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노인홈 '라이프 인 교토'의 40년 운영 비결은
글 : 이지희 /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 사무국장, 수원여대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2025-12-17
11월 초, 일본 오사카와 교토 지역의 유료노인홈과 서비스제공고령자주택 네 곳을 방문하며 통역을 담당했다. 일본 시장에서 1~2위를 차지하는 베네세(Benesse)와 SOMPO를 비롯해,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대규모 시설 라이프 인 교토(Life in Kyoto), 그리고 파나소닉이 만든 파나소닉 에이지프리 하우스(Panasonic Age-Free House)까지 다양한 유형의 시설을 직접 살펴보았다.
일본 시설을 매년 방문하고 있지만, 이렇게 역사가 깊은 대형 시설을 집중적으로 견학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대체로 200세대 이상 규모의 대형 실버타운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일본의 사례가 주는 함의는 더욱 크다. 이에 이번 칼럼에서는 이번 방문에서 확인한 내용 중 우리나라 실버타운에 주는 시사점을 중심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사회복지법인 "라이프 인 교토"는 어떤 곳?
- 1986년 11월 오픈
- 자립형 226실, 케어센터 82실, 동 법인 종합병원 보유
- 사회복지법인 교토사회사업재단이 운영
- 입주시 자립이 원칙
- 반려동물 함께 입주 가능
라이프 인 교토는 사회복지법인 교토사회사업재단이 운영하는 유료노인홈으로 1986년 11월 개관해 내년이면 40주년을 맞이한다. 입주는 원칙적으로 자립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며, 반려동물과의 동반 입주가 가능한 시설이다.
본관에는 자립형 226실이 마련돼 있으며, 본관 오른쪽에는 케어센터 2곳(총 82실)과 근처에 법인이 운영하는 가쓰라종합병원(협력의료기관)이 인접해 있다. 이와 같은 구조 덕분에 입주자는 건강한 시기부터 요양·의료가 필요한 단계까지 한 단지 안에서 연속적인 케어를 받을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복잡한 구조를 해결한 ‘층별 문 색상’의 힘
라이프 인 교토는 지하1층부터 지상 12층까지 이어지는 대형 시설로, 공용공간과 빈 방을 둘러보는 데만 약 1시간이 걸릴 정도로 규모가 크다. 특히 엘리베이터는 5층까지 운행하는 것과 6~12층을 연결하는 것이 분리되어 있어, 중간층에서 환승을 해야 한다.
견학을 하면서 65세 이상 고령 입주자들이 이 복잡한 구조 속에서 길을 잃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었고, 농담 삼아 “저는 길치라 여기 오면 길을 잃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자 시설장은 웃으며 “저도 가끔 헷갈립니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곧바로 이 시설의 한 가지 특징을 소개했다. 각 층의 방문 색을 모두 다르게 디자인해 두었다는 것이다. 입주자들은 자신이 사는 층의 색깔과 주요 공용공간이 위치한 층의 색을 기억하면 되어, 복잡한 구조를 해결하였다. 고령자 맞춤 설계가 무엇인지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차담회와 장례식이 모두 가능한 와실(일본식 다다미방)
라이프 인 교토에는 일본식 다다미방(和室, 와실)이 마련되어 있다. 이 공간은 평소에는 입주자와 가족이 함께 식사하거나 차를 나누는 장소로 쓰이며, 입주자들끼리 소규모 차담회를 열기도 한다. 다도(茶道) 도구까지 갖추고 있어 일본 특유의 정서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공간이다.
그런데 이 다다미방은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을 갖고 있다. 입주자가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식장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직원과 이웃 입주자가 마지막 배웅을 할 수 있도록 꾸며진 이 작은 공간은, 살던 곳에서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도록 하는 일본의 시설 철학을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아직 시설 내 장례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 실현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언젠가 우리도 입주자의 죽음을 시설 공동체의 자연스러운 순환으로 받아들이고, 삶을 함께했던 사람들이 따뜻하게 배웅하는 장례 문화가 시설에도 자리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지난 칼럼 참조 : 실버타운에서 삶을 마무리 한다면 )

시설장이 직접 나서고, 안보일 때까지 배웅한다
일본의 노인주거시설을 방문할 때 한국인들이 가장 놀라는 점 중 하나는 시설장(원장)이 직접 설명과 질의응답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견학한 네 곳의 시설 역시 모두 시설장이 직접 나와 운영 철학, 서비스 내용, 시설 구조 등을 상세히 소개했다. 한국에서는 대체로 막내 직원이나 담당자가 설명을 맡는 경우가 많아 동행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시설장이 직접 설명하는 경우가 흔한가요?”라는 반응이 나왔다.
또 한가지 인상 깊었던 점은 배웅의 방식이다. 견학이 끝난 뒤 필자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뒤를 보세요. 아마 저희 차가 안 보일 때까지 손을 계속 흔들면서 인사하고 있을 거예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시설을 방문하든 직원들이 밖으로 나와 우리가 탄 차량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우리도 창문을 열고 그 인사에 끝까지 화답했다.
이는 단순한 예의나 형식이 아니라, 손님을 맞이하고 보내는 일본 복지시설의 기본 태도이자 서비스 철학의 일종이다. 작은 행동 같지만 이 배웅의 방식은 방문객뿐 아니라 입주자와 가족을 대하는 태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한다. 우리가 배울 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40년 운영의 결론 : 지속 가능한 노인주거의 핵심은 인재 개발 및 정착
질의 응답 시간에 “40년 가까이 시설을 운영하면서 앞으로 시설이 더 발전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라고 묻자, 시설장의 대답은 단순하면서도 명확했다. '유능한 인재를 어떻게 조직 안에 정착시키느냐'가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새로운 시설이 계속 생겨나는 만큼, 숙련된 직원들이 다른 기관으로 이동하지 않도록 일하기 좋은 환경과 충분한 복리후생을 제공하는 것이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라이프 인 교토는 공휴일과 유급휴가를 합쳐 연간 130일 휴가를 보장하며, 직원이 소진되지 않고 오래 일할 수 있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역시 민간 실버타운과 각종 노인주거시설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환경에서 훌륭한 전문가가 성장하고 오래 머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은 결국 입주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로 이어진다. 일본의 사례는 시설의 규모나 건물의 화려함보다, 결국 사람이 시설의 품질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견학을 마치며 : 한 가지가 아닌 '조합'의 중요성
이번 견학을 통해 느낀 점은, 노인주거복지의 품질은 결국 소프트웨어, 그리고 문화와 사람의 조합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건물의 구조나 시설의 세련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입주자가 길을 잃지 않도록 배려한 작은 색상 하나, 가족과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와실의 존재, 방문자를 정성껏 맞이하고 배웅하는 직원들의 태도, 그리고 그 직원들이 오랫동안 숙련도를 쌓을 수 있도록 만든 조직의 힘이다.
이런 요소들이 쌓여 40년의 역사가 만들어지고, 일본 노인주거시설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밑바탕이 되었다. 향후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에서 봤던 세심한 운영과 사람 중심의 철학을 우리 현실에 맞게 흡수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앞으로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지희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 사무국장, 수원여대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일본 오카야마현립대학원에서 보건복지학 박사 취득 하였다. 현재 수원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의 겸임교수, 아주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강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전국의 대표적인 시니어타운들이 가입해 있는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의 사무국장직을 겸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