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량 폭발에 맞춘 자녀·손자 교육, 가문의 명암 가른다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통화량 폭발에 맞춘 자녀·손자 교육, 가문의 명암 가른다

글 : 손진석 / 조선일보 기자 2026-01-12


요즘 사회적으로 자녀 금융 교육에 관심이 부쩍 높아졌습니다. 자녀 명의의 증권계좌를 만들어서 어려서부터 투자를 배우도록 하는 MZ세대 부모도 많아졌고요. 이번 글에서는 ‘가내(家內) 금융 교육과 진로 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엄밀히 말해 대한민국에서는 초중고는 물론 대학에 가서도 정규 교과과정을 통해 실생활 금융을 배우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동안 고교 과정에서는 경제가 선택 과목이었던 데다, 그중 금융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대학의 경제학 수업은 지나칠 정도로 수학에 치중돼 있죠. 그래서 실생활에 필요한 금융 지식을 충분히 배우지 못한 금융 문맹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결국 ‘생활 금융’은 학교가 아니라 집에서 깨우쳐야 합니다. 즉 용돈·소비관리, 내집 마련, 예·적금·보험·대출, 신용 및 투자 자산 관리 물가·금리·환율, 합리적 소비와 재무설계 등은 스스로 체득하거나 부모로부터 금융 교육을 받아서 익혀야 합니다.




자산 경쟁의 시대



2010년대 이후 통화량이 급격히 늘어나는 유동성 장세가 전세계적으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럴 때 대출을 지나치게 겁내거나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면 자산 불리기 경쟁에서 뒤처지기 쉽습니다. 저의 지인 A씨의 사례를 들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대학 교수 아버지와 고교 교사 어머니 밑에서 컸고, 명문대를 나온 사람입니다. 어릴 때부터 빚 내면 안된다는 부모 말씀을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였죠. 평범한 직장인으로 미혼인 A씨는 30대 중반까지는 자존감이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40대 초반에 이른 지금은 의기소침해졌고 매사에 자신감이 떨어졌습니다. 


대출을 적대시하며 오랫동안 오피스텔 월세를 살다보니 자산 축적이 거의 안되어 있습니다. 평소에 이른바 ‘영끌’을 하던 사람들을 손가락질하다가 뒤늦게서야 ‘돈의 원리’를 깨닫고 후회하고 있습니다.


70대인 A씨의 부모는 교수와 교사 부부로서 근검절약하면 자산을 늘릴 수 있었던 세상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연금으로 적당히 노후까지 보장받는 세대입니다. 하지만 A씨는 그렇지 않습니다. 폭발적으로 유동성이 넘치는 시대를 살고 있고, 경제 성장률보다 통화량 증가율이 훨씬 높은 현상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수도권 아파트를 중심으로 투자 자산의 가격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치솟고 있죠. 이럴 때 적절하게 대출을 활용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자산 불리는 경쟁에서 뒤질 수 밖에 없습니다.


A씨의 경우는 학창 시절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학교를 나왔습니다. 또 직장에서 일을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학업과 노동에 들인 노력이 허무할 정도로 자산 축적을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월급의 일부를 모으는 것만으로는 상대적으로 뒤처질 수 밖에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즉, 내가 열심히 공부하고 힘들여 노동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할 수 밖에 없는 세상으로 이미 바뀌어 있다는 겁니다. 대출을 멀리하는 ‘현대 사회의 수도승’처럼 살면 당사자뿐 아니라 자식 세대까지 고생합니다.



소득의 4분의1을 주거비로 쓰는 건 글로벌 표준


돈이 폭발하듯 늘어나는 세상에서는 ‘자산=자본+부채’라는 회계의 기본원리를 각인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감당할 수 있는 적절한 수준에서 빚을 이용하는 것이 이롭다는 걸 자녀들에게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다. 대출이란 건 박제를 하는 행위라고 이야기해보세요. 대출 액수란 명목 액수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과거의 어떤 한 시점에 박제돼 그대로 화석처럼 머물러 있는 액수가 됩니다. 물론 이자를 시간 값으로 치르긴 하지만 그게 감당이 된다면 시간이 갈수록 빚의 실질적 부담은 줄어들게 마련이죠. 갚을 수 있는 대출마저 무서워하면 통화량이 급격히 늘어나 돈의 가치가 급락하는 요즘 시대에는 한 순간 바보되기 쉽습니다.


특히 내집 마련과 관련한 금융 원리를 잘 알려줘야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전세가 소멸해가고, 월세가 늘어나고 있죠. 그래서 자녀나 손자 세대에 ‘가처분 소득의 4분의1’ 정도는 주거비로 사용하는 게 당연하다는 점을 분명히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에 읽은 독일 언론 기사에서는 뮌헨의 월급쟁이들이 가처분 소득의 42%를 주거비로 쓴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제가 특파원을 하면서 4년간 살았던 유럽에서는 어느 나라나 가처분 소득의 30% 안팎을 주거비로 매달 지출합니다. 집을 사는 경우를 볼까요. LTV(집값 대비 대출금 비율)가 80~100%에 이릅니다. 즉 소득이 건실하다면 10~20만유로 정도의 밑천으로 80~90만유로를 빌려 집을 산 다음 대출금을 갚고 살아간다는 얘기죠. 이게 아니라면 상당한 액수의 월세를 내고 삽니다. 어쨌든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을 갚든지, 아니면 월세를 내든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달 상당한 주거비를 지출하고 삽니다.


국가별 집값 대비 대출액 비율(LTV)

 

이와 달리 대한민국에서는 오랫동안 특이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전세라는 묘한 제도가 있습니다. 이건 당장에는 전세금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비용만 포기하면 주거가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전세대출을 내지 않는 한 매달 실질 지출이 없습니다. 얼핏 저렴해보이죠. 집을 사는 경우에도 2010년대 초반까지는 지금과 같은 원리금 상환 방식이 아니라 이자만 갚다가 집을 팔 때 원금을 한꺼번에 갚는 원금 일시 상환 방식이 많았습니다. 즉, 2010년 무렵까지는 전세든 자가든 한국인들은 실질적인 주거비에 지출을 많이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글로벌 표준과 거리가 먼 특이한 방식이었죠.


그랬다가 2010년대 이후에 통화량 폭발과 맞물려 실질적으로 주거에 쓰는 비용이 확 늘어났습니다. 셋집 살이의 경우 월세를 많이 부담해야 하거나 전세자금대출 이자를 갚아야 하고요. 집을 사는 경우도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을 갚느라 허리가 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이건 뒤늦게 글로벌 표준으로 주거 부담 방식이 바뀌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요. 이런 걸 학교에서 잘 가르치지 않습니다.


특히, 전세의 경우 매달 실제로 계좌에서 빠져나가는 지출이 없거나 전세자금대출 이자만 낸다고 하더라도 자산에 상당한 상대적 손실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줘야 합니다. 이를테면 10억원짜리 주택에 5억원짜리 전세를 4년간 살고 나면 해당 주택의 가격이 물가 상승률만 반영해도 1억원쯤은 오르게 마련입니다. 서울이라면 더 오르겠죠. 그렇다면 결국은 세입자가 상대적인 자산 축소를 경험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매달 떼어가는 돈이 아니라는 점에서 체감을 못하거나 늦게 하게 되죠. 이처럼 전세가 눈속임의 속성이 있다는 걸 알려주면 좋습니다.





직업의 안정성 중시하는 시절은 끝났다


통화량이 늘어나고 사회 구조가 바뀌면서 직업의 선호도 역시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조부모나 부모 세대가 감지하고 있어야 할 시대적 변화입니다. 사실 우리 땅에서는 필요 이상 오랫동안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고 규율을 만드는 이들이 힘과 돈을 독차지해왔습니다. 그랬다가 근년에 빠른 속도로 미국식 자본주의 사회로 바뀌면서 선호하는 직업군이 변화하고 있죠. 


미국에서는 가장 똑똑한 젊은이들이 월가의 투자회사에 가서 돈을 벌거나 실리콘밸리에서 개발자로 일하면서 고연봉을 받습니다. 우리 사회도 이런 방향으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단적으로 서울대생 가운데 행정고시 합격자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어 이제는 전체의 4분의1에 그치고 있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미국처럼 최상위 엘리트들가 공무원을 선택하지 않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의대 선호 현상 역시 통화량 폭발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의대 선호 현상의 기저에는 투자를 위한 안정적인 시드 머니를 원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요즘 의사들이 미국 주식을 비롯해 투자에 열 올리고 있는 걸 여러 유튜브 채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민간기업의 직업 안정성이 크게 높아졌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평균 근속 연수는 2004년 6.8년에 불과했지만 2024년에는 13년으로 20년 사이 거의 2배 가까이 길어졌습니다. 인구 구조가 바뀌면서 50세 전후로 임원이 안 될 경우 내쫓았던 고용 관습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요즘 정부는 정년 연장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직원 평균 근속 연수

 

이럴 때 과거의 관성대로 자녀들이 원하지 않는데도 안정성을 높게 사서 공무원, 교사와 같은 직업을 권유하는 건 사회가 달라진다는 걸 모른다는 뜻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보다 인구 구조가 더 빨리 바뀐 일본에서는 청년들에 대해 사실상 완전 고용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찍 잘릴까봐 두려워서 하고 싶은 직종을 피해야 할 이유가 점점 없어지고 있죠. 


그래서 안정성보다는 신입사원 시절부터 고연봉을 주는 직업이 훨씬 매력적으로 젊은이들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빠른 속도로 낮아지는 건 젊은이들이 세상의 변화를 볼 줄 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유학을 위해 막대한 시간과 돈을 투자해 30대 중후반에 교수가 된다고 하더라도 SK하이닉스 신입사원보다 급여가 작습니다. 공직이나 교직은 이제는 정말로 사명감 없이 선택하기 어려운 직종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통화량과 인구 구조와의 상관 관계 및 직업 선호도의 변화를 잘 캐치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 시스템이 경제와 우리의 관념에 미치는 영향도 감지해야 합니다. 의대와 이공계로 젊은이들이 쏠리고 문과가 경시되는 현상은 달라진 우리의 의식 구조를 반영합니다. 통화량이 폭발하면서 이제야 사농공상의 순서가 실질적으로 바뀐다는 인상도 받습니다. 


돈이 많아질수록 돈의 힘이 더 강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통화량이 폭발하는 시대에는 상인이 선비를 이깁니다. 그리고 상인 마인드로 무장한 사람이 높은 사회적 계급으로 뛰어오르게 마련입니다. 유럽의 귀족 계급도 과거에는 권력 엘리트 성격이 강했지만, 그 후손들은 거대 자산가의 모습으로 현재를 살아갑니다.


마무리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근년에 벌어지는 변화를 잘 지켜보고 자녀들과 손자들에게 지금 시대에 필요한 금융 교육과 진로 교육을 해야 합니다. 자손 대대로 가문의 명암을 가를 수도 있는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리즈 전체 보기 


1부 한 해 260조원씩 증가하는 통화량, 은퇴자가 치명상 입지 않으려면


2부 글로벌 통화량 대폭발, ‘국경 없는 돈’의 시대 대비하려면


3부 통화량을 알면 주식 부동산 금 가격이 보인다


4부 통화량 폭발에 맞춘 자녀·손자 교육, 가문의 명암 가른다


5부 은퇴자는 새로운 ‘4분의1세기’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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