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이후에도 일하는 그들이 누리고 있는 의외의 혜택
글 : 이제경 / 100세경영연구원 원장 2025-03-07
언제까지 일하는 게 가장 좋을까. 조기은퇴를 꿈꾸는 사람도 있고, 죽을 때까지 손에서 일을 놓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퇴직 시기는 뜻대로 되지 않는다. 몇 살까지 일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막상 퇴직시기가 되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은퇴자금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퇴직 이후의 지루함을 견뎌낼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대로 일을 더 하고 싶지만, 건강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경력관리는 100세 인생설계에서 중요한 영역이다. 일을 하면 자연스럽게 은퇴자금을 모을 수 있고, 일을 통한 성취감과 만족감을 맛볼 수 있으며,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호흡을 같이하면서 외로움과 우울증 등을 날려버릴 수 있어 정신건강에도 좋다. 이처럼 일은 노후를 지켜주는 보약이나 다름없다.
많은 사람들이 퇴직을 고려할 때 국민연금 수령 시기를 기준으로 삼는다. 가령 65세에 국민연금을 받는다면, 그때까지만 일하겠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동안 모아뒀던 돈에다 국민연금을 합치면 그럭저럭 노후생활이 가능하다고 판단한다. 이들은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퇴직 시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건강 위한다면 퇴직 앞당기기 보단 늦춰야
건강을 고려해서 조기퇴직을 결심한 퇴직자들도 더러 있다. 좀 더 윤택한 노후생활을 위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일하기 보다는 건강을 지키는 게 남는 장사라는 믿음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건강을 생각해서 조기은퇴를 고려한다면,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학교 조 마이리 해일 연구팀의 논문을 한번쯤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미국 직장인(55~75세)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오래 일할수록 정신건강이 좋았기 때문이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조기퇴직을 하는 게 옳은 방향이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오히려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조기퇴직 대신 오래 일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시사점을 던져준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해일 연구팀은 HRS(미국 건강 및 퇴직연구) 자료를 토대로 1996년부터 2014년까지 2만여명의 직장인을 추적 관찰했고, 지난 2021년에 SSM-PH(Population Health)란 학술지에 발표했다. 연구 결과는 68세 이후 퇴직자그룹이 67세 이전(61~67세) 퇴직자그룹에 비해 인지기능이 양호했다. 인지기능 저하 속도가 무려 30%가량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치매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노후에도 일하는 게 더 좋다는 결론에 이른다. 해일 연구팀은 교육수준, 직업 복잡성, 경제여건 등이 인지기능에 영향을 미치는지도 함께 살펴봤다. 그러나 이런 요소는 인지기능 저하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직업에 종사하거나, 열악한 재정상태에 놓인 상황에서도 68세 이후까지 일한다고 해서 인지기능이 더 나빠지지 않는 걸로 조사됐다.
해일 연구팀의 결과를 뒤집어 접근하는 연구도 있다. 정신건강이 근속연령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올리비아 로시에비츠(UCLA) 연구팀은 사회적 불안과 우울증 증상이 근무시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다. 이들 장애를 앓고 있는 250명의 실업자를 대상으로 48주 동안 추적 관찰한 결과 인지행동치료(CBT)를 제공받은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근무시간이 늘어났음을 확인했다. 이를 바꿔 해석하면 우울증과 사회적 불안장애가 근속연령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로시에비츠 연구팀은 근무시간이 사회적 불안과 우울증 증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함께 분석했다. 결과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걸로 나왔다. 정년을 넘겨 일한다고 해서 정신건강이 나빠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이브리드 퇴직, 어때요
퇴직시기를 고려할 때 더 이상 국민연금 수령 시기와 연계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은퇴자금을 크게 걱정하지 않을 만큼 재무적 독립을 이뤘다고 해서 조기은퇴를 선택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오래 일 하는 게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정규직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앞에서 말한 해일 연구팀도 주당 25시간 이상 근로자를 일하는 집단으로 분류했다.
일이 경제적 웰빙뿐 아니라 정서적 웰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하는 일이 너무 버겁거나, 건강을 해칠 정도라면 내 몸에 맞는 일을 찾는 게 현명하다. 노후 일자리는 무엇보다도 건강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 또한 잘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하고, 좋아하는 일이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고, 여기에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일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노후에도 일을 통해 재무적 독립과 정서적 웰빙을 함께 거머쥐려면 목적 지향적인 삶에 관심을 두는 게 좋다. 가치 지향적인 일이 아닌, 오직 돈을 벌기 위한 일은 우리의 몸과 영혼을 망가뜨릴 수 있다.
“인간은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희생한다. 그런 다음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돈을 희생한다.”
티베트 망명정부 정치 지도자였던 달라이 라마가 남긴 말이다.
돈을 벌기 위해 정규직만을 고집할 게 아니라 목적 있는 삶을 위해서라도 ‘하이브리드 퇴직’을 고려해볼만 하다. 어린이에게 놀이가 일이듯이, 노후엔 일이 놀이나 다름없다. 치매에 걸리지 않으려면 노후에도 일하는 게 좋고, 노후에도 일할 수 있으려면 젊었을 때부터 우울증과 사회적 불안장애에 걸리지 않도록 특별히 신경 써야 할 것 같다.

이제경 100세경영연구원 원장
‘매경이코노미’ 편집장을 역임하기까지 21년 동안 매일경제신문사에서 취재기자로 활동했고, 라이나생명에서 10년 동안 전무이사로 커뮤니케이션 책임자와 최고고객책임자(CCO)로 일했다. 주경야독을 통해 경제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경희대와 숙명여대에서 겸임교수로도 활동했다. 현재 ㈜에코마케팅 감사, 100세경영연구원 원장(비상임)으로 있다. 저서로는 『인생을 바꾸는 100세 달력』, 『All Ready? 행복한 은퇴를 위한 모든 것(대표저자)』, 『스타 재테크(공저)』, 『잘 나가는 기업, 경영비법은 있다(공저)』 『재테크박사』 등이 있다. 가치 있는 삶을 스스로 진단할 수 있는 ‘개인의 사회책임(ISR) 지수’를 창안하기도 했다. 필자 이메일 주소: happylogin1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