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기업가의 ‘고향 살리기’ 집념 지방 창업 성공 모델 되다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괴짜 기업가의 ‘고향 살리기’ 집념 지방 창업 성공 모델 되다

글 : 김웅철 / 지방자치TV 대표이사, 매일경제 전 도쿄특파원 2025-07-28

도쿄 북서쪽, 차로 2시간 거리에 마에바시(前橋)라는 지방도시가 있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곳이 요즘 일본에서 지방 활성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실험실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마에바시의 성공 사례를 배우자’며 다른 지자체들은 물론 중앙 부처의 견학이 줄을 잇고 있다. 일본 지방창생성은 도쿄 일극 집중을 해소하고 지방 소멸을 막아 일본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목표로, ‘마을·사람·일자리 창생법’을 제정해 지역을 살리기 위한(創生) 전방위 정책을 추진했다. 지방창생성을 설치, 초대 장관으로 당시 이시바가 취임해 2년간 일했다. 이시바는 총리 취임 직후 10년이 지난 지방창생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며 ‘지방창생 2.0’을 새 정부의 간판 정책으로 내세웠다. 민간 주도의 마을 재생이 ‘지방창생 2.0’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초대 장관을 지냈던 이시바 총리도 “실로 흥미로운 사례”라며 치켜세웠고, 관련 국회의원들은 현장을 찾아 마에바시 배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마에바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올해 초 국회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한 의원이 이시바 총리를 상대로 질의를 한다.


“마에바시 출신 기업가들이 지역 살리기에 나서면서 시가 크게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민간의 활동을 관(官)이 제대로 서포트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이시바 총리는 “마에바시의 사례는 굉장히 흥미로웠다. 군마(群馬)현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재미있어서 30분, 1시간이 훌쩍 갔다”며 “민이 주가 되고, 관은 어떻게 뒤를 밀어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화답했다. 


지방 소멸 해법에 골몰하는 초고령사회 일본. 마에바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간 주도의 도시 재생 프로 젝트에 열도가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 인재 발굴부터 관광 개발까지 괴짜 기업인의 실험


아직 실험 중인 마에바시 도전의 중심에는 한 명의 괴짜 기업인이 있다. 글로벌 안경 브랜드 JINS(진즈)의 창업자 다나카 히토시(田中仁) 대표. 다나카 대표는 1963년 군마현 마에바시 출신으로, 1988년 안경 체인 기업 JINS를 창업해 일본의 아이웨어 산업을 선도해 왔다. 사업 확장에 여념이 없던 2011년 인생의 전기가 찾아온다. 


그해 여름 모나코에서 열린 세계 기업가 대회에 참석하면서 서구 기업가들의 지역공헌과 사회공헌에 대한 열정에 적잖은 충격을 받는다. 특히 기업인들이 주도하는 지역사회 공헌 사례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회사를 키우는 것만이 정말 좋은 삶인가.’ 


이때부터 다나카 대표의 시선은 고향으로 향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고향은 한 때 1200개나 되던 시가지 점포가 300개로 줄었고 하루 중심가 유동인구도 10분의 1로 급감하고 있었다. 시들어가는 고향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한 그는 스스로 실천에 옮긴다. 2014년 사재를 털어 군마현 지역 활성화 지원을 위한 ‘다나카 히토시 재단’을 설립한다. 이 재단을 통해 모나코에서 접했던 서구의 기업가들처럼 ‘관이 아닌 민간 기업 주도의 지역공헌’에 뛰어든다. JINS의 본사도 마에바시로 옮겼다.


첫 번째 실험은 ‘지역 기업인 육성’. 2014년 지역 청년들의 창업과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젝트 ‘군마 이노베이션 어워드’와 ‘군마 이노베이션 스쿨’을 시작한다. 지속 가능한 지역 성장을 위해서는 현지 기업인들의 인식의 변화와 신진 기업인들의 육성이 절실하다는 게 다나카 대표의 판단이었다.


두 번째 실험은 지역 활성화의 방향성, 즉 비전을 설정하는 것이었다. 다나카 대표는 지역 활성화의 성공에는 어떤 모습의 도시, 어떤 모습의 마을로 재탄생하고 싶은가에 대한 시민들의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2016년 민간과 시가 공동으로 ‘마에바시 비전’을 선언한다.  ‘Where good things grow!’(좋은 것들이 커 가는 곳으로!) ‘여유 있고 느긋한 공간과 녹음이 우거진 마에바시의 장점을 살려 사람들이 모여드는 거리로’라는 방향성이 정해진다. ‘메부쿠’(芽吹く·싹이 트다) 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마에바시의 지역 활성화 프로젝트가 본격화한다.


다나카 재단의 마에바시 활성화 프로젝트가 시동을 거는 시점에 또 한 번의 결단의 순간이 다가온다. 기업을 준비하던 청년들로부터 2008년 폐업 후 방치 된 300년 역사의 노포 여관이 오피스텔 개발업자에게 매각됐다는 소식을 접한다. ‘마에바시의 상징적인 ‘시라이야(白井屋) 여관’을 어떻게든 살리고 싶다’는 청년 기업가들의 희망에 응답한다. 다나카 대표는 개인 돈을 들여 개발업자로부터 여관을 사들인다. 


“오피스텔 빌딩에서는 커뮤니티나 교류를 기대하기 어렵다. 마을 사람들에게 열린 곳을 만들어야 한다.” 


무모한 시도라는 주변의 만류를 뒤로하고 다나카 대표는 이 건물을 세계적인 건축가 후지모토 소스케와 함께 ‘마을의 거실’을 만든다. 마을 활성화에는 사람들이 모이는 거점이 필수적이라는 게 다나카 대표의 생각이었다. 현대미술 작가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LED 설치 작품 ‘Lighting Pipes’는 예술이 도시 정체성과 어떻게 결합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아트호텔로 재탄생한 시라이야 호텔은 단순한 숙박 시설이 아닌 지역민과 관광객 모두를 위한 열린 공간으로 2020년 재탄생했다. 


호텔에는 도쿄의 유명 카페가 문을 열었고, 호텔은 드라마 촬영장소로 활용되면서 마에바시의 새로운 거점으로 부상한다. 1박 5만 엔 이상의 룸이 있는 고급 아트호텔로도 인기가 높다. 호텔은 또 남북으로 통행이 가능한 보행자 통로가 만들어져 사람이 모이는 공간으로 변신했다. 현지 언론에서는 시라이야 호텔의 변신은 ‘도시를 하나의 창의적 생태계로 재구성하는 의미 있는 사례’라고 평가한다.


프로젝트 성공 원동력은 민간 연대


지역 활성화는 지역 기업가 혼자서 지속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나카는 같은 뜻을 가진 기업 동지들과의 민간 연대를 꾀한다. 2017년 그는 ‘태양의 모임(太陽の 会)’이라는 민간 네트워크를 결성한다. 24개의 마을 재생에 뜻이 있는 기업들이 참여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기업 순이익의 1% 또는 최저 연간 100만 엔을 지역에 투자하는 단체가 만들어졌다. 이 조직은 단순한 교류가 아닌 지역 변화의 실천 조직이고, 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해 실현해가고 있다.



참여 기업이 56개로 늘어난 태양의 모임은 2024년 8월 사단법인화하면서 기업 회원에서 의사, 변호사, 교육 관계자 등으로 문호를 확대했다. 연간 회비도 일률 50만 엔으로 정했다. 태양의 모임 회원들은 지역 청년 창업가, 예술가, 크리에이터들과 연대하면서 마에바시 재생을 리드하고 있다.


시라이야 호텔 뒤쪽에 있는 바바가와 거리(馬場川通 り)로 불리는 200m 천변 도로를 붉은색 벽돌 길로 만드는 프로젝트에 3억 엔을 기부하기도 했다. 시도 도로 개발허가를 적극적으로 내주거나, 길거리 가게의 사업자를 유치하는 등 측면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다나카 대표를 중심으로 한 마에바시의 민간 주도 재생 프로젝트가 시동을 건지 10년. 마에바시의 중심가에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폐업 여관에서 ‘마을의 거실’로 탈바꿈한 시라이야 호텔은 물론이고 셔터 거리의 빈 가게들이 청년 기업가들의 손을 통해 재탄생 했다. 도심 거리에 새로운 가게와 음식점이 100개 이상 생겨났다.



당연히 중심 시가지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지난해 시 조사에 따르면 시가지 하루 유동인구는 약 4600명으로 10년 사이에 두 배가 늘었다고 한다. 연령대도 고령자 중심에서 30~40대가 60%로 가장 많았고 휴일에는 도쿄의 젊은이들도 마에바시를 찾고 있다.  2022년 10월에는 마에바시 북페스티벌이 처음 열려 이틀 만에 5만 명이 방문하기도 했다.  현지 언론은 시라이야 호텔 주변 노선의 지가(2024년 1월 1일 기준)가 32년 만에 상승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마에바시의 민간 주도 활성화 프로젝트는 진화하고 있다. 시는 행정 분야에도 민간의 활력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도심 공원의 운영을 기업과 단체에 위탁하거나, 공원의 이벤트 운영도 주민과 기업이 공동으로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국가 중요문화재인 마에바시 공원에 지정관리 제도를 도입해 민간 기업의 조직이 운영을 맡고 있고, 공원 카페 설치나 이벤트 계획도 민간 아이디어를 활용해 공원의 매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시는 또 포괄협정을 맺은 기업과 손잡고 고령자 돌봄 등 지역 내 사회문제 해결 사업을 함께 해나갈 계획이다. 행정만으로는 대응이 어려운 과제에 기동력과 유연성을 갖춘 민간의 힘을 빌려 좋은 생활환경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다나카 대표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마을재 생을 추진하는 데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관 주도, 행정 주도로는 지속성이 없다. 특히 재개발 사업 등은 지방선거의 쟁점이 되어 단체장이 바뀌면 변경되기 십상이다. 마을 재생의 지속성을 위해서는 민간이 할 수 밖에 없다. 마을 재생에 대한 뜻을 가진 실천력 있는 민간 리더의 존재가 중요하다.”


뉴스레터 구독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뉴스레터를 신청하시면 주 2회 노후준비에 도움이 되는 유익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 이메일
  • 개인정보 수집∙이용

    약관보기
  • 광고성 정보 수신

    약관보기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뉴스레터를 구독한 이메일 조회로 정보변경이 가능합니다.

  • 신규 이메일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뉴스레터를 구독한 이메일 조회로 구독취소가 가능합니다.

  •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