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보다 농촌 어르신에게 하늘을 나는 이동수단이 필요하다
글 : 김동영 / KDI 전문연구원 2026-04-10

산골 마을에 사는 일흔다섯 할머니 이야기다. 무릎이 좋지 않아 계단 하나도 오르기 힘든데, 정형외과는 차로 40분 거리 읍내에 있다. 버스는 하루 두 번, 오전 일찍 나갔다가 오후 늦게 돌아오는 일정이다보니 진료 한 번 받기 위해서는 하루가 꼬박이다. 그마저도 비나 눈이 오는 날엔 엄두를 낼 수 조차 없다. ‘아프면 그냥 참는다’는 말이 과장처럼 들리지만, 농촌 고령자에게는 오랜 현실이다.
이 이야기는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한국의 농촌 고령화율은 이미 25%를 넘어섰고, 농촌 주민이 의료기관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도시의 두 배 이상이다. 연구에 따르면 의료시설과 대중교통 접근성이 나쁠수록 농촌 노인의 건강 상태도 나빠진다.
이동하지 못해 진료를 미루고, 미룬 병이 악화되고, 악화된 몸이 다시 이동을 더 어렵게 만드는 악순환이다. 정부도 100원 택시, 왕진버스 같은 대안을 내놓고 있지만, 이 모든 해법은 결국 도로 위에서만 작동한다는 공통된 한계를 안고 있다. 산이 가로막고, 거리가 멀고, 운전할 사람이 없다.
‘Urban’이라는 이름이 가리는 것
답답해보이는 상황이 하늘길을 이용한다면 고령자와 모빌리티 모두에게 이로운 비즈니스로 이어질 수 있다. 요즘 모빌리티 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는 eVTOL(Electric Vertical Take-Off and Landing), 즉 전기 수직이착륙기다. 헬리콥터처럼 수직으로 뜨고 내리지만 전기로 움직이고 소음도 훨씬 적다.
업계는 이를 흔히 UAM, 즉 '도시항공교통(Urban Air Mobility)'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 이름이 묘하게 이 기술의 진짜 쓸모를 가린다. 'Urban', 즉 도시라는 단어 때문에 사람들은 이 기술을 강남 빌딩 옥상을 오가는 부유층의 탈것으로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도시에는 지하철도 있고, 버스도 있고, 택시도 있고, 이제는 이들을 하나의 앱에서 부를 수 있는 플랫폼도 있다. 도시에서 이동 수단의 부재로 병원을 가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반면 농촌에는 아무것도 없다. 도로는 있지만 다닐 차가 없고, 차가 있어도 운전할 사람이 없다. 지금 가장 절박하게 하늘길을 이용하는 새로운 이동 수단이 필요한 곳은 빌딩 숲이 아니라 산골 마을이다. UAM이라는 이름 자체가 이 기술의 진짜 수혜자를 가리고 있는 셈이다.
이미 앞서가는 나라는 알고 있다.
실제로 선진국의 정책 현장은 이미 이 역설을 직시하고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는 2002년 이후 농촌 병원 12곳이 문을 닫은 상황에서, 도심항공교통 네트워크를 통해 환자 이송과 의료 물자 전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연방정부도 2025년 행정명령을 통해 에어택시·의료 대응 항공기를 포함한 eVTOL 시범 도시 선정에 나섰다.
중국에서는 이항(EHang)의 EH216-S가 세계 최초로 완전 자율비행 상업 인증을 받아 운항 중이며, 두바이는 조비 에비에이션과 6년 에어택시 계약을 체결했다. 시장조사 기관들은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여 시장이 2025년 약 36억 달러에서 2030년 95억 달러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30분의 차이가 만드는 것
업계 일부는 이미 UAM보다 넓은 개념인 AAM(Advanced Air Mobility), 즉 '첨단항공교통'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 도시와 농촌, 섬과 산간을 가리지 않고 쓸 수 있는 항공 이동 전반을 아우르는 표현이다. 한국식으로는 '생활항공교통(LAM: Life Air Mobility)'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이동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 사람들, 즉 농촌 고령자, 도서 지역 주민, 산간 지방 환자들이야말로 이 기술의 진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기술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
이 기술이 농촌 고령자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간단하다. 활주로도, 넓은 도로도, 고속도로도 필요 없다는 점이다. 읍내 병원 옥상, 마을 공터, 보건소 앞마당이 사실상 공항이 된다. 40분을 버스에서 버텨야 했던 할머니가 10분 만에 병원 앞에 내릴 수 있다. 그 30분의 차이는 단순한 시간 절약이 아니다. 진료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지의 확장이고, 아픔을 참지 않아도 되는 존엄의 회복이다.
혁신은 단지 돈을 버는 새로운 방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의 필요를 수익성 있는 사업 기회로 전환하는 것이 곧 혁신이다. 기술혁신이 아니라 기술이 풀어야 할 사회적 문제를 먼저 정의하는 것이 혁신의 시작이라는 의미다.
과거 필름 카메라 시장을 호령했던 코닥의 몰락이 기술의 부족이 아니었다. 1970년대 중반 이미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개발하고, 2000년대 초반 오늘날의 SNS에 해당하는 사진 공유 앱을 먼저 개발한 것도 코닥이다. 코닥은 이 기술을 ‘기존 필름 사진을 더 많이 인화하도록 만드는 도구’로만 정의한 탓에 무너졌다. 기술은 있지만 혁신은 없었던 것이다. eVTOL 기업들 역시 이 기술을 ‘도심 프리미엄 셔틀’로만 정의한다면 디지털 카메라로 인화지를 팔려 했던 코닥과 다를 바 없을지 모른다.
변화는 늘 그것이 가장 필요한 사람 곁에서 먼저 생명력을 얻는다. 아직 시장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 즉, ‘비소비자’를 소비자로 끌어들일 때 진짜 혁신이 시작된다는 의미다. 농촌의 고령자를 위한 생활항공교통의 실현은 다른 교통수단의 대체나 기존 시장의 개선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일이 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를 겪고 있는 한국은, 이 기술의 쓰임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 우리 고유의 문제를 기술의 쓰임으로 삼을 때, 그 해법은 비슷한 고령화 문제를 겪고 있는 전 세계 국가들에게도 가치를 갖게 된다. 기술은 이미 충분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기술을 누구를 위해, 어디에 쓸 것인가라는 질문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디지털, 플랫폼 경제를 연구하고 있다. 경제학 박사로 중앙대 겸임교수이자 사단법인 모빌리티&플랫폼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KBS1라디오 '성기영의 경제쇼' 디지털 경제 코너에 출연중이며, 디지털 경제 관련 칼럼을 다수 기고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