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를 어떻게 보내는가가 남은 삶을 좌우한다
글 : 한소원 /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2025-04-29
나이 들어가면서 몸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고 느끼는 일이 잦아진다. 그런데 그 다름이 확연히 드러나는 때가 있다. 지난해 8월, 학술지 ‘네이처 에이징(Nature Aging)’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노화는 44세와 60세라는 특정 시점에 급격히 이루어진다고 한다. 연구를 이끈 마이클 스나이더(Michael P. Snyder) 스탠퍼드대학교 유전학 교수는 “노화는 대부분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비선형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설명하면서 적당한 운동과 건강한 식습관이 노화로 인한 충격을 최소화하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노화의 변곡점을 지나면서 알코올과 카페인 대사율이 급격히 떨어지게 돼 40대 중반부터는 숙취 회복이 느려지고 커피를 마시면 잠을 못 자는 사람이 많아진다.
이 연구에서 밝혀진 44세와 60세라는 노화의 분수령은 단순히 생물학적 변화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시기는 개인의 삶에서 사회적·심리적 변화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자녀들이 성장하며 독립하는 과정에서 결혼생활의 가치를 재점검하려는 기회를 갖기도 하고 연로한 부모님을 돌보며 삶의 유한성을 실감하기도 한다. 여성의 경우 40대 중반부터 50대까지 폐경 전후로 갱년기 증상을 겪게 된다. 두 번의 노화 층계 사이에 자리 잡은 50대는 어떤 시기일까? 50대는 사춘기 못지않은 질풍노도의 시기로 비유될 수 있다. 신체적·사회적·경제적 변화가 급격히 이루어지는 50대를 어떻게 보내는가가 남은 생을 크게 좌우할 수 있다.
똑똑하게 생각하고 행복하게 나이 들기
이전까지 노화에 대한 연구는 의학적 접근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많은 사람이 의료비용을 감당하기 위한 경제적 준비가 노년기를 대비하는 유일한 대책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질병 치료에만 집중하는 의학적 접근은 노화의 일부 측면을 다룰 뿐이다. 예컨대 노년기에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 중 하나로 꼽히는 치매는 65세 이상 인구의 약 10%에서 진단되고 있다. 높은 비율처럼 보이지만, 반대로 말하면 90%는 치매 없이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90%를 대상으로 똑똑하게 생각하고 행복하게 나이 드는 방법을 제시하고자 <나이를 이기는 심리학>이라는 실용 에세이를 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노후 준비란 경제적 든든함이라는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경제적인 준비는 당연히 중요하다. 그러나 수많은 연구는 현재 느끼는 삶의 만족감과 사회적 연결이 행복한 노화를 위한 핵심 요소임을 보여준다. 나이 들어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나이에 따른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순간순간 즐거움을 발견하는 것이다.
몸을 움직여라
“새로운 경험이 젊은 뇌를 만든다.” 늘 강조하는 이야기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뇌와 몸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건강한 신체는 건강한 뇌를 만든다. 과학자들은 활발한 신체활동과 더불어 문화와 예술을 가까이하는 것이 건강한 뇌와 마음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말한다.
인생이란 한 가지 길만을 달려가 도달하는 종착지가 아니다. 오히려 여러 방향으로 나아가며 새로운 경험을 쌓고, 몸과 마음의 균형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몸을 움직이는 실천이 당신의 뇌와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늦둥이를 키우는 부모를 보면 종종 더 젊어 보인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이는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늦게 출산한 부모는 젊음과 관련된 호르몬 분비가 증가해 자연스럽게 더 젊어진다고 한다. 이는 뇌가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호르몬 조절을 통해 적응하는 생명체의 본능 덕분이다.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물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하고 균형 잡힌 식생활을 실천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나이에 얽매여 살 필요는 없다. 뇌는 적응을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우리 또한 변화할 수 있다. 모두가 늦게 출산하자는 것이 아니다. 건강하고 활기찬 뇌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은 춤추고, 노래하고,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이런 활동이 우리의 뇌를 자극하고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뇌의 변화를 믿고 활기찬 삶을 살아보자.
50대의 사회적 관계가 노후를 결정한다
노인들은 단순히 모든 일에 느린 것이 아니다.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것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살아온 기간이 길고 쌓아온 경험이 많다는 것은 뇌에 남은 흔적이 많다는 것이다. 그만큼 자동화되어 의식하지 못하는 습관과 생각의 틀이 굳어져 있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노인들이 변화를 원치 않고 이전의 것들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할 수 밖에 없다.
새로운 도전이 어려울 수 있지만, 배우려는 마음을 지속하고 사회적 연결을 유지하는 것이 뇌가 굳어지는 것을 막는 길이다. 예를 들어 일본 오키나와 사람들은 ‘모아이(模合)’라는 평생공동체그룹을 만들어 한 동네에서 삶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한 친구를 가지고 살아간다. 아침에 눈을 뜰 의미를 찾고 관계 속에서 활력을 찾는 것은 우리의 뇌와 삶에 모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하버드대에서 1938년부터 시작해 85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하버드 성인발달 연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행복에 관한 연구로,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연구진은 하버드대 남학생 268명과, 보스턴의 가난한 지역에 사는 남학생 456명을 평생 동안 추적하며, 이들의 삶과 건강, 행복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그 긴 연구의 결론은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만족스럽고 좋은 인간관계가 행복과 건강을 결정한다.”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위해 중요한 것은 단순히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그 관계의 질이다. 갈등이 많고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은 이혼보다 건강에 더 해롭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특히 50세 무렵 만족스러운 사회적 관계를 유지한 사람들이 80세에 가장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사실은 깊이 새겨볼 만하다.
노후는 ‘쉬는 시간’이 아니다
우리는 젊을 때 열심히 일하면 노후에 편히 쉴 수 있다는 상식을 믿어왔다. 그러나 노후를 단순히 ‘쉬는 시간’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개미와 베짱이의 교훈처럼, 언제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며 노후를 삶에서 단절된 시기로 여기는 건 잘못된 접근이다.
직장에서 은퇴한다고 해서 삶 자체에서 은퇴하는 것은 아니다. 통계에 따르면, 삶의 유한성을 느끼는 노인들의 행복지수가 오히려 젊은 사람들보다 높다. 작은 책임감과 의미를 찾는 것이 노년기 삶의 질을 크게 높인다는 연구도 있다. 요양원에서 화초를 돌보는 책임을 맡은 노인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건강이 회복되고 수명도 연장되었다는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직업을 정체성의 중심으로 삼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은퇴는 삶의 끝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시작으로 봐야 한다. 필자 역시 50대라는 길 한가운데를 지나며, 끊임없이 새로운 경험과 도전을 다짐하고 있다.

한소원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에서 인지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학 심리학과 교수로 10여 년간 연구하며 학생들을 지도한 뒤, 현재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인지과학과 인간공학심리학, 정서과학 등을 강의하고 있으며, 특히 뇌 가소성, 심리학과 인공지능, 인간-로봇 상호작용, 스마트 에이징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나이를 이기는 심리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