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노후를 바꾸는 한 끼의 기적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외로운 노후를 바꾸는 한 끼의 기적

글 : 이한나 / 요리전문가, 작가 2025-07-07


식구(食口). 먹을 식에 입구, 같이 밥을 먹는 자를 일컫는 이 단어 혹은 의미는 가난하고 하루하루를 잘 넘겨야 하는 조상들의 고난의 흔적을 담고 있지만 또한 ‘밥’ 그리고 ‘함께 먹는다’라는 것이 함의하는 ‘공동체’라는 의미가 얼마나 인간에게 중요한 가치인가를 되새기게 한다. 그런데 점점 사회가 핵가족화 되고, 파편화 되면서 ‘공동체’의 의미는 좀 다르게 재편성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점을 체감한 경험이 있다. 3년전 목포에서 서울로 옮기면서 부엌과 거실 공간이 넓게 이어진 집 구조를 갖춘 가게 자리를 찾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예전처럼 가족들이 함께 하는 거실과 부엌의 공동 공간은 대폭 축소되고, 작더라도 개인 방 개수를 늘이는 구조로 선호도가 바뀌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함께’ 보다는 ‘개별성’이 중요하게 된 것이다. 



나에게 맞는 공동체를 찾아야 


여러 직업 군에서도 동료들과 함께 식사하고, 회식하는 문화도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공동체는 혈연 중심의 ‘가족 공동체’ 혹은 직업 중심의 ‘생업 공동체’에서 생각, 취향, 목적 등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교감하고 교류하고 나아가 적극적인 실천을 동반하는 개념으로 변하고 확장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은퇴 후 노후생활을 보내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맞는 공동체를 찾아야 할 필요성이 더 커진다. 예전처럼 당연시 되었던 기존의 의미를 담은 ‘식구’ 공동체들이 일종의 안전 망이 되었다면 이젠 축소되고 개별화된 현실 속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체를 찾는 작업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은퇴로 늘어난 개인 시간들을 즐겁고 보람 있게 보내는 활동들부터, 필수적이거나 도움이 되는 정보들을 나누고,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고 심지어 지원도 할 수 있는 ‘식구’들을 만나는 것은 필요하면서도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일이 되었다.



밥으로 맺어진 동네 식구


바로 이 점이 이야기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는 켄 로치 감독의 24년작 <나의 올드오크>. 


시리아 내전으로 난민이 된 사람들이 쇠락해가는 탄광촌으로 이주를 하게 되면서 새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만 이들의 존재가 탐탁지 않은 마을 사람들의 반감에 부딪히게 된다.


 이 와중에 마을 (꼰대) 남자들의 안방 역할을 하는 펍 <올드오크> 주인 TJ와 영어 소통이 가능해 일종의 통역사 역할을 하며 시리아인, 영국인 불문하고 동네 사람들을 매일 들고 다닌 카메라로 찍는 걸 즐기는 시리아 난민인 야라는 각자의 외로움과 트라우마를 공유하며 친구가 된다. 


가난과 패배감, 차별로 인해 상처받은 채 살아가고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 다시 희망을 주기 위해 오래 방치되었던 올드오크 뒤켠에 자리한 빈 방은 무료 급식소로 재정비되고 이곳을 찾은 이들은 그곳에서 제공하던 따뜻한 밥을 나눠 먹으며 모든 사회적 벽들을 점차 허물며 ’동네 식구‘가 되어간다.


<나의 올드오크>에서 로치 감독은 그의 모든 영화들에서 보여준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문제의식을 여전히 유지한 채 예상 가능한 동선을 따라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렇듯 결국에는 공감과 감동을 보는 이로 하여금 불러일으키는 힘은 여전하다. 지금 너무나도 필요한 희망과 연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기분 좋아지게 하는 영화다.




<나의 올드오크>처럼 식구, 공동체의 가치를 담은 중동 요리 하나 소개한다.


시리아 스프레드인 ‘무함마라(muhammara)’. 


파프리카 껍질 태워 벗긴 후 빵, 호두, 석류시럽, 마늘, 시리아 알레포(Aleppo) 고추(가루), 소금, 후추, 올리브유, 큐민가루 갈아서 만드는 이 요리는 석류시럽의 산미, 호두의 고소함, 알레포 고추의 매콤함, 그리고 빵이 만들어내는 꾸덕함이 조화롭게 맛있는 새콤, 매콤, 달콤한 음식이다. 


‘붉게 변하는’이라는 의미를 담은 무함마라는 접시에 펴 담은 다음 여럿이 둘러앉아 중동식 플렛브레드인 피타(pita) 빵을 뜯어서 찍어 먹는다.


정통 무함마라에는 석류시럽, 알레포 고추 가루가 들어가지만 이번에 소개하는 요리는 쉽게 구할 수 있는 매실청, 그리고 약간의 레몬즙과 고추 가루가 들어간다.


켄 로치 감독의 <나의 올드오크>와 무하마라로 잠시 맛있는 희망, 연대 그리고 공동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시간 경험해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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