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근로시간도 훌쩍 넘는 황혼 육아, 보상은?
글 : 박한슬 / 약사, 작가 2025-12-29
경제활동에서 물러난 은퇴 이후의 삶은 자아실현과 여유로운 휴식이 보장될 것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여행 가방을 들고 공항으로 향하거나, 평소 미뤄두었던 악기를 배우는 노년의 이미지가 미디어에서 꾸준히 반복되는 이유다. 그러나 실제 노인들의 현실은 사뭇 다르다. 공항 대신 어린이집 등하원 길에 서서, 악기 대신 기저귀 가방을 멘 노인들이 더 많아서다.

자녀가 다시 자녀를 낳은 후 맞벌이하는 자녀들을 대신해 육아 전선으로 복귀한 조부모들이 부쩍 늘고 있다. 서울시 ‘3040 워킹대디의 일·가족양립지원방안 연구’에 따르면, 영유아 자녀를 둔 맞벌이 가구 중 조부모에게 도움을 받는 비율은 약 50~63%로 꾸준히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육아정책연구소(KICCE)의 전국보육실태조사 중 '영아(0~2세) 주양육자' 통계에서도 조부모 돌봄 비율이 두 배 가까이 상승했다고 확인된다.
그러다 보니 내 주변에서도 관련 언급이 부쩍 늘었다. “손주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프지만, 안아주다 보면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라거나 “손자들이 집에 오면 좋은데, 집에 갈 때는 더 좋다”라는 말은 실은 뼈있는 농담이다. 가족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맡아주긴 하지만 노년기에 육아를 감당하는 게 당사자들에게도 그리 쉽지는 않아서다. 황혼 육아의 현실은 어떨까?

은퇴 없는 ‘주 47시간 노동’
조부모의 육아 참여는 ‘보조 양육자’ 정도로 가볍게 상정되는 일이 잦다. 급한 일이 생길 때 잠시 아이를 맡기거나, 가끔 등하원을 도와주는 수준의 소일거리로 여겨서다. 그렇지만 실제 통계를 확인하면 이런 인식은 현실과 꽤 동떨어져 있다는 게 확인된다. 황혼 육아를 사실상 전담하는 조부모의 평균 육아 시간은 주5일 기준 42시간에 이른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법정 근로시간인 주 40시간을 넉넉히 넘기고, 주말이 끼면 최대 가능 근로시간 52시간도 넘는다.

더 큰 문제는 이처럼 막중한 노동이 제공되고 있음에도, 이에 상응하는 사회적·경제적 보상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2025년 기준 정부가 지원하는 아이돌보미의 기본 시급은 10,590원 수준이고, 맘시터 등 민간 플랫폼에서 형성된 베이비시터 평균 시급은 15,000원 안팎에 머물러 있다. 이를 바탕으로 조부모가 주 40시간을 이 정도 임금을 받고 노동한다고 가정하면, 월 240만 원을 훌쩍 넘어선다. 많아야 100만원 정도의 ‘용돈’으로 퉁칠 규모가 아니다.
이런 숫자를 놓고 살펴보자면,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 상당수는 ‘은퇴자’가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풀타임 직장인 이상의 고강도 노동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왜 공공 보육이나 전문 베이비시터가 아니라, 조부모가 돌봄 노동의 최전선에 서게 되는가. 비용 절감이나 정서적 신뢰 같은 요소도 작용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제도가 메워주지 못하는 ‘시간의 공백’에 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맞벌이 가구의 경우, 아이가 학교나 학원을 마치고 귀가한 뒤 부모가 퇴근하기까지 평균 약 2~3시간 정도의 돌봄 공백이 발생한다. 직장인 부모가 매일 반차를 쓸 수는 없으니 어느 한쪽이 일자리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양육자가 함께하긴 어렵다. 이 공백을 비용 부담 없이 믿고 맡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 조부모다. 취약한 돌봄망이 만들어낸 현상이다.
정책으로 채워주지 못한 돌봄 공백
정책은 이 현실을 얼마나 반영하고 있을까. 현행 주거·복지 정책의 많은 부분은 여전히 ‘핵가족’이나 ‘1인 가구’를 기본 단위로 상정해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양육이 돌아가는 최소 단위는 조부모와 자녀 세대가 느슨하게 결합한 ‘느슨한 확대가족’에 가깝다. 저출산 고령화 대책으로 1인 가구 지원을 늘릴 게 아니라, 느슨한 확대가족이 유지될 수 있게 도와야 하는 것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역시 이러한 가족 구조의 확산을 지적하며, 가족센터 사업과 돌봄 지원 체계를 이 현실에 맞추어 재편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3대가 근거리에 거주하는 경우 파격적인 주거 혜택을 부여하거나, 조부모 돌봄 수당을 지급해야지, 가족 내부의 무상 노동에 기대는 방식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는 없단 얘기다. 노후의 양육 부담을 너무 키웠다간, 되레 은퇴 부부와 자녀 세대 간 갈등이 커질 수 있어서다. 다행히 조부모 돌봄수당은 현실화가 됐다.
서울시의 경우, 월 40시간 이상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에게 월 30만 원의 돌봄비를 지급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2025년부터는 소득 기준(중위소득 150% 이하) 완화를 추진하면서 중산층 맞벌이 가구까지 지원 대상을 넓히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그럼에도 30만 원은 자녀들이 부모에게 건내는 용돈 수준에 그치기에, 상징적 제스처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장기적으론 국가 수준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정책이 도입되어야 하는 것이다.

노후의 행복을 위한 ‘양육 규칙’ 세우기
어쨌거나 사회적 제도가 부재하거나 미비한 상황에서는, 비용이 구조적으로 개인에게 전가된다. 이를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 바로 ‘손주병’이다. 손주 돌봄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목 건초염, 허리 디스크, 무릎 관절염 등 근골격계 질환을 통칭한는 말로 국립국어원 신조어로 등재될 정도로 활발히 사용되는 중이다. 아이를 안고, 업고, 따라다니는 반복적 노동 과정에서 노년기의 핵심 자산인 건강이 빠르게 소진되는 것이다.
여기에 자신의 노후 자금을 헐어 손주 양육비나 자녀 가계의 생활비를 보태는 ‘마이너스 육아’가 더해지면 위험은 한층 커진다. 이러한 패턴은 조부모 세대의 노후 빈곤을 가속화하는 지름길이 되며, 장기적으로는 가족 내에서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공짜 노동과 무제한적 헌신은 당장은 훈훈한 미담으로 비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조부모의 삶을 잠식하고 애정도 소진되는 일이 될 수 있어서다.
따라서 황혼 육아를 지속 가능한 형태로 만들기 위해서는, 가족 내부에도 일정 수준의 ‘규칙’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 “자식이니 알아서 챙겨주겠지”, “부모니 당연히 도와주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는 양측 모두에게 손해를 안길 수 있어서다. 가장 먼저 정비해야 할 것은 양육에 대해 보상을 확실히 하는 태도다. 금액 자체의 크기 못지않게, 이 보상이 ‘호의’가 아니라 ‘노동 대가’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양측 간에 최소한의 규칙을 정할 수 있다.
그렇게 손주 돌봄이 일종의 ‘노동’임을 서로 인지한 다음에는 시간의 경계를 명확히 설정하는 일도 필수적이다. 등하원과 식사 보조 등 구체적인 돌봄 시간대를 합의하고, 저녁 시간과 주말, 휴식일은 조부모의 사적 시간으로 엄격히 구분하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조부모 역시 자신을 주양육자가 아니라 보조양육자로 인식하고, 자녀 세대의 양육 방식을 존중해야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처음엔 차가워 보일지라도 결과적으로는 이게 가족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안전장치가 된다.
나를 먼저 지켜야 손주도 지킨다
황혼 육아는 저출산·고령화가 겹친 한국 사회에서 사실상 마지막 방어선 역할을 하는 돌봄 장치다. 공공 보육과 시장 서비스가 채우지 못한 틈을 메우기 위해, 조부모 세대의 시간·체력·연금이 총동원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구조가 조부모의 일방적인 희생을 당연한 전제처럼 요구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내리사랑이 강력한 정서적 동인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 감정이 작동하기 위해서도 체력과 경제력이라는 현실적 자원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아파트에 살아 종종 마주치는 아이는 낮시간 동안 아이 할머니께서 봐주시는 것 같았다. 힘이 넘치는 아들이라 그런지 할머니가 늘 뒤를 종종대며 쫓아다녔는데, 하루는 비가 내리는데도 바깥에 나가자며 떼를 쓰는 아이와 공동현관에서 힘겨운 입씨름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OO아, 할머니도 제발 좀 살자”. 체념한 표정으로 내뱉는 할머니의 말씀이 참 오래 기억에 남았다. 자식 앞에선 티를 못 내도, 실제론 그런 고난을 겪는 분들이 많으리라.

건강한 황혼 육아의 출발점은 조부모의 신체적·정신적 안녕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것이다. 조부모가 자신의 삶을 지킬 수 있어야 손주에게도 안정적인 돌봄과 애정을 제공할 수 있다. 국가는 조부모의 돌봄을 비공식적 선행이 아닌, 사회 재생산을 떠받치는 실질적 노동으로 인정하고, 이에 상응하는 지원 체계와 권리 보장을 설계해야 한다. 가정 내부에서도 합리적인 보상과 명확한 규칙을 통해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고, 세대 간 관계를 소모품처럼 쓰지 않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제서야 황혼 육아가 서로의 삶을 지키면서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육아를 돕는 일은 소중하지만, 그럼에도 내 인생의 주인공은 여전히 ‘나’라는 인식을 분명히 하는 것, 그것이 손주를 지키고 자녀 세대를 지키면서 동시에 노년의 나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현실적인 해법 아닐까.
박한슬 약사, 작가
글 짓는 약사. 숫자가 담긴 글 쓰는 일을 한다. 약학 대학 졸업 후 통계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현재는 외국계 제약 회사에서 메디컬 라이터로 일한다. 《중앙일보》 「박한슬의 숫자읽기」와 《월간조선》 「박한슬의 건강의 지평선」을 연재하고 있으며, KBS 1라디오에서 매주 의료 서비스와 건강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데이터를 통해 한국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한 『숫자한국』, 약의 작용 원리를 풀어 쓴 『오늘도 약을 먹었습니다』, 투자자 관점에서 바라본 제약 산업 개론서인 『바이오 투자의 정석』, 국내 의료 체계의 지속 가능성을 살핀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를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