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판 엔비디아 '캠브리콘'이 주목받는 이유
글 : 한우덕 / 중앙일보 차이나랩 2025-09-23
* 본 글은 투자종목 추천이 아니며, 중국 반도체 산업 이해를 돕기 위한 예시로 해당 기업을 다루었습니다

뜨거웠다. 작년 한 해 약 390% 가까이 뛰더니, 올들어 오름세는 더 가팔랐다. 최고치를 찍었던 지난 8월 28일에는 1년 전보다 6.6배나 올랐다. 지금은 조정 국면에 들어가 있지만, 투자자의 관심은 여전하다. ‘중국의 엔비디아’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중국 주식을 강 건너 불 보듯 했던 국내 투자가들에게 ‘중학 증시로 가야 했나?’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중국의 인공지능(AI) 반도체 설계 회사 캠브리콘 얘기다.
캠브리콘 누가, 어떻게 만들었나
지구 지질사에서 캄브리아기는 대략 5억 4,000만 년 전에 시작해 4억 8,000만 년 전에 끝난다. 폭발적인 생명 진화가 진행되던 때였다. 척추동물의 개체 수가 무척추동물을 추월한 시기이기도 하다. 학자들은 ‘생명 폭발’이라는 말로 이 시기를 규정한다.
캠브리콘은 그래서 지어진 이름이다. 회사의 중국어 이름인 ‘한우지(寒武紀)’는 영어 ‘Cambrian’의 중국어 표현이다. 회사의 영문 이름 캠브리콘(Cambricon)은 캄브리아기(Cambrian)+실리콘(silicon)’에서 따와 만들었다.
이 회사의 풀네임은 '중커한우지커지(中科寒武紀科技)'다. 여기 '중커(中科)는 중국과학원을 뜻한다. 중국과학원은 국무원(정부) 직속의 최고 종합 학술 연구 기관. 국가 과학기술 전략을 수립하고, 인재를 배양하는 연구 집단이다. 산하에 중국과기대학(학부 과정), 중국과학원대학원(석박사 과정), 상하이과학기술대학 등을 두고 있다. 모두 이공계 최고 수준의 명문 대학이다.
이름에 ‘중국과학원’ 약칭이 들어갔다는 건 캠브리콘이 이 연구 기관과 관련 있다는 걸 뜻한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첫째는 창업자 천톈스(陳天石)와의 관계다.
캠브리콘은 지난 2016년 천윈지(陳云霽)와 천톈스 형제가 공동 창업했다. 천재 형제였다. 형 윈지는 남들은 18살이 되어야 들어가는 중국과기대를 14살에 입학했다. 동생 역시 형을 따라 16살에 같은 학교에 들어갔다. 당시 그들은 '대단한 천재 형제’로 언론에 회자하기도 했다.
형은 과기대 졸업 후 석박사 과정인 중국과학원대학원 컴퓨팅기술연구소(計算技術硏究所)로 진학했다. 동생도 뒤 따랐다. 중국과학원의 굴레에서 성장한 것. 둘은 함께 컴퓨팅기술연구소에서 공부하면서도 연구 분야가 조금 달랐다. 형은 주로 반도체를, 동생은 AI 로직을 연구했다.
형제는 2015년 딥러닝 전용 AI 칩인 'A1'을 개발했 다. 형의 반도체 지식, 동생의 AI 연구가 결합한 산물이다. 형 윈지는 그해 미국 MIT 공대가 선정한 '35세 이하 글로벌 혁신 인사 35명'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형과 동생은 2016년 창업하기로 뜻을 모았다. 물론 ‘A1’가 기반이다. 동생 톈스가 CEO를 맡았고, 형 윈지는 최고과학자(CSO)로 참여했다. 중국과학원이 창업 자금을 댔다. 이름에 ‘중커(中科)’가 들어간 두 번째 이유다.
형 윈지는 2018년 그가 좋아하는 연구에 전념하기 위해 회사를 떠났다. 그는 모교인 중국과학원 컴퓨팅기술연구소에서 부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기술 자문 자격으로 여전히 캠브리콘과 인연을 맺고 있다.
CEO 천톈스가 지분의 약 35.9%를 사실상 보유하고 있다(개인 지분 28.6%+지주회사를 통한 우회 지분 7.3%). 중국과학원이 여전히 15.7%의 주식을 갖고 있어 2대 주주로 등록되어 있다. 20명으로 시작한 개발팀은 지금 680명으로 늘었다. 전체 직원의 80%가 개발인력이다.

이미지 출처 : 캠브리콘 홈페이지
화웨이를 통해 화려하게 데뷔하다
캠브리콘이 세상에 이름을 드러낸 것은 화웨이를 통해서였다. 2017년 화웨이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가전·IT 박람회 IFA에서 스마트폰 용AI칩 ‘기린(麒麟)970’을 발표했다. 세계 최초의 스마트폰 AI 칩이었다. '기린970'은 ‘화웨이 메이트 10 프로’에 장착돼 그해 말부터 판매되기 시작했다.
‘기린(麒麟)970’에 쓰인 반도체 기술이 바로 윈지·톈스 팀이 만든 A1이다. 캠브리콘은 창업 이듬해인 2017년부터 A1을 화웨이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 사실이 업계에 알려지면서 캠브리콘은 주목받기 시작했다. 대학 선배인 아이플라이텍(IFLYTEK) 설립자 류칭펑(劉慶峰)이 1000만 위안(약 20억)을 엔젤 투자하기도 했다.
캠브리콘의 '생명 폭발'이 시작됐다. 클라우드용 AI 칩 인 ‘쓰위안(思原·MLU)시리즈, 단말기에 쓰이는 AI 칩인 ‘M1’·‘H1’ 시리즈 등의 개발품을 잇달아 출시했다. 특히 2021년에는 AI 기반 실시간 교통 분석 제어시스템 회사인 슈퍼비전과 함께 '텅룽(騰龍)STAU-R100-C'를 개발하기도 했다.
슈퍼비전은 스마트 교통 솔루션, 자율주행 정보 제공, 스마트 교차로 시스템 등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술 회사. '텅룽(騰龍)STAU-R100-C'는 교차로·터널·고속도로·공장 등의 환경에서 고해상도 영상 분석, 실시간 AI 추론, 대용량 저장을 처리할 수 있는 서버다. 여기에 캠브리콘의 ‘쓰위안(MLU)’칩이 쓰였다.

이미지 출처 : 캠브리콘 홈페이지
2022년 잘 나가던 캠브리콘에 ‘빙하기’가 찾아온다. 그해 12월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이 회사를 블랙리스트에 올린 것. 미국과 대만으로부터 칩 생산 설비와 부품이 끊기면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2023년에는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주가도 정체 상태를 면하지 못했다.
캠브리콘은 2024년 9월 ‘쓰위안590’ 출시로 반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 제품 성능은 엔비디아의 AI 칩 ‘H20’의80~90%에 달하는 것으로 자체 평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제품 가격은 30% 정도 싸다.
올해부터 시작된 중국의 ‘탈(脫)엔비디아’ 정책이 꽁꽁 얼어붙던 캠브리콘을 살렸다. 중국 정부는 데이터센터 구축에 AI 칩의 50% 이상을 국산으로 사용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자국 기업의 기술력이 어느 정도 올라왔다 싶으면 바로 외국기업을 몰아내는 전형적인 기술 개발 전략이다.
미국도 도와줬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4월 엔비디아의 H20 대 중국 수출을 막았다. 결국 해제됐지만, 이 조치는 중국의 AI 자립 정책을 더 단단하게 했을 뿐이다. 대형 IT기업이 데이터센터 구축에 H20 대신 ‘쓰위안590’을 더 찾게 된 이유다. 작년 9월이후 공장은 풀가동했고, 2024년 4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와 함께 주식시장도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탈 엔디비아 정책이 가져다준 기회
캠브리콘이 상하이 증시 창업반(創業板)에 상장한 건 2020년 7월이었다. 64.39위안에 거래가 시작된 주가는 첫날 288% 급등하기도 했다. 화웨이에 공급된 AI 칩이 주가 상승의 결정적인 동력을 제공했다.
그후 횡보하던 주가가 급등하기 시작한 건 2024년 9월부터다. ‘쓰위안 590’의 개발과 중국 정부의 자국 AI 칩 구매 정책이 겹치면서 매출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2024년 한 해 주가가 387% 급등해 '올해의 주식 왕'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올 상반기 매출이 전년 대비 4348% 폭증했다는 소식으로 주가 곡선은 더 가팔라 졌다. 최고점(주가 1587.9 위안)을 찍었던 지난 8월 28일에는 전년 대비 무려 6.6배 폭등하기도 했다. 캠브리콘은 중국 증시의 AI 관련주 중에서도 황금주로 부각됐다.
주가는 조정 중이다. 그러나 시장은 여전히 낙관한다. 지금 개발 중인 ‘쓰위안 690’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 제품은 엔비디아의 최고 수준 칩인 H100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캠브리콘은 말하고 있다. 엔비디아가 중국에 팔고 있는 H20보다는 확실하게 뛰어나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중국의 AI 칩 국산화 작업은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캠브리콘은 그 중 하나일 뿐이다. 가장 앞서 있는 화웨이의 경우 주력 제품인 '910B'는 엔비디아 H20의 85% 수준의 연산 능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화웨이는 차세대 제품 '920'이 H20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바이두는 자체 개발한 '쿤룬(崑崙)' 칩을 클라우드 데이터센터에 쓰고 있다. 알리바바는 최근 엔비디아 제품과 호환되는 AI 칩을 개발했다고 발표, 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중국 반도체 업계는 이미 '캠브리아기'로 접어들었다. 벤처 기업 캠브리콘이 일으키는 '생물 폭발'이 과연 중국 AI를 얼마나 발전시킬 수 있을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한우덕 중앙일보 차이나랩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의 경제를 자유롭게 오가는 중국 경제 전문가. 1989년 한국외국어대학 중국어과를 졸업했다. 한국경제신문에 입사하여 국제부 · 정치부 · 정보통신부를 거쳐 1999년부터 2006년까지 베이징과 상하이 특파원으로 근무했다. 상하이 화둥사범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중앙일보 차이나랩 선임기자로 두 눈 부릅뜨고 한국이 중국과 함께 살아갈 길을 모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중국의 13억 경제학', '세계 경제의 슈퍼엔진 중국', '상하이 리포트', '뉴차이나, 그들의 속도로 가라', '경제특파원의 신중국견문록', '차이나 인사이트 2021'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뉴차이나 리더 후진타오' 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