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로 시작하는 창조적 삶의 첫 발
글 : 이한나 / 요리전문가, 작가 2025-11-11
목포 유달산 자락에 위치한 어촌 마을인 서산동에는 바보마당에서 장항준 감독의 영화 <1987 >에 등장하는 ‘연희네 슈퍼’까지 내려가는 가파르고 좁은 길을 따라 ‘시화골목’이 이어져 있다. 주민들 특히 연세가 있으신 분들, 지역 시인과 화가들이 공동 작업한 작품들이 담담하게 인생을 풀어낸 시와 그림 형태로 각 집 외벽에 그려져 있다.
“젊어서 억수로 일을 많이 해서 뼈닥이 다 녹아 부렀어” 처럼 사투리와 문법에 구애 받지 않은 글귀들을 일일이 읽어 내려가다 보면 다양한 희로애락의 감정들과 더불어 잔잔한 감동이 밀려온다.
글쓰기는 목포의 시화골목 작품들처럼 표현이고, 소통이고, 다가오는 미래의 시간들을 더 알차게 채워줄 수 있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얼마 전 선배가 추천한 미국 작가 줄리아 카메론의 저서 <아티스트 웨이>는 은퇴 후 인생의 제 2막에 들어선 이들에게 행복하게 창조적인 작업을 시도해보는 툴을 소개하고 있다. 인간은 모두 창조적이고, “저마다 이 세상에 선보일 독특한 것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는 이 책은 각자의 창의성을 끌어내기 위한 루틴 네 가지를 제안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떠오르는 모든 소소한 생각들을 A4 용지로 약 3 페이지를 채워서 써내려가는 ‘모닝 페이지’,
전시회가 되던, 등산이 되던 스스로에게 재미있다고 여겨지는 것을 찾아 10가지 정도의 목록을 작성, 매주 목록에 있는 모험을 찾아 실행하는 ‘아티스트 데이트’,
1 주일에 두 번 반려동물, 친구, 휴대전화 전혀 없이 혼자 약 20분간 걷는 ‘산책’,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이를 12로 나눠서 매 단계별로 작성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 혹은 떠오르는 생각들을 매주마다 써 내려가는 ‘회고록’을 작성하는 일이다.
글쓰기는 꼭 누군가에게 보여주겠다는 목적 없이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작업으로 시작해 소소하게 삶에 대한 만족도와 자신감을 되찾는 것에서부터 실제 출판 혹은 다른 창의적인 작업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동안의 사회생활, 가정생활 등등을 겪으면서 누군가의 요구, 기대, 성과 등에 맞추려고 했던 그 동안의 삶에서 해방되어,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맘껏 펼쳐 보이는 ‘창의적인 자유인’으로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에세이 작성을 통한 나의 발견
발동이 잘 안 걸린다면 또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도 있다. 2024년 말, 영화업계 지인인 영화 <잉투기>의 강지현 프로듀서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찾은 <에세이 캠프>라는 프로그램을 거쳐 짧은 단행본 에세이집 <할매의 시간>을 냈다는 소식에 한 권을 구입했다. 강피디의 영화인으로서의 모습과 별개로 그의 생각과 삶을 들여다보며 그를 더 이해할 수 있어서 좋은 창작물이었다.
프로그램 가입비가 있는 약 한 달 내외의 과정으로 매일 오전 8시에 앱을 통해 보내진 단어를 가지고 1,000자 정도의 글을 쓰게 된다. 직접적인 피드백은 없지만 참가자들의 글 몇 편은 뉴스레터에 실려 다른 참가자들이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이 과정을 약 80% 정도 인증한 참가자들에 한해 그 동안 쓴 글들은 한 권의 책으로 제작되어 받을 수 있고 추가 금액을 지불하면 몇 권을 더 주문할 수 있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강피디는 “자신을 돌아보는 좋은 작업이었고, 머리가 복잡할 때 정리를 해주는 역할을 해” 유익했다고 한다.

요리한 것을 블로그에 글로 쓰다
93년작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과 98년작 <유브 갓 메일>을 연출한 노라 애프론 감독의 2009년작 <줄리 & 줄리아>는 민원을 처리하는 공무원이자 한때 작가를 꿈꿨던 2002년의 줄리와 미국인들에게 프랑스 요리를 소개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실존 인물 줄리아 차일드가 차일드의 요리책을 통해 각자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9/11 참사 관련 민원들을 처리하는 일이 고되기만 한 줄리. 집에 돌아가면 스트레스를 요리로 푼다. 이런 줄리는 남편의 권유로 줄리아 차일드가 공저로 1961년 출판한 영문 프랑스 요리책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책은 이후 63년에 자신이 진행하는 요리 방송
역시 실존 인물인 줄리 파웰은 파워 블로거로 거듭나면서 블로그에 썼던 글들을 엮어 <줄리 & 줄리아 (서른 살 뉴요커 요리로 인생을 바꾸다)>라는 책으로 출판하게 되고, 줄리아 차일드의 회고록과 더불어 이 영화의 원작으로 영화화 되기까지 한다.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다 줄 '타프나드'
아마도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책에 소개되고 영화 내에서도 줄리가 가장 공들인 요리로 소고기를 레드 와인에 오래 익힌 프랑스식 고기찜인 ‘뵈프 부르기뇽’도 좋지만 너무 손도 많이 가고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 그 대신 영화 속에서 잠시 언급된 ‘타프나드’를 소개한다.
블랙 올리브, 케이퍼, 앤쵸비, 올리브유, 레몬즙을 모두 갈거나 으깨서 페이스트로 만들어 치즈와 빵이나 크레커와 곁들어 와인 한잔과 즐길 수 있는 감칠맛이 매력적인 스프레드이다. 서양식 멸치 육젓인 앤쵸비 대신 좀 담백하게 멸치액젓을 넣은 버전이지만 그냥 앤쵸비를 활용해도 좋다.
타프나드를 휘리릭 만들어 바게트 빵, 그리고 화이트 와인 한잔, 그리고 <줄리 & 줄리아>를 즐기며 나만의 창조적인 삶, 그 첫발을 내딛는 방법을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다.

이한나 요리전문가, 작가
신문방송학을 전공했지만 다큐멘터리 연출자가 되기 위해 미국 뉴욕대에서 영화학을 공부하며 다큐 제작, 배급사에서 인턴쉽을 수행. 그 경험은 오히려 영화와 대중간의 소통 창구 역할이 적성에 더 맞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귀국 후 영화제, 기자, 영화진흥위원회 공무원, 한국영화 자막 및 시나리오 번역 작업 등의 업무들을 거치지만 또 한번의 방향 전환을 하게 된다. 우연한 제안으로 영화 〈생활의 발견〉,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밀양〉 등의 프로듀서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아마 마지막일 세 번째 방향 전환은 요리. 오래 품었던 요리에 대한 열정은 목포에서 서양 가정식 쿠킹 스튜디오로 출발, 2023년 서울의 ‘푸드 살롱’으로 재정비 한 ‘스프레드 17’. 살롱지기로 서양 가정식 원 테이블 밥집 운영하며 요리 과학서 <풍미의 법칙> 역서도 내고, 영화와 요리 관련 요리책 집필과, 쿠킹 클래스, 다양한 영화-요리 관련 팝업 등을 준비하며 재미있는 컨텐츠를 제공하려고 노력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