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다고 아무나 만나기 싫다? 만나려는 노력은 하십니까?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기 싫다? 만나려는 노력은 하십니까?

글 : 한혜경 / 작가, 前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2023-08-22

“외롭지만 아무나 만나고 싶지는 않아요.” 


내게 조언을 요청한 A씨가 대화 도중 여러 번 강조한 말이다. 자타공인 ‘화려한 싱글’로 살아왔으나 이제 화려함은 사라졌고, 곧 ‘독거노인’이 될 거라는 말로 자신을 소개한 A씨는 말 의 내용과는 달리 밝은 표정을 지었고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그는 대기업 임원으로 일 하다가 퇴직한 후에도 이런저런 일을 하며 바쁘게 살았고, 최근에야 모든 일을 다 마무리 짓고, 완전히 은퇴했다고 한다. 그는 일에 대해서 “정말 여한이 없을 정도로 내 모든 능력을 다 바쳐서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는데, 뭔가 자기실현의 끝까지 가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당당함과 자신감이 느껴져서 부러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인생이 외롭다’고 하소연했다. 일에서 완전히 물러난 직후부터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처음에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하도 바쁘게 살다가 한가해져서 그런가,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외롭다’는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고, 무엇보다 주변에 사람은 많은데 사생활 이야기를 할 사람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서 뭔가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객관적인 의견을 듣고 싶다고 했다.



주변에 사람은 많은데 왜 외로울까? 


 나는 A씨가 ‘주변에 사람은 많다’고 말한 것을 상기시키면서 요즘에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물어보았다. A씨는 현재 일주일에 한번 씩 그림을 배우고 있고, 일주일에 두세 번 운 동을 하며, 함께 그림 배우고 운동하는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고 했다. 특히 두 모 임 모두 A씨 자신이 주도적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함께 식사도 하고 맥주도 마시면서 시간 을 보낸다고 말했다. 


내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그분들과 친구처럼 지낼 수도 있지 않나요? 그렇게 자주 만나다 보면 자연스럽 게 속마음도 털어놓을 수 있을 텐데요...”


 A씨는 한참 생각하더니, 그들은 모두 전 직장의 동료이거나 일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이어서 친구가 되기는 힘들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사생활 이야기나 속마음을 나누지 않는다는 게 자신의 오랜 규칙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즉 “술은 마시지만 마음을 나누지는 않는다.”는 것. 그 외에 따로 만나는 사람이 있느냐는 나의 질문에 대해 그동안 동창회 같은 데는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난 학연, 지연, 혈연 그런 거 다 싫어해요. 선생님도 그렇게 쓰셨잖아요. 친구를 사귈 때 학연, 지연, 혈연보다는 관심과 취향에 따라 다양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요.” 


당황스러웠다. 내가 그런 내용을 쓴 건 사실이지만 그건 학연, 지연, 혈연이 소중하지 않다거나 피해야 할 무엇이라는 뜻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취향 중심의 만남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학연, 지연, 혈연 간의 만남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점점 더 외로운 사람이 많아지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결국, A씨가 외로운 이유는 ‘외롭지만, 아무나 만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고, 그가 만나고 싶은 사람의 기준이 너무 엄격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그 자신도 동의 했다. A씨가 현재 맺고 있는 관계망이 너무 제한적이라는 것도 문제였다. 겉으로는 사교적이 고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건 은퇴 전에 공적 관계를 맺었던 소수의 사 람들과의 관계에 한정된 것이었다. 게다가 공적으로 만난 사람들과는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는 그의 오랜 규칙 때문에 그들과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나 고민을 스스럼 없이 나눌 수 없는 것이다. 그에게 부족한 건 자신의 못난 모습도 보일 수 있을 정도로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한마디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외로움, 매일 담배 15개비 흡연만큼 해롭다


요즘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수명이 길어지고 1인 가구도 증가하면 서 외로움을 피하기는 점점 더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외로움이 우리 인간에게 매우 해롭다는 점이다. 한소원 교수는 외로움이 우리의 뇌를 위협하는 감정이며, 외로움의 위협을 받은 뇌는 민감해지고 방어기제가 커지고 서운함을 자주 느낀다고 주장했다. 외로움이 매일 담배 15개비 흡연하는 것만큼 해롭다는 연구 결과도 나온 바 있다. 최근에 미국 공중보건서비스단은 외로움이 심장병이나 뇌졸중 등을 유발하며 조기 사망 가 능성을 29%까지 높일 수 있으니 외로움을 비만이나 약물중독 같은 심각한 공중보건 문제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무료 공공의료시스템(NHS)을 가지고 있는 영국에서 1차 진료를 담당하는 의사들은 환자의 20%가 ‘의료’가 필요하기보다는 ‘외로움’ 때문에 의사를 찾 아오는 사람들이라는 내용을 보고한 바 있다. 


그리고 마침내 영국에서는 2018년에 ‘외로움부(Ministry of Loneliness)’라는 정부 부처를 만들고 장관도 임명했다. 즉 외로움의 문제에 대해 사회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국가가 나선 것이다. 가까운 나라 일본도 코로나 이후에 고독사 방지를 위한 고독 담당 장관을 임명하였으니, 아마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나라에서도 외로움에 대한 사회적 대처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외로움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으로 ‘친구를 어떻게 만들까?’ ‘친구와 어떻게 놀까?’라는 물음이 앞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롭지만 아무나 만나고 싶지는 않다’는 당신 에게 말하고 싶다. 외롭다면 누군가를 만나야 하고, 노력도 해야 한다고. 독립영화 에 나오는 꼬마 ‘윤’은 친구와 싸우다가 맞았다는 말에 누나가 “그럼 너도 때려야지, 왜 맞고만 다니냐?”고 면박을 주자 이렇게 대답한다. “계속 때리기만 해? 그럼 언제 놀아?.... 난 그냥 놀고 싶은데!” 그렇다. 요즘 우리에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만남이 필요하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는 마음으로 친구를 만나던, 친구와 노는 게 그렇게 좋았던 그 시절의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뉴스레터 구독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뉴스레터를 신청하시면 주 1회 노후준비에 도움이 되는 유익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 이름
  • 이메일
  • 개인정보 수집∙이용

    약관보기
  • 광고성 정보 수신

    약관보기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뉴스레터를 구독한 이메일 조회로 정보변경이 가능합니다.

  • 신규 이메일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뉴스레터를 구독한 이메일 조회로 구독취소가 가능합니다.

  •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