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만원에 팔 수 없는 ‘노년의 자유’, 시스템이 답해야 할 때
글 : 김동영 / KDI 전문연구원 2026-03-04
단언컨대, 핵심은 규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수용성이다. 언제나 혁신은 ‘기술’이 아니라 ‘공감’에서 시작된다. 초고령사회로의 진입과 함께 고령 운전자 사고가 사회적 난제로 떠오르자, 정부와 지자체는 ‘면허 반납’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현재의 접근 방식은 기술적 효율성이나 통계적 사고 예방에 치우쳐 있다. 운전대를 놓는 행위가 노년의 삶에서 어떤 ‘단절’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결여된 것이다. 혁신은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며, 그 끝에는 항상 사람이 있어야 한다. 면허 반납 제도가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는 이유는 기술의 부족이 아니라, 정책 설계에 ‘공감’이 빠져 있는 탓이다.
현행 제도의 한계
현재 대다수의 지자체는 면허 반납자에게 1회성 지역사랑상품권을 지급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경제학적인 시각에서 ‘유인 구조의 실패’다. 고령자에게 운전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자아존중감과 사회적 연결성을 유지하는 핵심 기제다. 이를 포기하는 대가로 주어어지는 10만원에서 30만원 상당의 보상은 운전이 제공하는 효용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특히 대중교통 인프라가 부족한 농어촌 지역에서 면허 반납은 곧 ‘사회적 고립’을 의미한다. 비용 중심적 사고로 설계된 현재의 인센티브는 실제 운전대를 잡아야만 생활이 가능한 ‘생계형 운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고, 결국 장롱 면허 소지자들만의 축제로 전략하고 만다.
글로벌 패러다임: ‘제한’에서 ‘지원’으로
주요 선진국들도 같은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있다. 다만 면허 반납을 ‘자격의 박탈’이 아닌 ‘안전한 이동의 전환’으로 인식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2022년 도입된 ‘서포트 카(Sapo-Car) 한정 면허’가 대표적이다. 고령자의 운전 능력을 부정하기 보다 기술(첨단 안전장치)이 인간의 부족함을 보완하는 공생적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는 고령 운전자를 잠재적 가해자로 몰아세우기 보다 기술과 함께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사례다.
유럽의 주요 국가들 사례도 주목할만한다. 연령이라는 생물학적 잣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인지적 정합성’을 정교하게 측정한다. 네덜란드는 75세 이상 운전자를 대상으로 5년마다 전문의의 검진과 실차 주행 평가를 병행하며, 운전자가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운전 범위를 축소하도록 유도하는 ‘자기 결정권’ 중심의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공감 기반의 정책 설계: 감정·사회·경제적 3대 축의 통합
결국 핵심은 고령자 스스로 운전대를 놓을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반납 이후의 삶이 이전보다 더 존중받고 편리하다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설계에서 감정과 사회 그리고 경제라는 세 가지 차원의 공감이 필요하다.
❶ 감정적 공감
감정적 공감은 ‘상실’을 ‘명예’로 치환하는 과정이다. 운전면허증은 성인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면 얻은 ‘자유 증서’이다. 이를 반납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심리적 상실감을 정책적으로 보듬어야 한다. 명예운전자의 신설이 좋은 제도가 될 수 있다. 면허 반납을 ‘자격 정지’나 ‘도로 안전을 위한 명예로운 은퇴’로 정의해야 한다. 평생 무사고 운전자에게는 ‘명예 도로 안전 대사’ 증서를 발급하고, 지역사회 행사 초대 등 심리적 보상을 강화해야 한다.
❷ 사회적 공감
사회적 공감은 공동체가 ‘이동의 연속성’을 보증하는 과정이다. 면허를 반납한 고령자가 사회적 관계에서 단절되지 않도록 지역사회의 예우 체계가 작동해야 한다. 이동권에 우선권(Mobility Priority)을 부여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병원진료, 은행 업무 등 필수적인 사회 복지 서비스 이용 시 면허 반납자에게 우선 순위를 부여하거나 전용 셔틀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운전대를 놓음으로써 얻게 되는 ‘사회적 편익’을 가시화해야 한다.
❸ 경제적 공감
경제적 공감은 ‘바우처’를 넘어 ‘모빌리티 연금화’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1회성 보상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운전을 중단함으로써 절감되는 사회적 비용(교통사고 처리, 보험료 등)을 고령자에게 환원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면허 반납 시 발생하는 차량 유지비(보험료, 세금, 연료비 등)의 일부를 ‘모빌리티 바우처’로 지급하여 택시나 수요응답형 교통(DRT)을 비용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이는 고령층의 실질적인 가처분 소득 증대 효과와 함께 지역 상권 활성화라는 ‘경제적 선순환’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시스템적 전환
인구 전환의 측면에서 모빌리티 인프라는 곧 복지인 시대다. 결국 고령자 이동 문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담는 ‘그릇(시스템)’의 문제다. AI와 자율주행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고령자의 집 앞까지 찾아오는 DRT나 마을 셔틀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반쪽짜리 혁신’에 불과하다. 정부는 규제를 풀어달라는 기업 요구에 답하기 전에, 해당 기술이 고령자라는 시대적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확실한 시장’을 먼저 열어줘야 한다.
노년을 위한 이동의 재정의
이동은 권리이자 존엄이다. 고령자 운전면허 반납 제도의 궁극적 목표는 사고 건수를 줄이는 일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큰 어른들이 안전하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있다.
감정적으로 위로받고, 사회적으로 존중받으며, 경제적으로 보상받는 ‘공감 정책’이 설계될 때, 비로소 노년의 운전대는 무거운 짐이 아닌 명예로운 선택으로 바뀔 것이다. 혁신은 기술이 인간의 마음과 만날 때 완성된다. 이제 도로 위 안전과 노년의 자유가 공존하는 ‘시스템의 진화’를 실행해야 할 때이다.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디지털, 플랫폼 경제를 연구하고 있다. 경제학 박사로 중앙대 겸임교수이자 사단법인 모빌리티&플랫폼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KBS1라디오 '성기영의 경제쇼' 디지털 경제 코너에 출연중이며, 디지털 경제 관련 칼럼을 다수 기고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