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vs 일본, 노인시설 프로그램 비교해보니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한국 vs 일본, 노인시설 프로그램 비교해보니

글 : 이지희 /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 사무국장, 수원여대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2025-09-12

가끔 한국에서 일본의 노인시설을 견학하면 나오는 단골 질문이 있다. 


“이곳에서는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나요?” 


그러면 일본 시설 관계자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되묻곤 한다. 


“프로그램이라니,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한국사람들에게는 시설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다양한 프로그램의 유무가 곧 시설의 경쟁력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반면 일본에서는 프로그램의 종류보다 입주 후에도 내가 살아온 일상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는가가 훨씬 본질적인 가치로 여겨진다. 그래서 일본인들에게는 한국인들이 던지는 “어떤 프로그램이 있느냐”라는 질문이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다. 



일본 보육원과 한국 어린이집의 하루 일과 차이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일본 유학 시절, 한국 아동복지 관련 단체의 통역을 맡아 일본의 보육원(우리나라의 어린이집에 해당)에 함께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도 어김없이 같은 질문이 나왔다. 


“여기서는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나요?” 


그 순간 일본 보육교사의 당황한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일본 보육원에서는 별도의 특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고 일상적인 생활과 자유놀이가 하루의 중심을 이루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의 어린이집은 체계적인 프로그램과 특화된 활동이 매일 이루어지고 있다. 필자 역시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경험했지만,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은 영어, 체육, 오감놀이, 한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매일 접했다. 아래 표는 3세 아동을 기준으로, 일본 보육원의 하루 일과<표 1>와 한국 어린이집의 하루 일과<표 2>를 정리한 것이다.


일본 A보육원 3세 반 하루 일과(예시)


한국 B어린이집 3세 반 하루 일과(예시)


일본의 보육원은 일상생활과 자유놀이로 하루가 구성되는 반면, 한국의 어린이집은 교육적 활동과 학습 성격이 가미된 특화 프로그램이 매일 진행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노인시설은 어떨까?


한국의 대부분 실버타운에서는 문화·여가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서예교실, 도예교실, 영화 감상, 라인댄스, 건강 체조, 웃음치료, 노래교실 등 다양한 활동이 매일 이어진다. 직원들은 늘 입주자들에게 어떤 새로운 프로그램을 제공하면 좋을지를 고민하며 월별, 분기별, 계절별로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한다. 나아가 이러한 다채로운 프로그램 운영은 곧 시설의 차별성과 경쟁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로 활용되기도 한다. 


일본은 어떨까? 일본의 노인시설은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보다는 일상의 지속과 케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본적으로 식사와 재활, 컨시어지 서비스, 요양서비스가 제공되며, 입주자들이 자연스럽게 동료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정도다. 특별한 이벤트를 열기도 하지만, 한국처럼 매일매일 다른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는 않는다. 



아직은 건강한 한국 VS 케어가 필요해진 일본


한국은 일본보다 유독 프로그램과 커리큘럼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앞서 살펴본 어린이집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린이집에서 하루 종일 자유놀이만 한다고 하면 부모들이 불안해하듯, 노인시설에서 매일을 프로그램 없이 보낸다고 하면 그 시설은 좋은 곳이 아니며 직원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도 집에서 매일 새로운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시간표에 맞춰 교육을 받으며 살지는 않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의 리듬과 방식을 존중받는 것이다. 일본 업계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베네세(Benesse)는 입주자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먼저 듣고, 앞으로도 자신답게 매일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모토로 삼고 있다. 


한국은 일본과 비교했을 때 시설 입주자의 평균 연령이 낮고 아직은 건강한 분들이 더 많다. 그래서 케어보다는 건강한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반면 일본의 유료노인홈이나 서비스제공고령자주택 입주자의 평균 연령은 80세 후반에 이른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다양한 프로그램보다 일상생활을 무리 없이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배려와 케어가 더욱 필요하다. 




일상 지속의 중요성


우리나라에서도 노인주거복지는 앞으로 계속 확대될 것이다. 새로운 실버타운들이 속속 문을 열고 있으며, 개발을 준비하는 곳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시설들의 특징 중 하나는 프로그램실을 여러 개 배치하는 것이다. 새롭게 지어진 시설을 가보면 이곳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제공할까’를 먼저 고민하기보다 프로그램실을 우선 많이 만들고, 이후에 프로그램을 끼워 넣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금은 다양한 프로그램과 특화 서비스가 실버타운의 경쟁력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일상의 지속이 될 것이다. 어린이집 시절부터 프로그램에 익숙해진 우리들이라서 노인이 되어서도 마치 다양한 프로그램을 계속 들어야 할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결국 본질은 입주자들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자신의 일상을 이어갈 수 있느냐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무엇일까? “이곳에서는 어떤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나요?”가 아니라 “이곳에서는 어떤 삶을 이어갈 수 있나요?”라는 질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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