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조로운 일상 속 그가 시를 쓰는 이유는
글 : 박창영 / '씨네프레소(영화 속 인생 상담소)' 저자,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 2026-04-24
중년의 어느 날, 영화가 말을 건네왔다 <14화>
![영화 <패터슨> 포스터 [출처=그린나래미디어]](https://investpension.miraeasset.com/common/namoeditor/binary/images/000268/1775608248199.jpg)
![패터슨시의 버스 기사인 패터슨은 매일 비밀 노트에 시를 써 내려간다. [출처=IMDb]](https://investpension.miraeasset.com/common/namoeditor/binary/images/000268/1775608262108.jpg)
-줄거리-
뉴저지주 패터슨시에 사는 버스 기사 패터슨(아담 드라이버). 매일 같은 경로로 운전하는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도 그는 새로운 것을 발견해 시를 써 내려간다. 패터슨이 경계하는 건 지루함이 아니다. 외려 그는 화려함과 분주함에 중심을 잃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잡는다.
![여느 때처럼 개를 산책시키며 하루를 마무리하던 패터슨에게 건달들이 시비를 건다. 패터슨은 별일 아닌 것으로 여기고 계속 산책한다. [출처=IMDb]](https://investpension.miraeasset.com/common/namoeditor/binary/images/000268/1775608663871.jpg)

버스 기사 패터슨은 하루하루 같은 패턴으로 살아갑니다. 그는 아침에 눈을 떠 아내에게 인사하고 시리얼로 간단하게 식사한 뒤 출근하죠. 패터슨시의 정해진 노선을 운행한 후에는 집으로 돌아와 아내 로라와 저녁을 먹습니다. 그리고 반려견 마빈을 산책시킵니다. 떠오르는 시상이 있으면 그때그때 적어 둡니다. 그에게 이것은 지루한 일상이 아닙니다. 외려 매일의 리듬을 유지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호흡을 깨뜨릴 수도 있는 휴대전화 같은 건 소유하지 않습니다.
인상 깊은 장면이 있는데요. 저녁에 마빈과 산책하던 도중 건달들을 만난 것입니다. 그들은 마빈의 견종이 뭐냐고 묻더니 비싼 개이니 납치당하지 않게 조심하라고 하죠. 가족과도 같은 반려견을 고가의 물건쯤으로 취급한 것인데요. 충분히 불쾌해질 수 있을 만한 상황이지만 패터슨은 그저 제 갈 길을 갑니다. 그리고 마빈에게 “납치당하지 마”라고 농담하며 넘겨버리죠.
우리가 내면의 평안을 유지하는 데 어떤 자세가 필요한지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아무리 수도승처럼 스스로를 단련하며 살아가더라도 내가 예상치 못한 외부 자극이 오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죠. 그럴 때 불쾌한 감정이 머리에 둥지를 틀도록 허락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잠시간의 언짢음은 그 자리에 털어버리고 내가 설계한 하루로 돌아오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메시지입니다.
![아내 로라(왼쪽)는 자기 취향으로 집안을 가득 채운다. 아내가 선호하는 원형의 무늬가 집안에 점점 많아지면서 패터슨의 취향이라고 할 만한 인테리어는 줄어든다. [출처=IMDb]](https://investpension.miraeasset.com/common/namoeditor/binary/images/000268/1775608714395.jpg)

패터슨의 삶을 지탱하는 두 기둥은 예술과 사랑입니다. 그는 꾸준한 시 창작으로 자기를 표현하고, 한편으로는 배우자 로라를 향한 끊임없는 애정을 보여주죠. 중년의 삶을 안정적으로 꾸려 가기 위해 필요한 두 가지 조건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자신의 영혼을 다스리는 동시에 가정생활을 평온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죠. 패터슨이 지은 ‘호박’이라는 시에는 아내를 향한 애정이 가득합니다.
만약 당신이 나를 떠난다면
나는 내 심장을 찢어내고
다시 되돌려놓지 않을 거야’
패터슨은 어떻게 배우자를 향한 일관된 사랑을 보여줄 수 있었을까요. 그는 자기 삶이 배우자로 물들어가는 것을 불편해하지 않았습니다. 이를테면 영화에는 아내 로라가 집안에 온통 원형의 무늬를 집어넣는 에피소드가 나오는데요. 컵에도 식탁보에도 벽지에도 동그라미 투성입니다. 분명 자기 취향이 있었을 패터슨은 당황한 듯한 표정도 보이지만 배우자의 취향을 인정하죠.
이건 결혼생활에 관한 은유로 보입니다. 사람들은 결혼 후에 자기 공간이 없어지는 것처럼 느끼기도 하는데요. 배우자가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면서 자신이 설 자리가 좁아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감정이 지속되면 괜히 상대방을 원망하게 될 수도 있죠. 부부생활이 삐걱대는 이유가 됩니다.
패터슨은 이걸 결혼생활의 일부라고 본 듯합니다. 집이 배우자의 색으로 젖어 드는 것을 두고 불평하지 않습니다. 자기 삶이 배우자로 물드는 것을 결혼생활의 일부로 수용합니다. 인생의 절반을 사랑으로 채우니 그의 시엔 증오가 들어찰 공간이 없습니다.
![마빈은 패터슨의 시 노트를 찢어발긴다. 마침 주말에 복사본을 만들려던 터라 더욱 허탈해한다. 공원에서 넋 놓고 앉아 있는 그에게 일본인 시인(왼쪽)이 다가온다. [출처=IMDb]](https://investpension.miraeasset.com/common/namoeditor/binary/images/000268/1775608767283.jpg)

영화 내내 로라는 패터슨에게 시 노트의 복사본을 만들어두라고 강조합니다. 남편의 세계를 사랑했기 때문이죠. 어쩐지 패터슨은 복사하기를 주저합니다. 복사함으로써 시에 있는 유일성이 훼손된다고 여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아내의 간청에 곧 복사본을 만들려던 참이었는데요. 반려견 마빈이 그의 시노트를 찢어발깁니다.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허탈한 마음이 생기는 건 피할 수 없죠. 폭포 앞 벤치에서 넋 놓고 쉬던 그에게 일본인이 다가옵니다. 그 또한 시인이었는데요. 그가 패터슨시에 온 건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패터슨이 사랑하는 시인이기도 했죠. 그렇게 시를 향한 마음을 서로 공유하던 두 사람은 헤어지는데요. 일본 시인이 그에게 빈 노트를 건넵니다. 텅 빈 페이지가 더 많은 가능성을 선사한다면서요.
오랫동안 가치 있다고 여겼던 무언가가 나를 훌쩍 떠나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은 좌절감을 느끼기도 하죠. 그러나 모든 게 사라졌다는 사실은 완전히 새로 출발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기존에 만들어둔 것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그려낼 수 있죠.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생은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분주한 일상에도 우리에겐 멈추고 관찰하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패터슨>을 볼 수 있는 OTT(3월 31일 기준): U+모바일tv+, 웨이브, 씨네폭스
박창영 '씨네프레소(영화 속 인생 상담소)' 저자,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2014년부터 매일경제신문사에서 일해 왔다. 매경닷컴에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등 OTT 영화를 리뷰하는 코너 '씨네프레소'를 연재하고 있으며 동명의 책을 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