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제품 만드는 기업 파나소닉, 시니어 시설은 어떻게 운영할까?
글 : 이지희 /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 사무국장, 수원여대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2025-12-31
11월 초, 일본 오사카와 교토 지역의 유료노인홈과 서비스제공고령자주택 네 곳을 방문하며 통역을 맡았다. 지난 칼럼에서는 40년의 역사를 이어온 대규모 유료노인홈 ‘라이프 인 교토’를 소개했다. (지난 칼럼 보기 : https://investpension.miraeasset.com/contents/view.do?idx=25052)
이번 칼럼에서는 우리나라에서도 익숙한 가전회사 파나소닉이 왜 고령자 돌봄 영역에 직접 뛰어들었는지, 그리고 그 철학이 공간과 일상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를 파나소닉 에이지프리하우스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주식회사 파나소닉 에이지프리
- 1998년 6월 설립
- 일본 전국 약 65개 시설 운영
- ‘가전’과 ‘생활’을 만드는 기업
- 소규모 지역밀착형 시설 운영
- 시설 내 가전 및 설비는 파나소닉 제품으로 구성
파나소닉은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일본의 대표적인 가전회사다. 필자 역시 학생 시절 파나소닉 CD플레이어를 사용했던 기억이 있다. 이러한 파나소닉이 1990년대 후반부터 고령화 사회의 도래를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인식하고, 나이가 들어서도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제품과 서비스 전반에 걸쳐 모색해 왔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파나소닉은 혈압계, 체성분 분석기와 같은 건강관리 기기부터 고령자 주거와 돌봄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시니어 라이프 전반을 포괄하는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해 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파나소닉 에이지프리는 1998년 개호 시장에 진출했으며, 현재는 일본 전국에 약 65개 내외의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이번에 방문한 곳은 일본 교토에 위치한 파나소닉 에이지프리 하우스 교토 야마시나 신주조 메디컬(京都山科新十条メディカル)이다. 이 시설의 정원은 20명이며, 서비스제공고령자주택과 소규모다기능형 개호 서비스가 결합된 형태로 방문개호, 방문간호, 주간보호, 단기보호를 하나의 사업소에서 통합 제공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공용 공간에 놓인 텔레비전과 세탁기 등 주요 가전과 설비 역시 파나소닉 제품으로 구성돼 있었는데, 이는 가전회사가 운영하는 시설이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었다.

소규모 운영이 가능한 이유 : 제도의 구조를 활용한 운영 방식
파나소닉 에이지프리 하우스가 정원 20명 내외의 소규모 시설임에도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한 이유는 비용 구조와 제도를 전제로 한 설계에 있다. 이 시설은 서비스제공고령자주택이기 때문에 유료노인홈처럼 별도의 고액 입주비를 요구하지 않으며, 월 생활비 역시 비교적 낮은 수준으로 책정되어 있었다. 이곳의 생활비는 약 18만~21만 엔 수준으로 주거와 식사, 기본적인 생활 지원이 포함된 금액이다.
돌봄이 필요한 경우에는 이 생활비에 더해, 개호 서비스 비용을 공적 개호 보험을 통해 분리해 충당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었다. 즉, 입주자의 신체 상태와 필요에 따라 발생하는 방문개호, 방문간호, 주간보호, 단기보호 등의 서비스는 소규모다기능형 개호 서비스 체계 안에서 개호보험 급여를 활용해 제공된다.
파나소닉 에이지프리 하우스의 경우 동일한 사업소에서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정원이 적더라도 인력과 서비스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처럼 규모의 경제에 의존하는 방식과 달리, 제도의 구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운영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비용을 낮출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식사 제공 방식에 있었다. 이 시설은 자체 주방에서 모든 식사를 조리하기보다는, 외부에서 조리된 식사를 공급받아 데워 제공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를 통해 조리 인력과 주방 운영에 따른 고정비를 줄이고, 그만큼 돌봄과 생활 지원에 자원을 집중할 수 있다. 다만 식사의 단조로움을 보완하기 위해 월 3회 정도는 오뎅 등 간단한 메뉴를 직접 만들어 제공하며, 입주자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고 했다.
고령자의 ‘변화할 상태’를 설계하다
파나소닉 에이지프리 하우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개인실의 형태였다. 모든 방이 정사각형 구조로 설계되어 있었는데, 이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의도된 설계였다. 건강할 때는 침대를 화장실과 거리를 두고 배치하여 생활을 하다가, 신체 기능이 저하되면 침대를 화장실 가까이로 옮겨 이동 동선을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였다.
만약 방이 직사각형이었다면 침대의 방향이나 가구 배치를 변경하는 데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정사각형 구조는 현재의 상태가 아니라 앞으로 변화할 상태를 전제로 한 설계라는 점에서 특히 인상 깊었다.

어른 학교 : 시간을 설계한 학습 프로그램
공간만큼 인상 깊었던 것은 시간을 설계하는 방식이었다. 파나소닉 에이지프리 하우스에서는 매일 ‘어른학교’라는 학습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었는데, 특히 그 운영 시간대의 선택이 눈에 띄었다. 시설장의 설명에 따르면, 인지 저하가 있는 여성 입주자들의 경우 오후가 되면 “집에 가서 밥을 해야 한다” 라고 말하며 배회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오랜 시간 반복되어 온 생활 역할과 일상의 리듬이 몸에 깊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이 시설은 바로 그 시간대에 일부러 학습 프로그램을 배치하고 있었다. 함께 모여 앉아 공부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집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없어진다고 했다. 억지로 행동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표를 조정함으로써 생각의 방향을 전환하는 개입을 하는 것이다. 파나소닉 에이지프리 하우스에서의 학습 프로그램은 공간을 설계하듯 시간을 설계했다는 점에서 인상깊었다.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설계
파나소닉 에이지프리 하우스를 둘러보며 느낀 점은 이곳이 단순히 고령자를 돌보는 시설이 아니라 ‘변화하는 삶을 전제로 설계된 환경’이라는 사실이었다. 정사각형 개인실은 신체 기능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했고, ‘어른학교’ 학습 프로그램은 시간의 설계를 통해 생활 리듬을 자연스럽게 전환시키고 있었다.
앞선 칼럼에서 소개한 라이프 인 교토가 오랜 시간 축적된 공동체의 힘을 보여주었다면, 파나소닉 에이지프리 하우스는 공간과 시간의 설계를 통해 일상생활이 지속될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이었다. 두 사례 모두 노인주거복지의 핵심이 건물의 규모나 화려함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계하느냐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는 노인주거복지를 이야기할 때 여전히 시설의 규모, 서비스의 개수, 비용 등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사례가 보여주듯, 노인주거복지의 질은 건물 그 자체보다 공간과 시간, 그리고 생활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결정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설계될 필요가 있다.
앞으로의 노인주거는 시설의 규모나 서비스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삶의 변화를 얼마나 섬세하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이지희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 사무국장, 수원여대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일본 오카야마현립대학원에서 보건복지학 박사 취득 하였다. 현재 수원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의 겸임교수, 아주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강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전국의 대표적인 시니어타운들이 가입해 있는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의 사무국장직을 겸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