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에게 집은 과연 안전한 곳일까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시니어에게 집은 과연 안전한 곳일까

글 : 이필재 / 인물 스토리텔러 2025-04-29

“노인, 청년, 아동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주거를 만들어야 합니다. 세대 교류형 주거시설이죠. 65세 이상 노인만 들어갈 수 있고 가족도 같이 못 들어가는 실버타운 말고. 저는 나이 들어 실버타운에 갈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나이 들어 어디서 살 것인가>의 저자인 김경인 박사는 “나이가 들면 다른 세대와 섞여서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사회에 노인 혐오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노인과 청년이 같은 공간에 있다 보면 서로를 이해하게 돼 세대 간 단절과 노인 혐오를 완화할 수 있습니다. 노인 당사자도 자기들끼리만 어울리면 서로 우울해 져요.”

그는 노인들이 지하철·카페 같은 공공장소에서 고함 지르듯 언성을 높이는 건 청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노인과 섞이다 보면 젊은 세대도 그런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세대 교류형 주거시설이라는 게 누구나 살 수 있는 일종의 공동주택인데 노인들에게 편리하고 노인이 특별 배려도 받는 시설 같습니다. 


“그런 특별 배려를 안 받으면 노인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경우 키워드가 돌봄에서 자립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다른 세대와 마찬가지로, 노인도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존엄과 자립이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거죠.”


대가족제로 다시 돌아갈 순 없으니 단지 단위로 젊은 사람들과 섞이게 하는 거군요?


“한 건물 안에서 서로 섞일 수도 있고, 별도의 커뮤니티 시설에서 섞일 수도 있죠. 비근한 예로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칩니다. 수직적 세대 교류죠. 이렇게만 해도 노인들이 정서적인 안정을 얻고 고립을 피할 수 있습니다. 노인이 나름의 역할을 할 수도 있죠. 일본의 경우 치매 노인도 이런 주거시설에서 경제활동을 하게 합니다.”


그는 세대 교류형 주거 시설의 핵심 콘셉트는 다른 세대끼리 만나는 공간을 반드시 설계에 반영하고 거기서 일상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박사는 환경조경학·건축을 전공한 신경건축학자다. 신경건축학은 공간과 환경이 사람의 정서, 사고, 행동 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얻은 결과치를 이번엔 공간 및 건축 설계에 반영한다. 그 공간이 도시로 확장되기도 한다. 



문제는 세대 교류형 주거시설을 만드는 방법론인데요?


“일례로 일본은 임대 아파트에 빈집이 생기면 고령자를 입주시킵니다. 분산형 고령자 주택이죠. 이 경우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세대 교류가 이루어져요. 리모델링하면서 도심 공동주택의 특정 동을 고령자 주택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면 식당·도서관 등의 동네 커뮤니티 시설에서 교류가 일어나죠. 특정 건물 1층에 노인시설과 어린이집을 배치하고, 2~3층에 젊은 세대를 위한 시설을 넣기도 합니다. 그 위엔 서비스가 필요한 고령자를 위한 시설, 맨 위에 서비스를 필요로 하지 않는 고령자 시설을 입주시키는 겁니다. 그럼 한 건물 안에서 각종 세대가 섞이겠죠.”


그는 노화란 나이가 들면서 기능이 서서히 퇴화, 장애인이 되어가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도 면에서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전 세대가 교류하는 복합 시설을 만들려면 노인 시설과 청년 시설의 관리부서가 서로 달라 필요한 예산 지원을 받기가 어려워요.”

수요자로서는 부서 간 칸막이 탓에 원스톱 서비스를 받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도 필요해 보입니다.


“노인 문제를 돌봄으로 접근하면 모종의 시설이 필요하고, 자립으로 접근하면 그냥 본래 살던 집이면 돼요. 단적으로 치매를 예로 들면, 위염처럼 하나의 병이잖아요? 위염을 앓는다고 우리가 환자를 격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죠. 치매도,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분리하기보다 공존하고, 그러기 위해서도 세대 간에 교류를 해야 합니다.”


실버타운에 대해 회의적이신데요?


“실버타운의 여러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면 치매가 빨리 옵니다. 기능이 퇴화하는 거죠. 노후엔 밥 한 끼는 직접 해 먹는 게 좋습니다. 음식을 만들려면 머리를 쓰고 근육을 움직여야 하거든요. 요리는 치매를 예방하는 운동이자 종합예술이죠. 그래서 남성 노인들도 해야 합니다. 음식은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도 있어요. 가지, 호박처럼 수확할 수 있는 작물을 키우는 것도 좋아요. 호박전을 만들어 주변에 돌리면 금상첨화죠. 우리나라 실버타운은 한 마디로 편의성은 뛰어나지만, 고립된 성채처럼 개방성이 약합니다. 우리와 달리 외국의 실버타운은 시설을 개방합니다. 그래야 지역사회 주민과 섞이죠. 우리나라 실버타운은 마치 호텔처럼 전반적으로 시설은 세련됐는데 인간적인 따뜻함이 부족해요. 실수요자인 노인이 아니라 입주 의사결정을 하는 자녀들 눈높이에 맞췄기 때문이죠. 실버타운 설계에 실버는 없다? 그런 점에서 노인의 정체성도 배제됐다고 할 수 있죠.”


그는 일본은 도시 재생을 병행한 중저가 실버타운도 있다고 말했다. 입주자는 파트 타이머로 일해 주거 비용을 조달하기도 한다.



나이 들면 집이 위험하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하십니다. 


“고령자 사고의 63%가 집에서 납니다. 집에서 넘어져 낙상을 당하고서 집을 고치는 건 자칫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될 수 있어요. 나이 들어 근력이 약해지고 균형감각이 떨어지면 낙상을 당하기 쉬운데 낙상으로 가장 심하게 다치는 곳이 욕실이에요. 집에서 일어나는 낙상 사고의 한 70%를 차지하죠. 욕실 바닥이 타일이면 논슬립 타일로 바꾸거나 논슬립 스티커를 붙이는 게 좋습니다. 슬리퍼도 논슬립 슬리퍼로 바꾸면 걸을 때 잘 밀리지 않아요. 화장실에 손잡이(핸드레일)을 달고, 샤워부스 바닥의 작은 단차도 없애는 게 좋아요. 욕실에서 쓰러지면 가족들의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세면대와 가구는 모서리가 둥근 게 좋다. 돌리는 문손잡이는 힘이 없는 노인이 문을 열지 못해 방안에 갇힐 수도 있다. 바퀴 달린 의자도 노인에겐 위험하다. 문턱, 현관·거실 공간 사이의 단차도 없애는 게 좋다. 가스레인지는 인덕션으로 교체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는 노인의 낙상이 특히 위험한 건 골절이 되면 누워서 지내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병상에 오래 누워 있으면 근육이 빠집니다. 근육이 빠지면 치매가 오기 쉬워요.”


인지장애를 겪는 노인들을 위한 조언도 주시죠. 


“현란한 패턴의 벽지를 피하고, 벽과 바닥 색을 달리하는 게 좋습니다. 치매 환자의 경우 사물을 잘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물 간에 색차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옛 기억을 상기시키는 가족사진, 기념이 될 만한 물건 같은 걸 배치하는 것도 좋습니다. 밤에 약한 조명의 전등을 켜두고, 전등 스위치에 야광 스티커를 붙여두는 것도 도움이 돼요. 침대 핸드레일도 필요합니다.”


환경 색채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수정체 황변을 겪는 노인의 경우 파란색 계통의 색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노인을 위한 시설은 무지개의 일곱 색깔 중 녹색 아래 쪽 색을 써야 한다고 했다. 


노인들로서는 이런저런 수리 및 교체 비용도 신경이 쓰일 텐데요?


“다쳐서 드는 병원비에 비하면 훨씬 덜 듭니다. 욕실에 논슬립 스티커 붙이고 논슬립 슬리퍼로 교체하는 건 10만 원도 안 들어요.”


일본에서 유학한 그는 일본의 경우 지자체가 이런 경비를 고령자에게 지원해 준다고 했다. 

“이렇게 경비를 지원하면 의료, 복지 등 초고령사회의 사회적 비용을 감축하는 효과가 있어요. 국내에서도 서울 성동구가 이런 ‘에이징 인 플레이스(AIP)’ 사업을 합니다. 자기 집에서 노후를 보내도록 주거 환경을 개선해 주는데 1000 가구 이상 지원했습니다. 스스로 일상생활을 할 능력이 되는 노인 즉 자립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살던 집에서 살게 하는 거죠. 실버타운에 반드시 하는 시설 가운데 몇 가지만 하면 됩니다. 독거노인의 경우 비상벨도 필요해요.”


에이징 인 커뮤니티(AIC)는 노후에 특정 주택 단지를 포괄하는 지역사회 주민들과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이다. 

“아파트 커뮤니티 시설을 입주자만 이용할 수 있는 건 AIC에 반하는 거죠. 세대 교류도 AIP를 넘어 AIC로 이행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고령 친화 도시로 나아가야죠.”



노후에 살 집을 고르는 조건이 뭐라고 보나요?


“접근성이 뛰어나고, 집 안으로 들어가면 안전해야죠. 집을 나서면 다른 사람들과 교류가 가능해야 하고요. 사람은 하루의 90% 가까이 건물 안에 있습니다. 그 공간이 노후엔 거의 집이죠. 외출의 편의를 생각하면 역세권에, 공동주택의 경우 6층 이하가 바람직합니다. 주변에 녹지가 있고 병원이 가까우면 더 바랄 게 없죠.”


노후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인으로는 뭘 꼽겠습니까?


“자립의 조건인 자율성을 첫손에 꼽고 싶습니다. 또 교류할 친구가 있고, 의미 있는 활동도 해야죠. 경제 활동이면 더 좋고, 봉사활동이라도 하는 게 좋습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노후에 사람을 만나고 돈도 버는 택시 운전을 하는 거 같아요.”


김 박사는 얼마 전 경관 디자인을 하는 사업체를 정리했다. 노는 게 너무 행복하다는 그는 다섯 가지 활동에 집중한다고 했다. 읽고, 쓰고, 여행하기 그리고 강의와 컨설팅. 



<나이 들어 어디서 살 것인가>의 핵심 메시지가 뭔가요?


“나이 들면 여태 살던 곳에서 자립과 존엄을 지키면서 살라. 자립을 지속할 수 있어야 존엄도 지킬 수 있습니다. ‘인생 후르츠’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인 건축가가 집을 지어 아내와 존엄하게 살다 97세에 텃밭을 매고 온 후 낮잠을 자듯 세상을 떠납니다. 말 그대로 존엄사죠.”


버킷 리스트가 뭔가요?


“책 50권 쓰기입니다. 지금까지 21권을 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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