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돌한 '요즘 것들'과 친하게 지내면 생기는 일
글 : 한혜경 / 작가, 前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2025-02-24
지난달에 일본 큐슈 지방의 작은 온천마을 유후인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유후인은 신기한 마을이다. 유후인이 일본의 젊은 여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관광지라는 정보를 처음 들었을 때, 현대적이고 휘황찬란한 곳이겠지, 막연히 짐작했었다. 하지만 짐작과는 달리, 유후인은 작고 소박하고 조용하고, 모든 건물이 나지막한 시골마을이었다.
이번에 다시 가본 유후인은 변한 게 없었다. 요즘도 주민등록상 인구가 3만 명 수준인데 관광객 수는 연간 4백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여전히 대기업의 브랜드 시설이나 대형 리조트 하나 없이 중소 규모의 전통적인 온천 료칸이 성업 중이었으며, 유후인역에서부터 긴린 호수까지 이어지는 거리에는 조그만 공방과 갤러리, 가게들이 아기자기하게 모여 있었다.
나는 유후인의 ‘우아한’ 느낌이 좋다. 뭔가 현대적인 것을 넘어선 느낌이랄까, 발전이 안 된 것이 아니라 우아하게 개발되었다는 인상이다. 만약에 유후인 주민들이 어설픈 개발 논리를 동원했다면, 기존에 있던 것들을 싹 허물어버리고 자연을 파괴해 가면서 새롭고 높고 번쩍거리는 건물과 시설 짓기에 바빴다면 지금처럼 매력적인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
또 하나 신기한 건 젊은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찾아온다는 점이다. 유후인이라는 마을은 사람으로 치자면, 분명 ‘나이 든 사람’처럼 보이는데, 찾아오는 사람들은 젊다는 게 참 특이하지 않은가. 유후인에 머무는 동안 만난 한국인 관광객도 중장년층보다 젊은이들이 훨씬 더 많았다. 그래서 ‘유후인 같은 사람’으로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별로 가진 것도 없이 늙어가고 있지만, 자기다움을 잃지 않고 자기만의 멋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 독특한 장점과 매력 덕분에 젊은이들도 좋아하고 찾아오는 그런 노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말이다.
디지털 세대의 정보력과 친절함에 감동하다
하지만 이 글은 유후인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번 유후인 여행에서 만났던 MZ 세대와 그들로부터 여러 가지 도움을 받았던 이야기를 써보고자 한다.
여행 둘째 날, 이른 아침에 긴린 호수 근처에 있는 ‘카메노이벳소’라는 이름의 오래된 별장지 안에서 고급 료칸과 정원, 오래된 가게도 둘러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다리도 쉴 겸 가볍게 커피 한잔 마시려고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종업원이 대기 명부에 이름을 적어놓고 기다리라고 안내하는 것이었다. 카페에 웨이팅 리스트라고? 의아했지만, 오래된 일본식 가옥을 리모델링한 카페 내부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기다릴 가치가 충분해 보였다.
마침 옆자리에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한국인 커플이 앉아 있었다. 디지털 세대의 정보력에 기대고 싶었던 나는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혹시 점심은 어디서 먹을 생각인가요? 이 근처에 맛집 아는 데 있나요?”
이들은 얼른 핸드폰을 열더니 이 카페의 인기 메뉴를 화면으로 보여주면서 자기들은 이걸 먹으려고 일부러 이 카페를 찾아왔다고 알려주었다.
솔직히 내가 먹고 싶었던 것과는 거리가 먼 메뉴였다. 이들은 그런 내 속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얼른 근처에 있는 다른 식당을 검색하면서 “일본정식 파는 식당이 있네요, 여기 고깃집도 있는데요?” 라고 알려주었다. 이들의 친절함에 마음이 다 따뜻해질 지경이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그 카페에서 젊은이들이 추천한 그 메뉴로 점심을 먹었고,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오래된 일본식 가옥의 공간과 인테리어도 멋졌고, 음식도 맛있고, 종업원도 친절하고, 음악마저 좋았다. 아, 젊은이들과 친하게 지내면 맛있는 점심이 저절로 나오는구나, 새삼 실감했다.
비상상황 대처에 힘이 되어준 그들
MZ 세대의 도움을 받은 건 이뿐만이 아니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 눈발이 조금 날리는 날씨였는데 공항버스를 운행하지 못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공항 가는 길 중간에 위험한 구간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국 버스는 공항이 아닌 다른 도시로 출발했고, 1시간 40분이면 갈 수 있는 공항을 기차와 버스, 택시를 갈아타면서 5시간 만에 도착했다(비행기는 당연히 놓쳤다).
이 과정에서 같은 버스에 탑승했던 MZ 세대 여러 명의 도움을 받았다. 예약된 비행기표 취소 전화에서부터 가장 빠른 기차 시간, 공항 가는 방법 등등... 이들이 정보를 공유해주고 도와주지 않았다면 최소한 두 배는 더 헤매고 당황했을 것이다. 전형적인 아날로그 인간인데다가 여행 스타일까지 아날로그인 우리는 예측할 수 없었던 비상 상황에서 합리적으로 대처하고 행동하는 디지털 세대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그들과 친해지면 누워서도 떡이 나온다
요즘 MZ 세대와는 소통하기 어렵다는 하소연을 많이 듣는다. 아예 ‘다른 종족’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불필요한 갈등이 생길 것을 염려하여 얼굴 맞대고 말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중장년층도 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불만은 더 커질 수밖에. ‘요즘 것들’은 교수가 반말해도 맞반말한다더라, 어른들의 반말도 모욕죄에 해당된다더라, 말도 ‘별다줄(별걸 다 줄이는)’하는 바람에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다, 등등 불만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번에 유후인 여행 중에 만나 이야기를 나눴던 MZ 세대들의 인상은 딴판이었다. 이들과 친하게 지내면 누워서도 떡이 나오겠구나, 라는 느낌이랄까? 이들이 그토록 중요시한다는 원칙이나 합리성, 정직성, 자율성 같은 것들만 지켜주고 존중한다면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다는 걸 몸소 확인했다.
<90년생이 온다>의 저자 임흥택이 주장하듯이, 복잡한 이 세상에서 최적의 해답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양 끝단이 아니라 중간 쯤에 존재할 것이다. 중요한 건 아날로그 인간과 디지털 인간이 자주 만나서 소통하는 것인데, 그러려면 ‘요즘 것들은 당돌한 세대라서 그렇다’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이들이 말하는 요지와 내용 자체에 관심을 보일 필요가 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새삼 느낀 점이다.

한혜경 작가, 前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책임 연구원과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나는 매일 은퇴를 꿈꾼다> <남자가 은퇴할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의 저서를 통해 베이비붐 세대 은퇴자가 겪는 다양한 이야기를 써온 작가이기도 하다 최근의 저서로는 본 사이트에 연재하고 있는 ‘나의 은퇴일기’ 내용을 토대로 한 <은퇴의 맛>, 저자가 진행하고 있는 ‘자기 역사 쓰기 프로그램’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기꺼이 오십, 나를 다시 배워야 할 시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