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 마지막 집은 무엇이 달라야 하나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내가 살 마지막 집은 무엇이 달라야 하나

글 : 박한슬 / 약사, 작가 2026-01-23

노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주거다. 누군가는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귀농이라는 선택을 내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안락한 삶의 터전이 되길 바라며 전원주택으로 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별다른 고민 없이 본인이 살던 집에 계속 거주하겠다는 생각만 막연히 갖고 있을 개연성이 크다. 내가 살던 아파트에 계속 거주하겠다는 거다. 


흔히들 이런 선택을 내리는 데는 몇 가지 요인이 관여한다. 

첫째, 내가 살던 공간을 떠나기 싫다는 정서적 애착이다. 둘째, 아파트에 살면 그래도 자산 가치가 어느 정도는 유지가 될 테니 추후 본인이 사망한 후에 자녀들에게도 보탬이 될 거란 믿음이다. 그렇지만 노년기 주거 환경을 설계함에 있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지점은 주거 공간을 가치 보전의 수단인 자산이 아닌, 신체 기능을 보조하는 실질적인 인프라로 재정의하는 일이다. 



통상적으로 '내 집'은 세상에서 가장 안락한 장소로 여겨지지만, 노화에 따라 안락하던 내 집이 도처에 낙상과 부상의 위험이 산재한 적대적 환경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국가데이터처가 2024년에 발표한 독거노인안전실태에 따르면 65세 이상 독거노인의 연간손상경험률은 7.2%로, 전체 노인 인구(5.7%)보다 높다. 그 중 73.9%가 주택에서 발생한 경우다. 


노년의 몸엔 내 집이 그리 안전하지 않은 곳인 셈이다. 특히 노쇠 상태의 노인은 작은 외부 스트레스에도 회복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며, 일상생활 수행능력(ADL)의 감퇴는 필연적으로 돌봄이 필요한 상태로 전락하기 쉽다. 그러니 자산 가치를 고려해 집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노년이 될수록 실제로 ‘거주’하는 곳은 바뀌어야만 한다. 


왜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바꿀 수 있는지 차례로 살펴보자.



노쇠한 몸이 바꾸는 내 집의 환경


신체의 예비력이 고갈되어가다 보면 결국 우리 몸은 노쇠(frailty)를 겪게 된다. 가장 두드러지는 현상이 근육의 양과 질이 모두 감소하는 근감소증(sarcopenia)이고, 자리에 앉았다 일어날 때 순간적인 힘을 내는 근육이 주로 소실되어 일상생활에 큰 불편이 발생하게 된다.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2024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한국 노인의 약 9.4%(남성 9.5%, 여성 9.3%)가 근육량과 근력이 감소하는 근감소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의자에 앉았다 일어나는 일상적인 동작조차 버거운 과업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약해진 하지 근력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건축학적 보정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게 안전 손잡이나 지지대 설치다. 노년의 어르신들이 자리에 앉았다 일어날 때 무언가를 짚거나, 생활을 보조해주는 이의 손을 붙잡고 일어나는 걸 많이 봤을 테다. 항상 사람이 곁에 있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게 어려운 환경이라면 주변에 안전 손잡이나 지지대를 설치해서 하지 근력을 보조해주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 손으로 짚고 일어날 수 있는 팔걸이가 달린 의자를 구비하고, 변기 옆에도 잡고 일어날 수 있는 안전 손잡이를 달아야 하는 식이다.


시력의 약화 역시 노년기엔 자주 발생하는데, 수정체의 단백질 변성으로 인한 황변 현상은 색상 구분 및 명암 대비 능력을 저하하고, 빛을 받아들이는 동공의 크기가 줄어 물체를 또렷하게 식별하기 위한 빛 요구량은 오히려 증가하게 된다. 


쉽게 말해, 노년엔 집을 가급적 밝게 유지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탁해진 수정체는 강한 직접 조명에 대해 과도한 빛 번짐을 유발하므로, 집을 밝게 유지하되, 되도록이면 간접 조명을 활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특히 노년에 가장 많이 발생하는 사고가 밤중에 화장실에 가다 복도에서 넘어지는 낙상 사고인데, 이를 예방하기 위해선 벽에 지지대를 설치해두거나, 아예 동작 감지 센서가 달린 조명을 복도에 설치하는 식으로 노년의 야간 보행 경로를 보다 더 안전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동시에 침대 높이를 적절히 조정하고, 다리가 걸려 넘어질 수 있는 문턱을 없애는 등 적극적으로 낙상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보호 조치를 집 곳곳에 해둘 필요가 있다. 내가 살던 집은 그대로라도, 내 몸이 변하기 때문에 집이 점차 위험한 곳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주거 대안, 다운사이징


통상 ‘국민 평형’이라고 불리는 34평 아파트는 4인 가구가 거주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그렇지만 자녀들이 모두 독립한 노년의 부부 혹은 이혼이나 사별로 인해 혼자 남은 노인에겐 34평 규모의 아파트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과도하게 넓은 주거 면적은 노년의 몸에 무리를 유발하는 불필요한 동선을 만들어내고, 노년의 몸에 맞게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데도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가구와 공간을 줄이는 게 급선무다. 


그러니 현재 거주 중인 주택을 완전히 처분하진 않더라도, 내가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새 주거지를 찾는 게 필요하다. 자가는 세를 주고, 나는 좀 더 작은 셋집으로 옮겨가는 식이다. 그렇지만 국토교통부의 2024년 주거실태조사 자료를 활용한 연구 결과, 65세 이상 고령가구의 92.2%가 향후 이사계획이 없다고 응답했으며, 이사계획이 있는 가구는 1.8%에 불과했다. 주거 이전에 대한 인식은 아직 매우 낮다.



그렇게 조금 작은 평형으로 옮겨가면, 집의 주거 환경을 예쁘게 바꾸기 위해서라기보단,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인테리어 작업이 필요하다. 후기 노년에 접어들면, 다수의 노인은 걸어서 이동하는 게 어려워져 휠체어 같은 보행 보조장치를 사용하게 되는 일이 잦다. 그러니 휠체어 사용을 염두에 두고 현관에는 경사로를 설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두고, 화장실 역시 그에 불편하지 않도록 미리 대비해두는 게 바람직하다. 보행 능력이 상당 부분 상실된 이후에 구조 변경을 하는 건 늦을 수 있어서다. 엘리베이터 설치 여부나 주변 동네의 경사로 환경 확인도 필수다.


동시에 욕실 역시 욕조 대신 샤워부스 형태로 바꾸는 게 이상적이다. 노년이 되면 하지 근력의 감소로 인해 높은 턱을 넘기가 어려워진다. 욕조의 높은 턱을 넘어 몸을 씻기보단, 턱이 없는 샤워부스를 이용하는 게 낫고, 그 안에 앉을 수 있는 샤워 의자를 구비하면 세신의 난도가 급격히 내려간다. 


스스로 씻는 존엄을 최대한 늦게까지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노인 친화적 시설 개조를 대형 평형에 어설피 갖춰두는 것보단, 소형 평형에서 꼼꼼하게 진행하는 게 낫단 얘기다. 그렇지만 주거실태조사 결과는 그리 밝지 않다. 화장실이나 욕실에 지지대 손잡이가 없는 노인 가구가 85.8%에 달하기 때문이다. 문턱이나 주택 내 계단 같은 단차를 제거한 가구도 31.5%에 불과하니 실제로 노인친화적 주택 개조가 진행된 가구 비율은 낮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이런 개조가 부담스럽다면, 해당 시설이 갖춰진 시설을 찾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요양시설이라고 하면 생활에 거의 자율성을 발휘할 수 없는, 다인실 형태로 된 예전의 양로원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겠지만 근래의 노인공동생활가정 혹은 노인복지주택은 1인실 구조를 유지하고 개인공간과 공용공간이 완전히 분리된 형태를 갖추고 있다. 


중정(中庭) 구조로 가운데 공용 시설들이 있고, 주변을 개인실이 둘러싸는 식이다. 흔히 다인실로 와병 생활을 하는 요양병원 혹은 요양원과 달리 실제 ‘내 집’과 같이 개인공간이 유지되는 형태이다 보니 노년의 몸에 맞는 주거 환경 설계와 개인 생활의 안락함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 실버타운의 진화된 형태다.



플랜B를 위한 재활 돌봄 찾아두기


그렇지만 집 혹은 집과 유사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급격한 건강 악화의 순간은 늘 발생할 수 있다. 이때를 대비한 '플랜 B'를 수립해 두고, 미리 시설 등을 알아보는 것도 꼭 필요한 과제다. 예컨대 노년에는 미끄러져 넘어지는 사고가 즉시 고관절 골절 등으로 이어져 보행 능력을 급격히 상실하게 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이런 때는 본격적인 요양시설에 일시적으로 입소해, 집중적인 재활을 받는 게 필요하다. 



하지만 급작스러운 사고를 맞이하면, 대부분은 별다른 준비가 되어있지 못해, 근감소증이 더 심해지기 쉬운 와병 생활을 강요하는 요양병원 혹은 요양원으로 향하기 쉽다. 다시 가정으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좋은 재활 병원이나 재활 전문 요양 병원을 선택하는 게 필요하지만 그런 관념 자체가 옅어서다. 기능 유지 수준의 소극적 물리치료가 아닌, 전문 인력에 의한 집중적 재활 프로그램을 갖춘 곳을 미리 알아두면 몇 주 혹은 몇 달의 재활을 거친 후 성공적인 가정 복귀가 가능하다. 한 번 요양 병원에 들어간다고 평생 누워있으란 법은 없단 얘기다.


어설피 아는 남 얘기가 아닌 게, 친할머니께서 정확히 비슷한 일을 겪고, 지금은 퇴원해 다시 집으로 돌아와 건강히 지내고 계신다. 밤에 화장실을 가시려다 넘어지셔 골절이 생겼지만, 좋은 재활 병원을 찾아 열심히 기능 회복 노력을 하신 덕분이다. 그렇지만 애초에 더 일찍 관리했더라면 그런 고생을 덜 겪으셨지 않겠나. 


노년의 몸에 가장 좋은 집은 가장 비싼 집이 아니라 가장 적은 힘으로 가장 안전하게 일상을 통제할 수 있는 곳이다. 당장 지금은 필요하지 않을지 몰라도 5년 후 혹은 10년 뒤에는 내 몸이 지금과 부쩍 달라진다는 점을 이해하고, 미리 준비해두는 이들만이 갑작스럽게 맞이한 노쇠 상태에 잘 대응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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