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마지막, 침대 위 10년을 줄이는 법
글 : 박한슬 / 약사, 작가 2026-03-16
과거엔 장수(長壽)가 오복(五福)의 하나로 꼽혔다. 환갑을 넘기면 일가 친척이 모여 성대한 잔치를 벌이고, 칠순을 넘기면 나라에서 청려장을 하사할 정도로 오래 사는 노인이 드물어서다. 그렇지만 요즘은 장수하는 삶에 묘한 시선이 하나 덧붙게 됐다. 유병(有病) 장수하는 삶을 살며 고생하는 노인이 부쩍 늘어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생명표'를 보면, 출생아의 기대수명은 남녀 전체 평균 83.7년(남성 80.8년, 여성 86.6년)으로 또 늘었다. 그러나 질병이나 부상 없이 일상적인 생활을 온전히 유지하며 살아가는 기간을 뜻하는 '건강 기대수명'은 65.5년에 머물러 있다. 생애 후반기 약 18.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크고 작은 병을 달고 살아야만 한단 얘기다.

실제로 이런 삶은 개인은 물론 사회와 국가에도 큰 부담을 준다. 질병관리청이 발간한 최신 자료를 살피면, 만성질환으로 인한 연간 사망자는 28.2만 명으로 전체 사망의 78.8%를 차지한다. 국가가 부담하는 만성질환 진료비는 90조 원에 육박해 전체 진료비의 80.3%를 잠식하고 있으며, 특히 최근 10년 사이 주요 만성질환 진료비는 24.4조 원에서 51.3조 원으로 두 배 이상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실로 장수가 재앙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선 단순히 생물학적 수명을 연장하는 데 집착할 게 아니라, 장수와 더불어 질병을 앓는 기간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를 같이 고민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도입된 개념이 바로 질병기간 압축이다.

현대 의학은 절반의 성공?
스탠퍼드 대학교의 제임스 프라이스 교수는 노인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1980년대에 질병기간 압축(Compression of Morbidity)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표현은 어려울 수 있지만, 내용 자체는 단순한다. 만성질환이나 치명적인 신체 장애가 처음 발생하는 시점을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 수명(약 85~100세)에 가깝게 최대한 뒤로 밀어내는 전략을 의미해서다. 아무리 건강을 위해 노력하더라도, 인간의 유전적 설계상 최대 수명은 어느 정도 상한선이 존재한다. 지난 100년간 평균 수명이 2배 가까이 늘었음에도 100세를 넘기는 이들이 적은 이유다.
이처럼 인간의 수명에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면, 사망하기 직전까지 타인에게 의존하며 병상에 누워 지내는 유병 기간을 최대한 줄이는 게 현실적인 접근이다. 따라서 질병이 시작되는 시점 자체를 최대한 뒤로 늦춰서 앓는 기간을 줄이자는 게 질병기간 압축의 핵심 요지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기존의 의학적 접근과는 결이 잘 맞지 않다는 게 문제다. 현재 의학은 병이 발생한 이후 이를 치료하거나 유예하는 식의 접근이 지배적이다. 의학의 발전 덕분에 병에 걸리고도 죽지 않게 되었지만, 역설적으로 아픈 채로 십수 년을 버텨야 하는 절반의 성공만 거둔 것이다.

노화가 노쇠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그러니 기존과 다른 새로운 노년 건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늙어간다는 현상을 정밀하게 해체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가장 먼저 따져봐야 하는 건, 누구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겪는 자연스러운 '노화(Aging)'와 신체의 예비력이 완전히 바닥나 일상생활조차 유지하기 위태로워진 '노쇠(Frailty)'를 철저히 분리하는 것이다. 노화는 피할 수 없는 섭리지만, 노쇠는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질병 상태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근육 소실이다. 나이 듦에 따라 근력이 약해지는 것 자체는 피할 수 없지만, 근육이 위험 수준으로 소실되는 근감소증은 노화가 아닌 노쇠의 영역이다. 나이가 들면서 하체를 지탱하는 근육이 빠지고 영양 불균형이 겹치면, 인체가 외부 충격을 흡수하고 원래의 건강한 상태로 돌아오려는 복원 능력이 붕괴되기 때문이다.
점차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버거워지고, 나중엔 걸어서 100m를 이동하는 것도 힘에 부치게 돼 보행 보조장치 없이는 동네 마실을 나가기도 어려워진다. 젊은 시절처럼 달리지 못하는 건 노화지만, 보행장애 수준의 하체 근력 감소는 노쇠라는 별개의 현상으로 구분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병적 수준의 노쇠가 발생하면 일차적으론 보행 기능 등에 장애가 발생하고, 이차적으론 외부 충격이 발생했을 때 회복 자체가 더뎌지는 문제가 생긴다. 2025년 발표된 국내 노인 근감소증 분석 연구를 보면, 70~84세 남성의 21.3%, 여성의 13.8%가 이미 근육이 심각하게 줄어든 상태에 진입해 있어 물리적 충격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건강한 성인이라면 며칠 앓고 털어낼 가벼운 감염성 질환이나 살짝 미끄러지는 정도의 충격에도, 노쇠한 노인은 곧바로 와상 상태나 요양시설 입소로 직행하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고령자 낙상 사고의 40% 이상은 거실이나 화장실 등 가장 안전해야 할 집 안에서 미세한 단차나 미끄러움으로 인해 발생한다. 일상의 공간이 치명적인 흉기로 돌변하며, 넘어져 고관절 골절 등으로 이어질 경우 1년 내 사망률은 급격히 치솟는다. 그러니 노화가 노쇠로 이어지지 않도록 사전 관리하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 질병 발생 후에 치료하는 식의 대처로는 늦다.
생의 마지막 최대한 짧게 앓고 떠나려면
노쇠를 막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신체 기능을 보존하기 위한 운동을 하는 것이다. 노년기에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하면 많은 분들은 동네를 가볍게 걷는 수준의 유산소 운동만 수행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근섬유에 미세한 상처를 입히고,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해, 근섬유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근육량이 강제로 늘어나는 본격적인 저항성 근력 운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맨몸 운동을 한다면 스쿼트 같은 운동, 기구나 장비를 이용한다면 너무 부담되지 않을 수준의 중량을 이용하는 헬스 트레이닝 혹은 필라테스 같은 운동을 본격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근력 운동의 실질적인 노쇠 예방 효과는 통계적으로도 명확하게 입증된다. 2024년 발표된 대한노인병학회지의 추적 관찰 연구에 따르면, 주 2회 이상의 저항성 근력 운동을 꾸준히 수행한 65세 이상 고령층은 단순 걷기 위주의 유산소 운동만 수행한 집단에 비해 노쇠 진입 비율이 43%나 낮았다.
특히 하체 근력을 나타내는 '의자에서 일어서기' 테스트와 보행 속도 지표에서 확연한 우위를 보였는데, 이는 기구형 근력 운동이나 체중 부하 운동을 필수적으로 병행해야만 노쇠를 늦출 수 있다는 확실한 근거다. 단순한 걷기 운동이나 맨발 걷기로는 이런 효과를 보기 어렵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여야 하는 게 적절한 영양이다. 질병관리청의 2024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를 분석해보면, 국내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약 62.4%가 일일 권장 단백질 섭취량을 밑도는 영양 결핍 상태에 놓여 있다. 노년기에는 단백질 합성 효율이 떨어지는 아나볼릭 저항성(Anabolic resistance)이 증가하므로, 청장년층보다 더 높은 밀도의 영양 공급이 요구된다.
일반적으로 체중 1kg당 1.0~1.2g의 단백질 섭취가 권장되며, 근감소증이 이미 진행된 상태라면 1.2~1.5g 수준까지 증량해야 유의미한 근육 합성을 기대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단백질 식품 기준으로 바꿔 말하면 하루에 계란 10개 혹은 두부 2모, 고기 반 근 정도 분량은 먹어주는 게 좋다. 식사로 이를 챙기는 게 여의치 않으면 단백질 보충음료 같은 형태로라도 벌충을 해줘야만 한다. 노년에 소화 능력이 떨어진다고 고기를 줄이는 게 절대 현명한 일이 아니다.
이런 두 가지 접근법이 맞아떨어져야만,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독립적인 일상생활을 유지하다 최대한 짧게 앓고 떠날 수 있다. 치명적인 기능 저하의 발현 시점을 유전적 최대 수명의 한계선까지 인위적으로 밀어냄으로써, 생애 말기의 고통스러운 유병 기간을 최대한 압축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이 듦은 피할 수 없어도 노쇠는 피할 수 있다. 그래야 건강하게 오래 살다 떠난다.
박한슬 약사, 작가
글 짓는 약사. 숫자가 담긴 글 쓰는 일을 한다. 약학 대학 졸업 후 통계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메디컬 라이터로 일하고 있다. 《중앙일보》와 《조선일보》등 여러 매체에 두루 글을 실었으며, 현재는 《월간조선》 「박한슬의 건강의 지평선」을 연재하고 있다. 우리 노후 현실을 짚은 『내 집에서 나이 들 수 있을까』를 비롯해 데이터를 통해 한국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한 『숫자한국』, 국내 의료 체계의 지속 가능성을 살핀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등의 저서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