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애플’인데 왜 중국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가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천하의 애플’인데 왜 중국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가

글 : 한우덕 / 중앙일보 차이나랩 2025-12-29


애플이 중국에 본격 진출했던 2000년대 초, 중국은 후진타오 주석이 통치하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중국 조야에는 자유주의, 국제주의 사조가 흘렀다. 2001년에는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기도 했다. 서방이 구축한 국제 무역 시스템에 중국이 편승한 것이다.


당시 미국은 중국을 환영했다. ‘중국을 성장케 하라. 결국 그들도 자유 세계의 품으로 돌아올 것이다’라는 게 당시 미국 행정부의 생각이었다. 중국을 낙관했던 시기였다. 애플의 중국 사업에 ‘딴지’를 거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애플의 중국 공급망 확충은 더 과감하게 진행됐다. 해외 부품 기업을 중국으로 몰아왔다. 폭스콘 공장의 최악 작업 환경에도 눈을 감았고, 땅에 떨어진 노동자 인권도 모르는 척했다. 중국도 애플을 도왔다. 기술도 가져오고, 공급망도 넓혀주고, 또 일자리를 주니 고마울 뿐이었다. ‘짝짜꿍’이다.



중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기업만 살아남는다


그러나 시진핑 정권이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권위주의 성향이 강화되면서 자유주의 사조는 퇴조했고, 중국몽(中國夢)의 기치 아래 민족주의가 득세하기 시작했다. 민영기업, 외국기업에 대한 당의 통제도 강화됐다. 인터넷 금융제국을 세우려던 알리바바 마윈은 당의 역린을 건드렸다가 쫓겨나야 했다.


‘기업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시진핑 주석은 기업에 존재 이유를 하나 더 달았다. 애플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의 이익에 부합되어야 한다는 압력을 받게 된다. 뉴욕타임스 앱 삭제 사건은 그중 하나다.


중국 당국은 2016년 아이폰 앱스토어에서 뉴욕타임스 앱을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뉴욕타임스가 껄끄러운 내용을 보도하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압력이었다. 그러나 애플은 어쩔 수 없었다. 중국 비즈니스를 지키기 위해서는 받아들여야 했다.  



한 번 들어주면 요구는 더 커진다. 이번에는 중국 앱스토어에서 모든 VPN 앱을 삭제하라고 강요했다. 중국인 유저들이 VPN을 통해 뉴욕타임스를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역시 어쩔 수 없었다. 애플은 결국 그것도 받아들였다. 674개의 VPN을 일시에 삭제했다.


중국은 애플의 데이터센터 설립을 요구했다. 그것 역시 들어줘야 했다. 결국 구이저우에 데이터센터를 지었다.  


애플은 중국에 ‘아부’도 해야 했다. 2016년 애플은 향후 5년 동안 중국에 275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심지어 ‘중국제조 2025’를 열심히 지원하겠다는 말도 했다. 실제로 2022년 애플은 메모리반도체 회사인 YMTC와의 협력을 발표했다.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해 목을 조르고 있는데, 애플은 그 반대로 나간 셈이다. 결국 미국 의회의 반발로 무산됐지만, 이 사건은 애플이 중국 사업에 얼마나 깊숙이 개입됐는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중국이 때를 기다렸던 이유 


‘천하의 애플’은 왜 중국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져야 했는가?


포획됐기 때문이다.  


미국의 산업전문가들은 애플이 권위주의 나라에 중국에 공급망을 전적으로 의존한 것은 최악의 선택이라고 말한다. 공급망에 문제가 생기거나, 또는 권위주의 정부의 의도된 부정적 정책 변화가 생겼을 때 대응할 수 없다.


중국은 됐다고 생각됐을 때 마각을 드러낸다. 결정타는 2023년 9월 공무원의 애플 사용 금지 조치였다. ‘출근할 때 아이폰은 갖고 오지 말라~!’ 이 지시는 곧 아이폰 쓰지 말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언제든 너희들을 내쫓을 수 있다는 걸 과시한 것이다.


중국은 기다렸다. 애플이 자국의 ICT 발전에 도움을 주고, 산업 업그레이드에 공헌하는 한 그들은 애플을 두고만 볼 뿐이었다. 미국 기업이 들어와 자국 종업원을 심하게 착취하고 있는데도, 사회주의 나라 중국은 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그건 중국이 필요하다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한 얘기였다. 상황의 판별자는 중국이다. 애플이 중국에 필요한 존재인지, 아닌지는 중국이 판단했다.



‘공무원의 아이폰 사용 금지’는 툭 전진 잽이다. 핵 펀치는 여전히 감춰두고 있다. 언제 그 펀치를 날릴지, 그건 ‘판별자’ 중국만이 알고 있다. 단단히 코 꿰였다.


애플이 탈(脫)중국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한 게 바로 그때다. '중국 공산당의 결정에 따라 하루아침에 망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에서다.



중국에는 있는데 인도에는 없는 3가지


어디로 깔까.


인도다. 인도 노동자의 월평균 인건비는 230달러로 중국(약 1175 달러)의 5분의 1 수준이다. 폭스콘의 경우에도 인도 공장 인건비는 중국 공장의 3분의 1 수준이다. 인도 인구는 이미 중국을 추월했다. 중산층도 두껍다. 지정학적 리스크도 낮다. 인도에서 생산해서, 인도에 팔고, 또 제3국으로 수출하면 된다. 애플이 중국 대안으로 인도를 고른 이유다.


이론적으로 맞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중국에는 있는데, 인도에는 없는 게 3개 있었다.


첫째 국가다. 

중국은 국가가 나서 애플을 도왔다. 애플의 중국 노동자 착취는 엄밀히 말하면, 중국 정부가 묵인 또는 방조한 결과다. 중국은 탄압하고, 애플은 돈 버는 구조였다.


그러나 인도는 강력한 중앙 권력이 없었다. 필요한 공장을 지을 때 중국에서는 지방정부가 팔 벗고 나서 도와주는데, 인도 지방정부는 오히려 방해한다. 공사가 제대로 될 리 없다.


둘째 생태계다. 

애플은 2000년대 초부터 꾸준히 중국에 아이폰 생태계를 구축해왔다. 설비를 깔아주고, 기술을 가르쳐 주고, 세계 주요 부품업체를 중국 공장 주변으로 모았다. 이제는 중국 기업이 생태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그들 간 경쟁으로 혁신이 일어나고, 공급망은 탄탄해졌다.


그러나 인도는 생태계라는 게 없다. 소재-부품-완성에 이르는 공급망 중간중간 구멍이 생겼다. 애플은 어쩔 수 없이 중국에서 부품을 가져와야 한다. 중국 부품을 인도로 가져와 조립하는 꼴이다. 부품 업체 간 경쟁이 없으니, 혁신은 기대하기 힘들다.


셋째 노동자다. 아이폰 생산을 위해서는 고분고분한 노동자가 필요하다. 인도 노동자는 고분고분하지 않다. 근면하지도 않다. 게다가 노조의 힘도 강력하다.


중국 공장은 자동화가 많이 진척되어 있다. 세계 절반 이상의 로봇이 중국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 공장은 여전히 사람의 손에 의존해야 한다. 전반적인 로봇 기술 수준이 낮으니 업무 효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


애플이 중국에서 처음 아이폰을 생산한 게 2006년이었다. 그 후 7년 동안 아이폰 생산량은 0대에서 1억5300만 대로 늘었다. 인도의 속도는 턱없이 느렸다. 2016년에서 2023년까지 0대에서 1500만대 생산에 그쳤다. 10분의 1 수준이다.


브라질에서도 생산을 시도해봤다. 부품 공급 거리만 더 멀어졌을 뿐이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에서 부품을 가져와야 생산이 가능했다. 중국 이외의 나라에서 생산하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애플은 여전히 고민 중이다. 중국을 떠나야 하지만(그들은 '다각화'라고 말한다), 쉽게 떠날 수 없다. 이 같은 막강한 생산여건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지정학적 대결에서 그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중국 눈치도 봐야 한다. 중국 심기를 건드리면 언제라도 레드카드를 받을 수 있다.


달리 방법이 없다. 중국에서 최대한 버티는 수밖에 없다. CEO 팀 쿡이 중국에 가서 젊은 소비자들과 스킨십을 늘리고, 공무원들과 만나 투자 MOU를 남발하는 이유다. 그러나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중국 로컬 회사들이 맹렬하게 애플을 추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을 위협하는 로컬 추격자들


추격자는 많다. 샤오미, 오포, 비포…. 그러나 그중 가장 무서운 상태는 화웨이다. 화웨이는 싸구려 가성비 영역이 아닌, 애플의 아성인 고급시장을 공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웨이가 플래그십 모델인 아이폰XS(고급형)과 보급형 모델인 아이폰XR 판매에 나선 건 2018년이었다. 바로 그때 화웨이는 ‘메이트20’ 시리즈를 내놓았다. 이 시리즈의 최고급 모델인 ‘메이트20 프로’는 XS에 필적할 만한 사양을 갖추고 있었다. 오히려 더 낫다는 시장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화웨이는 ‘메이트20 프로’의 가격을 XR에 맞췄다. 같은 사양의 제품을 더 싼 가격에 내놓은 것이다.


결과가 어떨지는 뻔했다. 화웨이의 시장점유율은 2019년 상반기 20%에서 하반기에는 27%로, 2020년 초에는 29%로 뛰어올랐다. 프리미엄급 시장(600~800달러)에서 화웨이 점유율은 2018년 초 10% 남짓에서 1년 만에 48%로 급등했다. 아이폰 점유율은 82%에서 37%로 내려앉아야 했다. 시장을 고스란히 화웨이에 내준 셈이다.


애플을 구한 건 트럼프다. 2019년 5월부터 시작된 트럼프 행정부의 규제로 화웨이는 반도체 등 부품 조달에 애를 먹었고, 애플은 그 틈을 타 시장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래 못 갔다. 반도체 자체 공급망을 확보한 화웨이가 2023년 8월 다시 고급형 스마트폰(메이트 60 프로)을 내놓으면서 애플은 또다시 쫓기는 처지가 됐다.


더 강해졌다. 화웨이는 대만 TSMC 아닌 상하이의 SMIC 공장으로부터 7나노 반도체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 미국 제재를 뚫고 자체 스마트폰을 생산하게 됐다. 이는 곧 ‘애플, 너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어’라는 걸 시사한다. ‘출근할 때 아이폰은 갖고 오지 마’라는 2023년 9월 중국 정부의 지시는 이를 말해준다.


'이제 애플에 남은 선택지는 두 개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공급망의 파괴를 감수하고 중국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오거나, 아니면 중국 시장에서 고사하느냐의 길 뿐이라는 얘기다. 너무 극단적이다. 그러나 애플이 사면초가의 궁지로 몰리고 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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