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자금 꺼내 쓰려니 망설여진다면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노후자금 꺼내 쓰려니 망설여진다면

글 : 이정원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선임연구원 2025-08-20

1985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이탈리아 경제학자 프랑크 모딜리아니는 개인의 소비가 현재의 소득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고, 생애 전체의 소득을 고려해 결정된다는 ‘생애주기가설(Life cycle hypothesis)’을 제시했다. 


청년기에는 소득이 부족하더라도 미래에 소득이 증가할 것이므로 대출 등을 활용해 소득 대비 더 많은 소비를 하고, 소득이 높은 중장년기에는 모두 소비하지 않고 자산을 축적해 이를 소득이 줄어드는 노년기에 소비한다는 주장이다. 즉, 노년기에도 소비가 크게 감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종합하면 생애주기에 따라 소득이 변화하더라도 일정한 수준의 소비를 유지하려는 경향, 즉, ‘소비 평탄화’가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소득이 없을 때 축적한 자산을 활용해 소비하는 것이 일생 전체로 놓고 봤을 때 매우 합리적인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현실은 좀 다른 면이 있다.



은퇴하면 돈 쓰며 쉴 줄 알았는데


첫째, 생애주기가설과 달리 실제로는 사람들이 은퇴 후 소비를 크게 감소시키는 경향이 있다. 다르게 말해 ‘소비 평탄화’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외 연구자료에 따르면 은퇴자들은 은퇴 직후에 소비를 16% 이상 감소시키고(Bernheim, 2001) 식비 지출을 줄이며(Aguiar & Hurst, 2005) 자산이 충분하더라도 식품 및 의류 소비와 여가 소비를 억제하는 경향(Olafsson & Pagel, 2018)이 있다고 한다. 중장년기에 저축한 돈을 은퇴 후에 꺼내 쓰면서 소비수준을 일정하게 유지하려 한다는 생애주기가설과는 반대되는 행동이다.


둘째, 은퇴 후 인출해 소비하지 않고 보존 또는 오히려 축적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모딜리아니는 소득이 많은 중장년기에 자산 축적이 이루어지고 은퇴 후에는 그동안 축적한 자산을 인출해 사용한다고 했다. 그러나 국가마다 차이는 있지만 자산을 인출하여 소비만 하는 대신에 자산을 축적하기 위해 경제활동을 지속하는 인구가 전세계적으로 적지 않다. 


OECD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용률은 2024년 기준 한국이 38.2%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고, 다음으로는 일본이 65세 이상 인구의 25.6% 가량이 고용되어 일했다. 뉴질랜드도 고령자 고용률이 높아 24.9%를 기록했다. 이렇게 경제활동이 늘어나면서 소비보다는 저축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일례로 우리나라의 경우 고령화와 함께 전체 저축률이 상승하고 있으며 60대의 저축률이 20대~50대 보다 높다. 



왜 그들은 늙어서도 소비 대신 저축을 할까?   


은퇴설계의 이론적인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생애주기가설의 예외가 많은 이유는 왜일까?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인간은 생애주기가설의 전제가 되는 ‘생애 전체 소득’을 고려하기 보다는 ‘현재의 소득’을 신경 쓰는 현재 편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대표적인 한 이유이다. 


현재 편향은 보통 미래보다는 현재에 더 높은 가치를 두는 경향을 가리킨다. 중장년기에 더 많은 소득이 발생했더라도 은퇴 후 소득이 발생하지 않으면 ‘지금 당장 돈이 들어오지 않으니 아껴쓰자’ 하는 심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과거의 소득이나 생애전체소득이 인식에서 밀려나 은퇴 후에 여유로운 지출을 방해한다.


미국의 생명보험사 뉴욕라이프가 2023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은퇴자의 16%만이 정기적으로 자산을 인출하고 있으며, 은퇴자의 30%는 아예 인출을 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뉴욕라이프는 이러한 현상을 은퇴 자산 인출의 역설(decumulation paradox)이라고 지칭했다. 그러면서 은퇴 후 소득에 대한 보장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많은 지출을 한다는 내용의 연구들을 소개했다. 


예를 들어 2009년 자료에 따르면 소득과 자산이 동일할 때 장기요양보험 가입자 가계의 총 지출 중앙값은 4만7천 달러인 반면, 장기요양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가계는 3만 2천 달러에 불과하다고 한다. 또한 연금 소득이 있는 은퇴자는 없는 은퇴자보다 8% 더 많은 소비를 하는데 단순히 지출이 더 많을 뿐 아니라 소비에 대한 만족도도 11%p 가량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출에 대한 심적 부담을 줄이는 방법  


은퇴 후 그동안 적립한 자산을 인출해 적정수준의 소비를 유지하는 것이 이상적이기는 하다. 하지만 당장 이번 달에 소득이 발생하지 않는데 소비만 하는 것은 마음이 불편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단순히 자산을 꺼내 쓰는 것만이 아니라 투자를 겸해 자산을 늘리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문제는 투자는 원금손실이라는 리스크가 있다는 점이다. 인생 후반기에 리스크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이런 경우 소득을 보증해주는 금융상품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보증형 실적배당보험 같은 것이 있다.


보증형 실적배당보험은 연금 인출기 가입자의 자산을 투자하면서 지급보증기간 동안 납입보험료(연금 개시 전 거치기간 발생한 운용수익 포함)를 연금으로 나누어 지급한다. 수익률이 마이너스이더라도 금융회사에서 손실을 보전하므로 최소한 원금은 지킬 수 있고, 운용수익이 발생하면 그만큼 연금을 받는 기간이나 지급받는 연금액이 늘어난다. 대신 가입자는 금융사에 보증비용을 낸다. 


예를 들어 55세에 퇴직금 2억 4천만원을 보증형 실적배당보험에 넣으면 이 돈을 20년간 매월 100만원씩 연금으로 나눠 받으며 동시에 가입 시 납입한 돈을 실적배당형 상품에 투자한다. 운용수익이 발생하면 100만원씩 20년간 받은 후 추가기간 동안 연금을 받을 수 있다. 


혹시라도 운용손실이 발생하더라도 회사에서 손실을 보전한다.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자산을 인출해 소비하는 것은 부담스럽지만 이렇게 손실을 막아주면서 추가수익을 노릴 수 있는 금융상품을 활용해보면 소비에 따른 심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유의할 점은 연금을 수령하다가 중간에 해지하면 원금을 보증 받을 수 없고, 해지 시점에 잔여자산을 지급 받게 된다는 점이다. 운용수익이 발생해 연금자산이 늘어난 상태에서 중도해지 한다면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운용 손실 상태에서 중도해지하면 납입한 원금보다 더 적은 금액을 지급받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반드시 중도해지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어느 정도 가입기간을 유지해 운용 수익이 발생한 이후 해지하는 것이 손실을 피하는 방법이다.


은퇴자가 늘어나면서 투자와 인출을 겸한 금융상품이 늘어나고 있다. 길어진 노후를 위해 연금 인출기간 동안 투자도 하고 싶지만 원금 손실이 걱정스럽다면 원금 보장 기능을 가진 금융상품 등을 활용하는 것도 합리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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