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1위 사케로 등극한 '닷사이', 여성 사로잡은 성공 비결은?
글 : 최인한 /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2026-06-01
닷사이, 일본 사케(니혼슈) 역사를 바꿨다
5월 중순 일본 혼슈(본 섬) 서쪽 끝에 있는 야마구치현(옛 조슈번)을 찾았다. 중세에 ‘서경(西京∙서쪽의 교토)로 불리던 지역이어서 역사, 문화 유적지가 곳곳에 남아 있다. 규슈 남쪽에 위치한 가고시마현(옛 사쓰마번)과 손잡고 1868년 도쿠가와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유신을 성공시켰다. 일본의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끈 본고장이다. 일본의 보수 우익 정치 지도자를 많이 배출시켰다. 100명이 넘은 역대 일본 총리 가운데 30% 이상이 직간접적으로 야마구치현 출신이다.

일본 보수세력의 본고장인 야마구치현이 요즘 사케(니혼슈∙쌀로 빚은 일본 전통주)시장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닷사이’(獺祭)가 일본 내 2000여개 사카구라(양조장∙사케 메이커) 가운데 독보적인 1위 브랜드로 부상한 덕분이다. 닷사이가 등장하기 전만 해도 사케시장에서는 물이 맑고, 쌀맛이 좋은 중북부 니가타현에서 만든 니혼슈를 최고 제품으로 꼽았다. 우리나라의 중장년층 술꾼들 사이에도 잘 알려진 ‘고시노칸바이’(越乃寒梅), ‘구보타’(久保田) 등이 유명하다.
20,30년 전만 해도 닷사이는 고급 사케 대열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야마구치현은 연평균 기온이 높아 니카타 현에 비해 사케 양조에 지리적으로도 불리한 환경이다. 그런 야마구치현 시골 양조장에서 탄생한 닷사이가 어떻게 짧은 기간에 1위 사케 브랜드가 됐을까.

유통∙마케팅 연구자인 최상철 간사이대 교수(상학부)는 “혁신적인 비즈니스모델(BM)과 견고한 밸류네트워크(Value Network) 구축이 핵심 비결” 이라면서 “사케의 주력 생산지가 아닌 지역에서 탄생한 닷사이가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한 것은 저성장기에도 신업태와 신제품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평가한다.
일본 국내 사케시장 줄어도 닷사이 지속 성장
세계적으로 ‘사케 붐’이지만, 정작 일본 국내 시장에서 양조장(메이커)의 도산과 휴,폐업이 늘고 있다. 일본 사케시장 규모는 피크 때인 1975년과 비교해 77%나 축소됐다.(2023년 기준) 제조 면허를 가진 사업장 수도 같은 기간 절반 이하로 줄었다. 최근 해외 수출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다.
사케업체들이 경영난을 겪은 가장 큰 배경은 술 원료인 쌀값이 급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건비, 술병 등 다른 원가 상승 요인도 많다. 2020~2022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음식점들의 영업 축소로 니혼슈 소비량이 대폭 감소했는데, 지금도 소비량이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이다. 젊은층에서 ‘니혼슈’ 선호도가 떨어진 것도 악재다. 50~60대에도 와인, 위스키 애호가들이 늘어나 사케시장 축소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반적인 시장 축소 속에 야마구치(山口) 현에 본사를 둔 ‘닷사이’(獺祭)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 업체는 2000년대 들어 코로나19 기간을 제외하면, 매출과 수출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소비자 가격은 일본 최고 브랜드로 꼽히던 구보타, 고시노칸바이보다 2,3배 비싸다. 우리나라 고급 호텔이나 강남 이자카야에서도 가장 인기가 높다. 최고가 제품인 ‘닷사이 23(현미에서 77%를 깍아낸 원료로 만든 술)’은 한 병(720ml)에 30~40만 원에 달한다. 일본 현지 면세점 가격도 10만 원 안팎이다.

도전 계속하는 닷사이, 세계 최초 우주 양조 성공
닷사이는 제조 공정에 정보기술(IT)과 전통적인 장인의 기술을 통합한 제조법으로 유명하다. 올해도 술 양조에서 세계 최초 기록을 세웠다. 닷사이와 미쓰비시중공업은 4월28일,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인류 최초로 니혼슈 양조 시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달에서 니혼슈 제조를 목표로 하는 ‘닷사이 MOON 프로젝트’의 1단계로, 국제우주정거장 내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 실험 장치에서 알코올 발효 과정을 확인했다.
ISS 내부에서 발효를 마친 모로미(거르지 않은 술)는 지구로 돌아온 뒤 알코올 도수는 12%를 기록했다. 지구로 귀환한 약 260g의 모로미는 닷사이 본사 양조장에서 압착 과정을 거쳐 116ml의 니혼슈로 완성됐다. 이 가운데 100ml를 티타늄 병에 담은 ‘닷사이 MOON 우주양조’는 1억1,000만 엔에 팔렸다.

닷사이 경영 혁신 이끄는 사쿠라이 회장
일본 1위 사케를 만든 주역은 오너 가문인 사쿠라이 히로시(櫻井博志) 회장(76세)이다. 사쿠라이 회장은 대학 졸업 후 1976년 가업인 ‘아사히주조’에 입사한 뒤 양조 방향성과 경영을 둘러싸고 부친과 대립하다가 퇴사한다. 그는 부친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1984년 복귀한 뒤 닷사이의 경영 혁신을 이끌고 있다. ‘닷사이’ 어원은 수달이 잡은 물고기를 물가 언덕에 늘어놓고, 마치 제사를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서 유래한다. 시(詩) 나 문장을 지을 때, 많은 참고 자료를 넓게 펼쳐두는 것을 뜻한다.
사쿠라이 회장은 대표 취임 후 1990년 준마이 다이긴조(純米大吟釀) ‘닷사이’를 개발했다. 이를 계기로 기존 다품종 소량 생산을 포기하고, 닷사이 브랜드만 생산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 기존 사케업계에 없던 ‘사카마이’(酒米∙현미) 77% 절삭에 도전, 최고급 니혼슈의 생산과 보급에 성공했다. 사케업계의 전통적인 상식을 완전히 깨뜨린 발상의 대전환이다.
사쿠라이 회장은 밸류 네트워크(Value Network) 구축에도 성공했다. 지방인 야마구치 현에서 1위 지위를 포기하고, 거대 시장인 도쿄에 과감히 진출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닷사이는 기존 술 업계의 관행이던 도매상 채널 판매를 지양하는 대신,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이벤트와 온라인, SNS를 활용하는 마케팅 전략을 펼쳤다. 지난해에도 1,000회가 넘는 현장 판촉 이벤트를 실시했다. 원료인 쌀(야마다니시키, 山田錦)의 생산량 확보를 위해 지역 협력 농가와 공존 방안도 만들었다. 경영난을 겪는 사케 소매 전문점의 존속을 위해 전국 1,300여개 제조업체와 공조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6월1일 회사명도 아예 ‘주식회사 닷사이’로 변경하고, 해외 시장 개척에도 적극적이다. 2023년에는 미국 뉴욕에 양조장을 직접 만들어 ‘닷사이 블루’를 생산하고 있다. 2024년에는 프랑스 파리에 15개의 미슐랑 스타를 자랑하는 모던 프렌치의 거장 야이크 알레노와 협업한 ‘이자카야 닷사이’를 출범시켜 유럽시장을 공략 중이다. 우주 양조에 나선 것도 글로벌 브랜드파워 강화를 위한 장기 전략에 따른 것이다.

사쿠라이 회장,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는 게 성공 비결
사쿠라이 회장은 5월 초 일본 언론(후진코론)과 인터뷰에서 경영 철학을 소상히 털어놨다. 다음은 일문일답.
Q 닷사이는 여성팬이 많다. 여성시장 공략에 집중하는 이유는.
“흔히 ‘여성들의 시선을 맞춘 상품 개발’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여성’을 폄하하는 발언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달면 좋을 것’ ‘색을 넣으면 좋을 것’이라고 남성들이 생각하면 안 된다. 결국은 좋은 물건, 완벽한 물건을 만드는 게 답이다. 우리 회사는 ‘맛 있는 술을 만든다’는 원칙에 충실하기 때문에 ‘진품’을 선호하는 여성들의 선택을 받고 있는 것이다.”
Q 여성층 공략에 성공한 비결은.
“고급 일식당에서 와인잔으로 닷사이를 마시는 여성들을 자주 만난다. 작은 와인잔으로 사케를 마시는 것은 우리 회사에서 적극 권유한 것이다. 나무 술잔에 사케를 부어 마시던 기존 방식은 여성들에게 매우 불편했다. 그래서 ‘와인잔’을 생각해 냈다. ‘전통’이 중요하지만, ‘기능’도 매우 중요하다.”
Q 닷사이의 경쟁 술을 꼽는다면.
“와인처럼 허리를 쭉 펴고 멋지게 마시는 덕분에 여성들이 선호한다고 판단한다. ‘닷사이’는 뒷 골목의 이자카야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혼자 마시는 그런 술이 되고 싶진 않다. 슬플 때보다는 기쁠 때 함께 마시는 술이 되고 싶다. ‘축하 주’라고나 할까. 따라서 닷사이의 타깃은 ‘와인’보다 ‘샴페인’이다.”
Q 사쿠라이 회장은 늘 패션에 신경 쓰는 것 같다.
“작은 회사이기 때문에 ‘브랜드’를 이끄는 회장이나 사장의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측면에서 복장에 신경을 많이 쓴다. 해외 출장 때 파티가 열리면, 가능하면 일본 전통 옷을 입는다. 옷 문양에서 ‘獺祭’를 넣었다. 이탈리아에서 파티를 열었을 때, 같이 사진 찍자고 여러 차례 권유를 받을 정도로 인기였다. 패션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어서 자신이 결정하고, 책임을 지는 게 맞다.”

Q 사업 실패로 낙담한 사람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세상 일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업에서 예측한 대로, 계산한 대로 승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진 싸움인지, 이겼는지 잘 분간이 안 되는 게 대부분이다. 사업은 길게 봐야 한다. 그러다 보면, 뭔가 보인다. 패자부활전은 얼마든지 있다. 큰 실패조차도 ‘실패 방식이 좋았다’고 얻는 게 분명 있다.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 그런 기회가 절대적으로 있다.”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으며, 서강대 대학원에서 석사(국제통상, 일본 전공)를 받았다. 1988년 말 한국경제신문에 취재기자로 입사한 뒤 도쿄특파원, 한경닷컴 뉴스국장, 한경일본경제연구소장 등을 지냈다. 주일 특파원과 일본유통과학대학 객원교수로 세 차례 일본에서 일했고, 경희사이버대, 숙명여대 등에서 ‘일본’ 강좌를 맡았다. 2020년부터 시사일본어학원 부설 일본연구소장을 맡아 한·일을 연결하는 지식 플랫폼을 운영 중이다. 실버산업투어, 걷기 여행 등 일본 테마여행을 서비스하고 있다. 오랜 언론 경험을 바탕으로 중앙일보, 이코노미조선, 머니투데이방송, 미래에셋증권 등에 일본 콘텐츠를 연재 중이다. 저서로 <일본에 대한 새로운 생각>, <일본 기업 재발견>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