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인생엔 항상 플랜B가 있다고 주장한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경북중 2학년 때 자퇴한 그는 담임교사의 권유로 검정고시를 치러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색맹이었기에 의대·공대 진학을 포기했지만 상대에 진학해 기업인이 됐다. 법대를 거쳐 판검사의 길을 가지 않은 건 연좌제 때문이었다.
6·25 후 이른바 보도연맹 사건에 연루된 둘째 형이 잡혀가 돌아오지 않은 탓이다. 연좌제는 ROTC를 할 때도 그의 발목을 잡았다. 3학년 내내 훈련을 받았는데 때늦은 신원조회에서 문제가 돼 잘렸다.
그 후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덕에 육군경리학교 교관으로 특채 돼 장교로 군 복무를 마쳤다. 한때 직장을 그만두고 공인회계사 사무실을 차렸을 땐 의뢰인의 사정을 감안해 적게 받고 일을 해 준 게 문제가 돼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 후 제지업계로 돌아가 창업을 했다. 전화위복. 그는 당시 재무부 징계를 받지 않았다면 회계사로 늙어갔을 거라고 말했다.
“그랬다면 무엇보다 인생의 버라이어티가 없었을 겁니다.”
그는 플랜A대로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 자꾸 플랜B로 가게 되더라고 덧붙였다.
-사실 지금 타고 있는 뗏목이 정체성과 잘 안 맞아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그냥 다니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조직생활을 하더라도 자신과 안 맞을 땐 ‘NO’라고 해야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해왔다면 하던 일을 그만둬도 모종의 대안-플랜B가 있게 마련입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도 알아야죠. 저는 결과적으로 플랜B가 더 좋았습니다.”
-“기업의 주인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지만 기업은 영원해야 한다”고 책에 쓰셨습니다.
“창업자가 기업이라는 아이를 낳지만 그 아이가 오너의 돈벌이 수단이 되어선 안 됩니다. 부모가 자기 아이에게 앵벌이 시키면 되겠어요? 기업도 일단 창업을 하고 나면 독자적인 생명체입니다.”
-경영권 승계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보시나요?
“경영권 승계라는 미명으로 자녀를 옭아매는 겁니다. 뛰어난 예술가나 운동선수가 될 수도 있는 자식을 왜 회사에 묶어둡니까? 경영이란 일이 잘 맞는 사람에게 넘겨야죠. 보유한 지분만 법에 따라 물려주면 돼요. 일찍이 오너 승계를 배제한 유한양행이라는 모델이 우리나라에 이미 있습니다.”
그는 과거 기업인 시절 사원 집단지주제를 시행, 사원 공유 방식의 새로운 경영 모델을 제시했었다.
“주가가 오르면 다들 주식을 팔아 실패작으로 귀결된 우리사주조합의 한계를 극복해 보려 했습니다. 주식을 구성원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에 주려 한 거죠. 의결권은, 지분만큼 공동으로 행사하게 하고. 배당은 복리후생에 쓸 수 있습니다.”
그는 신호그룹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이 제도가 정착됐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