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는 플랜B가 필요하다
글 : 버들치 / 작가 2025-03-04
며칠 전 퇴직한 회사 동료가 찾아왔다. 회사를 그만둔 뒤 정기적으로 만나는 몇 안 되는 회사 후배다. 퇴직 후 1년간 월급을 주는 예비 실업자에서 그 기간이 다해 이젠 진짜 실업자로 편입이 되었다. 실업자인데 실업급여를 못 받는다. (비상근)임원으로 퇴직했기 때문이란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구직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구인 구직 플랫폼을 통해 수십 군데 이력서를 썼지만 면접은 손에 꼽을 정도고 출근하라고 연락받은 곳은 없다고 한다.
금융 기관에서 근무한 경력은 사회에 나오면 별 쓸모가 없다. 그리고 "편하게 회사 생활했네"라는 소릴 안 들으면 다행이다. 회사를 다니고 있을 때의 이직은 능력으로 인정받고 또 스카우트의 경우 더 높은 연봉을 받고 가지만, 일단 회사를 나오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타의든 자의든 퇴직했다는 것은 불편한 진실이고 회사를 떠나올 당시를 생각하면 그리 유쾌하지 않다. 어떤 분들은 아직까지도 기분이 더럽다고 한다. 퇴직했다는 사실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면접관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 편견을 갖게 할 것이라는 지레 짐작으로 면접을 보면서도 의기소침해진다. 이래저래 유기된 반려견처럼 처량한 신세라고 느껴지는 상실감 또한 이루 말할 수 없다.
모두가 원하는 안정적인 사무직, 기회는 많지 않다
구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무직을 원하다 보니 운신의 폭은 더 좁아진다. 영업직과 기능직을 뽑는 구인 광고는 많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사무직을 선호한다. 사람들은 급여가 영업 성과에 연동되는 영업직과 근무 환경이 열악한 기능직 보다 안정적인 사무직을 더 선호한다. 인적 네트워크가 알차고 든든하다면 연줄을 통한 취업도 고려해 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의 연줄이란 게 방치된 폐가의 거미줄처럼 허약하고 허술하고 허접한 게 현실이다.
이력서를 쓸 때 재직 시의 경험과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유효 기간을 대개 1년 정도로 본다. 아니 요즘은 6개월 정도로 당겨졌다고 한다. 그때까지 연락이 안 오면 과거의 직무로는 취업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오늘 찾아온 후배는 일단, 과거 담당했던 직무를 중심으로 구직활동에 집중해야 하고 틈틈이 다른 제3의 길도 모색해야 한다. 소위 말하는 플랜 B다.
플랜B는 쪽팔림을 넘어서야 한다
플랜 B는 플랜 A와는 근본적으로 달라야 한다. 최소 6개월에서 1년 정도 계획과 준비가 수반되어야 한다. 플랜 A가 과거 현직에 있었던 직종이거나 유사한 업무였다면 플랜 B는 전혀 다른 직종이어야 한다. 플랜 A가 사무직이었다면 플랜 B는 기능직 또는 현장직과 같이 전혀 다른 직종으로 진로를 모색해야 한다. 진로를 모색할 때 사람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번듯한 일자리나 남들에게 쪽팔리지 않는 일자리다. 그러나 그런 정신머리로는 플랜 B는 요원하다고 봐야 한다.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기에 앞서 내적 갈등과 저항에 백기를 들고 투항할 것이 뻔하다. 그러나 그걸 극복해야 비로소 플랜 B에 들어설 수 있다.
가끔 TV 채널을 돌리다 자연 다큐멘터리를 본다. 보면서 든 생각은 동물의 세계든 사람 사는 세상이든 생존은 어렵고 고달프고 서럽다는 것이다. 동물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먹이 활동을 한다. 초식 동물은 계절에 따라 또는 기후 변화에 따라 활동 영역을 옮겨가며 먹이 활동을 하고 육식 동물들 또한 초식 동물을 뒤쫓아 움직인다. 초식 동물 보다 육식 동물이 더 편한 것도 아니다. 사자도 사냥을 하다 허탕치기도 하고 또 큰 상처를 입기도 한다. 모든 동물들은 늙거나 몸이 쇠하면 편안히 눈을 감는 것이 아니라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어 사라진다. 하늘에서 본 세렝게티는 평화롭고 낙원으로 보이지만 땅을 딛고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에게 낙원은 없다. 먹고 사는 문제(생존)는 동물이나 사람이나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두려움은 어떻게 사라질 수 있는가
인간 세상도 부모 잘 만나 밥을 숟가락으로 떠먹여주지 않는 이상 스스로 생존을 모색해야 하고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 두려움과 쪽팔림 때문에 주저하는 것이라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두려움은 두려움에 직면해야만 극복할 수 있고 쪽팔림은 쪽팔림을 당해봐야 사라진다. 정치가들의 주 특기가 어르고 달래서 표를 모으는 것이라면 깡패들의 주특기는 겁줘서 돈을 뜯어내는 것이다. 둘 모두 정신적으로 무장해제를 시켜 소기의 목적을 이루려 한다.
우리 주변에는 누군가에게 무장해제를 당한 정신적 미숙아들이 많다.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고 스스로 행동하지 못하고 또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어른들 중에도 아직도 누구를 숭배하고, 실체가 없는 권위에 매달리고, 자신의 나약함을 위로받길 원하고 또 무얼 해 달라고 칭얼대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바로 정신적 미숙아다. 겉으로 봐선 모르는데 의외로 그런 사람들이 꽤 많다.
세상 살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것은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는 다짐에서 출발한다. 오늘 만난 직장 후배가 그런 다짐 아래 플랜 B를 준비하고 있기를 바란다.
버들치 작가
증권회사에서 33년 근무 후 퇴직하여 현재 기능인으로 인생 2 막을 살고 있다. 1965년에 태어나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이 세 가지 운으로 위태롭게 살아왔다. 첫 번째 운은 짧은 학력으로 증권회사에 입사한 것이고, 두 번째 운은 33년간 한 회사를 다닌 것이고, 세 번째 운은 퇴직 후에도 소일거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퇴직을 앞두고 주경야독으로 기술을 배웠으며 그 경험에 대해 네이버 '부동산 스터디' 카페에서 버들치라는 닉네임으로 글을 썼다. 그 결과물로 '버들치의 인생2막'(2023)이라는 책을 발간 했다. 단순하고 평온한 삶을 추구해 왔으며 앞으로 그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