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사라지는 시대, 누구와 마지막을 함께 할 것인가
글 : 신미화 / 이바라키 그리스도교 대학 경영학부 교수 2025-11-27
도쿄 교외, 가을 햇살이 잔잔히 내리쬐는 어느 날. 엔딩센터의 정원에는 푸른 잔디 위로 노란빛과 붉은 빛을 띤 낙엽이 조용히 흩날리고 있었다. 잎이 모두 떨어진 벚나무 한 그루는 다가올 겨울을 고요히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발치에는 공동묘비가 자리한다. 하나의 묘비에는 수십 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아직 남은 공간은 앞으로 이곳에 묻힐 사람들을 위해 비워져 있다.
서로 다른 성씨들이 나란히 새겨진 그 묘비는, 마치 “이제는 누구도 자신의 죽음을 가족에게 맡기지 않는다”는 선언처럼 보였다.
이 시설을 만든 사람, 그리고 ‘가족과 죽음의 사회학’을 연구해온 이노우에 하루요 씨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녀는 도요대학(東洋大学) 라이프디자인학부 교수로 재직한 후, 현재는 같은 대학 현대사회종합연구소 객원연구원, 엔딩디자인연구소 및 ‘수목장(樹木葬)’ 회원운영과 생전・사후 지원을 서포트하는 NPO법인 엔딩센터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제는 1인 세대가 늘어나면서, 죽음조차 가족에게 의지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죽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녀가 말하는 ‘죽음의 준비’는 단순히 장례 절차를 미리 정해두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책임지는 것— 그것이 이노우에 씨가 말하는 ‘죽음의 자립(死の自立)’이다. 삶을 스스로 설계하듯, 죽음 또한 스스로 디자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무너진 사회
예전 일본에서 죽음과 장례는 가족의 몫이었다. 장례식장이 일반화되기 전의 일본에서는 집 거실에 관을 두고 친척들이 모여 고인을 배웅하였고, 전통적 가족 제도 아래에서 죽음은 가족과 공동체가 함께 나누는 삶의 일부였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었다. 1970년대 이후 급격한 도시화와 핵가족화, 여성의 사회진출은 일본의 가족 구조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24년 현재 일본의 65세 이상 1인 고령자 가구는 약 903만 가구에 달한다. 한국도 2024년 통계청 기준 약 219만 가구로, 양국 모두 매년 증가 추세다.
이노우에 씨는 이렇게 말한다.
“예전에는 누군가가 돌아가시면 가족이 당연히 장례를 치르고, 묘를 지키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가족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가족의 부재는 곧 ‘죽음의 고립’을 의미한다. 누가 장례를 치르고, 누가 고인을 추모할 것인가 — 그 답을 찾는 것이 오늘날의 과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후계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묘’, 그리고 ‘무덤친구(墓友)’라는 새로운 장례 문화가 탄생했다.

벚꽃장(구획이 정해져 있지만, 위에서 보면 잔디만 깔려있다)

벚꽃장(묘비에는 잠들어 있는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벚꽃 아래에서 다시 만나는 사람들 – ‘벚꽃장(桜葬)’의 탄생
‘벚꽃장’은 엔딩센터가 상표 등록한 독자적인 수목장으로, 도쿄 최초의 사례로 알려져 있다. 마치 아파트처럼 개인 구획이 있으면서, 이웃 구획들이 모여 하나의 공간을 이루는 ‘집합묘(集合墓)’ 형태다. 유골은 항아리에 담지 않고 흙에 직접 묻어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방식이다.
매년 봄, 벚꽃이 만개하면 이곳을 찾는 사람들로 붐빈다.


“일본인은 벚꽃을 보며 인생을 떠올립니다. 화려하게 피었다가 조용히 지는 모습이 우리 삶과 닮았다고 느끼기 때문이지요.”
부부나 가족이 함께 벚꽃장에 묻히는 경우도 있지만, 자녀가 없는 사람들의 비율이 약 30%에 달하며 점점 늘고 있다.
집합묘에는 혈연이 아닌 사람들이 한 무덤 아래 잠들어 있지만, 그녀는 이를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적 연대”라 부른다.

‘무덤친구(墓友)’ – 죽음을 이야기하며 삶을 배우는 사람들
‘무덤친구’는 말 그대로 ‘무덤을 매개로 한 친구’다. 이노우에 이사장은 “이제는 혈연(血縁)을 넘어선 ‘결연(結縁)’의 공동체가 중요해질 시대”라고 말한다. 무덤친구는 그러한 이념이 구체화된 관계다. 이들은 매월 한 번, ‘또 하나의 우리 집(もう一つの我が家)’이라 불리는 공간에 모인다. 함께 식사하고, 커피를 마시며 독서회나 노래 모임, 요가와 태극권을 즐긴다.

무덤친구들이 모이는 '또 하나의 우리 집'

무덤친구와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 파티
그녀의 저서 『혼자 사는 시대의 죽음 준비(おひとりさま時代の死に方)』에는 무덤 친구 회원들의 이런 말이 소개되어 있다.
“이곳에 오면 마음이 정말 편안해져요. 다른 모임에서도 즐겁지만, 여기서는 ‘지금 이 순간’을 넘어, 인생의 끝자락까지 함께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함께 웃고, 때로는 죽음까지도 이야기하며, 서로의 존재를 깊이 받아들이는 관계이지요.”
“‘내가 먼저 죽으면 꼭 나를 기억해줘요’라고 서로 말해요.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것이 일상의 큰 위로가 됩니다.”
이들은 이렇게 웃으며 말한다.
“우리, 죽어서도 저 세상에서 같이 놀아요.”
“매일 밤 와인을 같이 마셔요.”
“저 세상에서도 이웃으로 지내요.”
이노우에 씨는 말한다.
“이런 말 속에는, 사람들이 ‘죽음을 넘어선 관계’를 발견하고 있는 겁니다. 죽음이후에도 함께할 수 있다고 느끼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줄고 오히려 평안이 찾아옵니다.”

외국 문화인류학자들이 감탄한 일본의 ‘죽음 문화’
어느 해 겨울, 회원들이 꽃무늬 천으로 직접 만든 수의를 입고 런웨이에 선 ‘엔딩 드레스 패션쇼’가 열렸다.
관객들은 “멋져요!”, “당신답네요!”라며 환호했다. 그날, 죽음은 더 이상 슬픔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의 축제’였다.
이 행사는 NHK월드 다큐멘터리로 전 세계에 방영되었고, 이후 스위스·프랑스·미국·태국·한국 등 세계 각국의 미디어가 엔딩센터를 찾았다. 미국의 인류학자 앨리슨(Alison) 교수는 이를
“죽음을 숨기지 않고 삶 속으로 끌어들인 문화적 혁신” 이라 평가했다.
서구 사회가 죽음을 병원과 장례업자의 영역에 가둔 반면, 일본의 엔딩센터는 죽음을 시민의 일상으로 되돌린 것이다.
“죽음을 금기시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야말로 성숙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에서는 나이, 가족 구성, 종교가 달라도 사람들이 함께 ‘마지막’을 이야기한다.
이 시도는 초고령사회 일본의 새로운 실험으로 국제적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단지 장례 방식의 변형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시민적 인식 전환이었다.

한 달에 한 번 개최되는 엔딩서포트 설명회
NPO 엔딩센터 – 가족을 대신하는 ‘사후복지’의 모델
이노우에 씨가 설립한 엔딩센터는 일본 최초로 ‘사후복지(死後福祉)’를 실현한 비영리법인이다. 회원제로 운영되며, 생전의 돌봄, 입원 시 동행 지원, 유언장 작성, 후견 계약, 장례 및 납골 절차, 사후 청산까지 전 과정을 지원한다.
“죽음을 비즈니스로 다루면 비용이 너무 커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NPO로 운영합니다. 돈보다 중요한 건 ‘사람이 마지막에 외롭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회원이 세상을 떠나면 직원들이 직접 화장터에서 유골을 수습해 가족처럼 배웅한다. 이곳에서는 ‘혈연이 아닌, 마음으로 맺어진 가족’이 마지막을 함께한다.
이 모델은 단순한 장례 서비스가 아니라,
‘가족 없는 죽음’을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해답이자 인프라다.
생전계약 – ‘죽음의 자립’을 위한 새로운 문화
이노우에 씨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생전 위임계약’이다.
이는 자신의 죽음 이후 일어날 일을 미리 계약해두는 제도다. 연명치료 중단 여부, 장례 방식, 유골 처리, 연락 담당자 등 모든 것을 본인이 결정한다.
“예전에는 죽음 이후의 일을 가족에게 맡겼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가족이 없거나, 있어도 멀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책임지는 시대’가 된 겁니다.”
이 계약은 ‘자기답게 살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며, 그녀는 이를 “삶의 자립이 곧 죽음의 자립으로 이어진다”고 표현했다.
왜 지금 ‘생전계약’이 필요한가 – 사회적 배경
일본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고독사’로 추정되는 사망자는 약 7만6천 명, 그중 65세 이상 고령자가 5만8천 명을 차지한다. 며칠 혹은 몇 주가 지나서야 발견되는 경우도 많다. 행정은 범죄가 아님을 확인하면 간단히 화장하고, 무연납골당에 안치한다. 남은 유품은 폐기되고,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묻힌다. 이노우에 씨는 이를 ‘죽음의 사회적 방치’라 부른다.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인간의 마지막이 이렇게 간단히 처리되는 것은 문명사회의 모습이 아닙니다. 제도와 의식을 함께 바꿔야 합니다.”
그녀가 말하는 생전계약은 “존엄하게 존재하기 위한 사회적 장치”다. 죽음의 순간까지 ‘나로서 존재할 권리’를 지키는 것이다. 초고령・1인 사회에서 죽음 이후를 가족에게 떠넘기지 않고, 사회가, 시민이, 그리고 개인이 직접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사후 복지(死後福祉)’를 사회가 함께 만들어야 한다
이노우에 씨는 ‘죽음을 돌보는 일’이 이제 사회 전체의 복지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녀는 이를 ‘사후복지’라 부른다.
“아이를 위한 유치원이 있듯, 노인을 위한 요양시설이 있듯, 죽음을 위한 사회적 제도도 필요합니다.”
정부의 제도적 개입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죽음을 둘러싼 시민 의식의 성숙’이라고 말한다.
“법보다 먼저 바뀌어야 하는 건 사람들의 마음이에요.”
죽음이 더 이상 숨기거나 부담스러운 주제가 아니라, 삶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때, 우리는 비로소 더 깊이 있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죽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나를 완성하는 일”
이노우에 씨는 여러 차례 한국에 초청되어 수목장과 공동묘지를 둘러봤다.
“한국은 아직 죽음을 국가나 종교의 영역에서 보는 경향이 강하지만, 언젠가 시민이 주체적으로 이 분야에 참여하게 될 거라 믿습니다.”
그녀는 덧붙였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을 완성하는 마지막 과정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그것을 준비하는 일은, 곧 ‘잘 사는 법’을 배우는 일입니다.”
삶의 끝에서도 ‘나답게 살아가는 것’ ― 그것이 이노우에 하루요 씨가 말하는 ‘좋은 죽음’, 그리고‘벚꽃처럼 아름다운 이별’이다.
신미화 이바라키 그리스도교 대학 경영학부 교수
1986년 4월, 일본 문부과학성 장학생으로 히토쓰바시 대학원에 유학한 후,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거쳐 게이오 대학원에서 상학 박사 학위를 취득. 현재 이바라키 기독교대학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글로벌 기업들의 경영 혁신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의 시니어 비즈니스와 라이프스타일, 지방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연구하며 현장을 취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