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도 운전을 포기하지 않아도 될까?
글 : 김동영 / KDI 전문연구원 2026-08-13
노후설계의 언어에서 가장 익숙한 단어는 ‘수명’이다. 자산 수명, 연금 수명, 건강 수명 등이다. 나보다 돈이 먼저 바닥나지 않도록, 몸이 먼저 무너지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이 은퇴 준비의 본질이다. 그런데 이 목록에서 늘 빠져 있는 수명이 하나 있다. 바로 운전수명이다.

운전을 언제까지 할 수 있느냐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현금흐름의 문제다. 운전을 그만두는 순간 장보기, 병원, 모임 같은 일상의 이동 하나하나에 비용이 붙기 시작한다. 택시비와 동행 서비스 비용 같은 직접 비용만이 아니다. 연구에 따르면 고령자의 운전 중단은 활동 반경 축소, 사회적 고립, 건강 악화로 이어지고 요양시설 조기 입소 위험까지 높인다.
이동의 포기가 활동의 포기를 부르고, 활동의 포기가 의료비 증가를 앞당기는 연쇄효과로 이어진다. 이는 운전수명을 5년 연장하는 것은 그 5년 치 이동비용을 절감하는 동시에 의료비 급증 시점을 뒤로 미루는 자산 전략이다. 그렇다면 물어야 한다. 운전 수명은 무엇을 결정하는가. 흔히 개인의 신체 능력이라 답하지만, 절반만 맞다. 나머지 절반은 제도가 결정한다.

20만 원이 실패하는 이유, 가격이 아니라 선택지의 문제
한국의 고령 운전 제도는 절벽 구조다. ‘완전한 운전자’와 ‘완전한 비운전자’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 적성검사를 통과하면 모든 도로를 달릴 수 있고, 반납하면 아무 데도 갈 수 없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대가로 현금과 교통카드를 제시해 왔다. 금액으로 치면 지역마다 상이한 10만 원, 20만 원의 반납 인센티브다, 결과는 익히 알려진 대로다. 제도 시행 8년째인 지금도 반납률은 2%대(2024년 2.2%, 2025년 2.51%)에 머물러 있다.
경제학의 시각에서 보면 이 실패는 예정된 것이었다. 정책이 가격의 문제라고 진단한 것이 실은 선택지 구조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운전이라는 자유의 가치가 수천만 원이라면 20만 원은 애초에 협상 테이블에 오를 수 없는 금액이다. 인센티브를 두 배로 올려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더 높은 가격이 아니라 다른 선택지다.
일본이 2022년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신설한 ‘서포트카 한정면허’가 바로 그 다른 선택지다. 충돌피해감경 브레이크와 페달 오조작 가속억제장치를 갖춘 안전운전 지원 차량, 이른바 서포카만 운전할 수 있는 조건부 면허다. 면허 전부를 유지하거나 전부를 포기하는 양자택일 사이에, ‘더 안전한 조건으로 계속한다’는 중간지대를 만든 것이다. 규제 강화도 완화도 아니다. 선택설계의 변경이다. 은퇴 제도에 비유하면 정년과 실직 사이에 임금피크제와 점진적 은퇴를 두는 것과 같다. 절벽 앞에서 뛰어내리기를 망설이는 노인에게 필요한 것은 보상금이 아니라 경사로다. 갈아탈 길이 있어야 내려놓을 수 있다.

고령화 선발국이 표준을 선점한다
본 이슈에는 산업적인 시사점이 한 층 더 존재한다. 서포트카의 핵심 기술인 페달 오조작 가속억제장치는 일본에서 출발한 기술이다. 고령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 사고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가장 심각하게 겪은 나라가 그 대응 기술을 가장 먼저 만들었다. 여기까지는 자연스러운 이야기다. 주목할 것은 그 다음이다. 일본은 이 기술을 국내 규제에 가두지 않고 UN 산하 세계 자동차 조화 표준 포럼(The World Forum for Harmonization of Vehicle Regulations, WP.29)에 국제기준으로 제안했고, 2024년 11월 합의를 끌어냈다. 이어 2026년 1월 자국 보안기준을 개정해 보행자 감지와 저속 주행 중 작동까지 요건을 강화했으며, 2028년 9월 이후 신형 승용차부터 장착을 의무화하는 일정을 확정했다.
이러한 과정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기술을 만든 나라가 표준을 만들고, 표준을 만든 나라가 시장을 갖는다. 고령화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중국, 유럽이 시차를 두고 겪을 세계 공통의 문제다. 고령화를 가장 먼저 겪은 나라가 고령화 대응 기술의 세계 표준을 선점하면, 뒤따라 늙어가는 모든 나라의 자동차 시장이 그 표준 위에서 열린다.
자국의 인구문제를 기술의 쓰임으로 정의하고, 그 해법으로 세계 표준으로 수출하는 것, 이것이 고령화 시대 산업전략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나라인 한국은 이 과정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볼 일이 아니다. 조건부 면허 논의가 수년째 공회전하는 사이, 표준의 자리는 하나 씩 채워지고 있다.
다음 차를 고르는 질문
제도와 표준의 이야기는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도 조건부 면허가 도입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페달 오조작 억제 장치는 국제기준에 따라 머지않아 모든 신차의 기본 사양이 될 것이다. 문제는 시차다. 의무화가 완성되기 전에 인생의 마지막 차를 사는 세대에게, 이 장치는 기다리면 오는 기본 사양이 아니라 지금 스스로 챙겨야 할 선택 사양이다.
은퇴 전후에 구입하는 차는 사실상 인생의 마지막 차다. 그 차를 고르는 기준은 ‘지금 내 마음에 드는가’가 아니라 ‘15년 뒤의 나를 안전하게 태워줄 것인가’여야 한다. 부모의 운전이 걱정되는 자녀에게도 이제 “그만두세요"라는 상실의 언어 대신 "이 차로 바꾸세요"라는 업그레이드의 언어가 생겼다. 국내 손해보험사들은 전방충돌방지장치(AEB) 등 첨단 안전장치 장착 차량에 약 5~10%의 보험료 할인 특약을 이미 운영하고 있다.
안전장치는 비용이 아니라, 보험료 할인과 사고 회피 가치를 합친 수익에 가깝다. 연금 수령 시기를 정하고 의료비를 계산하듯, 운전의 연착륙 계획을 노후 설계의 체크리스트에 추가해야 한다. 운전의 끝은 어느 날 갑자기 오는 절벽이 아니라 미리 설계된 경사로여야 한다. 그리고 그 경사로는 개인의 다음 차 선택에서, 또 한국 제도와 산업의 다음 선택에서 함께 만들어진다.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디지털, 플랫폼 경제를 연구하고 있다. 경제학 박사로 중앙대 겸임교수이자 사단법인 모빌리티&플랫폼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KBS1라디오 '성기영의 경제쇼' 디지털 경제 코너에 출연중이며, 디지털 경제 관련 칼럼을 다수 기고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