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자의 이동 데이터, 헬스케어 산업을 바꾸다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고령자의 이동 데이터, 헬스케어 산업을 바꾸다

글 : 김동영 / KDI 전문연구원 2026-03-17

은퇴 이후의 삶에서 이동은 비용이었다. 교통비, 운전면허 반납에 따른 기회비용이 대표적이다. 젊은 시절에는 없던 대중교통 이용 시 발생하는 신체적 거래비용까지 고려하면 이동은 상당히 비싼 행위다. 하지만, 최근 모빌리티 플랫폼 경제가 이종 산업 간 ‘데이터 교환 생태계’로 진화하면서, 고령자의 이동은 훌륭한 경제적 자산이자 부가가치 창출의 원천으로 주목 받고 있다. 


디지털 경제에서는 스마트 앱으로 차량을 호출하고, 자율주행 셔틀을 이용하며, 스마트 승강장에서 목적지를 입력할 때 생성되는 ‘이동 궤적 데이터’는 단순한 위치 정보가 아니다. 이는 개인이 생활 반경과 여가활동의 빈도, 의료 기관 방문 주기 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행동 데이터’다.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러한 모빌리티 데이터가 보험 및 연금, 헬스케어 데이터와 결합하여 고령자 개인에게 실질적인 금전적 혜택과 맞춤형 돌봄 서비스로 환원되는 ‘초개인화(Hyper-personalization)’ 생태계가 시작되고 있다.




모빌리티와 헬스케어의 결합: 이동 데이터가 보내는 ‘건강 적신호’


무엇보다 고령자의 통행 빈도와 목적지 변화는 그 자체로 신체적, 인지적 건강 상태를 나타내는 강력한 선행 지표다. 모빌리티 플랫폼과 의료 기관 간의 데이터 교환이 질병의 사전 예방도구로 활용될 수 있는 이유이다. 일본은 경제산업성과 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하여 고령자의 MaaS(Mobility as a Service) 데이터를 지역 보건소와 연계하는 실증 사업을 진행 중이다. 


커뮤니티 센터나 마트를 방문하던 은퇴자의 외출 빈도가 급감하거나, 병원 목적지의 호출이 잦아지는 경우, 헬스케어 플랫폼이 이를 ‘주의 단계’로 인식하여 가족이나 전담 의료진에게 알람을 보낸다. 이는 의료 서비스의 정보 비대칭 해소와 예방적 조치를 가능하게 하여 고령자의 건강 수명을 획기적으로 연장한다. 네덜란드 역시 사회지원법에 기반한 맞춤형 교통수단 이용 데이터를 분석하여, 고령자의 사회적 고립도를 측정하고 돌봄 인력을 선제적으로 파견하는 데이터 기반 복지 행정을 구현한다. 일상적인 이동이 곧 건강을 지켜주는 주치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데이터가 창출하는 금융적 보상: 시니어를 위한 맞춤형 보험과 연금 혜택


모빌리티 플랫폼이 축적한 데이터는 금융 산업, 특히 보험 및 연금 시장과 결합할 때 고령자에게 직접적인 금전적 혜택으로 이어진다. 데이터 거래 생태계가 활성화되면, 자신의 데이터를 제공한 대가로 ‘데이터 배당(Data Dividend)’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노인 특화 승차 호출 플랫폼의 이용 데이터와 민간 의료보험 간의 데이터 연계가 활발하다. 


고령자의 정기적인 예방 접종이나 건강 검진을 위해 모빌리티를 이용한 기록이 데이터 생태계(Data Space)를 통해 보험사로 전달되면, 보험사는 해당 가입자의 건강 관리 노력을 인정하여 다음 달 건강 보험료를 할인해주거나 포인트로 환급해준다. 


스페인과 독일에서는 고령자가 대중교통, 공유 자전거 혹은 걷기 앱을 복합적으로 이용하여 ‘친탄소 및 건강 친화적 이동’을 했을 경우, 이를 마일리지로 환산하여 지역 화폐나 연금 계좌에 추가 납입액으로 적립하는 보상형 플랫폼이 등장하고 있다. 고령자의 이동행위에 대해 금융시스템이 적절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이다.



마이데이터와 능동적 데이터 주권의 행사


다만, 플랫폼과 이종 산업 간의 데이터 결합이 가져올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최근의 데이터 교환 생태계는 개인정보의 철저한 비식별화는 물론, 유럽의 일반정보보호 규정(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과 같은 강력한 법적 테두리 안에서 작동한다.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고령자 스스로 데이터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 데이터 주권(Data Sovereignty)이 확립되고 있다. 


중국과 아랍에미리트의 스마트 시티 모델에서는 고령자가 자신의 이동 데이터 제공 범위를 앱에서 설정하고, 데이터를 제공할 때마다 호출할인 쿠폰이나 상업 시설 할인권을 즉각적으로 보상받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한국 역시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모빌리티 산업과 타 산업 간 데이터 결합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으며, 제도화로 이어질 경우 고령자의 편익 증가를 기대해볼 수 있다. 



모빌리티가 여는 시니어 데이터 경제


고령자의 모빌리티는 더 이상 단순히 A에서 B로 이동하는 물리적 행위에 국한되지 않는다. 모빌리티 플랫폼을 통해 축적되는 일상적인 이동 궤적은 헬스케어 및 금융 산업과 실시간으로 교환되며, 질병을 예방하고 연금 혜택을 늘려주는 '초개인화된 맞춤형 복지 생태계'를 구축하는 핵심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종 산업 간의 '데이터 교환 및 거래 생태계'가 고령화 사회의 복지 딜레마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경제적 돌파구가 된다는 점이다.


 과거 고령자의 이동권 보장과 복지가 정부나 지자체의 일방적인 재정 지출에만 의존했다면, 이제는 플랫폼 경제 내에서 고령자가 직접 양질의 행동 데이터를 제공하고, 민간 산업이 이를 새로운 부가가치로 환산하여 소비자에게 보상하는 시장 친화적 선순환이 일어난다. 즉, 이동이 지출이 아닌 자산이 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은퇴자들은 자신의 이동을 단순한 소비나 수동적인 보호의 대상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스스로 통제하고 교환할 수 있는 '데이터 자산의 축적' 과정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철저하게 보호받는 데이터 주권의 테두리 안에서 나의 이동 데이터를 능동적으로 플랫폼에 제공하고, 그에 합당한 맞춤형 돌봄과 금융적 배당을 당당히 누리는 것. 이것이 규제 혁신과 플랫폼 경제가 맞물려 빚어내는 가장 주도적이고 입체적인 '스마트 시니어 라이프'의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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