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가 현역보다 힘든이유, 은퇴자에게도 OO이 필요하다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은퇴가 현역보다 힘든이유, 은퇴자에게도 OO이 필요하다

글 : 한혜경 / 작가, 前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2025-07-29

현역일 때, 일과 놀이 중에서 은퇴자에게 더 중요한 게 뭘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내 대답은 ‘놀이’였다. 일은 언젠가는 그만두어야 하지만, 놀이 생활은 죽을 때까지 놓을 수 없는 것이니까. 게다가 내가 만났던 은퇴자들 중에는 ‘노는 게 힘들다’ ‘평생 일만 했는데 이제 와서 놀라고 하니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그래서 난 생각했다. 아, 일정한 나이가 되면 삶을 즐기는 것, 마음껏 노는 것이 일보다 더 중요해지는구나.


 

그래서 결심했었다. 은퇴하면 실컷 놀아야지. 그동안 일하느라 놀지 못했던 아쉬움을 다 털어 버려야지. 하지만 막상 은퇴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내가 이렇게 잘 못 노는 사람이었나? 그동안 일만 하느라 노는 법을 다 잊어버린 건가?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현역일 때는 실컷 여행도 다니며 해방감을 만끽하고 싶었지만, 막상 은퇴하니 여행도 한두 번 이고, 무엇보다 해방감에 대한 욕구 자체가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노래나 악기 연주, 춤추 기, 그림 그리기 같은 건 정말 잘하고 싶지만 영 재주가 없다. 가끔 콘서트나 전시회에 가서 그들의 재능을 감탄하고 부러워하기만 하는 정도다. 


이럴 줄 알았다면 현역 때부터 나만의 놀이 한가지쯤 개발해 놓았어야 했다는 걸 뒤늦게 깨 달았다. 수십 년 일만 하다가 퇴직하는 그 순간부터 갑자기 잘 논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도.



은퇴했지만 일에 빠져버린 나 


그래도 다행인 건 내가 재미를 느끼는 게 전혀 없진 않았다는 점이다. 그건 ‘일’과 ‘관계’였다. 나란 사람은 뭔가 일하고 있다는 느낌이 있어야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라는 걸 퇴직하고야 알 았다. 뭔가 생산적 경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리고 혼자 글을 쓰거나 하는 일도 좋아하지만 사람들을 만나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일(주제 있는 수다라고나 할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훨씬 더 재밌었다.




신기했다. 현역일 때는 하루빨리 일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다른 사람과 일하는 걸 힘들어한 적도 많았는데.


물론 은퇴한 후의 일과 관계가 현역 때와는 달리, 자율적인 것들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은퇴 후의 일은 어쨌거나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선택한 일이다. 관계도 마찬가지. 은퇴 후 에 만나는 사람들 역시 내가 좋아하는 사람,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이다.



방학 없는 은퇴자 생활, 현역 때보다 힘들 수 있다 


문제는 그러다 보니, 일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는 점이다. 오해는 하지 마시라. 취업을 하거나 큰 돈을 벌었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70대 중후반의 나이에도 현역으로 일 하는 선배들뿐 아니라 일을 놀이처럼 즐기는 동년배가 많은데, 이들로부터 자극도 받고 같이 일하자는 제안도 받다 보니 이런저런 일에 얽히게 되었던 거다. 그뿐인가. 은퇴 직후에는 별로 힘들어 보이지 않던 집안일과 가사노동도 점점 더 무겁게 다가 왔다.


이렇게 은퇴 후 몇 년 동안 쉬지 않고 자잘한 일을 계속하다 보니 지난 봄부터 몸이 피곤해지기 시작했고, 머리가 멍해지고, 입맛도 떨어졌다. 엊그제 만난 친구 A에게 하소연했더니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쯧쯧거렸다. 


“어쩐지 너무 열심이더라. 진작 좀 말렸어야 했는데.....”


하지만 A야말로 집안일과 손주 돌보기를 직장일보다 더 열심히 하다가 대상포진에 걸려 입원 까지 했던 친구다. 그가 말했다.


“은퇴자 생활이 현역 때보다 힘든 것 같지 않니? 생각해 봐. 휴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방학도 없고 말이야....”


때마침 방학을 맞은 후배 교수들이 카톡을 보내왔다.


“저 방학했어요. 만나서 맛있는 거 먹어요.”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아, 그동안 방학도 없이 살았구나. 은퇴 후에도 방학이 필요하구나’ 



나를 위한 방학식


친구 A는 ‘셀프안식년’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보내왔다. 올 한 해 동안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기로 했다는 것. 자녀와 손자녀들에게도 돈 같은 거 보낼 때 외에는 일체 연락하지 말라고 말했다고 한다. 


해서 나도 6월 초 쯤에 ‘셀프방학식’을 거행했다. 두 달째 일 생각은 하지 않고, 맛있는 것 먹으면서 머리를 비우는 중이다. 뭐 재밌는 놀거리 없을까, 그것만 열심히 생각한다. 한 달 이상 이렇게 지냈더니 이제야 조금 정신이 나고 머리가 돌아가는 것같 다. 역시 일과 쉼, 놀이 사이 의 균형 맞추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실감하는 중이다.


왜관수도원 박현동 신부님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수도원에서는 일하고 있으면 기도하라고 종 치고, 기도가 끝나면 또 다른 일 하라고 종을 친다. 뭘 좀 집중해 하려고 하면 종을 친다. 그런데 사실 하는 일을 중간중간에 끊어주는 것이 오히려 속도에 매몰되지 않고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를 유지하게 한다.


수도원에선 평화와 쉼 사이에 일정한 리듬이 있다. 

‘멈춤’은 속도에 끌려다니지 않고 본래 지향을 잊지 않도록 돕는다.


은퇴자에게도 종은 필요하다. 누가 종을 쳐주지 않으니 스스로 쳐야 한다. 쉬라고 말해주는 사람, 멈추라고 말해주는 사람,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다시 돌아오라 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스스로 돌아보고 평가해야 한다. 은퇴자에게 ‘셀프안식년’ ‘셀프방학’이 꼭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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