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안녕, 이젠 나를 위한 돌봄의 시간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마지막 안녕, 이젠 나를 위한 돌봄의 시간

글 : 이은주 / 요양보호사, 작가, 일본문학번역가 2025-04-28


이제 엄마의 버킷리스트를 더는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지난 2월 119에 실려 갔을 때 양쪽 뇌에 경미한 뇌출혈이 있었다. 엄마는 2주간의 집중 치료를 받고 퇴원했으나 입원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엄마는 다시 웃지 않았고, 무표정했고, 하루 종일 누워 계셨다. 그리고 삼킴 기능이 저하해서 죽을 드시게 되었다.

엄마와 맞는 봄이 이번이 마지막이 되는 게 아닐까 매일 불안했고, 엄마를 더 이상 기쁘게 해드릴 수 없어서 절망했으며 어디가 조금만 아프다고 하면 새가슴이 되어 큰 병이 걸린 게 아닌가 하고 전전긍긍 했다.


돌봄의 끝자락에서 무너졌던 나


나는 점점 막막하고 무기력해졌다. 책도 음악도 영화도 재미없어지는 자신이 낯설었다. '잘 돌보면 건강해진다'고, 좋은 돌봄을 위해서는 지치지 않는 '자기 돌봄'이 중요하다고 강연을 하고 다녔던 내가 지난 나를 부정하는 것만 같았다. 부모 돌봄을 하는 분들이 내 글을 읽고 위로를 받고 힘을 낸다고 했는데 정작 나는 지쳐가고 있다는 걸 어디에도 말할 데가 없었다. 힘들다는 말이 스스럼없이 나와서 함께 엄마의 돌봄을 하는 남동생까지 힘들게 할까봐 조심했다.


틸다 스윈튼 주연의 룸 넥스트 도어의 원작인 시그리드 누네즈 작 『어떻게 지내요』를 읽으면서 친구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는 주인공의 독백이 그대로 몸에 새겨지는 것 같았다. 자식으로서 아무것도 해드릴게 없을 때, 현재 상태를 유지, 보완하는 것 이외에는 그 어떤 대안도 없을 때 이 책을 읽으며 돌봄에 대해서 고민하던 내가 이제는 죽음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엄마에게 해드릴 수 있는 것은 그냥 지켜보기였으나 그 지켜보는 시간 자체가 부모 돌봄에서는 가장 절박한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루 종일 누워있는 엄마를 위해 엄마의 손과 발, 배에서 등까지 마사지를 해드림으로써 생각도 못한 돌봄의 차원이 바뀔 때도 있었다. 더는 해드릴게 없는 것 같다가도 삼킴장애가 있는 엄마의 식사를 돕기 위해 도깨비 방망이를 주문하여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는 것도 지난 몇 주 동안의 소득이었다.



이제는 나를 돌볼 결심 


내 안의 욕구는 엄마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엄마가 생의 마지막 일상을 집에서 보내고자 했던 것을 존중하는 일로 진전되었다. 그것은 아직 가보지 않은 길로 미래의 이야기인 동시에 현재 진행형이라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그 정리되는 과정을 글로 옮기기에는 내적 시간이 필요하다.


연재를 끝마칠 때가 온 것 같다. 이제 가족 돌봄의 다음 단계인 나를 위한 돌봄이 필요한 시점이 찾아왔다. 그 동안 돌봄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가슴 깊이 감사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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