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자 되고 뭐가 아쉬웠고 뭐가 좋았나?
글 : 강성민 / 재정회계법인 회계사, 前 KBS 라디오PD 2025-01-03
2024년은 필자에게 정말 폭풍같이 지나간 한 해였다. KBS PD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는 KBS에서 정년퇴직을 할 것으로 내내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2024년 초 갑자기 회사사정이 어려워지면서 30년간 다니던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하게 됐고, 회계법인에서 공인회계사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번 편에서는 올해 명예퇴직자로서 느낀 아쉬운 점과 좋았던 점을 공유해볼까 한다.
휴대폰과 PC, 없던 지출이 발생하다
명예퇴직을 하고 첫 워킹데이에 한 일은 법인명의의 폰을 개인명의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마지막 출근날 회사의 법인폰 담당부서에서 새로운 유심을 수령해 왔는데, 관할대리점에 전화상으로 업무를 처리한 후 유심을 직접 갈아 끼우라는 안내를 받았다. 이것이 별일은 아니었지만, 유심을 끼우는 일을 직접 할 자신이 없어서 집 앞에 있는 SKT 대리점 직원에게 유심교체를 부탁했다.
법인폰이 내 명의가 되니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었다. 우선 장점은 휴대폰 인증이 편해졌다는 점이다. 요즘은 무엇을 하든지 휴대폰 인증이 필요한데, 법인폰으로 개인인증을 하기 위해서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쳤었다. 법인폰을 내가 쓰고 있다고 인증하는 단계를 한번 더 거쳐야 했으니까 말이다. 심지어 인증이 까다로운 일부 은행이나 증권사의 경우 법인폰으로는 모바일 업무를 처리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개인명의의 휴대폰을 가지게 되어 편리해졌지만, 그에 대한 대가는 당연히 돈으로 치러야 했다. 한달에 200GB 데이터를 쓸 수 있는 회사의 요금제를 그대로 유지하려면 월 OOO원 정도가 든다고 했다. 100GB로도 충분해서 5천원이 싼 한 단계 아래 요금제로 바꿀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대로 두기로 했다. 회사에 다닐 때라면 월 5천원이 의사결정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금액이지만, 당분간 현금흐름이 급격히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한 달에 5천원도 결코 작은 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동안 법인폰을 사용하면서는 통신요금은 전혀 들지 않았는데, 이제 개인폰으로 전환해서 연간 70만원 정도 더 들게 되었으니 이 자체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휴대폰과 더불어 컴퓨터에 대한 지출도 생겼다. 회사에서 쓰던 컴퓨터를 감가상각비를 제한 금액으로 재구입했는데, 원래 깔려있던 프로그램을 싹 밀어버린 상태로 지급받았다. MS 오피스 프로그램을 정기구독 한다거나 그동안 회사가 구입해주던 컴퓨터를 앞으로는 내가 구입해야 하는 것까지 생각하면 무시할 수 없는 지출이 계속 생길 것 같다.
이제는 스스로 해야 한다
회사에서 컴퓨터를 쓰다가 문제가 생기면 친한 후배 S씨에게 도움을 받곤 했는데, 그럴 수 없게 된 점도 처음에는 아쉬웠다. KBS처럼 규모가 큰 회사에 있다가 직원수 20명 안팎의 작은 회사로 옮기게 되니 내 스스로 해결해야 되는 일이 많아졌다. 하지만, 이것이 반드시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큰 회사에서 연차가 올라가면서 어느 순간부터 도와줄 사람이 있는 일은 배우려는 생각 자체를 안 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유튜브에 있는 음원을 오디오로 변환할 일이 자주 있었는데, 예전에는 항상 S씨에게 부탁을 했었다. 최근에 그 방법을 검색해서 직접 해보니 너무나 간단해서 그동안 부탁했던 것이 부끄러워질 지경이었다. 이제부터는 부탁할 사람이 있어도 내가 정말 할 수 없는 일만 요청해야겠다는 결심이 든 순간이었다.
나 혼자 못할 것 같은 일로 생각했던 일 중에는 유튜부 영상편집도 있었다. KBS 재직 시절 <강PD의 똘똘한 은퇴설계>라는 팟캐스트를 2년 반동안 연재했었는데, 반응이 꽤 좋았고 열혈 애청자도 많았다. 그래서, 시즌2는 유튜브 채널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요청이 많이 있었다. 나도 그렇게는 생각했지만 그것을 차일피일 미뤘던 이유는 영상편집을 직접 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요즈음 내가 다니는 회계법인 채널에 올리는 영상을 편집하다 보니 개인 유튜브 채널도 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잠들어 있던 신입사원 시절의 열정을 되살리며
신입사원 때처럼 배워가면서 하나씩 해결하면 안 되는 일이 거의 없다. 초심(初心)을 잃지 말라는 말의 의미가 아마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30년전 KBS신입사원일 때는 밤을 새워 일하는 날이 많았다. 새로 배워야 하는 일이 많기도 했지만, 열정이 컸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시간이 갈수록 노련함은 더해졌지만, 열정은 그에 반비례해서 사그라 들었던 것 같다. 이제 30년만에 다시 신입사원이 된 나는 30년 전의 열정을 깨워서 뭐든 배우려는 의지를 다시 다지고 있다. 명예퇴직을 해서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내 안에 영영 잠들어 있었을지도 모르는 열정을 깨운 것은 그 아쉬움을 벌충하고도 남을 값진 일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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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민 재정회계법인 회계사, 前 KBS 라디오PD
2024년 초 30년 재직했던 KBS에서 명예퇴직을 했다. 대학에서는 화학을 전공했지만 어린 시절의 꿈을 찾아 대학원에서는 클래식을 공부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따 놓은 한 동안 장롱 면허 같았던 공인회계사 자격증으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은퇴와 연금에 관심이 많아 KBS 라디오 PD시절, 은퇴 팟캐스트를 제작했고, <연금 부자 습관>이란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퇴직을 앞둔 직장인들의 노후에 도움이 되는 지식을 전파하는 것을 자신의 인생 2막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