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하루가 반복되는 저주를 푸는 법
글 : 박창영 / '씨네프레소(영화 속 인생 상담소)' 저자,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 2026-09-14
중년의 어느 날, 영화가 말을 건네왔다 <19화>
![영화 <사랑의 블랙홀> 포스터 [출처=IMDb]](https://investpension.miraeasset.com/common/namoeditor/binary/images/000277/1789346618416.jpg)
![지역 방송국 기상캐스터인 필이 매년 2월 2일에 열리는 그라운드호그 데이 현장을 중계하고 있다. 곧 자신이 겪게 될 기이한 일을 예상조차 하지 못한 채 말이다. [출처=IMDb]](https://investpension.miraeasset.com/common/namoeditor/binary/images/000277/1789346636915.jpg)
-줄거리-
지역 방송국 기상캐스터 필(빌 머레이)은 냉소적인 사람이다. 세상 사람들이 사소한 일에 환호하는 걸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이 매년 2월 2일 취재하는 그라운드호그 데이 또한 마찬가지다. 마멋을 통해 봄이 언제 올지를 예측하는 행사인데 너무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한다. ‘한심한’ 취재가 끝난 후 다음날 그는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한다. 어제와 똑같은 하루가 매일 반복되는 것이다.
![한심한 행사를 취재한다고 생각했던 필은 그 한심한 하루에 갇혀 버렸다. [출처=IMDb]](https://investpension.miraeasset.com/common/namoeditor/binary/images/000277/1789346658026.jpg)

눈을 뜨면 매일 같은 하루가 반복됩니다. 필은 절망합니다. 운도 좋지 않습니다. 반복되는 날이 하필 자신이 일 년 중 가장 한심하다고 여기는 기념일이기 때문입니다. 매년 2월 2일 펜실베이니아주 서부 소도시 펑서토니에서 열리는 ‘그라운드호그 데이’죠. 동물 마멋의 행동을 통해 그해 봄이 언제 올지 예측하는 날인데요. 기상캐스터인 필은 해마다 같은 행사를 취재하면서도 늘 부질없는 이벤트라고 느꼈습니다.
필이 겪는 불가사의한 일은 우리 삶을 은유합니다. 누구든 모든 것이 새로웠던 어린 시절을 지나죠. 그리고 어느덧 하루하루 특별한 일 없이 비슷하게 흘러간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딱히 즐겁지도 않은 날이 마치 자동재생 버튼을 눌러 둔 것처럼 거듭됩니다. 지긋지긋하다며 진절머리를 내면서도 지친 육신을 끌고 회사로 향합니다. 아침마다 아무 감흥 없이 그라운드호그 데이 행사장으로 향하는 필처럼 말입니다.
필은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합니다. 뱅글뱅글 도는 시간 속에서 새로움을 찾으려 하는데요. 자신과 함께 일하는 리타 핸슨 PD(앤디 맥도웰)의 마음을 얻는 게 그의 중요 과제가 됩니다. 처음엔 아주 간단한 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하루를 먼저 살아봤으니 리타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죠. 그러나 리타의 마음은 열리지 않습니다. 리타는 자신을 속속들이 아는 필에게 속임수가 있다고 의심하죠. 하루를 먼저 살아도 타인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필은 마음을 바꾼다.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대신 남을 행복하게 하는 데 시간을 쓰기로 말이다. [출처=IMDb]](https://investpension.miraeasset.com/common/namoeditor/binary/images/000277/1789346727469.jpg)

사랑받는 데 실패한 필은 일말의 희망마저 놓아버립니다. 남보다 하루를 먼저 산다는 건 아무런 장점이 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앞에 높인 것은 무한히 순환하는 지루한 하루뿐입니다. 스스로 죽어보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무슨 고약한 저주에 걸린 건지 목숨을 끊을 수도 없습니다.
그는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남의 사랑을 받는 건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일입니다. 누군가는 무심한 사람을 싫어하는 반면, 또 누군가는 상대의 과도한 친절에 부담을 느끼니 말입니다. 하지만 상대의 반응은 예측할 수 없을지언정 자신의 행동은 결정할 수 있죠. 남에게 따뜻함을 베푸는 건 온전히 자기 몫입니다. 상대방의 필요를 발견하고 채워주는 것입니다. 필은 부상 입을 위험에 빠진 아이를 구하고, 음악이 필요한 곳에서 연주로 봉사합니다.
사람들의 표정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사소한 친절과 배려에 누군가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점을 발견합니다. 더 이상 그라운드호그 데이도 우습게 느껴지지 않죠. 그곳에 모인 사람들 또한 조금 더 행복해지고 싶을 뿐이라는 점을 알게 됐으니까요. 매일 반복되는 클로징 멘트에 정성을 다하고, 사람들이 감동하는 모습을 봅니다. 리타의 마음은 그제서야 열립니다. ‘사랑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 분투할 때에는 사랑받지 못했지만, 스스로 ‘사랑하는 사람’이 된 후에는 비로소 사랑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필은 지루한 인생을 의미 있게 채우는 유일한 방법을 알게 된다. [제공=IMDb]](https://investpension.miraeasset.com/common/namoeditor/binary/images/000277/1789346760319.jpg)

필은 인정을 갈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은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방 소도시의 작은 이벤트나 맡기는 직장에 실망했습니다. 그런 일을 매년 반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불만이 쌓여 갔죠. 세상을 원망하게 됐고, 주변 사람을 경멸하게 됐습니다. 그런 태도가 드러나다 보니 남들은 그를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보게 됐습니다.
“널 사랑하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필의 고백은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다른 길을 보여줍니다. 사람은 타인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을 때 행복해질 수 있지만, 남을 인정하고 사랑함으로써 행복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죠. 관점을 바꿈으로써 보다 쉬운 길을 가는 것입니다. 타인이 나를 인정할지는 내가 결정할 수 없지만, 타인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건 내 결정이니까요.
우리는 어제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행복하지 않은 지금의 일상을 벗어 던질 방법을 찾아 헤매기도 합니다. 어쩌면 답은 가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인정하고 그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죠. 세상이 내게 더 상냥해지길 기다리는 대신, 내가 상냥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는 것. 행복해지기 위해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사랑의 블랙홀>을 볼 수 있는 OTT(9월 5일 기준): 쿠팡플레이
박창영 '씨네프레소(영화 속 인생 상담소)' 저자,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2014년부터 매일경제신문사에서 일해 왔다. 매경닷컴에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등 OTT 영화를 리뷰하는 코너 '씨네프레소'를 연재하고 있으며 동명의 책을 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