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난 프랑스 노인들, 영하의 날씨에도 거리에 뛰쳐나온 이유는
글 : 박한슬 / 약사, 작가 2025-08-06
2023년 1월, 영하를 밑도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정부 집계상 120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왔다. 수도인 파리만이 아니다. 마르세유, 리옹 같은 주요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시위는 같은 해 6월까지 14차례나 이어졌고, 공공분야를 포함한 전국 단위 총파업으로 인해 기초적인 도시관리 기능까지 마비됐다. 시위의 나라 프랑스에선 흔한 풍경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2023년의 시위는 조금 특별했다. 시위 참여자의 상당수가 머리가 희끗한 노년층이라서다.
노인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는 프랑스 정부가 추진한 연금 개혁 때문이다. 내용도 그리 복잡하지 않다. 법정 은퇴 연령을 기존 62세에서 64세로 2년 늦추자는 것이라서다. 프랑스 정부는 이 런 개혁이 없다면 연금 재정은 2030년부터 연간 100억 유로(약 14조 원) 이상 적자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프랑스 감사원은 2045년 기준으로 연금 재정이 약 300억 유로 적자를 기록할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불가피한 개혁이란 얘기다. 프랑스는 이미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고령 복지국가이며, 전체 GDP의 약 14%를 연금에 쓰고 있다.
연금 수급액 평균은 월 1,400유로(약 227만 원)로, OECD 평균보다 높다. 그런데 고작 은퇴 연령을 2년 늦추는 개혁이 이토록 전국적인 갈등으로 번진 이유가 뭘까. 연금은 단지 은퇴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 방식’에서부터 그 나라의 역사와 사회계약을 압축한 제도라서다.
고령화는 인류가 맞이한 가장 젊은 문제
조금 의외일 수는 있지만, 세계적으로 살폈을 때 고령화는 최근에야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19 세기 초까지만 해도 유럽의 평균 기대수명은 40세 남짓에 불과했다. 감염병과 영아 사망, 노동재해 등으로 생애 후반까지 살아남는 사람 자체가 드물었고, 65세를 넘긴 이들은 전체 인구의 5% 에도 못 미쳤다.
노년을 위한 연금이나 사회보장은커녕, 생존 자체가 특권이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의료 기술과 위생 환경이 급속히 개선되며 판도가 바뀌었다. 프랑스는 1960년대 중반에 이미 평균수명이 70세를 넘었고, 2024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의 21%에 달한다. 노인이 전체 인구에서 유의미한 비율이 된 게 사실상 최초다. 노동을 마친 뒤에도 20년 이상 사회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 이들이 경제나 생산의 주변부가 아닌 시민사회의 일부로서, 여전히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은 이전 세대에겐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노년기의 시간은 길어졌는데, 그 시간을 어떻게 쓰고, 그들을 어떻게 대우해야 할 지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랄 게 자리 잡질 못했단 얘기다. 막연히 생각하기엔 이들을 전통사회에서와 같이 원로로 대우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 렇게 하기엔 숫자가 지나치게 늘었다. 인구의 20%를 넘는 비율이 원로인 사회는 작동하기 어렵잖은가. 그렇다고 노인들이 경제 활동에 종사하지도 않으니, 사회적 지원 없인 이들이 젊은 시절 누리던 모든 사회적 권리를 유지하긴 어렵다.
프랑스의 노년 세대는 젊은 시절엔 이 세 가지 권리를 모두 누릴 수 있었던 복지국가의 ‘완성기’를 경험했다. 학비 없는 공교육,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 직종별 연금 등. 하지만 고령에 접어들자 그런 상황이 위태로워지니 거리로 나온 거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지 프랑스만의 특수한 문화 때문이 아니다. 인구구조의 고령화가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노년층의 정치적 자각은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
유럽 각국은 물론, 일본과 대만에서도 노인 단체의 집단행동이나 정책 개입이 활발해지고 있고, 한국 역시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노년층의 표심은 주요 변수로 떠오른다. 표면적인 갈등 주제는 ‘연금’이지만, 실제로 갈등이 벌어지는 심층 원인은 노인이 현대 사회에서 어떤 처우를 받느냔 지점에 있는 셈이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집단이 아니기에, 이들의 연금을 삭감하잔 주장이 쉽게 나오는 것이라서다.
아찔하게 실패한 연금 설계의 현실
노인의 사람됨에 관한 판단이 갈등의 주된 원인이라지만, 표면적 문제인 연금 갈등만 놓고 보더라도 문제가 만만치는 않다. 프랑스의 공적연금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부과식’ 사회보험 구조 다. 지금 일하는 사람들이 보험료를 내고, 그 돈으로 현재의 은퇴자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현재의 젊은이들이 내는 돈으로 노인의 연금이 만들어지는 구조다. 현재 프랑스 전체 연금 보험료율은 사용자와 근로자 몫을 합쳐 27.7%에 달한다. OECD 평균보다 무려 10%p 이상 높은 수준이다. 그런데도 프랑스 연금이 적자에 직면하게 된 이유는 인구 구조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프랑스에서는 연금 수급자 1인당 현역 노동자 2.1명이 있었다. 이 비율은 2020년 1.7명으로 줄었고, 2070년엔 1.2명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노인을 부양할 수 있는 노동자 수가 줄고 있는 것이다. 인구가 늘 때는 연금에 돈을 낼 젊은이가 노인보다 많으니 흑자가 쌓이지만, 그 반대가 되면 급속히 적자가 쌓인다.
그러니 현재 젊은이들이 연금 납부액을 더 늘리지 않는다면, 노인이 돈을 받는 연령을 늦추는 게 유일한 해법이다. 여기에 반발해 연금을 받는 노인들 혹은 은퇴를 앞둔 근로자들이 들고 일어난 게 프랑스 연금 시위의 본질이다. 부과식 제도의 위기는 비단 프랑스만의 일이 아니다.
독일과 이탈리아도 이미 연금개시 연령을 67세로 늦췄고, 스웨덴은 소득연계형의 자동조정장치(Auto-Balancing Mechanism)를 도입해 평균수명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연금 개시 시점이 뒤로 밀리는 시스템을 운영중이다. 반면 프랑스는 오랫동안 노동조합의 힘과 강한 사회연대 문화 속에서 연금 개혁에 저항해 왔고, 그 결과 개혁의 시기가 늦춰진 측면도 있다. 그러다 2023년에야 그 갈등이 폭발한 것이다. 남의 나라에 서 벌어진 얘기라며 뒷짐 지기엔 우리나라도 같은 딜레마에 처해 있다는 게 문제다.
우리나라 역시 오랜 논의 끝에 2025년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의 핵심은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40%에서 43%로 다소 상향 조정하는 것이 다. 당장 연금 수급을 앞둔 세대뿐 아니라 청년세대의 부담도 고려한 것처럼 보이는 절충안이다. 이 개혁으로 연금 고갈 시점은 기존의 2056년에서 2072년으로 16년가량 늦춰졌다. 숫자만 보면 ‘성공적 조정’처럼 보인다. 이걸로 정말 우리가 받을 연금이 안전해진 걸까?
연금의 진짜 보장성은 사회적 신뢰
올해 이루어진 연금개혁 직후 진행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절반 이상이 “나는 연금을 제대로 받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답했고, 특히 20~30대 응답자 중 60% 이상이 “나는 손해만 보 는 세대”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보험료는 더 내야 하고, 수급 시점은 점점 멀어지며, 미래의 연금 가치마저 불투명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여기에는 단순한 금전 계산을 넘어, 제도에 대한 정서적 회의가 깔려 있다. 프랑스 연금 시위에서 드러난 갈등이 단순히 정년 2년의 문제가 아니었 듯, 한국의 연금 불신 역시 ‘숫자’ 너머의 문제란 얘기다. 왜 사람들은 연금제도를 신뢰하지 못할까. 그 이유 중 하나는 한국 연금제도가 구조적으로 ‘사회적 합의’ 대신 ‘정치적 타협’ 위에 설계됐다는 점이다.
매번 개혁이 필요할 때마다 정치적 책임 공방 탓에 가장 덜 아픈 방법을 택한 결과, 우리나라의 연금은 구조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 하게 됐다. 실제로 이번 개정안도 자동조정장치 같은 지속가능성 장치는 빠졌고, ‘더 내고 더 받는다’라는 실현 불가능한 구호만 남았다. 애초에 인구구조 변화로 더 내고, 덜 받지 않으면 지속 가능성이 담보되지 않는데 정치적인 책임을 피하려 또 유예만 한 셈이다. 다른 나라들은 훨씬 냉정한 방식으로 연금을 다룬다. 대표적인 예가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1990년대 중반 재정위기 이후, 기존의 확정급여(DB)형 공적연금을 포기하고 소득연계형 확정기여(NDC) 방식으로 전환했다. 동시에 평균수명과 경기변동에 따라 연금 수급액을 자동으로 조정 하는 '자동균형조정장치(ABM)'를 도입했다.
경기가 나쁘거나 기대수명이 늘어나면 연금액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2010년부터 2018년까지 9년 중 6년간 이 장치가 발동되었고, 국민은 이에 별 다른 저항 없이 수용했다. 제도의 신뢰는 단지 숫자가 아니라, ‘예측 가능성과 일관성’에 달려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제도를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니다. 연금개혁특위 초안에선 자동조정장치도 입안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정치권과 시민사회 일각에서 “연금 수급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며 결국 빠졌다.
그런데 애초에 후속 세대가 내는 돈으로 현재 노인 세대의 연금을 충당하는 구조라면, 젊은 층의 연금에 대한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내가 지금 큰 비용을 내더라도, 나중에 나 역시 돌려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없다면 조세 저항이 벌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그러니 더디더라도 노인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 그리고 젊은 세대가 ‘자신도 받을 수 있는’ 수준의 연금은 어느 정도라고 믿는지를 섬세하게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면 국가가 법으로 보장하는 ‘지급보장’이 없어도, 포괄적인 세대 간 합의가 유지되어 연금제도는 지속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 개인 차원의 노후 대비만이 아닌 사회적 문제 해결에도 관심을 가져야 진정한 의미의 다층 노후보장 구조가 완성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자.

박한슬 약사, 작가
글 짓는 약사. 숫자가 담긴 글 쓰는 일을 한다. 약학 대학 졸업 후 통계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현재는 외국계 제약 회사에서 메디컬 라이터로 일한다. 《중앙일보》 「박한슬의 숫자읽기」와 《월간조선》 「박한슬의 건강의 지평선」을 연재하고 있으며, KBS 1라디오에서 매주 의료 서비스와 건강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데이터를 통해 한국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한 『숫자한국』, 약의 작용 원리를 풀어 쓴 『오늘도 약을 먹었습니다』, 투자자 관점에서 바라본 제약 산업 개론서인 『바이오 투자의 정석』, 국내 의료 체계의 지속 가능성을 살핀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