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AI 인재를 어떻게 길러내나
글 : 한우덕 / 중앙일보 차이나랩 2025-07-25
상하이&항저우 AI 현장 리포트 2부
“딥시크는 왜 항저우(杭州)에서 나왔을까?”
이번 ‘중국 AI 투어’의 항저우 일정은 이 문제의 답을 찾는 여정이었다. 저장(浙江)성 성정부 방문에서는 ‘지원하지만 간섭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확인했고, 항저우 ‘6소룡(六小龍)’ 기업인 브레인코와 딥로보틱스 방문에서는 청년 기업가의 창업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퍼즐은 저장대에서 맞출 수 있었다.
‘미래 CEO 양성 과정’에 모인 50명의 수재들
올 설 연휴에 터진 딥시크 충격은 컸다. 챗GPT와 성능은 크게 차이 나지 않지만 개발 비용은 거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세계 AI 업계가 출렁였다. 딥시크가 있는 곳이 바로 항저우다. CEO 량원펑(梁文鋒)은 저장대 출신이다.
“항저우 6소룡 중 3개 회사 CEO가 저장대 출신입니다. AI 창업 인재를 키우는 저장대만의 비법이라도 있는 건가요?” 이 물음에 아이니(艾妮) 국제교류처 부처장은 “ITP(Intensive Training Program)반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량원펑 역시 이 프로그램 졸업생이란다.
ITP반은 저장대에서도 최고 인재들이 모인다는 주커전(竺可楨)칼리지에 지난 1999년 설립된 창업 지원 프로그램이다. ‘혁신창업경영강화반(创新创业管理强化班)’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매년 비(非)경영학과 2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50여 명 정도 선발한다. 창업과 기업 경영을 위한 특별 교육을 실시한다.
‘미래 CEO반’이라는 별명 답게 굵직한 기업인을 많이 배출했다. 전자정보공학과 학생 량원펑을 비롯해 역시 항저우 ‘6소룡’ 중 하나인 매니코어(췬허커지·群核科技) 설립자 황샤오황(黃曉煌), 테무의 모회사인 핀둬둬(拼多多) 설립자 황정(黃崢), 중국 최고의 AI 데이터 서비스 회사인 MR테크의 팡이(方毅) 등이 모두 이 과정을 밟았다.
ITP반은 중국 대학이 인재 양성을 위해 얼마만큼 유연하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대학이 앞장서서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만들어준다.
사례는 또 있다. 지금 인재 수요가 가장 많은 분야는 AI다. 저장대는 이 분야 인재 양성을 위한 특별반을 올해 만들기도 했다. ‘AI+X’가 그것이다.
이 과정은 비(非) AI 학과 학생들에게 AI 지식을 가르친다. 행정학과 학생이 AI를 배우고, 교육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AI를 공부하는 식이다. 더 재미있는 건 상하이의 푸단(復旦)대 학생들도 저장대에 와서 ‘AI+X’ 특별반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화동(華東)지역 5대 명문인 저장대·푸단대·난징(南京)대·상하이교통대·중국과기대 등이 같은 특별반을 개설하고, 상호 학점을 인정한다. 이 정도면 대학 자율의 ‘끝판왕’이다.
기초 과학 인재를 양성하라
대학의 이공계 인재 양성에서 특히 강조되는 게 기초 과학이다.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기초 과학 교육 강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강기계획(强基計劃)’이 그것. 말 그대로 기초 과학 강화 프로그램이다. 39개 주요 명문 대학에서 시행 중이다.
저장대에서 강기계획 현장을 확인하게 됐다. 이 과정은 학생 선발부터 다르다. 단순 가오카오(高考·수능) 성적만 따지지 않는다. 전국 규모의 수학 올림피아드, 물리 경진대회 등에서 은상 이상을 딴 학생에게도 응시 자격이 주어진다. 그러니 중고등학교 학생들 사이에 ‘수학만 잘해도 좋은 대학 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긴다.
학사 과정도 학교 자율에 맡긴다. 저장대의 경우 최고의 학생들이 모인다는 주커칼리지와 통합해 운영하고 있다. 칭화(淸華)대학의 경우 3(학사)+2(석사)+3(박사) 학제로 운영된다. 베이징 대학은 본과 2학년 때부터 석사 과정을 선택해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지도교수도 이때 배정된다. 필수 과목을 아예 없애고 학생이 과목을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학교도 있다.
중국은 초등학교부터 기초 과학 교육에 애쓴다. “모든 초등학교는 이공계 석사급 이상의 학력을 가진 과학 교사 1명을 채용해야 한다.” 올 1월 중국 교육부가 내린 훈령이다. ‘기초 스마트 과학기술’ 과목을 가르칠 이들 석·박사급 과학 선생님은 채용과 함께 정규직 대우를 받도록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기초 과학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게 훈령의 취지다.
매년 중국에서 배출되는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졸업생은 대략 500만 명. 미국의 10배 정도 된다. 박사급만 7만 명이 넘는다. 그런데도 중국은 ‘아직 부족하다’고 말한다. 양뿐만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도 강국 면모를 갖춰야 한다며 학교를 다그치고 있다. 그 힘이 오늘 AI 혁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강요된 혁신
글로벌리즘이 대세였던 시기, 중국은 밸류체인의 하단에 머물러 있었다. 풍부한 노동력을 활용한 임가공 산업에도 만족했다. 미국이 보잉기 한 대를 만들 때 중국은 셔츠 1억 벌을 만들어 맞바꿔야 했다. 불합리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기술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기술 자립 의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국은 2000년 중반에 들어서면서 ‘자주혁신(自主創新)’이라는 말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기술 자립’이다. 세계 공장에 ‘두뇌’를 심자는 것이기도 했다. 2006년 중국은 ‘중장기 과학기술 발전 계획’을 수립한다. 10년 후인 2015년 중국은 이 계획을 좀 더 명확하게 풀어낸 ‘중국제조2025’를 만들었다.
트럼프 행정부 1기에 들어 상황은 급변한다. 미국의 대중국 경제압박이 가해지면서 중국과 미국의 분업 구조는 깨지게 됐고, 중국은 여러 분야에서 ‘자립’을 강요받게 된다. 미중 무역 전쟁은 그간 억눌려왔던 중국의 자립 의지를 자극했고, 그들은 혁신의 길로 내몰려야 했다. 강요된 혁신이다. 반도체는 이를 대표하는 분야다.
다시 센스타임 얘기다. 이 회사의 또 다른 역점 분야는 클라우드 서비스다. 이를 위해 그래픽처리장치(GPU) 5만 개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GPU는 미국의 대중국 압박 수단 1호 물품이다. 엔비디아가 만든 AI용 고급 그래픽 카드가 중국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틀어막았다. 반도체 생산을 위한 노광 장비(EUV)도 금지시켰다. 중국으로서는 당연히 몰릴 수밖에 없다.
‘GPU를 추가 확보하는 데 어려움은 없느냐?’는 질문에 쉬리 CEO는 이렇게 답한다.
“GPU는 저울로 무게를 달아 파는 과일과는 다릅니다. 저희는 소프트웨어 인력을 투입해 로직 최적화를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제조사의 GPU를 소프트웨어 기술로 업그레이드하고 있습니다.”
하드웨어 문제를 소프트웨어로 풀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의 대중국 GPU 제재에 대한 그들만의 돌파 전략이기도 하다. 미국의 압력이 강해질수록 그들의 자립 의지도 커지고 있다.

한우덕 중앙일보 차이나랩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의 경제를 자유롭게 오가는 중국 경제 전문가. 1989년 한국외국어대학 중국어과를 졸업했다. 한국경제신문에 입사하여 국제부 · 정치부 · 정보통신부를 거쳐 1999년부터 2006년까지 베이징과 상하이 특파원으로 근무했다. 상하이 화둥사범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중앙일보 차이나랩 선임기자로 두 눈 부릅뜨고 한국이 중국과 함께 살아갈 길을 모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중국의 13억 경제학', '세계 경제의 슈퍼엔진 중국', '상하이 리포트', '뉴차이나, 그들의 속도로 가라', '경제특파원의 신중국견문록', '차이나 인사이트 2021'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뉴차이나 리더 후진타오' 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