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에 DC형 계좌가 있어도 은행 예금, 보험상품에 가입할 수 있나요?
글 : 김현욱 / 미래에셋증권 상무 2025-09-10
DC를 선택한 근로자는 회사에서 선정해 놓은 퇴직연금사업자(사업자, 금융기관)중에서 한 곳을 선택해서 가입해야 합니다. 퇴직금을 안전한 금융상품으로 운용하고자 하는 근로자가 사업자를 선택할 때 가장 많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증권사를 사업자로 선택하면 적립금을 펀드, 주식 같은 투자형상품으로만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증권사가 어떤 금융상품을 제공할 수 있고, 어떻게 관리해주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다른 금융기관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이는 퇴직연금사업자의 역할과 금융시장에서 금융상품이 제공되는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원칙적으로 금융상품별로 요구되는 자격을 갖춘 금융기관이라면 누구든 금융시장에 있는 상품을 본인의 가입자에게 제공해줄 수 있습니다. 문제는 금융상품별로 요구되는 자격을 모든 금융기관이 동일하게 갖추고 있지 않다는 점에 있습니다.
법에 의한 차이, 금융업권별 차이, 금융기관별 사업 영역의 차이 등으로 인해서 퇴직연금사업자 마다 갖추고 있는 자격이 다를 수 있고 그로 인해 조달할 수 있는 상품이 다를 수 있습니다.
퇴직연금사업자가 가입자에게 금융상품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인 회사와 “신탁계약” 또는 “보험계약”을 체결해야 합니다. 신탁계약과 보험계약은 퇴직연금사업자가 가입자에게 금융상품을 제공하는 경로 역할을 합니다.
신탁계약은 금융시장에 있는 여러 상품제공기관들로부터 다양한 종류의 금융상품들을 수시로 제공할 수 있는 계약이며, 은행, 증권사와 체결할 수 있습니다. 보험계약은 보험회사 자신의 보험상품만 제공할 수 있는 계약으로 보험사와 체결할 수 있습니다. 일부 보험사도 신탁계약을 체결할 수 있습니다.
횟집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양식장을 가지고 있는 횟집 두 곳이 있습니다. A횟집은 자신의 양식장에 있는 물고기 뿐만 아니라, 수산시장의 모든 매장에서 사장님이 선별한 다양한 물고기를 받아와서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곳이고, B횟집은 자신의 양식장에 있는 물고기만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곳입니다.
어떤 물고기를 양식하느냐, 고객이 어떤 물고기를 선호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다양한 물고기를 선택할 수 있는 A횟집을 선호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횟집의 역할은 다양한 물고기를 조달해서, 재미있는 얘기거리들과 함께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때 횟집 사장님의 경쟁력은 남들이 조달하지 못하는 물고기를 조달하거나, 보다 더 신선한 물고기들을 선별할 수 있거나, 제철 물고기 정보를 잘 알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퇴직연금사업자의 역할도 금융상품을 직접 만들어서 가입자에게 제공하거나, 상품제공기관들부터 다양한 금융상품을 선별해와서 가입자에게 제공하고, 가입자가 금융상품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적시에 양질의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입니다.
퇴직연금에서 보면 횟집은 “퇴직연금사업자”, 수산시장에 있는 각각의 매장은 “상품제공기관”, 물고기는 “금융상품”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A횟집은 “신탁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퇴직연금사업자이고, B횟집은 “보험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퇴직연금사업자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한 가지 횟집과 다른 점이 있다면, 횟집 사장님은 수산시장에 원하는 물고기를 재고만 있으면 조달할 수 있는 반면, 퇴직연금사업자는 원하는 모든 금융상품을 조달해 올 수 없다는 점입니다. 퇴직연금사업자가 금융상품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먼저 해당 상품제공기관과 상호협약을 체결해야 합니다.
어떤 금융상품은 협약 만으로 제한없이 조달해올 수 있지만, 어떤 금융상품은 상품제공기관이 제공하지 않아서 조달이 불가능하기도 하고, 어떤 금융상품은 조달할 수 있는 한도금액을 매월 부여 받기도 합니다.
이론적으로는 A횟집 처럼 신탁계약을 기반으로 하는 증권사, 은행이 보험사에 비해서 다양한 종류의 금융상품을 제공할 수 있는 구조인 것은 맞습니다. 다만, 각각의 증권사, 은행이 얼마나 많은 상품제공기관들과 다양한 상품 조달을 위한 협약을 체결 했느냐에 따라 자기 가입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금융상품의 다양성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또한, 상품제공기관이 제공하는 금융상품 중에서 양질의 상품을 선별할 수 있느냐에 따라 가입자가 제공받을 수 있는 금융상품의 질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같은 증권사, 은행이더라도 각자 선별하는 상품이 다르고, 협약 등에 따라 조달할 수 있는 상품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가입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상품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원리금보장상품 조달 및 제공에 있어 신탁계약과 보험계약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바로 퇴직연금사업자 자신이 만든 원리금보장상품을 자신의 가입자에게 제공할 수 있느냐 입니다. 신탁계약에서는 이를 금지하고 있고, 보험계약에서는 그 특성상 허용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A은행을 DC 퇴직연금사업자로 선택할 경우, A은행예금을 제공받을 수 없는 반면, B보험사를 DC 퇴직연금사업자로 선택할 경우, B보험사원리금보장상품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퇴직연금사업자가 자신의 원리금보장상품을 우선적으로 판매하는 것을 방지하고, 퇴직연금사업자 파산 시 해당 사업자부터 가입자의 적립금을 분리하여 보호하기 위해서 내려진 조치입니다. 이러한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보험계약은 그 특성상 자신의 보험상품을 판매할 수 밖에 없는 구조여서 분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상품제공에 이어 퇴직연금사업자로서 중요한 역할이 바로 “금융시장과 금융상품에 대한 정보와 전문적인 상담”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는 퇴직연금사업자의 인프라도 중요하지만, 소속된 직원들의 역량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이 역량은 평소에 어떤 금융상품을 취급하고 있는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역량과 경험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다양한 금융상품을 취급하는 금융기관의 직원들의 경험이 더 풍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퇴직연금에서는 주식을 직접투자 하지는 못하더라도, 금융시장의 큰 흐름 및 이슈들을 알아야 펀드, ETF 등에 투자할 수 있는데, 이 또한 관련 경험이 많은 금융기관의 직원들이 상대적으로 우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수산시장에서 다양한 물고기를 조달해본 횟집이 맛집일 가능성이 높듯이, 다양한 금융상품을 다루고 있는 퇴직연금사업자가 다양하고 전문적인 정보를 제공해 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김현욱 미래에셋증권 상무
퇴직보험 및 퇴직연금 분야에서 27년간 몸담아온 전문가로, 퇴직연금제도의 설계부터 사무처리, 시스템 개발, 마케팅, 영업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깊은 실무 경험을 쌓아왔다. 퇴직연금 컨설팅과 자문은 물론, 실제 퇴직연금 사무처리 시스템(RK 시스템) 개발에도 참여하며 제도 운영의 디테일을 직접 다뤄왔다. 연금계리전문인력과 투자자산운용사 자격을 보유하고 있으며, 고용노동부의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제정 실무작업반과 금융감독원의 '퇴직연금 감독규정 제정' 실무작업반에서 활동하며 제도 기반 마련에도 기여했다. 금융투자교육원의 자문위원 및 강사로도 활동하고, 각종 포럼 세미나 심포지움에 참여 하면서 퇴직연금 관련 전문지식과 현장 경험을 널리 전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