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치매에 걸릴 수 있다면, 어떤 법적 준비가 필요할까?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누구나 치매에 걸릴 수 있다면, 어떤 법적 준비가 필요할까?

글 : 박한슬 / 약사, 작가 2026-02-10

2026년은 노인 복지 분야에서 특별한 해다.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의 맏형 격인 1955년생이 고희(70세)를 넘기는 해인 동시에,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를 맞은 이듬해기 때문이다. 이런 인구 구조에서 치매는 단순 질병이 아닌 국가 재정, 노동 시장, 그리고 가계 경제를 위협하는 사회적 위험이 될 수밖에 없다. 


대한치매학회의 추정에 따르면, 우리나라 치매 인구는 2024년을 기점으로 105만 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니 그 시점으로부터 꼬박 두 해가 더 지난 올해는 보수적으로 잡아도 인구 중 치매 환자가 100만 명을 넘겼다는 말이 된다.


치매환자 수 추정치


경도인지장애 유병율


더욱 심각한 문제는 수면 아래 잠겨 있는 거대한 빙산, 즉 경도인지장애(Mild Cognitive Impairment)의 폭발적 증가세다. 치매의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 유병률은 2016년 22.25%에서 2023년 28.42%로 불과 7년 만에 6.17%p나 급증했다. 이는 현재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약 4분의 1, 수치로는 약 300만 명에 달하는 인구가 치매의 경계선상에 서 있음을 의미한다. 정상 노인의 연간 치매 전환율이 1~2%에 불과하지만, 경도인지장애 환자는 연간 약 10~15%가 치매로 이행된다. 그러니 경도인지장애 유병률의 급증은 향후 치매 환자 수가 현재의 추계치를 훨씬 상회할지도 모른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증가세가 더 가파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 걸까. 치매가 어떤 질병인지는 설명이 불필요할 것 같다. 근래 케이블 채널의 주요 보험 광고가 치매 보험일 정도면 말 다 했다. 치매에 걸린 노인이 점차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과정은 짤막한 광고로 봐도 충격이 크다. 그 정도로 익숙한 질병이 됐다. 그런데 치매는 개인의 삶을 갉아먹는 병임과 동시에 가계에 재정적 부담을 가하는 경제적 질병이기도 하다. 치매에 대한 의학적 도움은 병의원에서 구하는 것이 맞다. 그러니 본 글에서는 철저히 '비용' 관점에서의 치매를 살펴보고자 한다.



치매환자 1인당 연간 총 관리 비용


치매의 경제적 충격, 가계에도 큰 부담


2023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치매 환자 1인당 연간 총 관리 비용은 약 2,640만 원으로 집계되었으며, 이는 전년 대비 18.9%나 급증한 수치다. 그렇지만 ‘평균’은 균질한 집단을 대상으로만 의미가 있다. 치매라는 질병을 똑같이 앓는 환자라도 거주하는 장소에 따라서 차이가 크다면, 평균값만 보고 지레짐작으로 넘기지는 말아야 한다.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건 주거다. 환자가 지역사회(자택)에 거주할 경우 연간 비용은 약 1,734만 원 수준이지만,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등 시설에 입소하는 순간 그 비용은 약 3,138만 원으로 1.8배 가까이 뛴다. 


이러한 비용 급증의 원인은 의료비가 아닌 돌봄비다. 시설 입소 환자의 비용 구조를 뜯어보면, 의료비 비중은 47%인 반면, 인건비를 포함한 돌봄 비용은 49%에 달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구조적 특징을 보인다. 이는 의료 기술의 발달로 의료비 상승은 어느 정도 통제 가능해진반면, 노동 집약적인 돌봄 서비스 비용은 인건비 상승과 맞물려 계속해서 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이 매년 오르는데, 간병비라고 오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더 큰 문제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숨겨진 청구서도 있단 점이다. 장기요양보험은 치매 가족에게 훌륭한 안전망이지만, 장기요양보험이 보장해주지 못하지만 꼭 필요한 지출인 '비급여' 비용이 존재한다는 점이 문제다. 예컨대 요양원 입소 시 100% 본인 부담인 식대와 간식비, 그리고 고급 요양원의 경우 월 100만 원을 상회하기도 하는 상급 침실료 등은 매월 고정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전적인 개인부담금이다. 


만약 장기요양등급을 받지 못해, 요양병원으로 향한다면 비용은 더 커진다. 요양원과 달리 요양병원은 간병비가 건강보험 급여 대상이 아니기에(최근 일부 시범사업 제외), 가족이 전액을 부담해야 한다. 환자 가족이 개인 간병인을 고용할 경우 보통 직장인 월급 정도가 소요되고, 5인실에서 공동간병을 받더라도 백만원 돈은 훌쩍 넘는 지출이 발생한다. 이래저래 따져보면, 벌이가 적은 가족 한 명이 일을 그만두고 간병하는 게 더 저렴할 정도다.


실제로 관련 통계에 따르면 재가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 수발자의 19.39%가 간병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거나 사업을 접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 사회의 보수적인 가족문화와 성별 임금 격차로 인해, 간병의 짐은 주로 딸과 며느리에게 전가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아들보다 며느리가 주 간병인이 될 확률이 6배 정도 높다는건 치매 간병이 중년 여성의 경력 단절을 만드는 요인으로 작동함을 보여준다. 즉, 치매 비용은 단순한 지출의 증가가 아니라, 가족 구성원의 소득  상실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경제적 손실로 계산되어야 하는 것이다.





법이 문턱이 되지 않게 하는 방법


여유 자산을 어느 정도 모아놨다고 안심하긴 이른 게, 치매가 야기하는 위협은 비용이 전부가 아니다. 치매의 진행으로 인해 점차 인지 능력이 상실되는 순간, 내 통장에 든 내 돈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해서다. 2023년 기준 인지 기능 저하가 우려되는 고령층이 보유한 자산 규모는 GDP의 약 6.4%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흔히 '치매 머니' 문제라 불리는 돈이다. 


문제는 치매 발병으로 의사 결정 능력을 잃게 되면, 본인 명의의 예금을 인출하거나 부동산을 처분하여 병원비와 간병비를 충당하는 당연한 행위조차 불가능해진다는 점이다. 본인이 통장 비밀번호를 잊어버리는 것을 넘어, 은행 창구에서 본인 확인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계좌가 묶여버리면, 매달 병원비와 간병비로 나가는 수백만 원이 자녀들 빚으로 넘어가는 일도 잦다.


이러한 의사결정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존재하는 제도가 성년후견제도(옛 명칭은 금치산자제도)지만, 실무적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가정법원에 후견 개시를 청구하고 판결을 받기까지 평균 3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며, 그 동안은 아무런 법적 행위를 할 수 없는 공백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치매에 걸리고, 인지능력을 상실할 때의 자금 동결 위험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법적인 사전 준비가 꼭 필요하다.


첫 번째 방어선은 '위임장'이다. 아직 인지 능력이 온전할 때, 신뢰할 수 있는 대리인(주로 자녀나 배우자)에게 특정 금융 거래나 병원비 처리에 관한 권한을 위임하는 문서를 작성하고 공증을 받아두는 것이다. 위임장은 작성 즉시 효력이 발생하므로, 갑작스러운 뇌졸중이나 치매 발병 시 법원의 후견 판결을 기다릴 필요 없이 즉각적인 병원비 지출 등의 사무 처리가 가능해진다. 단, 위임장은 적극적인 재산 처분이나 상속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병원비 이체 등 관리적 차원에서 활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두 번째이자 근본적인 방어선은 '의후견계약‘이다. 법정후견이 치매 발병 후 법원이 지정한 변호사나 법무사 등 제3자가 후견인이 되는 구조라면, 임의후견은 내가 정신이 맑을 때 '누가', '어떻게' 나를 돌보고 내 재산을 관리할지를 미리 계약으로 정해두는 제도다.


 이는 내 삶의 통제권을 모르는 타인에게 넘기지 않고, 내가 신뢰하는 사람에게 맡김으로써 자산의 동결을 막고 내가 원하는 방식의 돌봄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가장 강력한 법적 안전장치다. 최근에는 신탁(Trust) 제도를 활용하여 금융 기관에 자산을 맡기고, 치매 발병 시 병원비와 생활비를 자동으로 지급하게 하는 방식도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으나,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 등 법적 분쟁의 소지가 남아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치매 진단은 끝이 아닌 시작


치매 진단을 받은 노인들은 자포자기하듯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진행될 질병이고, 본인이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여겨서다. 그렇지만 치매의 진행 속도는 개인의 관리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정신이 더 온전한 시기일 때 미리 준비를 해둬야 정말로 ‘치매 노인’하면 떠올리는 상태가 되었을 때 나와 가족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치매 진단이 끝이 아니라 시작인 셈이다. 


가장 급한 일은 앞서 설명했듯 법적인 보호 장치를 만들어두는 일이다. 그리고 치매가 더 진행된다면 어디서 돌봄을 받을 것인지를 정해둬야만 한다. 내가 살던 집에서 계속 살고자 한다면 간병인을 어떻게 둘지, 만약 상태가 더 심각해지면 어디로 갈지도 미리 논의를 해둬야 남겨진 가족들이 부담을 덜 수 있다. 특히 자녀 혹은 배우자에게 가혹한 결정을 떠넘기는 대신 맑은 정신일 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두는 것이 내 마지막 순간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유일한 방법이다.


치매는 끝이 정해진 무서운 질병이지만, 다행히 진행이 더딘 병이기도 하다. 진단 직후 너무 좌절해버리면 그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내가 진정으로 바라고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를 고민할 귀한 시간을 놓치기 쉽다. 치매와 제대로 마주해야지만 치매가 진행되는 상황을 본인과 가족들이 조금이나마 무던히 견뎌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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