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과 2026년 사이, 일상의 풍미를 더하는 맛
글 : 이한나 / 요리전문가, 작가 2026-01-21
한 해의 마지막 달은 종무식, 송년회 등 한 해 보내는 여러 ‘의식’들로 바쁘게 지나간다. 그러면서도 그 ‘마지막’이라는 상징성, 그리고 새로운 해를 준비해야 한다는 여러 심적, 물적 부담감 때문에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것이 12월이다.
이런 이유들로 경황 없이 생각이 많았던 시간을 보내던 중 방송 채널을 돌리다 오랜만에 무대에 오른 3세대 아이돌 그룹, EXO의 ‘으르렁’ 무대를 보게 되었다.
이젠 각자의 일을 하는데 더 집중하고 있는 멤버들은 인원도 거의 반 토막이 나고, 예전의 파워풀 하고 각 잡힌 무대 매너와 존재감은 덜했지만 그들에게는 다른 느낌의 자신감과 여유가 보였다. 무엇보다 그들의 노래와 안무를 따라 하는 관객석의 후배 아이돌들, 그리고 역시 노래 가사를 따라 부르며 오랜만에 흥이 차오르는 그 자리에 있었던 관객들과 나와 같은 시청자들은 그 순간만큼은 하나의 공감대로 이어져 있었을 거라는 상상에 즐거웠다.

문득 ‘삶’과 ‘산다’라는 말들이 떠올랐다. 서양권에서 정의하는 삶(Life)은 ‘머무르다(remain), 인내 혹은 버텨내다(perseverance), 그리고 회복력, 탄력(resilience)’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문명의 여러 혜택들에 기댈 수 있었던 시절이 오기 전, 자연 앞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버텨내면서 삶이 다할 때까지 ‘살아내는’ 존재들이었기에 이런 어원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반면 산다 혹은 살다의 동사형인 ‘Live’는 붙들고 있거나(cling), 머무르는(linger, remain), 그리고 계속하다(continuing)라는 서로 충돌하는 듯 하면서도 이어져 있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말하자면 산다는 일은 끝날 때까지 살아내는 일의 연속이 아닐까? 인간은 어쩌면 생이 다할 때까지 ‘살아내고’ 있는지 모른다. 버티고, 다시 일어서고 산다. 그리고 그 삶은 이전 삶들을 이어받고 그 이후에 오는 삶들로 이어진다.
선배들을 바라보던 연습생 시절을 거쳐 하나의 문화산업적 현상이 된 EXO 멤버들은 정점을 찍는 동안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K-팝 문화에 그룹의 특별함으로 다음 세대에 영향을 주는 또 하나의 요소를 더했고, 팬들과의 소통과 연대로 공동체를 만들었다. 많은 시간이 지나 공연은 예전 같지 않아도 무대의 모습에는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었던 과거의 시간들을 소환시키며 구세대와 신세대, 그리고 팬과 일반 대중까지 또다시 많은 이들로 하여금 하나가 되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공동체 속 모든 이들은 함께 살아낸 시간들을 경축하며 다시 돌아갈 각자의 일상에 좋은 동력이 됐을 것이다.
EXO의 연말 공연은 길게는 지난 몇 십 년을 돌아보게 하면서도 당장 2025년 마감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그 시간들을 살아온 나, 그리고 앞으로 맞이할 2026년을 살게 될 나를 생각하게 하는 의미 있는 성찰의 시간이 되었다.

가족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벌목꾼
1917년, 고아였던 로버트는 6-7세 되던 해 기차에 태워져 아이다호에 정착한다. 일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그는 기차 철로 공사에 동원된 벌목꾼 일을 하며 떠돌이 생활을 한다. 교회에서 만난 글래디스와 사랑에 빠져 처음으로 그녀와 함께 가정을 이루고, 집터를 고르고, 손수 지은 자신의 집을 갖게 된 로버트.
거의 평생을 벌목꾼으로 살았던 그는 아내와 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케이트와 함께 살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 몇 달씩 집을 비워야 하는 벌목 일을 계속한다. 노동 강도가 심한 작업은 자연의 변수, 기계와 과학, 인간들간의 다양한 역학관계, 그리고 육체적 한계와 고독과의 싸움이었고, 그 과정에서 로버트는 여러 명의 동료와 꽤 가까운 선배도 잃게 되지만 그가 베었던 나무로 깔았던 철로 위를 기차로 오가며 가족들과 함께 하는 희망을 꿈꾼다.
벌목 시즌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어느 날, 기차에서 목격한 불길한 화마.
마침내 도착한 로버트. 하지만 산불에 휩쓸려 더이상 집도, 아내도, 딸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사라진 가족들을 찾아 헤매며 혹여 살아서 돌아올까 집터 자리에서 노숙 생활을 시작하지만 하염없이 시간만 흘러간다. 어느 날, 마을에서 사람과 물건들을 운반하던 말과 마차 주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로버트는 벌목 일을 그만두고 그 일을 넘겨받으며 가족의 귀환을 기다린다.
아메리칸 인디안 출신의 마을 잡화점을 운영하던 이그나시어스 잭과 전쟁 현장을 거쳐 숲을 감시하는 일을 맡아 마을에 온 외지인 클레어를 통해 세상과 그나마 소통하던 로버트는 어느 날 집 앞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던 한 어린 소녀를 발견하고 아이를 밤새 간호하다가 잠이 든다. 다음 날 눈을 떠보니 소녀는 이미 사라진 뒤이지만 왜인지 그는 아이가 자신의 딸, 케이트만 같다. 많은 세월이 흘러 노년의 로버트는 간만의 외유로 인간이 달나라를 가는 너무나 바뀐 현대화 된 세상을 구경하게 되고, 그 속에 있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미소를 짓는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갈 힘을 얻는가
데니스 존스의 2011년 중편소설을 영화한 <기차의 꿈>은 소소하고 느리게 전개되지만 자연의 섭리와 지속적으로 변하는 세상을 살아내고, 또 살아가는 인간을 조명한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때로는 속수무책이었다가 또 극복하며 살아가고, 계속 진화하면서 그 명맥을 이어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람, 혹은 공동체의 역할은 말할 수 없이 중요하다. 로버트의 삶은 너무나 고독하고 고단한 듯 하지만 그의 아내와 딸, 그에게 경험과 지혜를 나눠준 벌목꾼 선배인 안, 그를 계속 챙겨줬던 이그나시어스 잭 그리고 숲을 감시하기 위해 높은 구조물 위에 살고 있는 클레어가 로버트에게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각을 알려주며 그에게 살아갈 힘을 주고, 그는 또 살아간다.
<기차의 꿈>은 일종의 명상과 같은 영화이다. 지극히 현실적인 리얼리즘과 간혹 환영과 꿈으로 보여지는 로버트의 심상은 클린트 벤틀리 감독의 탁월한 연출과 조엘 에저튼이 연기한 로버트 그리고 그 외의 모든 영화적인 요소들을 통해 조용하다가도 위태롭게 구현되다 마지막에는 진한 감동을 남긴다. 묵은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데 꼭 보면 좋을 영화로 추천한다.

<기차의 꿈>을 보며 아주 일상적이면서도 소중하고, 풍미를 더하는 요리가 생각이 났다. 빵 두 장 사이에 치즈를 끼우고 치즈가 녹을 때까지 앞뒤로 굽는 말하자면 아주 간단한 ‘토스트’인 그릴드 치즈 샌드위치. 여기에 중동식 마늘 소스인 투움(toum)을 발라서 구운 마늘 빵 풍미가 맛있는 그릴드 치즈 샌드위치 레시피 소개한다.

이한나 요리전문가, 작가
신문방송학을 전공했지만 다큐멘터리 연출자가 되기 위해 미국 뉴욕대에서 영화학을 공부하며 다큐 제작, 배급사에서 인턴쉽을 수행. 그 경험은 오히려 영화와 대중간의 소통 창구 역할이 적성에 더 맞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귀국 후 영화제, 기자, 영화진흥위원회 공무원, 한국영화 자막 및 시나리오 번역 작업 등의 업무들을 거치지만 또 한번의 방향 전환을 하게 된다. 우연한 제안으로 영화 〈생활의 발견〉,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밀양〉 등의 프로듀서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아마 마지막일 세 번째 방향 전환은 요리. 오래 품었던 요리에 대한 열정은 목포에서 서양 가정식 쿠킹 스튜디오로 출발, 2023년 서울의 ‘푸드 살롱’으로 재정비 한 ‘스프레드 17’. 살롱지기로 서양 가정식 원 테이블 밥집 운영하며 요리 과학서 <풍미의 법칙> 역서도 내고, 영화와 요리 관련 요리책 집필과, 쿠킹 클래스, 다양한 영화-요리 관련 팝업 등을 준비하며 재미있는 컨텐츠를 제공하려고 노력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