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260조원씩 증가하는 통화량, 은퇴자가 치명상 입지 않으려면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한 해 260조원씩 증가하는 통화량, 은퇴자가 치명상 입지 않으려면

글 : 손진석 / 조선일보 기자 2025-11-24




세상에 돈이 많이 풀려 있다는 이야기를 요즘 많이들 합니다. 비단 경제 전문가들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유동성이 많이 풀렸다는 표현을 합니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죠. 우리 인생에 적잖은 영향을 줍니다. 대체 얼마나 많은 돈이 풀려 있을까요.


한국은행은 1986년 치부터 통화량을 집계해 공개합니다. 매월 통계를 내고 연간 단위로도 내놓습니다. 이 데이터를 보면 흔히 통화량을 가리키는 ‘광의의 통화량’은 1986년 48조원에서 2024년 4045조원까지 38년 동안 약 84배 늘어났습니다. 갈수록 증가 속도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특히 2020년대 들어 증가 속도가 무척 빠릅니다. 월간 데이터로 가장 최근에 집계된 통화량은 올해 8월 기준인 4400조원입니다. 2020년 8월에 3100조원이었으니 딱 5년 사이 1300조원 늘어났습니다. 2020년대 들어 연평균 260조원씩 원화로 된 돈이 증가했다는 것이죠.


2020년대 늘어난 통화량. 그래프 위에 적힌 액수는 매년 8월 기준 ‘광의의 통화량(M2)’이다. 올해 8월 기준 4400조원에 도달했다. 자료=한국은행


2020년대에 돈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정부가 재정 지출을 급격하게 늘리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사태 충격을 막기 위해 돈을 많이 집행했는데, 이후로도 높아진 지출 수준을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정부는 재정 지출을 계속 확대하겠다는 기조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죠. 그래서 적어도 2030년 무렵까지는 정부가 막대한 돈을 풀어놓는 기조가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흐름은 다른 선진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통화량이란 어떤 개념일까요. 간단히 짚어봅니다. 통화량에는 M1으로 표현하는 ‘협의의 통화량’이 있고요. M2로 표현하는 ‘광의의 통화량’이 있습니다. M1은 현금, 요구불 예금, 수시입출금식 예금을 가리킵니다. 현금 또는 즉시 인출이 가능해 현금이나 다름없는 예금을 M1이라고 하는 것이죠. 


이보다 넓은 의미의 M2는 M1을 모두 포함하며, 이외에도 머니마켓펀드(MMF),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수익증권(주로 펀드), 양도성 예금증서(CD), 어음, 그리고 정기예금을 비롯한 만기 2년미만의 다양한 금융상품들까지 포함합니다. 늦어도 2~3일 안에는 큰 손해 없이 현금화할 수 있는 금융상품들이 M2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M1은 ‘사실상 현금’을 말하고 M2는 ‘유동성이 높은 돈’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다른 전제 조건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M2를 통화량이라고 지칭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4400조원에 달하는 M2를 소유주별로 구분하면 절반은 가계가 갖고 있고요. 어디에 예치돼 있느냐로 보면 4400조원의 절반가량이 은행에서 숨 쉬고 있습니다.



왜 코로나 사태가 끝났는데도 정부가 돈을 많이 풀어놓을까


통화량이 늘어나는 이유 중 80% 정도는 가계와 기업이 민간에서 연쇄적으로 대출을 일으키기 때문인데요. 정부와 중앙은행이 시장에 돈을 많이 풀어 놓을수록 민간에서 대출로 늘리는 통화량이 훨씬 빠른 속도로 늘어납니다. 보통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일정한 액수의 돈을 풀어놓으면, 그 액수의 13~15배가량이 민간에서 대출이 꼬리를 물면서 광의의 통화량(M2)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코로나 사태가 마무리된 지 줄잡아 3년은 됐지만 여전히 그때만큼 정부가 돈을 많이 풀어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이유를 아는 건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돈과 관련한 전략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와 관련해 중요하니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선진국별로 차이는 있더라도 대동소이하기 때문에 포괄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저출산·고령화가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한국은 물론 주요국들이 법률에 정해진 대로 의무적으로 써야 하는 복지 지출이 빠르게 불어나고 있습니다. 연금 지급, 건강보험 재정 확충, 노인 의료 및 복지 등에 쓰는 돈인데요. 매년 자동으로 증가하게 되며, 고령화 속도가 빠른 만큼 지출하는 액수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은 출산율 제고를 위한 현금 지원과 보육 시설 확충 등에도 대규모 예산을 쓰고 있습니다.


그다음으로 선진국들이 성장 잠재력이 약화되고 세수(稅收) 기반이 약해지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민간의 투자가 활발하지 않아 경제가 자체적으로 성장할 힘을 잃자, 정부가 수요를 직접 창출하기 위해 재정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이 불가피해졌습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미국에서는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제로(0) 수준으로 낮추고, 덧붙여 무제한적으로 시중에 돈을 풀어놓는 ‘양적 완화(QE)’를 실시하는 전례 없는 통화 정책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경기를 살려내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중앙은행에만 맡겨두지 않고 정부가 직접 수요를 진작하려고 지출을 늘리는 경향이 분명해졌습니다. 이런 정책 방향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미국, 중국, 유럽, 한국 등이 모두 미래 성장 동력을 키우기 위해 반도체, 배터리, 핵심 광물, 친환경 에너지, 바이오 등의 유망 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게 2020년대 관행이 됐습니다. 또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안보 위협을 느끼는 선진국이 늘어나면서 국방비 증액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갈수록 경제적 양극화가 심각해지는 현상에 대해 정부가 해결하라는 압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저소득층을 위한 직접적인 지원 액수를 선진국들이 늘리는 추세입니다. 그리고 한번 확대된 복지 및 공공 서비스 지출은 국민의 기대 수준을 높이기 때문에 삭감이 매우 어렵습니다. 


나눠주는 돈의 액수를 줄이는 데 정치인들은 큰 부담을 느낍니다. 재정 지출에 ‘비가역성’이 있다는 거죠. 그리고 대출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가짐도 달라졌습니다. 2010년대 이후 오랫동안 저금리가 유지된 탓에 정부든 개인이든 부채에 대한 경각심이 낮아졌습니다.


원래 한국은 코로나 사태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한 해 재정 적자가 10조~20조원 안팎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터진 2020년 112조원의 적자가 발생했고요. 이후로도 대략 한 해 100조원가량의 적자를 감수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8월까지만 해도 무려 88조원이 적자입니다. 


정부는 적자가 나는 만큼을 모두 국채를 찍어 빚으로 충당합니다. 정부가 신용으로 빚을 내는 액수가 많을수록 통화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2020년대 들어서는 그 이전과는 돈의 유통량이 차원이 다르게 많아졌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통화량이 폭발할 때 개인이 명심해야 할 것은


통화량이 늘어나는 건 우리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칩니다. 무엇보다 경제성장률보다 통화량이 늘어나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2005년만 하더라도 그해 광의의 통화량(M2)은 994조원, 국내총생산(GDP)은 995조원으로 거의 같았습니다. 


이후 통화량이 경제 성장 속도보다 훨씬 빨리 증가하면서 2024년의 경우 M2가 GDP보다 약 1500조원이 더 많아졌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편의상 이해하기 쉽게 도식적으로 설명해보겠습니다.

 

작년 기준으로 광의의 통화량(M2)은 국내총생산(GDP)보다 1500조원 가량 더 많았다. 자료=한국은행


경제학자 중에 통화주의자들은 광의의 통화량(M2) 증가율과 명목 경제성장률(실질 경제성장률+물가 상승률)을 봅니다. 미국의 경우 1960년부터 1990년까지 30년간은 ‘M2 증가율=실질 경제성장률+물가 상승률’이었습니다. 이런 상태가 되면 통화량과 경제 성장이 서로 최적화돼 통화량이 필요 이상으로 늘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1990년 이후로는 ‘M2 증가율>실질 경제 성장률+물가 상승률’의 추세를 보입니다. 이렇게 되면 성장 속도에 비해 돈이 많이 풀리게 되면서 거대 자산가들의 계좌에 더 많은 돈이 쌓이게 되고, 이들이 잉여 자금을 투자하는 방식으로 자산 가치를 불려 더 부유해집니다. 부익부 빈익빈이 심각해진다는 거죠.


한국에서는 어떨까요. M2 데이터가 있는 1986년 이후 2024년까지 38년간을 단순 산술하면 연평균으로 M2 증가율은 12.4%였고, 경제성장률은 5.4%, 물가 상승률은 3.6%였습니다. ‘M2 증가율>실질 경제성장률+물가 상승률’ 추세가 장기간 유지되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산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가급적 통화량 증가율에 맞춰서 살 필요가 있습니다. 


경제 성장 속도, 즉 GDP 증가 속도는 대략 급여가 상승하는 속도와 엇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이런 속도는 통화량 증가 속도보다 훨씬 느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맞춰 살면 시간이 갈수록 자산 규모가 절대 액수로 늘어나더라도 상대적인 차원에서는 후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명심해야 할 포인트죠. 통화량이 늘어나면 자산가들은 공격적으로 자산 늘리기에 나섭니다. M2는 금융 계좌에 숨 쉬고 있어도 실재하는 돈이죠.


물론 통화량은 경제 활동의 결과이구요. 시간이 지나봐야 얼마나 늘어났는지 알 수 있긴 합니다. 그런 이유로 언론 보도에서 크게 다뤄지지 않고요. 정부나 한국은행은 통화량이 민간에서 주로 늘어나기 때문에 자신들이 통제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별다른 관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당국자라는 사람들은 경기를 살리는 게 중요할 뿐 경기를 살리기 위해 돈을 얼마나 투입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다친 사람을 치료했다는 데 집중할 뿐 얼마나 수혈해 주고 얼마나 약물을 투여했는지에는 관심이 덜한 것과 마찬가지죠.


그러나 개인은 정부나 한국은행이 아닙니다. 마음가짐이 달라야 합니다. 어느 정도 긴 시간을 놓고 보면 분명히 통화량의 증가세와 부동산이나 주식 같은 자산의 가격 상승세는 일정한 상관관계를 보입니다. 특히 통화량이 증가한다는 건 그만큼 돈이 흔해져 화폐 가치가 하락한다는 뜻이라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미국에서 2000년 당시 100달러가 지금은 54달러 정도 가치밖에 안 됩니다.


우리는 정치인들이 구조 개혁을 회피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걸 눈여겨봐야 합니다. 사회 구조 개혁을 해서 생산성이 낮은 분야의 인력을 재배치하면 당장 반발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이런 부담을 피하려고 경기가 나쁘면 구조적인 개선보다는 돈만 뿌려서 쥐어주는 식의 땜질 처방이 주요 선진국에서 남발되고 있죠.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게 통화량을 늘리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입니다. 자동차가 제대로 안 달릴 때 엔진 성능을 개량하는 게 아니라 연료만 더 많이 집어넣는 식이죠. 이런 경향이 적어도 2030년 무렵까지는 계속될 것이라 봅니다.



우리는 돈이 흔해지고 돈의 가치가 하락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것 같지만 이걸 무감각하고 어렴풋하게 건성으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연세가 지긋한 분들은 산업 시대 공식에 아직도 젖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월급 모아 아껴서 잘 살아야 한다는 마인드죠. 이렇게만 살면 유동성이 넘쳐나는 시대에는 후진할 수밖에 없습니다. 화폐 가치 하락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자산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면 점점 뒤로 밀려납니다. 


자녀나 손자 세대에도 이런 ‘돈이 불어나는 원리’를 적극적으로 가르쳐야 ‘가문의 부(富)’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아껴야 잘산다’ ‘티끌 모아 태산’ 같은 말을 점점 듣기 어려워지고 있죠. 돈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가 절실히 필요한 시절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눈을 해외로 돌려 주요 선진국에서 얼마나 폭발적으로 통화량이 늘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미국에 투자하는 전 세계 자금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그런 변화도 우리 인생에 영향을 줍니다. 




 시리즈 전체 보기 


1부 한 해 260조원씩 증가하는 통화량, 은퇴자가 치명상 입지 않으려면


2부 글로벌 통화량 대폭발, ‘국경 없는 돈’의 시대 대비하려면


3부 통화량을 알면 주식 부동산 금 가격이 보인다


4부 통화량 폭발에 맞춘 자녀·손자 교육, 가문의 명암 가른다


5부 은퇴자는 새로운 ‘4분의1세기’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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