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자초하고 있는 위기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트럼프가 자초하고 있는 위기

글 : 스티븐 로치 / 예일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2025-03-28

“나 혼자서도 다 고칠 수 있다.”(I alone can fix it.) 


2016년에 대통령 후보 지명을 수락하면서 트럼프는 위와 같이 주장했다. 정확히 뭘 고친다는건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빌 클린턴이 1992년 대통령 선거전에서 썼던 유명한 구호를 빌려서 말한다면 “바로 경제지, 멍청아”(It’s the economy, stupid!)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트럼프는 다시 한번 더 미국 경제가 ‘위기’에 빠져 있고 ‘재난 상태’라고 외치면서 선거전을 치렀다. 그리고 그는 ‘미국의 황금시대’를 만들겠다는 경건한 약속과 함께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미국 경제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의 음울한 진단은 현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최소한 아직까지는 그렇다.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을 합한 수치인 미국의 ‘불행지수’를 보면 경제가 그 정도로 나쁘다고 보기는 어렵다. 불행지수는 팬데믹 이후 정점을 찍었던 2022년 중반에 12.7%였다가 2025년 1월에는 7.0%로 내려왔는데 이는 2차대전 종전 이후 평균치인 9.2%보다 2%포인트 이상 낮은 수치다. 사실 최근 수치는 트럼프가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제’였다고 자찬하는 트럼프 1기 정부(2017~2020)의 평균치인 6.9%와 크게 다름이 없다.


선거 때 하는 말과 실제 정책은 다를 수 있다. 특히 선거 때 틀린 말을 많이 했다면 더욱 그렇다. 다만 문제는 트럼프 2기가 시작되자마자 쏟아진 73가지의 각종 행정명령이 트럼프가 상상하고 있는 위기를 실제로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관세가 초래할 인플레 압력이 바로 그런 경우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나는 트럼프 1기 당시의 대중국 관세 인상보다 지금의 ‘상호관세’가 더 우려스럽다. 트럼프의 상호관세 정책의 기저에는 전 세계 가 미국의 모델에 순응해야 한다는 트럼프의 믿음과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는 관세라는 수단을 무자비하게 사용하겠다는 결의가 깔려 있다. 이런 방식은 비단 무역 뿐만 아니라 산업정책, 부가세, 디지털세, 통화 운용, 비무역 장벽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트럼프 정책은 이미 확립된 효율적인 공급망뿐만 아니라 1934년의 상호관세 협정 이후 미국이 맺은 8차례의 상호관세 협정을 무시하는 것이다. 상호주의를 그렇게 부르짖는 트럼프 정부는 정말 이런 맥락을 모르는 것일까?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트럼프 정부는 자기들의 정책이 초래할 인플레 위험에 대해서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2018~2019년 당시의 관세 인상 이후에도 인플레는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런 주장의 근거다. 하지만 그런 비교는 틀렸다. 당시 중국만 대상으로 했던 관세 인상과는 다르게 최근의 상호관세는 미국의 모든 무역 상대국을 대상으로 한다. 더구나 지금은 코어 인플레율(식량과 에너지를 제외한 인플레율)이 연준의 목표 인플레율인 2%를 훨씬 넘어서는 3.3%를 기록하고 있다. 트럼프 1기 정부 당시 평균 코어 인플레율은 연준의 목표에 근접했다.


트럼프는 좋아하지 않겠지만, 관세 인상 때문에 인플레 조짐이 보이면 연준은 금리 인하에 훨씬 신중해질 것이 다. 게다가 일단 가격 인상의 파도가 닥치면 그 여파는 달걀 값 정도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미시간대의 최신 조사에 의하면 미국 소비자는 향후 5~10년 사이에 인플레율이 3.5%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는 199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또 다른 우려는 트럼프의 정책이 현재 금융시장에 만연한 불안을 터뜨릴 지 모른다는 것이다. 미국 주식시장은 인공지능 투자 붐에 힘입어 상승 행진을 계속해 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AI 개발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은 알파벳, 아마존, 애플,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테슬라 등의 ‘매그니피슨트 7’은 2022년 말과 비교해 3.2배가 올랐다. 블룸버그의 계산에 따르면 이들의 PER은 32.9배인데 이는 다른 대형주의 PER 평균에 비해 40%가 더 높은 것이다.


더구나 이 매그니피슨트 7은 S&P 500 시가총액 중 34%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2000년 3월 닷컴 버블이 터지기 직전의 인터넷 부문 기업 비중보다 거의 6배가 높은 것이다. 지난 1월 말에 중국의 딥시크라는 작은 스타트업이 미국의 빅테크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거의 비슷한 성능을 내는 제품을 만들어냈다는 충격적인 소식 때문에 폭락장이 연출되었는데 이는 현재 주식시장의 힘이 비정상적으로 한쪽에 쏠려 있음을 잘 보여준다. AI가 혁명적인 기술적 돌파구가 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이런 투기적 거품이 터지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미국의 패권이 위협받고 있다


나는 또한 급격한 달러 가치 하락도 걱정스럽다. 나는 2020년 중반에 달러 급락을 예측했다가 틀린 적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러 인덱스가 최고점을 향해 가고 있어서 더욱 걱정스럽다. 미국의 현재 경상수지 적자와 국내 저축 부족은 2020년 중반보다 정도가 훨씬 심하다. 최근 금리가 정상화된 직후라 다시 인상하기가 어려운데, AI 버블이 결국 터진다면 전 자산 부문에서 하락세가 나타날 수 있다. 달러 패권을 지탱하는 미국 예외주의도 또한 위기에 처할 수 있다.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운동이 강화되면서 도덕성, 품격, 법의 지배, 동맹에 대한 지지 등 미국의 핵심적인 소프트 파워에 대한 신뢰가 약화되고 있다.


양극화된 미국 사회는 끊임없이 트럼프가 단순히 광인인지, 노련한 협상가 인지를 놓고 입씨름을 벌이고 있다. MAGA 지지자들은 노련한 협상가가 외적으로부터 양보를 받아내어 결국 승리를 거두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런 험한 시절에 그런 달콤한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짓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결국 미국은 트럼프가 잘 처리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 경제적 위기에 맞닥뜨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비로소 불행 지수가 그 이름에 걸맞는 수치를 보여줄 것이다.

뉴스레터 구독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뉴스레터를 신청하시면 주 1회 노후준비에 도움이 되는 유익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 이메일
  • 개인정보 수집∙이용

    약관보기
  • 광고성 정보 수신

    약관보기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뉴스레터를 구독한 이메일 조회로 정보변경이 가능합니다.

  • 신규 이메일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뉴스레터를 구독한 이메일 조회로 구독취소가 가능합니다.

  •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