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검사 점수는 치매 선고도, 뇌의 성적표도 아니다
글 : 한소원 /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2025-11-28

“오늘이 며칠이죠?”
너무 쉬운 질문이지만 종종 헷갈린다. 17일이던가 18일이던가. 회사나 학교를 다니고 있으면 외적인 기준점이 있어서 날짜 계산이 쉽지만 직장을 은퇴한 노년층에겐 그렇지 않다. 날짜는 물론이고, 연도, 장소를 물어보는 문제는 치매검사에서 빠지지 않고 나온다.
치매검사에 사용되는 문제는 생각보다 풀기 쉽지 않다. 치매선별용 간이정신상태검사 MMSE에는 이런 문제가 있다.
“100에서 7씩 계속해서 빼보세요.”
“100, 93, 86, 79, 72, 65, 58, 51, 44, 37, 30….”
사실 만만치 않은 문제다. 보통 사람이라도 당황하기 일쑤다. 인터넷에 보면 치매를 예방하기 위한 방법이랍시고 100에서 7씩 빼는 연습을 하라고 한다. 그러나 이건 치매를 예방하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치매검사를 통 과하기 위한 연습이다. 수능시험처럼 치매검사를 준비해야 할 판이다. 이게 치매검사인지 지능검사인지 알 수 없다.
‘인지검사’ 결과로 100% 치매를 진단할 수 있을까?
또 다른 치매신경인지검사인 CERAD-K는 언어, 기억, 집행능력, 공간능력 등 여러 세부영역의 검사를 포함한다. 그림을 보고 물건 이름을 말하는 검사도 있다. 빗자루, 청진기, 달팽이, 나침반 그림도 나온다. 나침반도 실제로 본 적이 없다. 나침판이 맞는지 나침반이 맞는지도 헷갈린다. 단순한 검사이긴 하지만 여기 나오는 그림들이 일상에 흔히 보는 물건들은 아니다.
이와 같은 인지검사가 얼마나 치매 선별에 효과가 있을까? 기억이란 것은 과거의 일을 뇌에 차곡차곡 쌓아 놓는 게 아니다. 현재의 뇌 활동이다. 그 활동은 오래전에 일어난 일을 끄집어내는 활동일 수도 있고 새로 무언가를 저장해야 하는 일일 수도 있다. 이런 뇌의 활동은 항상 오류가 있다. 새로운 것을 저장해야 하는 일은 주의 집중 능력이 필요하다. 개인의 경험이나 믿음과도 관련이 있다. 그런데 맥락이 있는 것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의미도 없는 개념인 숫자의 조합을 외우는 것은 뇌로서는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쉽게 쇠퇴하는 능력이다.
이러한 인지검사만으로 치매를 진단하지는 않는다. 가족들과의 인터뷰, 유전자 검사, 뇌영상 촬영 등 다각도의 검사를 한다. 그러나 절차적 편리성과 점수의 해석이 표준화되어 있다는 이유로 인지검사는 초기 스크리닝부터 사용된다.
문제는 이런 검사를 토대로 의사가 치매 초기라고 진단을 내린다거나 치매 가능성이 있다고 말할 때 그 말이 가지는 영향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개념 중에 자기 실현적 예언이라는 용어가 있다. 자기실현적 예언(self- fulfilling prophecy)이란 기대와 믿음을 가지면 결국 그 사람이 기대되는 방향으로 행동하고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믿는 대로 된다는 것이다.
검사 결과에 사로잡히면 스스로 악화할 수 있어
이런 연구가 있다. 학생들을 무작위로 뽑아서 이 학생들이 앞으로 크게 학업성적이 향상될 거라고 교사에게 말했을 때 1년 후 실제로 학생들의 성적은 크게 향상되었다. 교사가 학생에게 거는 기대가 실제로 학생의 성적 향상에 효과를 미친 것이다. 무엇인가를 할 수 있거나 할 수 없다고 믿는 것이 실제로 그러한 미래를 이루어낸다. 이것이 치매 진단을 받은 노인에게 어떻게 적용될까?
청년은 실수를 하거나 기억이 나지 않아도 환경 탓을 하지 나이 탓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인의 경우는 인지 과제에서 어떤 실수나 변화도 나이 탓을 하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나이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데 의사가 인지 검사 점수가 나쁘다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이제 퇴화될 일만 남았구나 생각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데 자신 감이 떨어지고 사회활동을 피하게 된다. 주변에서 가족들도 치매환자 취급을 하며 독립적인 생활을 못 하는 돌봄의 대상으로만 치부하면 신체활동이 줄어들고 당연히 인지기능도 떨어진다. 나의 믿음과 주변 사람들의 태도가 나의 행동을 변화시켜 결국 자기실현적 예언이 되는 것이다.
치매 연구에서 랜드마크가 되는 가장 중요한 연구로 1986년 데이비드 스노든(David Snowdon) 박사가 시작한 수녀 연구(The Nun Study)가 있다. 이 연구에 참여한 678명의 수녀들은 모두 75세 이상이었는데, 그들은 남은 생애 동안 정기적으로 행동검사 및 인지검사에 참여했다. 연구에 참여한 수녀님들은 전반적으로 오래 생존하신 분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삶 자체가 건강할 수 밖에 없는 삶이었다. 술이나 담배를 했을 리도 없고, 게으르게 살지도 않거니와, 특히 봉사가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 연구는 인지 및 행동검사 결과와 실제 치매 진행도 간에 괴리가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어떤 수녀님의 경우, 전혀 치매 증상을 보이지 않다가 85세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는데, 그분은 생전에 시행한 인지검사에서도 꽤 높은 점수를 보일 정도로 인지능력이 양호한 분이었다. 그런데 막상 사후에 수녀님의 기증된 뇌를 검사해보니 상당히 진척된 치매성 뇌신경 손상이 발견되었다. 그런가 하면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심한 알츠하이머 치매 증상을 보인 뒤 돌아가신 수녀님도 있었는데, 그의 사후에 이뤄진 뇌 부검에서는 미미한 손상 정도만 발견된 것이다.

치매 진단 받았다고 치매 환자로 살아선 안 돼
뇌병리학적으로 치매 증상이 진척되어 있어도 실제로 치매 증상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의학적으로는 치매라고 진단받을지언정 실제 일상 생활에는 크게 무리가 없을 수 있다는 말이다. 뇌는 우 리의 신체활동과 사회적 연결, 새로운 경험과 즐거움에 의해 변화한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치매라고 믿고 신체활동을 줄이고 자주적으로 살아가기를 포기한다면 삶이 그렇게 변화할 수 밖에 없다. 치매 진단을 받더라도 오히려 과거보다 신체활동, 사회적 활동을 주체적으로 이어간다면 건강한 삶을 이어나갈 수도 있다.
뇌는 유연하게 변한다. 나이 들어서 자녀를 출산한 경우 나이보다 한결 젊어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뇌는 나이에 따라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적응한다. 자기의 유전자를 가진 자녀를 키우기 위해 젊은 호 르몬을 분비해 더 젊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기제는 손주를 키우는 것을 도와주고 곁에서 자주 어울리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서도 나타난다.
뇌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인지검사의 점수가 치매 선고도 아니고 뇌의 성적표도 아니다. 우리는 모두 나이가 들어가지만 어떤 삶을 사는가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삶을 전반적으로 들여다보는 적극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한소원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에서 인지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학 심리학과 교수로 10여 년간 연구하며 학생들을 지도한 뒤, 현재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인지과학과 인간공학심리학, 정서과학 등을 강의하고 있으며, 특히 뇌 가소성, 심리학과 인공지능, 인간-로봇 상호작용, 스마트 에이징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나이를 이기는 심리학>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