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수명만 길면 행복할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수명은
글 : 신미화 / 이바라키 그리스도교 대학 경영학부 교수 2026-02-20
“오래 살면 좋을까요?”
이 질문에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 어려운 시대다. 의학의 발전으로 평균수명은 계속 늘어났지만, 많은 중장년과 시니어에게 장수는 여전히 축복보다는 불안에 가깝다. 오래 살수록 건강이 무너질 것 같고, 경제적 기반은 약해질 것 같으며, 사회에서 점점 역할을 잃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다.
일본은 이러한 질문을 가장 먼저 마주한 나라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장수국가가 되었지만, ‘오래 사는 것이 과연 행복한가’라는 물음은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한국 역시 머지않아 같은 질문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일본 최대 생명보험회사인 일본생명보험은 약 40년 전인 1988년, 다가올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자 ‘니세이기초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는 고령화·연금·사회보장·헬스케어·노인학(제론톨로지) 분야에서 매우 높은 영향력과 권위를 지닌 싱크탱크로,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공헌수명’이라는 개념이다.
니세이기초연구소의 마에다 노부히로 상석연구원은 일본에서 ‘공헌수명’이라는 개념을 널리 알리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그는 이 연구기관에서 초고령사회와 시니어 경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특히 고령자의 사회참여와 취업,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이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연구하며 집필활동과 강연, 정책 제언을 이어 왔다.
또한 그는 수명이 길어진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늘어난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장수의 가치와 기쁨을 어떻게 찾을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지며, 이를 뒷받침할 사회적 설계와 대응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왜 평균수명과 건강수명만으로는 부족한가
우리는 오랫동안 수명을 두 가지 지표로 설명해 왔다. 얼마나 오래 사는지를 보여주는 평균수명(Life Expectancy), 그리고 질병이나 장애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기간을 뜻하는 건강수명(Healthy Life Expectancy)이다. 이 두 지표는 중요하지만, 노년의 삶을 온전히 설명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마에다는 여기에 하나의 질문을 더 던진다. 그 시간은 과연 ‘의미 있게’ 사용되고 있는가. 공헌수명(Engaged Life Expectancy)은 바로 이 공백을 메우는 개념이다.
“노년의 시간 동안 우리는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가, 무엇에 기여하며 살아왔는가를 묻습니다. 고령자가 누군가에게 필요로 되고, 역할을 가지고 사회와 연결되며, 감사받는 경험을 할 때 신체와 정신의 건강은 유지되거나 오히려 개선됩니다. 인간은 돌봄의 대상일 때보다, 기여하는 존재일 때 더 건강해집니다.”
고령자를 ‘부양해야 할 인구’로만 바라보면 사회적 비용과 갈등은 커진다. 반대로 공헌수명을 연장하면 고령자는 사회적 자산이 되고, 지역과 공동체는 지속 가능한 구조를 갖게 된다. 공헌수명은 개인에게는 “아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존재 이유를, 사회에는 일·봉사·학습·돌봄·지역 활동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정책과 비즈니스의 기준을 제시한다.
‘얼마나 오래 일할 수 있는가’보다 중요한 것
일본 내각부 조사에 따르면, 현재 일을 하고 있는 60세 이상 응답자 가운데 약 40%가 “일할 수 있는 동안에는 계속 일하고 싶다”고 답했다. “70세 정도까지” 혹은 “그 이상까지”라고 응답한 비율을 합하면 약 90%에 이른다. 2021년 일본에서는 70세까지의 취업 기회 확보가 기업의 노력 의무로 제도화되었다.
그러나 마에다는 단순히 더 오래 일하게 하자는 접근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고령자를 단순한 노동력으로만 활용하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경험과 판단력, 관계 역량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연령을 기준으로 한 획일적 인사·보상 제도의 재검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실질적 적용, 정년 이후를 포함한 세컨드 커리어 설계 지원이 필요합니다. 고령자를 보호 대상이 아닌, 기여 가능한 인적 자산으로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 과제는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역시 고령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만큼,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고령자의 활약은 ‘의지’가 아니라 ‘구조’에서 나온다
정책 문서에는 흔히 ‘지역에서 활약하는 시니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러한 자리가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는다. 마에다는 고령자의 활약을 개인의 노력이나 선의에 맡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고령자의 활약은 개인의 의지에만 맡겨서는 확산되지 않습니다. 사회가 먼저 세컨드 라이프를 지원하는 판을 깔아줘야 합니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고령자와 지역 자원을 연결하는 중간지원 조직의 존재다. 후쿠오카현은 ‘70세 현역 사회’를 목표로,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취업·사회참여 상담, 맞춤형 일자리 매칭, 시니어 커리어 상담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핵심은 고령자가 무리 없이 참여할 수 있는 역할과 구조를 설계하는 데 있다.
지바현 가시와시의 ‘생애현역 마을 만들기’ 실험 역시 이를 잘 보여준다. 공공성과 지역성을 갖춘 일자리, 학습의 장, 느슨한 참여 구조가 결합될 때 고령자의 참여는 의무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선택이 된다.
자산은 ‘관리 대상’이 아니라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인프라다’
고령기에 접어들수록 의사결정은 점점 취약해진다. 인지 기능이 서서히 저하되는 시기에 모든 선택을 개인 책임으로만 남겨두는 것은 위험하다. 삶과 재산, 거주와 돌봄을 사전에 설계해 두는 준비는 단순한 자산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고령기에 자신의 의사를 끝까지 지키기 위한 존엄의 문제다.
이 지점에서 금융의 역할은 분명해진다. 금융은 고령자의 삶을 대신 결정하는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지탱해 주는 기반이어야 한다. 연금과 자산은 수익률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까지 일할지, 어디에서 누구와 살아갈지, 어떤 방식으로 사회와 관계를 맺을지를 가능하게 하는 선택의 인프라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주목받는 개념이 ALP(Advance Life Planning), 즉 사전 생활 설계입니다. 의료·돌봄에 대한 의사결정뿐 아니라 자산 관리와 주거 문제까지 통합적으로 준비함으로써, 고령자가 판단 능력을 잃기 전에 스스로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도록 돕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마에다는 덧붙였다.
“현재 도쿄대 고령사회종합연구기구(IOG)가 중심이 되어 추진 중인 ALP 어드바이저는 초고령사회에서 발생하는 자산·주거·돌봄 관련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새로운 역할이자 민간 자격 제도로, 2027년 사회적 도입을 목표로 준비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는 초고령사회에서 금융이 수행해야 할 역할이 단순한 자산 증식이 아니라, ‘선택의 존엄’을 지키는 지원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자산과 주거, 돌봄을 사전에 설계해 선택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해지는 가운데, 고령기의 삶을 실제로 지탱하는 또 하나의 축은 의료와 기술 혁신이다.

기술과 혁신은 고령사회의 가능성을 넓힌다
초고령사회 비즈니스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고령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에이지테크의 발전은 그 대표적인 예다. 특히 알츠하이머 예방과 치료를 둘러싼 혁신은 고령사회 전체의 모습을 바꿀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에자이와 바이오젠이 공동 개발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레카네맙은 경도 인지장애의 진행을 늦추는 획기적인 약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약은 일본에서 2023년 9월 25일 정식 승인되었으며, 초고령 사회 대응을 위한 의료 패러다임을 바꾸는 중요한 진전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현재는 한 달에 한 번 병원을 방문해 주사로 투여해야 한다는 제약이 존재하지만, 향후에는 경구용 치료제로 발전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치료 기술의 진전은 단순히 수명을 연장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인지 기능을 보다 오래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령자가 사회와의 연결을 지속하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시간, 즉 ‘공헌수명’을 실질적으로 확장하는 기반이 된다.
또 하나 주목할 사례는 트레젬 바이오파마가 개발 중인 치아 재생 주사제다. 단 한 번의 주사로 자기 조직 유래 치아 재생을 유도하는 이 기술은 아직 실용화 단계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향후 임플란트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치료 패러다임을 열 가능성을 보여준다. 씹는 기능의 회복은 영양 상태와 건강 유지뿐 아니라 사회적 활동의 지속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역시 공헌수명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기술적 진전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처럼 의료·바이오 기술의 혁신은 고령자를 단순한 보호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삶의 질을 능동적으로 유지·확장해 나가는 주체로 재인식하게 만든다. 초고령사회에서 기술의 역할은 ‘얼마나 오래 살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사회와 연결된 삶을 지속하게 할 것인가’를 가능하게 하는 데 있다.

한·일 협력, 위기를 성장으로 바꾸는 조건
일본과 한국은 제도와 문화는 다르지만, 급속한 고령화라는 공통의 미래를 향해 가고 있다.
“한일협력을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시너지와 그 사회적 의미는 분명 큽니다. 그러나 협력은 선언만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 사이를 잇고 조율하는 가교 역할, 다시 말해 실질적인 사무국과 이를 운영할 사람, 그리고 시간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협력의 의지가 아니라, 어떤 틀과 어떤 구조로 함께할 것인가입니다. 지속 가능한 좌표와 명확한 역할 분담 없이 이루어지는 연대는 일회성에 그치기 쉽습니다”.
이제 정부와 기업이 고령사회를 부담이 아닌 미래의 핵심 의제로 인식하고, 보다 전향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에 나설 때다. 그러한 변화가 축적될 때, 초고령사회는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성장과 혁신의 장이 될 수 있다.
맺음말 ― ‘삶의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는 사회로
초고령사회는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지만, 동시에 우리의 삶을 가장 밀도 있게 재설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공헌수명이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단순히 ‘얼마나 오래 살 것인가’에만 매달려 있지는 않은가. 이제는 ‘어떻게 사회와 연결되어, 어떤 선택을 하며, 가치 있는 삶을 지속할 것인가’에 답해야 할 시점이다.
자산의 포트폴리오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삶의 포트폴리오다. 언제까지 일할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사회와 관계를 맺을 것인지, 판단 능력이 남아 있을 때 무엇을 결정해 둘 것인지를 차분히 준비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축복받는 장수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현실적인 출발점일 것이다.
신미화 이바라키 그리스도교 대학 경영학부 교수
1986년 4월, 일본 문부과학성 장학생으로 히토쓰바시 대학원에 유학한 후,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거쳐 게이오 대학원에서 상학 박사 학위를 취득. 현재 일본 그리스도교 대학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글로벌 기업들의 경영 혁신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의 시니어 비즈니스와 라이프스타일, 지방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연구하며 현장을 취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