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과 34년 우정 속 태어난 빌 게이츠의 투자 원칙...주식 톱픽은 M7 아닌 ‘쓰레기 기업’
글 : 방현철 / 조선일보 기자 2025-05-07
지난 2월 5일 전 세계에 ‘소트프웨어 황제’ 빌 게이츠(Bill Gates)의 첫 회고록 ‘소스코드: 더 비기닝’이 출간됐다. 책벌레에 ‘컴퓨터 도사’로 통했던 어린 시절부터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했을 때까지 얘기가 빌 게이츠의 육성으로 담겨 있다. 그는 앞으로 마이크로소프트를 경영하던 시절을 다룬 두 번째 회고록과 현재의 삶을 다룬 세 번째 회고록을 낼 계획이다.
1955년생 빌 게이츠는 2025년 현재 70살이다. 1975년 소프트웨어 개발회사 마이크로소프트를 폴 앨런과 공동 창업했다. PC가 TV, 세탁기처럼 집집마다 들어서던 시기에 PC용 소프트웨어는 그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그의 재산 불리기는 회사 키우기와 동의어였다. 1986년 3월13일 마이크로소프트가 증시에 상장할 때 그는 회사 지분 45%를 갖고 있었다. 그 날 주가 28달러에, 시가총액 7억7700만 달러를 기록하자, 그의 재산은 3억5000만 달러쯤 됐다. 다음 해 재산은 10억 달러가 넘었고 31살에 미국 최연소 억만장자(재산이 10억 달러 넘는 부자)가 됐다. 1995년 재산이 129억 달러로 뛰자, 그는 ‘전 세계 최고 부자’라는 타이틀을 거머줬다. 1995~2007년 14년 연속 세계 1위 부자였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휘둘렀던 독점력이 한때 얼마나 컸던지 미국 정부는 1998년 반독점법을 위반했다고 소송을 냈고, 2000년 1심에서 회사를 둘로 나누라는 판결까지 받았다. 하지만 항소심에서 미국 정부와 경쟁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 합의해 회사 분할 위기를 넘겼다.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2000년 스티브 발머에게 넘겨주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지금은 자선 사업만 전념하고 있다. 현재 그의 재산은 1620억 달러(약 237조원) 정도로, 여전히 세계 10위권에 드는 갑부다.
투자 현인 워런 버핏과의 만남
빌 게이츠의 회고록을 보면,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하던 20대까지도 그는 주식 투자에는 관심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오로지 수학 그리고 컴퓨터와 소프트웨어에만 꽂혀 있었다. 청년기 재산은 마이크로소프트 주식이 대부분이었다.
그랬던 그가 주식 투자에도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있다. 가치투자자이자 ‘투자 현인’인 워런 버핏을 어머니 소개로 만나게 된 것이다. 첫 만남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1991년 7월4일이라는 날짜까지 둘은 명확히 기억하고 있다.
빌 게이츠는 처음에는 버핏을 안 만나려고 했다고 한다. 그 이유에서 청년기에 그가 주식을 보던 시각이 드러난다. 그는 2019년 한 컨퍼런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워런 버핏)은 시장의 불완전한 틈새를 찾아 사고파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회에 부가가치를 주지 못하고, 기생충같이 제로섬 게임을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버핏과 얘기를 나누면서 그런 생각은 바뀌었다. 주식 투자에 대한 관점도 바뀐 것 같다. 왜냐하면 그 후 자신의 마이크로소프트 주식을 조금씩 팔아 다른 주식에 분산 투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는 버핏이 회사의 매출, 주가 흐름 같은 주제를 꺼낼 것이라고 봤지만, 버핏은 ‘왜 IBM이 마이크로소프트가 하는 걸 못 하는가’와 같은 사업 본질에 대한 큰 그림을 물었다. 당시 빌 게이츠는 36살, 워런 버핏은 61살로 25사 차이였다. 하지만 둘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를 나눴다. 이날 만남은 그 후 수시로 서로에게 조언하는 사이로 발전하게 됐고, 둘은 나이를 뛰어넘은 진한 우정을 나누게 된다.
빌 게이츠는 2013년 링크드인 글에서 버핏에게 배운 투자 관점을 소개한 적이 있다. 첫째, 버핏은 아주 강력한 비즈니스적 사고 틀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기업이 해자(성 주위를 파서 적을 막는 구덩이)가 있는지 찾는다는 것이다. 해자가 성장하는지, 무너지고 있는지,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지 등을 보는 걸 사고 틀로 갖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버핏은 주주가 전체 비즈니스를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단기 이익도 좋지만, 장기 안목에서 비즈니스를 봐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셋째, 시장을 따라가기보다는 시장을 무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시장의 실수, 즉 기업이 저평가돼 있을 때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의 최근 주식 투자 포트폴리오를 보면 ‘버핏 원칙’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런 버핏의 조언을 자기 나름대로 소화해 투자에 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짜 ‘쓰레기 기업’ 주식에 투자한다
빌 게이츠는 1995년 캐스케이드라는 개인 투자 회사를 세워 자기 재산과 자선재단인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의 자산을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 회사는 비상장이라 정확한 투자 내역을 알기 어렵다. 다만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내는 분기 보고서나 대량 매매 공시 등으로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
인베스팅닷컴 등에 따르면, 2024년 말 현재 440억 달러에 달하는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의 주식 포트폴리오 중 90% 가까이는 6개 회사에 집중돼 있다. 1, 2위는 마이크소프트(28.5%)와 버크셔헤더웨이(21.2%)다.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 주식은 빌 게이츠, 버크셔헤더웨이는 워런 버핏의 기부이기 때문에 실제 운용 자산으로 보기 어렵다. 3위는 웨이스트매니지먼트(15.5%)라는 미국 최대 쓰레기 수거·처리회사다. 그 뒤를 캐나다 1위 철도회사인 캐나다내셔널철도(13.2%), 세계 1위 건설·광산 장비 업체인 캐터필러(6.3%), 미국 최대 농기계 제조회사인 디어앤드컴퍼니(3.6%)가 잇는다. 또 구루포커스 등에 따르면, 캐스케이드에서 직접 운용하는 426억 달러 규모의 주식 포트폴리오 중 1위는 미국 2위 쓰레기 수거·처리업체인 리퍼블릭서비스(61.4%)이고, 디어앤드컴퍼니(34.5%) 등이 다음이다.
빌 게이츠는 진짜 ‘쓰레기’를 수거·처리하는 업체에 상당한 투자를 하는 것이다. 실제 빌 게이츠는 리퍼블릭의 최대 주주고, 웨이스트는 2대 주주다. 테크 갑부의 주식 포트폴리오는 대표 테크주인 M7(마이크로소프트·애플·아마존·엔비디아·알파벳·메타·테슬라) 위주일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왜 소프트웨어 황제가 쓰레기 수거·처리 업체를 사실상 톱픽(엄선한 최고의 종목)으로 골랐을까. 버핏 원칙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비지니스에 ‘해자’를 만들어 놓고 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폐기물 수거·처리 규제가 늘어 신규 진입이 쉽지 않다. 누구에게나 필수 서비스라서 경기 부침에 따라 수요가 줄어들 위험도 적다. 독점적 사업자로서의 장점도 있다. 빌 게이츠 자신이 독점적 지위를 향유 했던 경험도 있는 만큼 사실상 독점 기업의 장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다른 투자자들이 주목하지 않기 때문에 ‘저평가’돼 있을 가능성도 크다. 장기적 성장성도 있다. 이들은 폐기물 처리 중 나오는 부산물로 친환경 발전 기술을 개발하고 있기도 하다.
빌 게이츠의 다른 주식 포트폴리오도 버핏 원칙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캐나다철도, 건설·광산기계, 농기계 등 각 분야에서 1위이면서 자신만의 해자를 구축하고 있는 기업들이다. 당장은 큰 이익이 나지 않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투자하는 것이다. 또 배당이 많은 배당주라는 공통점도 있다.
빌 게이츠는 2022년 자신은 비트코인에 투자하지 않는다면서 다음과 같이 얘기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 다시 그의 투자 철학을 엿볼 수 있다.
“나는 가치 있는 산출물을 내는 곳에 투자한다. 회사의 가치는 얼마나 좋은 제품을 만드느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와 달리 암호화폐 가치는 다른 사람이 얼마나 낼지에 달려 있다. 다른 투자와 달리 사회에 가치를 더하지 않는 것이다.”
방현철 조선일보 기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해 한국은행 은행감독원(현 금융감독원)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현재는 조선일보 경제부 기자로 재직 중이다. 편집부, 사회부, 주간조선부, 국제부, 사회정책부 등에서 일했으며 논설위원으로도 있었다. 서울대학교 국제지역원(국제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를 마치고, 한양대학교에서 ‘통화정책과 글로벌 임밸런스에 관한 연구’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부자들의 자녀교육』, 『중앙은행의 결정적 한마디』, 『J노믹스 vs. 아베노믹스』, 『코로나 화폐 전쟁』 등이 있으며, 번역서에 『직장인을 위한 행동경제학』, 『머니』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