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는 어떻게 상처 입은 마음을 문학으로 바꾸는가
글 : 이한나 / 요리전문가, 작가 2026-07-22
지금 운영하고 있는 서양 가정식 밥집 손님으로 방문했다가 마음이 맞아 차와 음식 페어링 탐구를 함께 하기 시작한 티샵 <고울연,차>.
<고울연, 차>의 윤지연 티소믈리에이자 티블렌더에게서 건강 등 여러 이유로 카페인 섭취를 줄여야 하는 시니어들이 차를 찾거나 차 관련 강의를 수강하기 위해 적지 않게 찾아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여전히 커피를 더 자주 마시는 사람 입장에서 다가오는 노화에 의한 생활 패턴 재조정은 예상 가능한 것임에도 체감하지 못했던 터라 한편 어쩔 수 없는 인간시계의 유한성을 느끼면서도 좀 더 긍정적 시각으로 본다면 차 마시는 것은 은퇴자 혹은 시니어들에게 즐겁게 향유할 수 있는 문화로 소비될 수 있다는 사실에 눈뜨게 되었다.

녹차, 홍차 등 일부 차에는 커피처럼 카페인이 들어 있어 ‘각성’의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차에 함유된 천연 아미노산인 테아닌 성분이 휴식과 이완 기능이 있는 뇌의 알파파를 활성화하고 카페인이 급격히 흡수되는 것을 막아준다는 점에서 커피와 비교되는 순한 효능이 있다. 이외에도 노화 가속화를 억제하는 카테킨이나 폴리페놀 성분을 함유하는 차, 소화 기능을 개선하고 숙면에 도움을 주는 차, 면역력 강화 해주는 차 등 차의 세계는 넓고 또 유익하다.
차를 어떻게 제조하고, 숙성하는가에 따라 녹차, 백차, 황차, 청차(우롱차), 홍차, 흑차(보이차) 등 와인처럼 다양한 풍미와 결들을 가진 종류로 나뉘어져서 선택하고 음미하는 맛이 있고, 그 외에 허브차, 곡물차, 과일차, 한방차처럼 맛과 향 그리고 보조와 치유적인 장점을 단계별로 탐구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학습과 확장성의 즐거움도 차를 즐기는 장점일 것이다. 이처럼 차는 재미 있으면서도 권장할만한 취미생활 혹은 라이프 스타일이 될 수 있다.
사회학적으로 본다면 차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우리의 다례(茶禮), 일본의 다도(茶道), 그리고 중국의 다예(藝) / 공부차(工夫茶)처럼 엄격한 절차와 절도를 실천하는 차 문화들의 조금은 지난한 과정 속에서 목표하는 바는 잡념을 없애고, 집중하고, 함께 하는 것이다. 절도를 요구하는 때로는 엄격한 리츄얼들이 익숙한 습관이 되는 시점부터 감각들은 깨어나고 시야가 넓어지는 자유로운 영역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이 점은 다도를 다룬 2018년작 일본영화 <일일시호일>에서 잘 그려지고 있다.
차를 끓이고, 최적의 온도를 맞추기 위해 다기에 덜고, 차를 우리고 음미 하는 일은 처음에는 숨막히게 통제적인 듯 하지만 손에 익는 순간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을 열린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준비한 차를 대접할 경우, 그 마음과 시야는 공유가 된다.
그렇다고 그 의식을 꼭 따라야 한다기 보다는 차가 던지는 멋진 화두, 즉 ‘세상에 휩쓸려가는 나’가 아닌 ‘세상 속에 있는 나’를 바라보게 하고 매 순간 나에게 집중하고, 삶을 즐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하나의 방법론일 것이다.
“결국에는 차를 마시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어떤 차이든 사람이 마시고 즐길 때 의미가 생기는 것 같거든요.” 차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윤지연 티소믈리에의 설명이다.
“어떻게 마시면 좋은지는 사실 없는 것 같아요. 내가 차를 마시고 싶을 때 마시는 게 제일 좋은 것 같거든요. 차를 마시는 상황과 시간은 매일 다를 수 있어요. 우린 워낙 바쁜 일상을 살고 있으니까요. 어떠한 상황에서든 일단 모든 걸 멈추고 물을 끓이세요. 우릴 컵과 티백 또는 찻잎을 준비하고 일단 차를 우리세요. 대신 그 시간만큼은 차와 차를 마시는 나에게만 집중하세요. 그럼 어떤 컵에 어떤 차를 마시든 나를 위한, 참 소중한 티타임이 될 거예요.”

프랑스 애니메이션 영화감독 실뱅 쇼메의 첫 실사 영화인 2013년작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은 시간, 기억, 인간 심리 탐구를 다룬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에게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일상적인 (감각적) 계기를 통해 잊고 있었던 과거의 시간 혹은 기억을 현재로 소환하여, 그 동안 잃어버린 삶의 진정한 의미를 예술로 되찾는다는 것이 단순하게나마 설명할 수 있는 프루스트적인 세계관이다.
두 살이 되던 해 갑작스럽게 부모를 잃은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린 폴은 그를 거둬서 온실 속 화초처럼 키운 두 이모 밑에서 자랐다. 이모들이 운영하는 댄스 교습소의 피아노 반주자로 일하며 이모들의 바람 대로 피아노 콩쿠르 우승을 위해 매일 반복되는 루틴 속에서 묵묵히 경연 준비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같은 아파트에 사는 마담 프루스트의 집을 방문하게 되는 폴.
묘하게도 온갖 식물들로 가득 찬 정원 그 자체인 그녀의 집에서 폴은 마담 프루스트가 건네는 특제 차와 마들렌을 먹고 환각인지 꿈인지 모를 어린 시절, 부모님과 관련된 환상적인 기억들을 경험하게 된다. 고요했던 폴의 일상은 그 일로 조금씩 의문과 호기심으로 균열이 생기고, 여전한 이모들의 감시 속에서도 몰래 마담 프루스트의 집과 그녀가 대접하는 차와 마들렌을 찾았던 폴의 기억과 혼돈은 최고조에 달한다. 그리고 마침내 세번째 방문을 통해 부모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마담 프루스트의 집을 방문한다는 사실을 이모들이 알게 되면서 폴의 생활반경은 제한되고, 설상가상으로 폴이 종종 찾았고, 마담 프루스트를 처음 목격한 공원의 거대한 고목이 시야를 방해한다는 주민들의 민원으로 벌목되고, 마담 프루스트 마저 사라져버린다.
그러나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폴은 서로와 자신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깨닫게 되고 결국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처음으로 찾아 나서게 된다.
이 영화에서 부모의 죽음을 둘러싼 폴의 트라우마와 이로 인한 실어증과 수동적 태도는 마담 ‘프루스트’가 대접한 차와 마들렌이란 감각적(후각, 미각) 매개체를 통해 그 원인이 된 잊고 있던 기억들을 소환하고 진실을 직시하게 되면서 극복이 된다.
홍차에 담가서 음미한 마들렌으로 인해 어린 시절 기억이 되살아난 작가 프루스트는 거의 10년간 그리고 사후까지 7권에 걸친 방대한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집필하게 되었고, 폴 역시 차와 마들렌을 먹게 되면서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원하는 게 뭔지 깨닫고, 자신만의 ‘예술’을 하게 된다.
따뜻한 차와 마들렌을 건네는 마담 프루스트가 폴에게 "네 삶을 살아라. 타인의 기억에 조종당하지 말고, 네 기억 속의 행복을 찾아서 너만의 연주를 하라." 라는 조언이 현실이 됐듯 따뜻하고 향기로운 차 한잔에 곁들인 맛있는 다과와 함께 즐기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이 그런 계기가 되길 비는 의미에서 추천하고 싶다.
차는 그대로도 후각과 미각을 만족시키지만 달콤한 다과와 즐긴다면 행복은 두 배가 된다. 한번 만들어서 냉동한 다음 먹고 싶을 때 필요한 만큼 썰어서 뚝딱 굽는 쿠키. 아이스박스 쿠키란 이름을 가진 이 과자 보다 더 간단하고 맛있게 차에 곁들일 수 있는 다과가 있을까?

이한나 요리전문가, 작가
신문방송학을 전공했지만 다큐멘터리 연출자가 되기 위해 미국 뉴욕대에서 영화학을 공부하며 다큐 제작, 배급사에서 인턴쉽을 수행. 그 경험은 오히려 영화와 대중간의 소통 창구 역할이 적성에 더 맞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귀국 후 영화제, 기자, 영화진흥위원회 공무원, 한국영화 자막 및 시나리오 번역 작업 등의 업무들을 거치지만 또 한번의 방향 전환을 하게 된다. 우연한 제안으로 영화 〈생활의 발견〉,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밀양〉 등의 프로듀서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아마 마지막일 세 번째 방향 전환은 요리. 오래 품었던 요리에 대한 열정은 목포에서 서양 가정식 쿠킹 스튜디오로 출발, 2023년 서울의 ‘푸드 살롱’으로 재정비 한 ‘스프레드 17’. 살롱지기로 서양 가정식 원 테이블 밥집 운영하며 요리 과학서 <풍미의 법칙> 역서도 내고, 영화와 요리 관련 요리책 집필과, 쿠킹 클래스, 다양한 영화-요리 관련 팝업 등을 준비하며 재미있는 컨텐츠를 제공하려고 노력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