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세 영화감독은 왜 105세 할머니에 반한 걸까?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37세 영화감독은 왜 105세 할머니에 반한 걸까?

글 : 신미화 / 이바라키 그리스도교 대학 경영학부 교수 2025-08-19

초고령사회 일본에는 100세 이상 인구가 얼마나 될까. 지난해 기준 약 9만5천 명으로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의 약 4,000명과 비교하면 20배가 넘는다. 그중 88%가 여성이다. 


‘100세가 넘은 할머니는 어떤 하루를 보낼까.’


37세의 한 젊은 영화감독이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100세 넘은 평범한 시골 할머니를 만났다. 그리고 반해버렸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게 된 이유다. 할머니에게 어떤 매력이 있었던 것일까. 


이 흥미로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나는 다큐멘터리 영화 <104세 테츠요(哲代) 씨의 혼자 살아가는 이야기>를 관람했다. 상영 후 무대 인사를 위해 참석한 감독 야마모토 씨와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야마모토 감독 사진


테츠요 할머니와의 만남


야마모토 감독은 일본의 다수 방송 프로그램과 콘텐츠를 기획해온 베테랑 프로듀서 출신이다. 화려한 경력을 지닌 그가 히로시마현 오노미치시(広島県尾道市)의 한 산골 마을에서 홀로 살아가던 101세(촬영 시작 시점) 여성, 이시이 테츠요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3년에 걸친 장기 촬영을 감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2018년, 일본에서 ‘100세까지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20%만이 ‘그렇다’고 답했다는 조사를 보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100세 시대가 이미 현실이 되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장수를 원하지 않는 이유에 주목했다. ‘그렇다면 100세를 살아가는 사람은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라는 의문이 다큐 제작의 출발점이 되었다.


영화 감상이 끝난 후 카페에서 판매되는 팜플렛


할머니의 삶이 영화가 되다


2022년, 히로시마 지방 방송국의 기획으로 처음 테츠요 할머니를 만난 감독은, 그녀가 보여주는 ‘나이듦의 품격’에 감동했다. 단순히 장수하는 것이 아닌, 웃음과 정으로 가득한 삶. 그래서 그는 일상과 사람들 사이의 따뜻한 관계를 섬세하게 담아낸 영화로 제작하기로 결심했다.


그 결과물은 2025년 1월, 히로시마에서 프리미어 상영되며 2만 명을 동원했고, 전국 100개 이상 영화관에서 확대 개봉되었다. 히로시마 지역에서는 역대 최다 동원 기록까지 세웠다.


영화관과 카페가 함께 운영되는 OttO 영화관 입구


이시이 할머니가 작곡한 나카토Song


왜 일본인들은 이 영화를 보러 가는가?


테츠요 할머니는 일기와 시를 쓰고, 이웃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고, 지역 어르신 모임 ‘친목 클럽’(仲良しクラブ)을 50년 가까이 주최해왔다. 매주 대정금(大正琴, 한국의 양금과 비슷한 건반악기) 연습을 이끄는 리더이기도 하다.


감독은 말한다. 


“일본 고령자들의 삶은 대개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주변에 맞춰 움직이는 인풋(input) 중심입니다. 반면, 테츠요 할머니는 아웃풋(output)의 삶을 실천하고 계십니다. 바로 그것이 고령자의 삶에 있어 ‘의욕’을 유지하는 비결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서 인풋이라는 뜻은, 학생일 경우 책을 읽는 것을 의미하고 아웃풋은 배운 지식과 정보를 다른 사람들에게 발표하는 것을 의미한다.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니다


테츠요 할머니는 “혼자 살지만, 혼자가 아니다”라는 말을 일기에 남긴다. 그녀의 조카딸들과 이웃들은 거리를 두면서도 필요한 순간 손을 내밀어준다. 감독은 이러한 ‘적당한 거리감의 돌봄’이야말로 고령자의 자립을 지켜주는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다리에 통증이 오거나 힘든 순간에는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기꺼이 받고, 입원과 시설 입소도 받아들이셨지만, 결국 다시 자택으로 돌아가 혼자 사는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남에게 폐를 끼쳐도 괜찮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겠다’, 이 분의 삶의 태도는 100세 시대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큐 영화에서도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는 조카들이 자주 찾아와서 말동무도 해주고 필요하면 병원까지 운전도 해 주지만, 절묘한 거리를 두고 할머니가 혼자 살아가도록 지켜주는 태도에 감탄했다. 할머니 스스로 자립적인 생활을 하고 싶어하고 주위에서도 독립적인 할머니의 삶을 존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도 혼자서 멸치 육수로 된장국을 만들고 오래된 레시피 노트를 펼치며 맛있는 요리를 직접 만들어 드신다.  



평범하지만, 누구보다 특별한 삶


테츠요 할머니는 초등학교 교사로 36년간 봉직했고, 퇴직 후에는 명예사회복지공무원으로 활동하며 지역 어르신들의 모임을 창설했다. 지금도 사람들은 그녀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존경을 표한다.


이시이 할머니의 책


그녀는 자신이 쓴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처음 만났는데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분들도 계세요. ‘딸이 얼마나 잘해주는지 몰라요’라든가, ‘손주가 정말 예쁘다니까요’ 같은 이야기요. 가끔은 그런 말들이 가슴을 콕 찌르기도 해요. 저처럼 자식이 없는 사람은 순간적으로 ‘행복한 이야기뿐이네…’ 하며 괜히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죠. 그래도 그럴 때일수록 마음을 다잡고 조용히 들어드려요. ‘이분도 뭔가 마음에 허전함이 있거나, 다른 고민이 있으셔서 그러시는 걸지도 몰라’라고 생각하면서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분위기 아닐까요. 저는 그런 따뜻한 자리를 좋아하고, 그런 자리를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제게 다가와 주시는 것 같아요.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 따뜻한 자리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100세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다섯 가지 법칙


2021년 ‘100세를 살아가는 지혜’ 강연회에서 테츠요 할머니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아래 내용은 다이아몬드 온라인(DIAMOND online,2025년5월 27일)에 소개된 강연 내용이다. 



1. 세상 모든 일은 양면이 있다. 실패도 관점을 바꾸면 성공이 될 수 있다.


자, 할머니의 손을 한번 보세요. 손등은 주름투성이지만, 뒤집어 보면 말끔하답니다. 한쪽 방향에서만 보면 진짜 모습을 알 수 없어요. 예를 들어, 입시에 실패해서 원하던 학교에 가지 못했더라도, 거기서 평생의 친구를 만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실패도 관점을 바꾸면 좋은 일로 바뀌어요. 실패에만 얽매이면 열등감에 빠져 인생이 꼬이게 됩니다. 사람이 점점 작아지는 것이지요. 실패는 단지 통과점일 뿐이고,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언젠가는 “그것도 성공이었다”고 생각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겁니다.



2. 기쁜 일은 과장될 만큼 표현하자. 긍정적인 에너지는 나이와 상관없다.


기쁘고 고마운 마음을 상대에게 전하려고 하면, 저절로 몸짓이 커집니다. 평소에도 조카 나오짱(直ちゃん)이 반찬을 가져다주거나, 이웃분들이 청소를 도와주시는 일이 많아요. 아마도 혼자 지내는 외로움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정말 고맙고, 저는 늘 "와우, 와우!" 하며 크게 기뻐합니다.



3. 사람을 잘 관찰하고 알아가려 노력하자. 배려는 세심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제가 교사였을 때, 초등학교 5학년 담임을 맡은 적이 있었어요. 그 반에 수학 시간만 되면 산만해지는 남자아이가 있었지요. 가만히 지켜보니, 구구단에서 막히는 것 같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구구단이 잘 안 외워지지?” 하고 말을 건넸더니, 그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더라고요. 한편으론 부끄럽고, 또 한편으론 누군가 알아주어서 안도하는 듯한 그런 복잡한 표정이었어요. 그 아이에게 구구단을 가르쳐줬더니, 그 뒤로는 정말 열심히 공부하더라고요. 참 기뻤던 기억입니다.

상대방을 알려고 하고 관찰하는 건, 아마도 교사 시절부터 몸에 밴 습관인 것 같아요. 요즘도 ‘기운이 없어 보이네’, ‘살이 조금 빠졌나?’ 하는 작은 변화를 눈치채는 게 어른들 사이의 관계에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말을 건네느냐에 따라 상대의 반응도 달라지거든요. “이 사람이 나를 잘 살펴보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으면, 상대도 마음을 놓고 자신을 드러내게 되는 법입니다.


4. 부정적인 감정은 위트로 바꾸자. ‘없다’를 ‘나이팅게일’로 바꾸는 유머처럼.


돈이 "없다" 같은 부정적인 말을 할 때(일본어로 없다라는 말은 ‘나이’), 저는 “돈이 나이팅게일입니다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피식 웃어주곤 해요. 같은 “없다”라는 말이라도 유머로 바꾸면 기분이 훨씬 좋아지거든요. “없다, 없다”라는 말만 반복하면 마음이 가라앉기 때문에, 저는 그런 말은 되도록 하고 싶지 않아요. 마음이 가라앉는 감정은 마치 괴물 같아서, 그냥 두면 점점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우울해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스스로를 빨리 구해줘야 해요.



5. 본보기가 되는 선배를 따라하자. 삶의 지혜는 몸으로 익히는 것.


저도 모르게 시어머님을 따라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어요. 틈만 나면 마당이나 밭의 잡초를 뽑고, 항상 정갈하게 해두셨지요. 매일 밤 큰 소리로 부처님께 경을 올리는 것도 시어머님에게서 물려받은 습관입니다.


제가 26살에 이 집에 시집왔을 때, 시어머님은 장작을 등에 지고 마을로 나가서 팔곤 하셨어요. 그렇게 번 돈으로, 그 당시에는 귀하던 소시지를 사 오셔서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던 저희 부부 도시락 반찬으로 넣어 주셨답니다. 명랑하고 부지런한 모습, 작은 배려 하나하나까지 항상 몸소 보여주셨지요.


여러분도 본보기가 되는 선배를 한 분 찾아보시면 좋겠어요. 그분을 따라하면서 몸으로 익혀가다 보면, 그게 바로 큰 자산이 될 겁니다.


인터뷰에 응하는 야마모토 감독


감독이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


“사실 저도 예전엔 100세까지 살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어요. 하지만 테츠요 할머니를 만나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저렇게 늙어갈 수 있다면, 100세도 나쁘지 않겠다고.”


포지티브 에이징(Positive Aging)이라는 말이 있다. 나이듦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와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태도다. 테츠요 할머니의 삶은 그 자체로 포지티브 에이징의 교과서다.


이 다큐멘터리가 전하는 진짜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 모두가 ‘100세까지 살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시 묻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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