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있던 감각을 일깨우는 움직임과 맛
글 : 이한나 / 요리전문가, 작가 2025-08-04
‘움직임’이라는 것은 언제 어디서든 존재한다.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움직이고 움직임은 살아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감각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면서도 3-4살 즈음부터는 자유롭던 움직임들이 점차 사회문화적인 관습에 의해 어떤 의미나 의도가 실리거나 영향 받은 동작과 행동으로 고착된다. 이런 움직임의 ‘코드화’에서 우리는 벗어날 수 있을까? 그건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의식을 몸과 함께 어떻게 조화롭게 쓸 것인가
춤이라 하면 흔히들 어떤 틀을 갖추고 있는 움직임을 기초로 하는 표현의 결과물로 여기지만 완전히 반대로 가는 그런 시도도 있다. 일명 ‘소마틱스(somatics)’ 혹은 ‘소마틱 무브먼트(somatic movement)’라는 것을 ‘몸인 학교’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하고 있는 ‘숨 무브먼트’의 국은미와 권병철 공동대표는 소마틱스를 통해 의식을 몸과 함께 어떻게 조화롭게 쓸 것인가를 끊임없이 탐구하며 잊고 있던 감각을 되찾는 작업을 펼치고 있다.
‘살아있는 몸’이란 의미를 담은 soma를 어원으로 둔 소마틱 무브먼트는 춤 보다는 ‘움직임’이라는 개념이 강조된다. 무용가이자 안무가이기도 한 국은미 대표는 정신과 육체의 유기적 연결에 집중,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통해 정신과 감정의 상태를 진단하는데 중점을 둔다. ‘고정된 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한다는 점에서 소마틱 무브먼트는 몸과 마음에 대한 “힐링 효과”가 있다고 설명한다.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나의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며 내게 자유로움을 줄 수 있는 감각들을 찾아나가는 소마틱 무브먼트는 몸의 습관들을 파악해서 수정하거나 우회할 여지를 줄 수 있어 노화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에게 삶의 질을 더 높여주는 하나의 방법으로 고려할만하다.
소마틱 무브먼트를 접하면서 떠오른 영화 한 편이 조나단 레빈 감독, 니콜라스 홀트, 테리사 팔머 그리고 존 말코비치 주연의 2013년작 <웜 바디스/Warm Bodies>이다.
살아있는 시체의 심장이 뛰게 되기까지
전염병으로 거의 폐허가 된 지 8년차인 지구. 인간은 소수집단이 되어 자신들을 먹이로 노리는 좀비들과 먹이 사슬의 꼭대기에 올라선 뼈만 남은 보니스(boneys)의 공격을 막아내며 생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존재들로 전락했다. R(니콜라스 홀트 분)은 좀비의 공간이 된 공항, 한 비행기 안에서 살아가며 가끔은 유일한 친구인 동료 좀비 M과 최소한의 교감을 나누는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의약품을 구하러 인간들이 모여 사는 요새에서 원정 나온 줄리(테리사 팔머 분) 그리고 그녀의 친구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줄리 무리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가슴에 총을 맞은 R은 그를 쏜 줄리의 남자친구 페리를 죽이고 그의 뇌를 먹는다. 인간의 뇌를 먹으면 그 사람의 기억의 조각들을 가지게 됨으로써 살아있음을 느끼는 좀비였던 R은 페리의 기억 속 줄리와 눈 앞에 있는 줄리에게 묘하게 끌린다.
좀비들의 공격으로부터 줄리를 보호하기 위해 좀비 피를 그녀의 얼굴에 묻히고 안전하다며 그의 비행기로 안내하는 R. R이 틀어주는 오래된 LP판 음악을 들으며 깡통 과일 칵테일 통조림으로 허기를 달래던 줄리는 점차 R에 대한 경계를 푼다. 둘은 서서히 서로에게 스며들어가던 중 줄리는 요새로 돌아가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R의 친구 M과 한 무리의 좀비들의 공격을 받게 되지만 R은 줄리를 지켜낸다.
한편 그녀를 보호하려는 R 때문에 M은 혼란스러워 한다. 함께 인간들의 요새로 돌아가던 길에 페리를 죽였다는 사실을 실토하는 R. 충격 받은 줄리는 말도 없이 사라지고 낙담한 R은 그의 비행기로 돌아온다. 그런데 그새 좀비들 사이에 변화의 기류가 일어나고 있었다. M과 일부 좀비들의 심장이 뛰고 어렴풋이 좀비로 변하기 전의 기억들이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결국 위험을 무릅쓰고 줄리를 찾아가기로 한 R. M과 점차 수가 늘어나고 있던 좀비 무리는 그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그와 함께 하기로 하는데 좀비들의 하극상(?)에 위기를 느낀 보니들 역시 그들을 제압하기 위해 그 뒤를 따라간다. 드디어 인간들이 모여 사는 요새로 잠입한 R은 줄리와 다시 만나게 되고, 요새의 리더인 줄리의 아버지와 마주하게 되면서 그의 지시로 쫓기는 몸이 된다. 보니들의 추격도 점차 좁혀 들어오면서 절대 절명의 위기에 몰린 R은 스스로를 희생하면서 줄리를 살리게 되는데 그 죽음의 찰나는 오히려 그에게 새 생명을 찾는 계기가 된다.
몸이 뻣뻣하고, 말도 거의 하지 않던 R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시체였지만 남의 기억과 그의 감각을 깨운 줄리와의 만남으로 그의 심장은 뛰기 시작했고 이후 이어진 파장은 결국 그에게 살아 있는 몸, 삶의 이유가 되는 사랑, 그리고 과거의 끈을 놓아버리고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아무도 알 수는 없지만 기대하게 되는 미래로 이어진다.
글자로 불리던 R이 제대로 된 이름 대신 지금 이대로 살아가겠다고 선택을 하는 건 과거에 연연해하지 않고 무엇이 되든 앞으로 자기 앞에 올 새로운 경험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희망’적인 암시로 다가온다. 호러물이라가 보다는 좀비물 형식을 빌린 휴먼 드라마인 이 영화는 몸과 마음을 ‘웜 바디스’로 만들어주는 경험을 선사한다.
이번에 소개할 요리는 중남미에 위치한 푸에르토리코에서 탄생한 칵테일 음료이다. 열대 과일인 파인애플과 코코넛 크림, 그리고 라임이 들어가는 향기롭고 진하면서도 달콤한 맛은 오감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소개하고 싶기도 하고 영화에서 줄리의 허기를 채워준 과일 칵테일을 떠올리기도 한다.
알코올이 주는 몸과 마음의 긴장완화도 뭔가 주제에 잘 부합하기도 해서 <웜바디스> 즐겁게 감상 후 한잔의 피냐 콜라다로 풀어진 몸과 마음에 자신을 맡기며 자유롭게 움직여 본다는 것, 생각만 해도 즐겁지 않은가?

이한나 요리전문가, 작가
신문방송학을 전공했지만 다큐멘터리 연출자가 되기 위해 미국 뉴욕대에서 영화학을 공부하며 다큐 제작, 배급사에서 인턴쉽을 수행. 그 경험은 오히려 영화와 대중간의 소통 창구 역할이 적성에 더 맞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귀국 후 영화제, 기자, 영화진흥위원회 공무원, 한국영화 자막 및 시나리오 번역 작업 등의 업무들을 거치지만 또 한번의 방향 전환을 하게 된다. 우연한 제안으로 영화 〈생활의 발견〉,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밀양〉 등의 프로듀서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아마 마지막일 세 번째 방향 전환은 요리. 오래 품었던 요리에 대한 열정은 목포에서 서양 가정식 쿠킹 스튜디오로 출발, 2023년 서울의 ‘푸드 살롱’으로 재정비 한 ‘스프레드 17’. 살롱지기로 서양 가정식 원 테이블 밥집 운영하며 요리 과학서 <풍미의 법칙> 역서도 내고, 영화와 요리 관련 요리책 집필과, 쿠킹 클래스, 다양한 영화-요리 관련 팝업 등을 준비하며 재미있는 컨텐츠를 제공하려고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