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만 좇기보다 내 삶의 의미를 찾아야
글 : 한소원 /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2026-07-20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가 장안의 화제다. 잘나가는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만 안 풀리는 인생 때문에 쉴 새 없이 떠들며 존재를 확인하는 주인공은 “잘나서 나를 증명할 수 없을 때는 망가져 나를 증명한다”고 말한다. 다른 인물들도 모두 자신 안의 시기, 질투와 싸우고 있다. 그 모습은 공감도 되지만 불편해질 만큼 찌질하다. 우리 사회는 도대체 무엇을 추구하면서 싸우고 있는 것일까. 무가치함과 싸운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행복만 좇다 불행에 빠질 수 있어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불행해질 위험이 더 크다는 것을 입증한 연구가 많다. 2011년 전문 학술지 <감정(Emotion)>에 ‘행복 추구가 불행하게 만들 수 있을까?(Can seeking happiness make people unhappy?)’라는 제목의 논문이 실렸다. 아이리스 마우스(Iris B. Mauss) 등 저자들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버킷리스트를 만드는 것은 행복을 얼마나 가치 있다고 여기는지,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을 얼마나 자주 경험하는지, 자기 인생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물었다.
연구 결과는 행복에 가치를 둘수록 긍정적 감정과 만족도가 눈에 띄게 적었다. 심리질환을 앓는 사람들 중에 행복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1년 후 상태가 더 나빠졌다는 연구도 있다. 실험 연구에서 행복의 장점을 열거한 글을 읽고 신나는 영상을 본 경우 행복에 관한 글을 읽지 않은 집단보다 오히려 부정적인 감정이 더 컸다는 결과도 있다.
심리학자들은 행복 스트레스라는 표현을 쓴다. 우리는 매일 행복해야 마땅하다는 메시지에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 행복하지 않으면 내가 뭔가 잘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결혼을 하고, 집을 사고 아이가 있으면 평생 행복할 것처럼 생각하지만 좋은 일이 있더라도 얼마 지나면 감정은 일정한 세트 포인트(Set-point)로 돌아간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은 행복을 높이지 못한다. 사람들은 몸을 움직일수록, 무언가 직접 나서서 할수록 더 큰 만족을 느끼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이는 직위에 가치를 둔다면 자기 자신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만든다.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공감이 떨어지고 발전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 부정적인 감정도 기능적이기 때문이다.
삶에서 추구해야 할 것은 ‘의미’
반면에 삶에서 의미를 추구하는 것은 다른 종류의 잘 사는 모습을 만든다. 심리학에서 쾌락적 행복과 대조되는 의미적 행복을 ‘아우다이모니아(eudaimonia)’라고 한다. 나는 사회의 일원이고 내가 무언가를 움직여 변화시킬 수 있을 때 내 삶이 의미 있다고 느낄 수 있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을 알고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묻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도움, 용기, 아량, 친절, 유머, 공감, 지혜, 인내심, 정의와 같은 덕목들에 주목했다. 이런 덕목은 개인의 성격 특성일 수도 있고, 공동체와 연결되는 가치일 수도 있다. 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성격에 나를 동일시하고 그 성격을 나의 일상으로 만들어 실행에 옮길 때 그 성격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독일의 실존 심리학자 타트야나 슈넬(Tatjana Schnell)은 20여 년 동안 무엇이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지, 의미의 원천을 탐구했다. 그 첫 단계로 심층 인터뷰를 구상했고 인간의 삶에서 중요하다고 보는 세 영역, 사고·행동·감정을 질적 연구로 탐색했다. 삶의 의미를 찾는 연구였기 때문에 일상적인 것과 구분해 사고와 행동과 감정의 비범한 형태들에 집중했다.
이 연구에서는 개인의 삶을 하나의 신화처럼 보았다. 어떤 방향을 향해 가고 싶은지, 세상이 어떠해야 한다고 믿는지, 내가 칭송하는 것은 무엇인지, 의도해서 만들 정도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자신을 넘어서는 초월성의 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모집해 짧게는 두 시간, 길게는 여덟 시간에 걸쳐 자신의 삶 전체를 바라보는 질문을 던졌다.
“자신의 삶을 영화나 책이라고 상상해 보세요. 각 장에 뭐라고 어떤 제목을 붙이겠나요?”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임이 있나요?”
“그게 선생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삶 전체를 조망한 후에 연이은 질문으로 더 깊은 의미를 찾아나갔다. 학계에서 표현하는 ‘사다리’ 방법으로 말의 밑바탕에 깔린 진짜 의미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질문하면서 한 계단씩 내려가는 것이다.
타트야나 슈넬은 질적·양적 연구를 통해 스물여섯 가지 의미의 원천을 찾았고, 이를 다섯 가지 상위 차원으로 묶어서 보았다. 첫 번째 차원은 ‘더 높은 힘’으로 여기에는 종교성과 영성이 포함된다. 두 번째는 ‘더 큰 전체’라고 부를 수 있는 차원으로 사회 참여, 자연과의 연결, 자기 인식, 건강, 생성성이 포함된다. 세 번째는 ‘자아실현’의 차원이다. 도전, 개인주의, 권력, 발전, 성과, 자유, 지식, 창의성이 해당된다. 네 번째 차원은 ‘질서’로 전통, 토착성, 도덕, 이성이 들어간다. 마지막 다섯 번째 차원은 ‘일체감과 즐거움’으로 공동체, 재미, 사랑, 웰빙, 돌봄, 의식적 경험, 조화가 포함된다.
그중에서 가장 큰 의미의 원천으로 불변의 1위는 ‘생성성(generativity)’이었다.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인데, 무슨 말인지 쉽게 와닿지는 않을 수 있다.
창의성과는 다른 개념이다. 여기에서 만들어낸다는 것은 남들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안겨줄 일을 하는 것이다. 받은 것을 되돌려 주고 이웃의 정을 실천하고 되살린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발달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생성성’을 ‘사랑을 미래로 데려간다’는 뜻이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이 연구에서 말해 주는 것은 한 가지 의미에 전부를 투자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여러 측면이 있고 삶에서 의미를 쌓는 경험도 다양하지 않다. 추구하는 의미도 한 가지만 가지고는 되지 않는다. 다섯 가지 차원에서 최소 세 가지가 삶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알려준다.

은퇴 후, 내 삶의 의미는?
내 삶에서 추구하는 방향은 무엇인가. 남이 의미 있다고 하는 것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삶의 모습에 대한 그리움, 무엇이든 하고 싶은 마음을 행동에 옮기는 것이다. 가족 간의 관계도 변하지만 그 중요성은 변하지 않는다. 공동체와 전체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 우리는 특별한 형태의 의미를 만드는 소속감이 생겨난다.
은퇴는 새로운 의미를 찾아야 하는 기회를 준다. 스스로에게 물어 보자.
내 인생이 영화나 책이라면 나는 정말 주인공인가. 나는 나의 인생이라는 책의 제목을 어떻게 붙일 것인가. 각각의 챕터에는 무슨 소제목을 붙일 것인가. 무엇이 내가 추구하는 삶인가. 한 번에 큰 변화를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새로운 방향으로 가기를 원한다면 첫 발을 어떻게 내디딜 것인가.
버킷리스트를 만드는 것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삶의 우선순위를 재정립하고, 남은 시간을 더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돕는다. 버킷리스트는 여행, 개인 목표 성취, 모험적인 활동, 가족·친구와의 시간 등을 포함할 수 있다. 삶의 의미는 반려동물이나 식물을 돌보는 일일 수도 있고, 증손자를 돌봐 주는 일일 수도 있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과 친구들을 돌보는 일일 수도 있다. 좋아하는 활동을 계속 하는 것, 가치가 있는 일을 하는 것은 삶의 만족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질병도 줄인다. 삶의 의미는 정해진 무언가가 아니라 내면의 잠재력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소원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에서 인지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학 심리학과 교수로 10여 년간 연구하며 학생들을 지도한 뒤, 현재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인지과학과 인간공학심리학, 정서과학 등을 강의하고 있으며, 특히 뇌 가소성, 심리학과 인공지능, 인간-로봇 상호작용, 스마트 에이징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나이를 이기는 심리학>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