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모터쇼 참관기② : 이길 수 없다면, 합류하라
글 : 한우덕 / 중앙일보 차이나랩 2025-05-27
중국 전기차 시장은 쑥쑥 크고 있다. 그들은 세계 최대 시장인 자국 시장 경쟁을 통해 혁신 역량을 키워간다. 이 같은 중국의 전기차, 스마트화 흐름에 외국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할까.
이번 ‘상하이 모터쇼’의 아우디 부스에서 만난 ‘Q6L e-tron’모델. 이 자동차 역시 화웨이의 자율주행시스템인 ‘첸쿤4.0’을 채택했다. 차내 디스플레이는 훙멍OS를 깔았다. 천하의 아우디가 화웨이 기술을 사용한다고? 물론 중국 내에서 얘기겠지만, 사실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아우디 관계자는 “우리가 화웨이의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우디는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해 중국 기술과 타협하는 길을 선택했다. ‘이길 수 없으면 합류하라’는 평범한 비즈니스 격언을 실현한 것이다.
선생님을 넘어선 제자의 무서운 성장
폴크스바겐(VW)은 다른 접근 방식을 택했다. 이번 모터쇼에서 선보인 ‘ID.EVO’ 모델은 이를 상징한다. 이 자동차는 VW이 중국 소비자를 겨냥해 중국에서 만든 ‘Made-in-China’ 전기차다. 이를 위해 VW는 안후이(安徽)성 허페이의 전기차 회사인 샤오펑(小鵬)과 기술 협력을 맺었고, 장화이(江淮)자동차와 생산 협력을 했다. 약 33억 달러를 투자했다. 자국에서는 공장을 폐쇄하는 등의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도 중국 투자는 늘리는 게 VW의 현실이다.
자동차에 관한 한 독일은 중국의 ‘선생님’이다. 많은 중국 자동차 전문가들이 독일을 방문해 VW로부터 기술을 배웠다. ‘중국 전기차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완강(萬鋼) 전 과학기술부 장관 역시 그 중 한 명이다. 그런 VW이 이제 거꾸로 중국에서 기술을 배워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역시 ‘이길 수 없으면 합류하라!’라는 비즈니스 격언을 실현하고 있다.
VW뿐만 아니다. 세계 제2위 자동차 메이커인 토요타 역시 상하이에 독자 전기차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다. 현대차는 올 초 전기차 개발을 위해 약 11억 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세계 3대 자동차 메이커가 모두 ‘다시 중국’을 선언한 셈이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을 무시할 수 없고, 또한 중국의 전기차 산업의 기술 혁신 속도를 무시할 수 없는 까닭이다.
혁신을 가능케 하는 '스케일'
이번 상하이 모터쇼에서 확인한 또다른 중국 전략의 핵심은 ‘스케일(Scale)을 다시 정의하라’는 것이다.
이번 모터쇼에 현대차는 나오지 않았다. 베이징과 상하이를 번갈아 가며 열리는 모터쇼에 현대가 나오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는 미국 시장에 집중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정의선 회장이 최근 백악관을 방문해 투자를 발표한 것과도 관련이 있을 터다. 현대에게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그래도 나왔어야 한다’라는 게 필자 생각이다.
중국의 스케일(Scale) 때문이다.
과거 우리가 본 중국 스케일은 시장(market) 사이즈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쑤시개 하나만 팔아도 13억 개를 팔 수 있다’는 규모 말이다. 실제로 많은 우리 기업이 중국의 거대한 시장에서 돈맥을 발견했고, 돈을 벌었다. 백색가전을 팔았고, 핸드폰을 깔았고, 자동차 시장을 공략했다. 한류를 등에 업고 화장품을 팔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우리 기업은 점차 시장에서 밀려나고 있다. 급성장한 중국 기업에 밀려 쪼그라들고 있다. 백색가전, 핸드폰, 자동차, 화장품… 돈을 벌었던 순서대로 역시 밀려 나오고 있다. 중국과의 경쟁에 노출된 산업은 여지없이 그들 공세에 압살(壓殺)당할 처지다. 요즘 위기에 빠진 석유화학 업계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일 뿐이다.
2016년 터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시스템)사태, 2019년 코로나 발병 등 요인이 컸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중국 기업의 혁신에 밀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잠시 중국 시장에서 멀어진 사이 그들은 무섭게 혁신 속도를 높였다. 혁신을 가능케 했던 중요한 요소가 바로 ‘스케일’이다. 그들은 막대한 시장이 주는 비용 절감 효과를 누리면서 제품을 혁신했다. 국내 시장에서의 피드백을 통해 혁신했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다.
혁신경쟁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중국 전기차가 빠른 속도로 세계 시장을 잠식할 수 있었던 건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중국)’이 주는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 덕택이다. 이를 바탕으로 비용을 줄일 수 있었고, 경쟁력을 높였다. 그 스케일에 견줄 수 있는 나라는 지금 없다. 우리는 BYD 등 중국 자동차 메이커에 의해 그 시장에서 밀려나야 했고, 제3국 시장에서도 버거운 경쟁을 해야 할 판이다.
스케일의 정의를 새롭게 해야 한다. 기존에는 우리의 제품 경쟁력을 활용해 중국의 거대시장을 공략했다. 앞으로는 중국의 시장이 주는 스케일을 활용해 우리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전자가 수요 측면의 스케일이라면, 후자는 공급 측면의 스케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혁신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중국 기업들이 국내 경쟁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듯, 우리 기업들도 중국에서의 경쟁을 통해 글로벌 시장으로 가야 한다. 아우디가 그렇게 하고 있고, 중국의 자동차 선생님이라는 VW마저 중국에서 배우고 있지 않는가. 우리도 그곳으로 가서 배울 건 배우고, 경쟁해야 한다. 중국 스케일이 만든 비용 구조를 활용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전기차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중국이 만든 저가 제품을 우리 산업과, 우리 기업에 어떻게 연결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기존에는 우리가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면, 중국이 이를 완성품으로 조립해 미국에 수출하고는 했다. 그러나 이제는 거꾸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중국의 저비용 중간재를 가져와 우리 산업에 응용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 상품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면, 아니 할 이유가 없다.
고급 가전, 조선, 심지어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국내 스케일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동남아, 중동, 남미 등 제3의 시장에서도 중국 기업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할 처지다. 중국이 무섭다고 장벽만 쌓는다면, 기술은 낙후될 것이요, 시장은 빼앗길 뿐이다.
‘극복할 수 없다면 합류하라!’ 상하이 모터쇼에서 다시 확인한 중국 비즈니스 격언이다.

한우덕 중앙일보 차이나랩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의 경제를 자유롭게 오가는 중국 경제 전문가. 1989년 한국외국어대학 중국어과를 졸업했다. 한국경제신문에 입사하여 국제부 · 정치부 · 정보통신부를 거쳐 1999년부터 2006년까지 베이징과 상하이 특파원으로 근무했다. 상하이 화둥사범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중앙일보 차이나랩 선임기자로 두 눈 부릅뜨고 한국이 중국과 함께 살아갈 길을 모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중국의 13억 경제학', '세계 경제의 슈퍼엔진 중국', '상하이 리포트', '뉴차이나, 그들의 속도로 가라', '경제특파원의 신중국견문록', '차이나 인사이트 2021'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뉴차이나 리더 후진타오' 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