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와인의 흐름
글 : 박찬일 / 로칸타 몽로 셰프 겸 음식 칼럼니스트 2026-04-09
와인의 생산과 소비가 변화하고 있다. 최근 눈에 띄는 와인 시장의 소비, 달라진 트렌드를 짚어본다.

며칠 전에 한 와인 수입업자를 만났다. 그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30여 년 업력에 코로나19 시기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분이다. 그의 얘기는 이랬다. “30, 40대가 술 소비를 주도했었는데 그 인구대의 절대 수가 과거 세대에 비해 크게 줄어들어서 지금은 절대 소비량이 적어요. 그렇다고 40, 50대의 소비량이 늘어난 것도 아니고요.” 요약해 보면, 와인의 소비 동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었다. 와인의 거품이 꺼지면서 대중화의 길에 들어서긴 했지만 인구 감소가 치명적이라는 얘기였다.
와인 소비의 변화
그는 세계 와인 생산의 흐름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주요 와인 소비국에서는 일찍부터 젊은 세대가 와인을 별로 안 마셨어요. 하지만 기성세대가 되면 와인을 마셨는데, 이제는 그런 흐름도 사라져가고 있어요. 한국을 포함한 중국 등 신흥 지역의 소비량 급증이 그동안 세계 와인 소비를 떠받치고 있었는데 점차 그 흐름도 약해지고 있죠.” 한국의 젊은 세대는 편의점 와인, 캔와인 등 혁신적인 유통 구조와 생산 방식의 와인에 거부감이 없다. 향후 전통적인 와인을 수입하고 판매, 소비하는 방식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국내외 와인 환경이 크게 변하고 있는 셈이다.
전 세계 와인 산업이 생산과 소비 모두 60년 만의 저점을 기록하며 구조적 변화를 맞고 있다. 국제포도·와인기구(OIV)에 따르면 2024년 세계 와인 생산량은 약 2억 2,580만 헥토리터로, 지난해보다 4.8% 감소했다. 이런 감소 추세는 최근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같은 지역은 오랫동안 와인을 생산하면서 기후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키워왔는데, 이제는 더 이상 대응할 여력이 없어 망연자실한 상태다. 서리, 폭우, 가뭄이 복합적으로 터지면서 수확량이 줄어들었다. 프랑스는 작년, 올해 합쳐서 20% 가까이 예년에 비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 감소로 경작 포기된 수치를 합친 것이라고 해도 너무 큰 수치다.
가뭄이 엄청났던 스페인도 큰 피해를 입었다. 생산량도, 소비량도 줄고 있다. 경기도 안 좋은 데다가 중국에서의 거품이 꺼지면서 타격을 입었다. 젊은 세대가 와인을 소비하는 방식이 달라진 것도 영향을 끼쳤다. 스페인은 30년 내 최저 생산을 기록했다. 소비도 예외가 아니다. 2024년 세계 와인 소비량은 전년 대비 약 3%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 둔화, 중국 수요 축소, 젊은 세대의 음주량 감소, 무알코올 대체재 확산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와인을 즐기는 방식
이런 경향 때문인지 와인을 색다르게 즐기는 풍조도 커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마시던 방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도 젊은 세대는 와인을 마시지 않는 게 보편적이었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기성 세대가 되면서 맥주에서 와인으로 갈아탔다. 게다가 한국, 중국, 일본 같은 신흥 시장의 성장세가 와인업자들을 웃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세대는 와인을 다른 방식으로 즐기고 있다. 기존의 클래식한 섭취 방식, 즉 식사에 곁들여 화이트와 레드를 마시는 구조가 해체되고 있다. 생산과 소비는 줄고 있는데 유기농이나 얼터너티브 와인(무알코올 와인 등)이 커지고 있다. 보수적인 고급 식당에서도 이런 와인을 취급하는 게 당연시되고 있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와인을 즐기려는 새로운 세대의 기호에 맞는 와인을 제공하는 것이다.
기후 변화는 와인의 도수를 계속 올려왔다. 전통적인 와인은 단맛을 억제해야 한다. 하지만 일조량 증가와 온도 상승은 대부분의 주요국 와인의 당을 높여왔다. 한마디로, 포도가 잘 익어서 단맛이 올라가고, 이를 알코올로 바꾸는 와인 양조에 적색등이 켜졌다고나 할까. 소비자는 마시기에 부담이 적은, 더 낮은 도수를 원하는데, 기후 때문에 와인의 도수는 어쩔 수 없이 올라가고 있는 추세이다.
과거 30년 전에 유럽 중부의 화이트 와인은 10~11.5도가 보편적이었다. 이제는 13도짜리 화이트를 만나는 게 어렵지 않다. 레드는 마지노선이라고 일컬어지던 14도를 넘는 와인이 숱하게 나온다. 과거에는 생산자들이 더 높은 도수를 낼 수 있게 노심초사하며 농사를 지었는데, 이제는 도수가 높아질까 봐 걱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와인 양조 천 년의 시대 동안 전혀 고민하지 않던 문제가 10년 사이 제1의 화두가 되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반면 전통적으로 기후가 가혹해서 와인 도수가 덜 나오는 바람에 고민하던 지역에서는 웃음꽃이 피고 있다. 이를 테면 영국과 프랑스 샴페인 지역이다. 영국은 일조량 부족으로 생산량, 품질이 좋지 않았다. 샴페인과 인근 지역은 기후 문제로 스파클링 같은 기술에 집중해 인기를 얻은 곳인데 요즘은 더 많은 일조량 때문에 샴페인과 기타 스파클링의 품질이 치솟고 있다.

박찬일 로칸타 몽로 셰프 겸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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