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자는 새로운 ‘4분의1세기’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은퇴자는 새로운 ‘4분의1세기’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글 : 손진석 / 조선일보 기자 2026-02-04


세월의 흐름을 25년 단위로 잘라 볼 때 이번 세기 들어 1교시는 지나갔고 이제 막 2교시가 시작됐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가운데 대부분은 ‘21세기의 2교시’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남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2050년까지의 미래를 설계할 때 경제와 자산 증식을 둘러싸고 뼈대가 될 만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경제의 감속과 후진을 구분해야


앞을 볼 때 모두가 공통적으로 말하는 건 대한민국의 앞날이 그다지 밝지 않다는 것입니다. 생산가능 인구가 감소하며 활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죠. 우리나라의 잠재 성장률은 올해부터 1%대로 떨어질 전망입니다. 대외 여건마저 나쁩니다. 2020년대 들어 세계화 속도가 둔화되고 보호 무역주의가 고개를 들면서 수출 주도형 국가인 우리나라에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 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개인들에게 중요한 건 감속과 후진을 구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 경제는 어디까지나 감속하고 있을뿐 결코 후진하고 있지 않습니다. 버스에 비유하면 예전처럼 빨리 못 달릴 뿐 여전히 앞으로 가고 있다는 거죠. 2024년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은 2%였습니다. 저성장인 건 분명하지만 유럽 주요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꽤 높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감속과 후진을 구별하지 않는 사람들이 의외로 꽤 있어서 입니다.


2023년 우리나라 GDP가 2520조 원 가량이었습니다. 이듬해인 2024년에 2% 성장했으니까 한 해 동안 우리 땅에서 새로 생겨난 금전 가치가 52조 원에 달한다는 얘기입니다. 신용 여력은 그보다 더 크게 증가납니다. 연 평균 광의의 통화량(M2)이 2023년에서 2024년으로 가면서 215조원이나 늘었습니다. 이렇게 경제 활동 규모가 커지고 있는데도 소득, 통화량, 투자, 자산이 축소될 수 있을까요?


만약 경제 성장이 마이너스이거나 그렇게 될 것으로 단정지어 버린 개인이 있다면 스스로 확률 낮은 쪽에 위험하게 베팅하는 것입니다. 인구 총량이 줄어도 GDP가 곧바로 감소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그걸 증명합니다. 인구가 2020년 5183만 명으로 최고점을 찍은 이후 감소세로 돌아선 지 5년이 넘었지만 경제 규모는 지속적으로 커졌습니다. 인구가 줄어들면서 GDP 총량이 커지면 1인당 GDP는 더 올라가게 되니 국민 개개인은 더 잘 살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 규모가 축소된다고 생각하거나 부동산·주식 같은 자산 가격이 계속해서 하락할 것으로 단정 짓는 건 위험하고 무모합니다. 속도가 상황에 따라 달라질뿐 통화량은 항상 늘어나고 돈의 가치는 추세적으로 하락합니다.


한국 실질 경제 성장률(2020-2025)


물론 미래에 커다란 경제 위기가 우리에게 닥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런 ‘대형 경제 재난’이 발생하더라도 치유되는 속도가 빠르다는 점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 사태는 분명 충격이 엄청났지만 2~3년이면 상당 부분 진압됐습니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빠른 속도로 내리고 정부는 재정을 뿌려대며 서둘러 응급 처치를 하기 때문이죠. 이 포인트가 중요합니다. 중앙은행이란 건 현대적인 발명품입니다. 20세기 초입엔 전세계 중앙은행이 18개였지만 21세기는 170개 이상으로 늘어났습니다. 20세기 동안에만 적어도 152개의 나라에서 중앙은행 시스템을 새로 장착했다는 것이죠. 무의촌(無醫村)이 넘치다가 동네마다 의사가 상주하면서 조금만 아파도 빨리 나을 수 있게 된 것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한국 기업들의 실력을 과소평가하지 않아야 합니다. 생성형 AI는 미국이 주도했지만 피지컬 AI 시대에는 우리나라의 역할이 상당할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또한 우리 기업들은 여전히 해외에서 돈을 많이 벌어 오고 있습니다. 2024년 한해 경상수지 흑자 폭은 990억 달러였습니다. 국내에서 나간 돈보다 들어온 돈이 130조 원 이상 더 많았다는 얘기죠. 부자 나라입니다. 한순간에 무너지기 어렵습니다.


경제는 하락론, 비관론, 폭락론이 긍정적인 전망보다 솔깃하고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그게 인간의 심리죠. 그래서인지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이 이미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는 것처럼 호도하는 자칭 전문가들이 유튜브에 넘칩니다. 그리고 그런 일종의 상술에 넘어가 비관론에 푹 절여진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엄연히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시기에 인구 감소, 잠재 성장률 저하와 같은 비관적 단어에만 빠져 있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습니다. 내가 잘 살고, 자식들이 잘 사는 것을 방해하는 마음가짐입니다. 그리고 세상이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일 때 생기는 기회를 놓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고령화는 물가와 금리를 어떻게 바꿔놓을까


개인이 자산을 불려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고려 요소는 금리입니다. 금리 수준이 어디서부터 어디 사이에서 움직일지만 미리 알 수만 있어도 투자에는 크게 성공할 수 있죠. 금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역시 물가입니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조절할 때 최우선으로 보는 게 물가이기 때문이죠. 물가를 점쳐보면 자연스레 금리도 어느 정도 가시권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러면 미래를 내다보기 위해 과거와 현재를 먼저 보겠습니다. 1990년부터 2020년까지 30년간은 저금리 저물가가 이어진 태평성대였습니다. 비결은 세계 정세의 변화였습니다. 1990년대초 중국이 개혁 개방 물결을 탔고요. 비슷한 시기에 소련이 무너져 동유럽 시장이 열렸습니다. 글로벌 제조업체들은 중국과 동유럽에서 냉전 시대보다 훨씬 낮은 임금으로 근로자들을 대거 고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물가가 낮아지고 그에 따라 자연스레 금리도 낮출 수 있는 여건이 전 세계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반대로 표현하면 금리를 낮춰도 물가가 오르지 않았던 골디락스였던 것입니다. 제조원가가 낮았고, 시장이 확대됐기 때문이죠.


1990년부터 2020년까지 30년간 미국의 월 평균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2.3%에 불과했습니다. 앞서 1961년부터 1990년까지 30년간 월 평균 소비자 물가 상승률(5.1%)의 절반에도 못 미쳤습니다. 물가는 금리와 즉각적으로 연동됩니다. 연방준비제도의 월 평균 기준금리는 1961년부터 1990년까지 30년 간 연 7.25%였지만, 그 다음 30년인 1991년부터 2020년 사이에는 연 2.65%로 드라마틱하게 떨어졌습니다. 이런 장기적인 거시 경제의 흐름을 우리는 꿰뚫어서 봐야 합니다.


1990년대부터 30년가량 경제활동을 한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금리란 대개 연 1~3%대인 낮은 수준을 오르락 내리락한 것으로 경험상 기록돼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1960년대부터 30년간은 평균 연 7%대 금리였습니다. 앞으로 연 6~7% 이상의 아주 높은 금리가 우리 삶을 강타할 가능성은 낮지만 2010년대 초저금리보다는 높아질 개연성은 충분합니다. 2025년 상반기에 미국 기준금리는 연 4.25~4.5%로 쭉 이어졌습니다. 가을 이후 3차례 인하돼 연 3.5~3.75%가 됐지만, 그래도 1990년부터 30년 사이의 금리보다는 꽤 높은 수준입니다.


70년간 미국 기준금리 추이(자료:세인트루이스연방준비은행)


70년간 미국 도시 지역 소비자물가 상승률추이(자료:세인트루이스연방준비은행)

  

앞으로 2040년대까지의 물가와 금리는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까요. 2010년대식 저물가 저금리가 재현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전세계적으로 유동성이 지나치게 늘어서 물가를 자극하고 있고, 보호 무역주의가 고개를 들면서 생산 원가를 높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세계 각지에서 전쟁과 무력 충돌이 잦아지고 있는 것도 경제 안정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때 중요한 변수는 고령화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지구 전체의 고령화가 심각해져 수요 부진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내다봅니다. 노인들이 돈을 안 쓴다는 데 주목하는 관점이죠. 장기 불황에 빠진 시기의 일본을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면 저금리로 경기 부양해야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선진국 금리 수준이 2010년대 같은 제로 금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연 1~2%로 낮게 유지될 가능성이 있죠. 그러면 통화량이 늘어나는 속도가 많이 꺾이진 않을 것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고령화의 영향을 정반대로 봅니다. 일할 수 있는 젊은 근로자들이 희귀해져 전 세계적으로 인건비 수준이 높아지고, 그 결과 고물가가 만연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다른 나라의 저임금 근로자를 제약 없이 활용하기가 구조적으로 어렵다면 이런 시각에 힘이 더 실릴 수 있습니다. 앞으로 금리 수준을 점쳐보려면 고령화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하게 살펴야 할 겁니다.




AI의 발전이 물가와 금리에 미치는 영향은?


앞으로의 물가·금리를 내다볼 때 고령화 이외에도 빼놓지 말아야 할 중요한 변수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인공지능(AI)입니다. AI 시대의 도래가 세계 물가에 미칠 영향에 대해 경제학자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장기적으로는 강력한 하락 요인이지만, 단기적으로는 오히려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복합적인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길게 봐서 물가 하락에 AI가 기여한다고 보는 핵심 근거는 생산성 향상입니다. AI는 지식 노동과 전문 서비스의 비용을 낮춥니다. 법률 자문, 디자인, 소프트웨어 개발 등에서 공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가격 하락이 이뤄질 개연성이 적지 않습니다. 게다가 공급망을 유지하는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AI를 통해 낭비 없는 재고와 물류 관리가 가능해지면 유통 비용이 최소화될 수 있기 때문이죠. 또한 AI가 인간의 많은 업무를 대신하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줄어들고, 이것이 제품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다만 이와 같은 AI가 도입되는 과도기에는 물가가 만만치 않게 높아질 수 있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주요 빅테크들이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AI칩을 사들이면서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데요. 이런 수요 폭증이 원자재와 에너지 가격을 자극하는 ‘테크 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견해입니다. 게다가 AI 모델을 학습시키고 구동시키는 데에 엄청난 전력이 필요한 것도 물가를 올려 놓을만한 요인입니다. 경제 활동의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전기요금이 꽤 많이 오를 수 있기 때문이죠.


앞날을 100% 확신할 수 없지만 AI 발달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위와 같이 진행된다면 물가·금리가 파도가 생기듯 시간이 지나면서 위 아래로 출렁거리게 될 겁니다. 그렇다면 개인은 이런 흐름을 잘 감지해서 미래를 대비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시리즈 전체 보기 


1부 한 해 260조원씩 증가하는 통화량, 은퇴자가 치명상 입지 않으려면


2부 글로벌 통화량 대폭발, ‘국경 없는 돈’의 시대 대비하려면


3부 통화량을 알면 주식 부동산 금 가격이 보인다


4부 통화량 폭발에 맞춘 자녀·손자 교육, 가문의 명암 가른다


5부 은퇴자는 새로운 ‘4분의1세기’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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