자산군 수를 둘에서 셋으로, 최종적으로 일곱 개로 늘려가자 최적 주식 비중이 높아졌고 인출률도 개선되었습니다. 이 결과는 저의 신간 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은퇴 자산에 투자할 때 은퇴자가 수행할 수 있는 합리적인 투자 방식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제가 연구한 이론의 상당 부분에서 ‘매수 후 보유(buy & hold)’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그것이 대다수 재무 자문가의 투자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주식 비중이 변동하는 인출 방식은 분석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다만 두 번째 점과 관련해, 저는 최근 포트폴리오 성과에 따라 매년 인출액을 조정하는 인출 방식을 분석하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그 결과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저는 개인 은퇴 자산을 매수 후 보유 방식으로 운용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은퇴자가 포트폴리오의 투자 위험, 특히 주식 부분의 위험을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굳게 믿습니다. 시장 위험이 높을 때 주식 노출을 줄이고 안전한 시기에는 주식 노출을 늘려줘야 합니다. 하지만 개인투자자가 이를 직접 수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제3자의 ‘리스크 관리’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저는 이른바 ‘마켓 타이밍’, 즉 고점에서 전부 팔고 저점에서 전부 사들이려는 시도는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꾸준히 성공시키기란 너무 어렵습니다. 그러나 시장 위험의 변화에 대응해 주식 노출을 점진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제게 매우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은퇴자는 자신의 자본을 지켜야 합니다.
올해 한국 증시 변동성이 대단히 높았는데 이러한 시장에서 은퇴 자산을 보유한 투자자는 무엇을 유념해야 하며,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요?
변동성이 큰 환경은 투자자에게 힘든 시기일 수 있습니다. 주가의 장기 추세는 우상향하지만, 가격이 가파르게 하락하는 시기에는 자신의 투자 계획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고 포트폴리오가 손상되며 인출률이 낮아질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저는 모든 은퇴자가 포트폴리오의 치명적 손실을 막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리스크 관리’를 활용할 것을 권합니다.

은퇴 자산을 인출하려면 현금이 필요하고, 이는 곧 투자 자산을 매도해야 한다는 뜻인데, 그 과정에서 은퇴자가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앞서 은퇴 초기의 약세장이 인출률을 낮출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는 수익률 순서 위험(sequence-of-returns risk)과 관련돼 있습니다. 저축하는 동안에는 수익률의 순서가 거의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출을 시작하면 순서가 전부입니다. 은퇴 초기에 증시가 나쁜 구간을 만나면, 인출 자금을 마련하느라 낮은 가격에 더 많은 주식을 팔게 되고, 그것은 포트폴리오가 영영 회복하지 못할 손실을 고착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당한 현금 비중(최소 5%)을 유지하면 수익률 순서 위험에 대비할 수 있고, 인출 과정을 크게 단순화시킬 수 있습니다. 인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장기 투자 자산을 매도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은퇴자는 주식·채권 펀드에서 나오는 배당(분배금)을 재투자하지 않고 현금 계좌로 이체하도록 지정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현금 계좌를 지속적으로 보충해 주어 자산 매도 빈도를 줄여 줍니다.
지난 연구에서 언급하셨듯 ‘4% 룰’에서의 4%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최소한의 인출률입니다. 그 수준으로만 인출하면 은퇴 후 삶의 질이 불필요하게 낮아질 수 있다고도 말씀하셨는데요. 그러면 일반적인 은퇴자에게 적정한 인출률은 얼마일까요?
우선 중요한 구분을 해 두겠습니다. 4%는 ‘보편적 안전인출률(Universal SAFEMAX)’로서 지난 100년간 어떤 은퇴자가 겪은 것 중 가장 낮은 인출률입니다. 이는 1968년 10월 1일 은퇴자에게 적용되며 ‘최악의 사례’를 나타냅니다. 그런데 ‘최악의’ 상황을 겪는 은퇴자는 극소수이기 때문에 보편적 안전인출률을 기본 인출률로 삼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이와 달리 ‘개인별 안전인출률(Individual SAFEMAX)’은 과거 사례, 은퇴자의 여덟 가지 ‘요소(Elements)’, 주식시장 밸류에이션과 인플레이션 전망을 바탕으로 개별 은퇴자에게 맞춘 인출률입니다. 이는 언제나 보편적 안전인출률보다 높습니다.
또 살면서 은퇴자는 때때로 주택 구입, 대출 상환 등 급하게 큰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은퇴에 들어가기 전에, 크고 불규칙한 지출을 가능한 한 최대한 추정해 은퇴 예산 설계를 해야 합니다. 또한 누구도 자신의 모든 은퇴 지출을 완벽하게 예측할 수는 없으므로, 예상치 못한 지출에 대한 대비도 예산에 반영해 두어야 합니다.
기대수명이 계속 늘면서 어떤 은퇴자는 40년, 심지어 50년의 은퇴 기간을 계획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더 긴 기간에 맞추려면 전략을 어떻게 조정해야 합니까?
기간이 길어질수록 인출률은 낮추고, 주식 비중은 앞서 제가 권한 65%보다 높여야 합니다. 다행히 은퇴 기간이 아주 길어지면(50년 이상) 인출률은 그 아래로는 결코 떨어지지 않는 ‘하한(Floor)’에 가까워집니다. 최근 워런 버핏은 정부의 소득 수단(한국의 국민연금)과 종신 연금(annuity) 등을 조합해 은퇴 기간의 모든 필수 비용을 충당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그러면 투자 포트폴리오에서의 인출은 재량적 지출에만 쓸 수도 있고 더 긴 기간 동안 은퇴 자산을 유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노후 자산을 운용하는 한국 투자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담대하게 계획하되, 지출은 보수적으로 하십시오. 다만 삶을 충분히 즐기지 못할 만큼 지나치게 보수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은퇴는 스트레스는 줄이고, 여행과 자기계발, 취미, 가족 관계를 돈독히 할 기회는 늘리며 음미해야 할 시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