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패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글 : 폴 블루스틴 /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 “킹 달러” 저자 2025-09-26

미국 연준의 독립성이 정치에 종속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트럼프 대통령의 리사 쿡( Lisa Cook) 연준 이사 해임 시도는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렸지만, 이를 계기로 연준의 독립성과 달러의 신뢰도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면 달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10년 20년 후에도 세계 기축 통화로서 막강한 패권을 유지할 수 있을까?
“킹 달러”의 저자이자 통화 전문가인 폴 블루스틴(Paul Blustein)은 달러 패권은 여전히 공고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국제통화로서 유로화와 위안화의 부상, 암호화폐와 CBDC(중앙은행 디지털 화폐)의 등장, ‘달러 무기화’의 역풍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의 법치주의 훼손 우려 등을 달러 패권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지적한다. 하지만 역사가 증명하듯 미국 자본시장의 깊이와 풍부한 유동성 그리고 제도적 신뢰가 달러에 대체 불가능한 패권을 제공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킹 달러”라는 책의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이 책에는 미래에도 달러의 패권이 계속될 것이라는 확신이 가득하다. 달러의 미래를 너무 낙관적으로 전망한다는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질문에 내포된 회의론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 질문에는 조금 길게 답하겠다. 이는 내가 설명해야 하는 중요한 사항이고 다른 질문과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책의 1장에서 제시한 중요한 전제는 “달러의 지배력은 거의 난공불락이고 미국 정부의 파멸적인 실수가 없다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는 점이다[명확하게 말하면 ‘지배력’ (dominance) 또는 당신이 말하는 ‘패권’(hegemony)은 달러가 국제 상거래에서 다른 어떤 통화보다 훨씬 더 많이 사용된다는 사실을 말한다]. 이런 주장을 조금 더 발전시켜 보면, 나는 일부 제재 대상 국가, 특히 러시아가 경제 제재의 타격을 줄이는 방법을 찾아냈지만, 그럼에도 경제 제재를 위한 달러의 무기화는 미래에도 상당 기간 효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결론 부분에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승리 이후인 2024년 11월 책을 인쇄하기 직전에 덧붙인 문장 하나가 있다. 바로 “달러의 지배력은 트럼프 1.0 시대를 견뎌냈고 트럼프 2.0 시대에도 여전히 유지될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책이 출판된 2025년 3월에 트럼프 정부는 달러 패권의 근간을 흔드는 여러 조치를 시행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나는 다수의 행정명령, 입법 추진, 기자회견 발언과 소셜미디어 게시물에 충격을 받았다. 특히 오랜 우방국을 경제적 강압으로 겁박하려는 행태, 급진적 보호무역 성격의 ‘해방의 날’ (Liberation Day) 무역정책, 막대한 재정적자를 초래한 대규모 감세안의 의회 통과, 그리고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의 독립성에 대한 공격이 그랬다. 바로 이런 조치들 때문에 다수의 저명한 경제학자와 논평가들이 달러의 국제적 지위가 크게 훼손되거나 심지어 상실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정책의 무모함에 대한 경고는 전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심각한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금융위기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미국은 이전보다 덜 번영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잘못된 조치들이 달러가 왕좌에서 물러날 전조가 될 만큼 파국적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나는 달러가 가까운 미래에도 국제 거래에서의 고유한 역할을 유지할 것이고 달러라는 무기가 여전히 강력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킹 달러”에는 내 논리를 설명하는데 유익한 도표가 하나 있다. 연구 과정에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의 순간, 달리 말해서 달러 패권의 지속성 측면에서 나를 각성시킨 것은 국제결제은행(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이 작성한 도표의 데이터를 보았을 때였다. 이 도표는 달러가 세계 금융시스템에 얼마나 깊이 자리잡았는지를 알려준다. 일반적으로 인용되는 지표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달러에 관해 조금만 읽어본 사람은 누구나 달러가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 외환보유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국제무역의 대부분이 달러로 결제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런 지표도 인상적이지만, 국제결제은행의 도표는 세계 금융시스템의 주요 대형 행위자들(다국적 기업, 글로벌 은행, 자산운용사 등)이 달러 표시 자산을 놀라울 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한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 그래프의 데이터는 외환 스와프(foreign exchange swaps: 현물 환율로 특정 통화를 사고, 선물 환율로 반대 통화를 팔거나 그 반대로 동시에 실행하는 거래) 시장에서 어떤 통화가 가장 많이 거래되는지를 보여준다. 거대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 시장에서는 다국 적 기업, 글로벌 은행, 보험사, 증권 딜러, 연기금 등 전 세계의 막대한 자금을 운용하는 기관들 사이에서 하루 수조 달러의 거래가 이뤄진다. 달러는 유로화, 엔화, 파운드화, 스위스 프랑보다 훨씬 큰 규모로 거래되는 핵심 통화이다. 이 시장을 통해 거대 기업들이 환율 변동의 위험을 줄이고, 투자, 대출, 차입, 수출입 등 다양한 목적으로 달러를 활용할 수 있다.
이런 데이터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달러가 왕좌를 잃을 위험에 처해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전 세계의 정부와 민간기업이 미국에 실망해 정말로 다른 통화를 쓰고 싶어 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나라들이 이미 미국에 신물이 났지만, 책에서 설명한 여러 이유로 대안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떤 통화도 달러의 두 가지 핵심 속성, 즉 개방된 자본계정(자본이 미국 국경을 건너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는 의미)과 깊고 유동성이 풍부한 시장(막대한 규모의 달러 기반 자산을 시장 교란 없이 매매할 수 있다는 의미)을 동시에 갖추지 못했다.
2025년 4월에 주식, 달러 환율, 미국 국채가 동시에 하락하는 불길한 현상이 시장에서 일어났다. 그 당시 안전자산으로서 달러의 특성에 갑자기 의문이 제기되면서 달러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됐다. 그리고 앞으로 연방정부의 과도한 차입과 ‘트럼프화된’(Trumpified: 연방준비제도의 독립성이 훼손되고 느슨한 통화정책과 막대한 재정적자 허용 등 트럼프 대통령이 선호하는 정책에 휘둘리는 연준에 대한 비유) 연준으로 인해 발생하는 인플레이션 때문에 투자수익이 잠식될 것을 우려한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를 투매하는 더 심각한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본다. 그 결과는 미국과 세계 경제에 상당한 고통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세계 교역 체제와 금융시스템에서 달러가 중심적 역할을 상실할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 사태는 매우 먼 미래를 제외하면 상상하기 어렵다. 이런 측면에서 앞서 언급한 국제결제은행 데이터는 가장 설득력 있는 증거이다. 그리고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의 에스와르 프라사드(Eswar Prasad)와 로빈 브룩스(Robin Brooks) 등 몇몇 전문가도 달러 비관론에 대해 설득력있게 반박해 왔다.
여기에 더해 6월에 발표된 국제결제은행의 연구는 2025년 4월 시장의 움직임을 비교적 무난하게 설명하고 있다. 관심 있는 독자들은 국제결제은행이 작성한 글 ‘US dollar’s slide in April 2025: the role of FX hedging’을 찾아보길 바란다.
최근에 책을 낸 저자가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내 책이 틀리기를 바란다. 그러나 내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적으로 옳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책이 틀렸기를 바라는 이유는 달러 패권이 지속되면 미국이 달러를 강압적 목적에 활용할 독보적 능력을 계속 보유하게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어리석고 수치스럽다고 여기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강압하는 방법을 활용해 왔다.
캐나다에 주권을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시도가 아마 가장 악명높은 사례이고 보우소나루(Bolsonaro) 전 대통령을 기소한 브라질에 대한 위협도 마찬가지이다. 트럼프 대 통령은 달러를 가지고 관세보다도 더 두려운 몽둥이를 휘두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런 권력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그런 사실을 부정한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달러에 관한 불편한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세계의 지배적 통화가 그런 인물이 통치하는 국가에서 발행된다는 사실은 매우 우려스럽지만 불가피한 현실이다.
유로화는 한때 달러의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통합된 자본시장 부재 때문에 달러의 대체 통화가 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유로 지역의 자본시장이 통합되고 단일 채권을 발행할 수 있다면 달러를 위협할 수 있다고 보는가?
유로화는 달러 패권을 떠받치는 여러 가지 중요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유로는 거대 경제권의 통화이고, 정교한 금융시장, 법치, 그리고 일류 중앙은행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질문에 대한 내 답은 “그렇다”이다. 유로화가 당신이 지적한 문제점, 즉 유로가 달러에 크게 뒤처지는 2등 통화가 될 수 밖에 없는 핵심 요인들을 극복한다면 국제 상거래에서 훨씬 많이 사용될 것이다.
최근 몇 달 사이에 유럽을 미국의 강압에서 보호하기 위해 매우 논리적인 몇 가지 제안들이 제시됐다. 특히 피터슨 국제 경제연구소의 올리비에 블랑샤르(Olivier Blanchard)와 시타델의 앙헬 우비데(Angel Ubide)가 5월에 발표한 제안이 설득력 있는 사례이다. 이런 제안을 주장하고 옹호하는 사람들은 충분히 지지를 받을 자격이 있다. 내 말이 큰 의미는 없겠지만, 그들이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나 사실상 넘기 어려운 장애물은 다양한 유럽 국가들의 반감이다. 특히 독일 같은 경제력이 강한 국가들은 경제적으로 더 취약한 유로 지역 국가들과 공동으로 위험을 부담하고 돈을 빌리는 것에 대한 반감이 크다. 최근에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라. 정부 차입에 대한 우려로 프랑스 국채 금리가 급등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는 유로 지역 20개 주권 국가들 사이에서 위험에 대한 공동 부담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 ‘세계의 지배적 통화로서의 유로’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설득력이 없다는 뜻이다.
미국이 달러를 무기로 특정 국가를 국제 결제시스템에서 배제하는 조치에 대한 대응으로 중국과 러시아는 자체적인 국제 결제 시스템을 도입했다. 새로운 국제결제시스템이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를 대체하지는 못하겠지만 국제 거래에서 달러의 패권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나?
달러 패권이 부분적으로 ‘잠식’(erode)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느냐는 질문이면 답은 “그렇다’이다. 그러나 “달러가 지배적 지위를 상실할 정도의 중대한 약화”를 의미한다면,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언급한 여러 이유로 인해 “아니오”가 될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바로 이점이다!
중국과 러시아 같은 정부들이 국제 교역에서 자국 통화를 더 많이 사용하는 방법을 찾는다고 해도 전 세계의 은행들은 국제 거래 전반에 걸친 달러의 지배력 때문에 국제 거래를 하는 고객을 위해 글로벌 달러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제재 대상과 거래 하는 경우 달러 시스템에서 은행을 퇴출시킬 수 있는 미국 정부의 능력을 고려할 때, 이는 미국이 달러라는 매우 강력한 무기를 계속 맘대로 사용할 것이라는 뜻이다.
미국이 우방국의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정도로 경제 제재를 지나치게 남용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나 중국 등이 우회 경로를 개발하면서 제재의 효과도 약해지고 있다. 과도한 경제 제재가 탈달러화 움직임을 가속시킬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미국이 금융 제재를 남용하면 각국 정부가 달러 시스템을 우회할 방식을 찾도록 추가적인 원인을 제공할 것이 분명하다. 나도 미국 시민이지만 적어도 몇몇 경우에는 그러한 시도가 성공하길 바란다! 하지만 이전 답변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이유로 그런 시도들이 성공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다.

기존 암호화폐의 문제점은 불법 거래에 악용되거나 가치가 고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테이블코인은 달러나 미국 국채에 의해 가치가 보장되고 거래를 추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현 트럼프 정부는 스테이블코인이 미국채의 거래 활성화와 달러의 패권 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암호화폐 업계는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전 세계적 확산이 미국의 이익, 특히 달러 패권을 강화함으로써, 막대한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길 좋아한다. 미국 정치인들이 암호화폐 친화적인 법과 규제를 마련해 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그들의 주장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논리이며 허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우선, 스테이블코인이 달러 패권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첫 번째 답변에서 언급한 이유로 스테이블코인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달러의 지배력은 건재할 것이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들이 미국의 단기 국채를 대규모로 매입하고 이것이 미국 정부가 재정적자를 메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효과는 점진적이고 미미한 수준일 것이다. 미국 정부가 무책임한 재정정책을 운영하면서 과도하게 차입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채권시장은 미국 국채 금리를 끌어올릴 것이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스테이블코인의 수가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미국 국채의 금리가 올라가 는 것이다.
더구나 스테이블코인은 불순 세력들이 제재 회피를 포함해 불법적인 금융거래를 더욱 쉽게 하도록 만든다. 스테이블코인은 보유자가 정당한 소유자로 추정되는 무기명 증권이고 발행사가 코인을 사용하는 모든 거래 당사자의 신원을 확인할 의무가 없다. 현금도 유사한 특성이 있지만 스테이블코인은 거래의 용이성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킨다.
그렇다면 스테이블 코인의 확산이 미국의 국익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보는 이유가 무엇일까? 질문에서 언급한 대로 스테이블코인은 원장 접근 권한이 있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블록체인에서 거래되기 때문에 “추적이 가능하다.” 법 집행기관이 보유자가 불법 활 동에 연루된 것으로 파악하면 스테이블코인을 동결하거나 몰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악당’들은 일반적으로 동결/몰수를 피할 만큼 신속히 스테이블코인을 옮기고 책에서도 일부 언급한 것처럼 ‘선량한 행위자’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
유럽연합과 중국 등은 달러로부터 전략적, 경제적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CBDC 발행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여러 국가의 중앙은행이 참여하는 엠브리지[mBridge: 국제 지급 결제 혁신을 위한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플랫폼으로, 국제결제은행(BIS) 홍콩 혁신 허브와 태국중앙은행, 중국인민은행, 아랍에미리트 중앙은행 등이 협력하여 개발했다. 이 플랫폼은 기존 국제 결제 시스템의 느린 속도, 높은 비용, 낮은 투명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되었으며, 참여국들의 CBDC를 직접 연결 하여 실시간으로 국경 간 결제를 지원한다.] 같은 국제 결제 시스템에서는 달러가 완전히 배제되고 있다. 이런 대안적 국제 결재 시스템의 등장으로 달러의 패권이 약해질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반복해서 말하지만, 그런 시도들이 달러의 지배력을 약화시킬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유럽인들은 현재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유로 지역에서 통화 주권, 즉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 관리 능력을 훼손할 것을 걱정하고 있다. 이런 우려는 당연하지만, 유럽의 CBDC가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의문이다. CBDC는 지금까지 출시된 모든 곳에서 소비자에게 인기를 얻지 못했다.
나는 책을 쓰기 위해 세계 최초로 CBDC를 도입한 바하마(Bahamas)를 방문했다. 바하마 정부는 CBDC를 ‘샌드 달러’(Sand Dollar)라고 부르는데, 이를 받는 상인들이 거의 없어 샌드 달러를 사용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이지리아와 심지어 중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중국의 경우에는 미·중 갈등에서 미국이 달러를 무기로 사용할 가능성에 대비해 정부가 자국을 보호할 목적으로 CBDC 분야에서 상당한 발전을 이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중국의 대외무역 가운데 위안화 결제 비중은 몇 년 전보다 많이 늘었고, 엠브리지(mBridge) 구상은 앞으로 수년 안에 중국에 추가적인 방어 수단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위안화는 달러처럼 ‘제3국’과 거래에서, 예를 들면 한국과 콜롬비아, 싱가포르와 요르단 사이의 거래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매우 유능한 중국 경제 관료들이 가까운 장래에 위안화로 달러를 대체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그들의 지성을 모욕하는 일이다.
중국은 글로벌 제조 공급망에서 다수의 병목지점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 갈등이 정말로 심각해질 때 사용할 수 있는 그들만의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미국이 중국의 대형 은행을 붕괴시킬 정도의 심각한 금융 제재를 가하는 위험을 감수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당신은 가장 바람직한 디지털 화폐는 BIS가 추진하는 토큰화된 예금이라고 주장했다. 토큰화된 예금이 달러의 패권 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는가? 그리고 토큰화된 예금이 일반 디지털 화폐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토큰화된 예금을 잘 모르는 독자를 위해 두 번째 질문부터 먼저 답하겠다. 토큰화된 예금은 블록체인에서 거래되는 디지털 토큰 형태라는 사실만 제외하면 전통적 은행예금과 유사하다[중앙 당국이 통제하는 ‘허가받은’(permissioned) 블록체인으로 누구나 디지털 자산을 거래할 수 있는 탈중앙화된 ‘허가가 필요 없는’(permissionless) 블록체인과 다르다]. 그리고 특히 프로그래머빌리티( programmability) 같은 암호화폐의 첨단 특징도 지니고 있다.
프로그래머빌리티는 소프트웨어가 ‘만약-그렇다면’(if-then)이라는 조건에 맞다면 거래가 성사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면 수취인이 구매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인도한 경우에만 대금 지급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비트코인이나 스테이블코인 같은 암호화폐와 다르고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CBDC 와도 구별된다.
토큰화된 예금은 기술적으로 발전된 결제 방식을 제공하지만, 암호화폐/스테이블코인과 CBDC가 지닌 단점이 없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전통적 예금처럼 은행의 부채로서 존재하고 은행의 감사 부서가 감시의 책임을 지기 때문에 자금세탁방지(AML)와 고객확인의무(KYC) 규정을 집행하는 것도 훨씬 수월할 것이다.
또한 토큰화된 예금은 ‘화폐의 단일성’, 즉 1달러는 정확히 1달러, 1원은 정확히 1원을 유지한다. 액면가 대비 가치가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스테이블코인과는 다르다. 동시에 토큰화된 예금은 (적어도 미국에서는) 개인의 거래에 대한 정부의 감시와 개입 우려로 정치적 독극물처 럼 된 CBDC보다 대중의 수용성이 훨씬 더 높을 것이다.
세계 기축통화 발행국으로서 미국은 다른 국가들의 모범이 될 결제 시스템을 채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1) 개인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보존하고 2) 자금세탁방지와 고객확인의무를 유지하는 견고한 보호장치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결과 미국 제재의 효력이 강화될 수 있고 이에 따라 달러 패권도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하지만 토큰화된 예금의 확산 여부와 상관없이 앞서 언급한 근본적인 이유로 달러는 지배력을 유지할 것으로 생각한다.

미국 연준의 일방적 금리 정책으로 인해 신흥국들의 통화 가치가 급격하게 변동하게 되고 이것이 때때로 경제 위기를 유발한다는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이에 따라 브라질과 남아공 등 일부 국가들은 자국 통화로 채권을 발행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이것이 달러 패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신흥국이 자국 통화로 채권을 발행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달러로 많은 돈을 빌리면 특히 달러 환율이 오를 경우 원금과 이자를 갚을 달러를 조달할 수 없어 심각한 채무 문제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과거 신흥 시장의 채무 위기를 유발한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다행히 달러가 급등했던 2021-2022년에 세계적인 채무 위기는 발생하지 않았다. 최근에 많은 신흥국이 자국 통화로 채권을 발행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현상이 달러의 지배력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브라질 헤알화(real)와 남아공 랜드화 (rand)가 국제 상거래의 다른 영역에서 달러를 대체하거나 달러의 국제적 지위를 크게 훼손하지는 못할 것이다. 더 흥미로운 질문은 이런 국가들이 달러가 아닌 다른 외화로 차입할 경우를 가정하는 것이다. 실제로 얼마 전 일부 신흥국이 이자 비용이 낮다는 이유로 위안화로 차입하기 시작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래도 좋다. 하지만 그 국가들이 부채를 갚을 만큼 충분한 위안화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라는 명백한 의문이 남는다.
중국 수출을 통해 어느 정도 위안화를 벌어들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얼마나 많은 위안화를 조달할 수 있느냐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반면 다른 나라로 수출하면 달러를 손쉽게 벌 수 있다. 이런 난제에 관해 생각해 보면 달러의 패권이 왜 그렇게 공고한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트럼프 행정부가 법치주의와 연준의 독립성을 위협하는 것이 달러 패권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신뢰와 법치 주의가 달러 패권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이런 정치적 행동이 앞으로 달러의 패권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미국의 법치가 “국제 투자자들이 미국과 중국 법원의 공정성에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훼손된다면” 달러의 지배력이 훼손될 수 있다고 썼다. 트럼프와 그의 측근들이 보여주는 법치를 무시하는 행동에 - 서류가 없는 불법 이민자에 대한 가혹한 추방 프로그램은 단지 한 사례일 뿐이지만 - 경악을 금치 못 했다.
이런 행태는 외국 채권자의 권리가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는지에 관한 시장의 우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트럼프의 보좌진 가운데 일부가 미국 국채를 보유한 외국 정부로부터 그들이 받는 이자수익에 일종의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 으로 보상을 추구할 수도 있다고 시사한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미국의 법치 훼손이 그렇게 극단적으로 가지 않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반복하자면 달러의 지배력은 너무도 공고하고 트럼프 2기에도 지속될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달러 패권이 상실될 가능성보다 법치의 상실이 미국인들에게 훨씬 더 해롭다는 것이다. 달러 패권이 미국의 경제적 번영에 그렇게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물론 일부 경제학자들은 그렇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과장됐다고 본다. 달러 패권은 지정학적 이유로 미국에 도움이 되지만 경제적으로는 장단점이 있다. 그리고 적대 국가들 에 대한 미국의 제재 능력이 상실된다고 해도 내 생각에는 법치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이보다 훨씬 더 우려스럽다.
연준에 대한 트럼프의 공격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트럼프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완화정책을 연준에 강요한다면, 이는 달러의 패권 상실보다 미국인들에게 훨씬 더 나쁜 결과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인플레이션이 그렇게 악화될 정도로 방치하진 않을 것 같다. 일단 물가가 급등하기 시작하면 “겁을 먹고 물러설” 것이다. 내가 말하는 핵심은 큰 그림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더 중요할까? 달러 패권을 잃어버리는 것일까? 아니면 달러 패권의 상실을 초래할 수도 있는 정말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당신은 결론 부분에서 달러의 패권이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도 엔화, 위안화 그리고 유로화가 국제통화로서 위상이 높아지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앞서 여러 질문에서 밝힌 것처럼 미국의 번영은 달러 패권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달러 패권은 경제적 이유보다 지정학적 이유가 훨씬 더 중요하다. 각 통화를 발행하는 정부가 세계를 더 살기 좋게 만드는 바람직한 정책을 채택해 달러의 지위가 약해지고 다른 통화의 위상이 강화된다면 이는 바람직한 결과가 될 것이다. 가장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중국이 진정한 법치를 채택하고 국경 간 자본 이동의 자유를 포함해 대중에 대한 공산당의 통제를 완화한다면 이는 국제 통화로서 위안화를 더 매력적으로 만들고 세계 평화에 대한 전망도 더 좋아질 것이다. 이를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폴 블루스틴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 “킹 달러” 저자
워싱턴 포스트와 월스트리트 저널 등의 신문에서 경제 전문기자로 40년 넘게 일했다. 그 후에는 국제 금융시스템과 각국의 재정위기를 다룬 책을 여러 권 썼다. 최근작인 “King Dollar”를 비롯해서 “And the Money Kept Rolling In (and Out)”, “The Chastening: Inside the Crisis That Rocked the Global Financial System and Humbled the IMF”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